낭왕전생 7권 – 25화 : 암계 난무 (4)
암계 난무 (4)
주로 기루에서 몸을 팔 수 없게 된 퇴기들이 이 암굴로 오는데, 몸 값이 저렴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낭인들이 일을 끝마치고 몸을 풀러 오곤 했다.
“대인, 이리 와요, 이 가슴으로 뜨 겁게 안아 줄게요.”
“대인, 저년 말은 믿지 마요. 제가 함께 목욕을 해 봐서 아는데 저 가 슴 한껏 끌어 모은 거예요.”
암굴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여인네들이 상관춘에게 뜨거운 추파를 던졌다.
그중에는 옷고름을 반쯤 풀어헤친 여인도 있었고 대놓고 가랑이를 벌 리는 여인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 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상관춘이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건물의 입구에는 홍화루라는 허름 한 간판에 걸려 있었다.
상관춘은 거침없이 문을 열고 안으 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사내와 여인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홍화루는 암굴 유일의 기루였다.
그래서인지 가슴을 까놓고 호호거 리는 기녀들의 외모가 의외로 앳됐 다.
“상관 대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처럼 별채로 모실까요?”
정신없는 와중에 홍화루의 총관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한두 번 찾아온 것이 아닌 듯 총 관은 익숙하게 그를 별채로 안내했 다.
별채는 제법 운치 있는 곳에 자리 하고 있었다.
작지만 옆쪽에 연못도 있고 그 주 변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광이 놈, 이곳에 있나?”
자리에 앉기 무섭게 상관춘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한 사람을 찾았고 그 순간 총관의 눈빛에 날이 섰다.
“어인 일로 그 미친개를 찾으십니까?”
“놈의 이빨이 필요하게 됐네.”
“그 위험한 놈을 쓰시려는 걸 보니 꽤나 골치 아픈 일인가 보군요?”
“그건 알 것 없네. 이건 선금일세.”
상관춘은 두둑한 전낭을 통째로 총 관에게 넘겼다.
“놈은 언제,어디로 보내 드리면 되겠습니까?”
돈을 챙긴 총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사흘 뒤 비상장으로 보내게. 시간 을 엄수해야 하는 일이니 광이 놈에 게 절대 늦어서는 안 된다 전하게. 그리고 내가 그놈을 고용했다는 사 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네.”
“그건 염려 마십시오. 하늘이 두 쪽 나도 저희 쪽에서 먼저 대인의 이름을 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총관은 호언장담했다.
과연 상관춘이 고용하려고 하는 미 친개는 누굴까?
낭인들이 철사자회 앞에 진을 친 지 사흘이 지났다.
긴장이 풀린 것인지 낭인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거나 간 단한 도박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툼도 잦아 졌고 오늘 기어코 사달이 벌어졌다. 평소 앙숙이었던 두 낭인이 사소한 시비로 검을 뽑아 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더 기막힌 건 주변의 낭인 들이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릴 생각은 않고 오히려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 겼다는 듯 환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 이었다.
조인창은 그 모습을 담 너머에서 지켜봤고 이내 굳은 표정으로 설우 진을 찾아갔다.
설우진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지난밤에 과음을 한 탓인지 정신을 차 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인창은 설우진을 흔들어 깨웠다.
“으음, 무, 무슨 일이야?”
잠이 덜 깬 눈으로 설우진이 조인 창을 쳐다봤다.
조인창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 황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런데 설우진의 반응은 태연했다.
“놔둬, 낭인들이란 원래 그런 족속 들이니까. 그리고 저놈들도 얼마나 심심하겠어.”
“그래도 돈 주고 고용한 건데…..”
“어차피 위협용으로 데려다 놓은 거잖아. 그리고 싸울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을 향해 검을 들이밀 거야.”
설우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베개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주 가관이로군. 무인으로서의 기본조차도 지키지 않는 한심한 놈 들.”
비상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상관춘과 차관호가 한심스러운 표정 을 지어 보였다.
둘의 시선은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는 낭인들에게 집중돼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낭인들끼리 맞붙은
것이라 쉽게 승부가 나지 않고 있었 다.
그런데 더 기막힌 상황이 바로 뒤 에 이어졌다.
장원의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밖 으로 나왔다. 그는 싸움을 말리는가 싶더니 전낭을 꺼내 들고 구경꾼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뒤로 싸움은 더욱 격해졌다.
“더 기다릴 것도 없겠군.”
차관호가 싸늘한 어투로 말을 뱉었다.
그는 평소에도 낭인들을 탐탁지 않 게 여겼다. 돈에 무인의 혼을 팔았 다 여겼기 때문이다.
차관호가 용권대를 이끌고 한 걸음 앞서 나갔다.
상관춘은 그들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라갔다.
카캉캉캉.
두 자루의 검이 격렬하게 맞물렸다.
돈이 걸리면서 낭인들은 숨겨뒀던 삼 푼의 힘까지 모두 끌어냈다.
“이쯤에서 포기하시지. 잘못하면 그 팔이 날아갈 수도 있어.”
“그건 오히려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아까도 봐서 알겠지만 난 검기를 쓸 수 있다.”
이류 낭인 소삼과 관충이 서로를 밀쳐내며 소위 센 척을 했다.하지 만 검을 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일단 숨소리가 거칠었다. 멀리서도 그 소리가 다 들려올 정도였다. 그 리고 검극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는 근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의미했다.
“어이, 언제까지 입만 나불대고 있 을 거야? 붙을 거면 화끈하게 붙 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설우진이 전낭을 흔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삼은 옆구리를 관충은 팔을 노렸다.
빠르게 교차하는 두 자루의 검.
미묘하게 소삼의 검이 빨랐다.
서걱.
관충의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튀었다.
그런데 소삼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 하고 계속 공격을 이어 나갔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대개 안 좋은 쪽으로 결말이 나곤 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 았는데.’
관충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 다. 체력이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눈앞에 짓쳐 드는 검을 도저히 떨쳐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절체절명의 순간, 눈앞에서 소삼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관충은 당황한 얼굴로 소삼을 찾았 다. 소삼은 구경꾼들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생사투도 아닌데 그렇게 열을 내 면 곤란하지. 더군다나 지금 너희들 은 나한테 고용된 입장이잖아.”
조금 전 관충을 구한 건 설우진이 었다.
그는 소삼의 눈이 돌아간 순간 벼 락같이 뛰어들어 옆구리를 시원하게 걷어찼다.
내력이 실려 있진 않았지만 급소인 데다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있 는 상태라 전해진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이 돈은 저 친구한테 전해 줘.”
설우진이 옆에 서 있던 낭인에게 은자 열 냥을 건넸다. 낭인들의 시 선이 자연스럽게 그 돈으로 향했다.
“설마, 이 돈에 욕심내는 건 아니 겠지?”
“제 몸이 부서져라 싸우고 번 돈이 야. 그걸 맨 입으로 먹으려고 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이지.”
설우진이 단단히 경고했다. 이에 낭인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용권대 를 앞세운 오성문이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낭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저마다 바닥에 내려놨던 병장기를 집어 들고 비상장 문 앞에 진을 쳤 다.
그리고 궁을 사용하는 낭인들은 담 벼락을 타고 올라가 활시위에 화살 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