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28화 : 악연 재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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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7권 – 28화 : 악연 재회 (3)


악연 재회 (3)

“어쩌려고?”

“저기 미쳐 날뛰는 놈들, 모두 때 려잡아. 보아하니 마약을 먹은 것 같은데 저리 두면 칠공에 피를 쏟고 죽을 거야.”

설우진이 살인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철사자회주로서의 첫 번째 명을 내렸다.

조인창과 남궁벽은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저 녀석이 왜 이런 명령을…………?

‘우진이가 책임감 있는 자리에 오르더니 드디어 협의지심에 눈 뜨게 된 건가?’

예상 밖의 전개에 둘은 서로 다른 의구심을 품었다.

그런데 그 의구심은 오래지 않아 산산이 깨졌다.

“뭘 멀뚱하게 서 있어. 안면도 모르는 놈들 시체 치우고 싶어?”

“저들을 구하자는 게 아니었어?”

“내가 왜?”

순간 조인창은 말문이 막혔다. 숨은 사정이야 어찌 됐든 저들은 철사자회에 검을 들이댄 적이었다. 

“조인창, 쓸데없는 오지랖은 그만 떨어! 철사자회는 네가 꿈꾸는 그런 이상적인 회가 아니야!”

설우진이 확실히 못을 박았고 이에 조인창이 굳은 표정을 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전 같았으면 장난으로라도 그 마음 을 달래줬겠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온통 막광에게 향해 있었다.

“이곳은 너한테 맡긴다.”

설우진이 남궁벽의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나아가는 길목에는 낭인들과 마약에 취한 자들이 뒤엉켜 있었다. 

“비켜!”

설우진이 도갑을 좌우로 휘두르자 피할 새도 없이 사람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길이 열리자 설우진은 그대로 막광 을 향해 내달렸다.

‘저, 저 자식, 뭐야?’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설우진을 보면서 막광은 당황했다.

사실 그의 무공은 보잘것없었다. 단지 계략에 능하고 동료도 팔아먹 을 수 있는 독심을 지녔기에 이제까 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급히 품을 뒤졌고 잠시 후 붉은 빛깔을 띤 자기병이 딸려 나왔 다.

‘광혈단을 수십 개 녹여 만든 광혈 산이다. 광혈단보다 몇 배는 더 독 하니 네놈이라도 별수 없을 것이 다.’

막광이 병을 열고 광혈산을 전면에 뿌렸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광혈산이 설우진의 눈앞으로 짓쳐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던 설우진은 천뢰도에 뇌기를 실 어 허공에 흩뿌려진 광혈산을 불태 웠다.

회심의 한 수가 무산되자 막광은 다시 품에 손을 넣어 연막탄과 독이 발린 철질려를 내던졌다.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연막탄이 터지자 희뿌연 연기가 사방팔방으로 자욱하 게 퍼져 나갔다.

그 속에서 막광은 부지런히 도망쳤다.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상황인데 도 그 움직임은 놀랄 정도로 기민했 다.

‘빌어먹을,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있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미리 파초 분을 뿌려 뒀기에 망정이지 꼼짝없 이 붙잡힐 뻔했네.’

막광이 도망치는 방향에는 검붉은 빛깔의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추종향의 주재료로 쓰이는 파초분 이었다.

막광은 바로 이 파초분의 향 덕분 에 시야가 어두운 상황에서도 헤매 지 않고 도주로를 찾을 수 있었다. 잠시 후 흐려졌던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그런데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뒤를 쫓았던 설우진이었다.

“어, 어떻게…….?”

“내가 네놈을 아주 잘 알거든.” 

설우진이 진한 살소를 입가에 머금 었다.

전생에 막광은 교토삼굴의 지혜를 제 살 길을 여는 데 사용했다. 무슨 일을 하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굴을 파놓는 것이다.

덕분에 한 번은 뜻하지 않게 목숨 을 건진 적도 있었다.

적들에게 둘러싸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광이 도망치는 걸 보고 정신없이 그 뒤를 쫓다 보니 어느새 포위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때는 막광을 생명의 은인이라 여 겼다. 그 시커먼 속내를 알지 못했 기 때문이다.

‘저놈이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 는 거지?’

막광은 설우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 무리 기억을 짜내도 설우진과 얼굴 을 마주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그걸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상대는 자신에게 살의를 품었고 정면으로 맞서서는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촌각에 달한 목숨.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굴이 필요 했다.

‘어차피 쓸 수 있는 건 다 썼어. 이럴 땐 바짝 엎드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어.’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막광이 이 내 마음을 정했는지 허리에 차고 있 던 검을 내던지고 바닥에 엎드렸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살려 주십시오.”

“내가 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않게 지저분한 일에 얽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자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앞으로 그쪽 일은 제가 전 담해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막광은 자신의 재주를 피력했지만 설우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약속을 어찌 믿지?”

“그럼 제 몸에 금제라도 펼치십시 오, 세상 밖에 사는 분들은 손짓 몇 번으로도 혈을 묶을 수 있다고 하던 데.”

막광이 몸을 일으키더니 가슴을 활 짝 열어 보였다.

그걸 보고 마음이 동했는지 설우진이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거리.

그런데, 막광의 입가에 전에 없던 미소가 번졌다, 무슨 숨겨진 한 수 라도 있는 것일까.

잠시 후 그의 오른손이 등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날카로운 파공성. 쉬익.

막광의 손이 설우진의 목줄을 노렸 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먹빛을 띤 침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기습이 었다.

‘흐흐, 너 같은 힘만 센 애송이를 한두 번 만나 본 줄 아느냐. 이걸로 상황은 역전이다.’

막광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는 항시 상대의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 그러니까 뒷덜미 쪽에 흑사침을 숨겨 두고 다녔다. 흑사침은 강한 마비독에 백 일이상 침을 담가 만드는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 를 받고 있었다.

설우진의 목줄이 눈앞에 다가왔다. 막광은 흑사침을 쥔 손에 힘을 불어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목이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푸욱.

흑사침이 그의 가슴팍에 그대로 꽂 혔다.

빠르게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마비 독에 막광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 졌다.

“아까도 얘기했잖아, 네놈의 수법 은 훤히 꿰고 있다고.”

설우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오른손에 쥐고 있던 막광의 손목을 놨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그 부위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대,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막광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이에 설우진은 그의 목덜미로 천뢰 도를 가져갔다.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저승에 가서 염라사자에게 물어봐.”

서걱.

천뢰도가 막광의 목을 그대로 갈랐다.

내력을 실어 벤 것이라 막광의 목 은 깔끔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막광을 처리한 후 설우진은 철사자 회로 돌아왔다.

그곳에서의 싸움도 이미 끝나 있었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칠검문의 문 도들이 한쪽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 다.

고고한 기상을 뽐내던 상관춘은 산 발이 된 머리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대등한 싸움을 이어 갈 거라 믿었 던 막광이 도망을 치자 평정심이 흔 들려 차관호에게 치명타를 허용한 것이다.

게다가 그 즈음에 철사자회 식구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히 남궁벽은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며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가볍게 제압했다.

설우진이 상관춘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머리채를 잡아 눈높이 를 맞췄다.

“어이, 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야. 그러니까 앞으로 조용히 살자 고.”

“그, 그냥 보내 주시는 겁니까?”

“그럼, 죽여 줄까?”

“아, 아닙니다. 앞으로는 절대 철사 자회의 뜻에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상관춘은 살 길이 열리자 적극적으 로 설우진에게 굴복했다. 힘의 격차가 비슷했다면 그 순간에 치욕감을 느꼈을 테지만 이미 그의 마음속에 철사자회는 넘기 힘든 벽으로 인식 되어 있었다.

“그냥 보내 줘도 되는 거냐?” 

칠검문을 떠나보낸 뒤 남궁벽이 옆 으로 다가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 었다.

“한번 꼬리를 만 개는 더 이상 짖 지 못해. 그리고 저쪽에 안전장치도 해뒀고.”

설우진이 칠검문의 뒤를 이어 움직 이는 오성문을 가리켰다.

그는 차관호에게 기존의 이권을 그 대로 보장하는 조건으로 칠검문의 감시와 견제를 떠맡겼다.

차관호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 안이었다.

오성문까지 자리를 뜨자 장원 앞에 한산해졌다. 그런데 설우진은 바로 장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낭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낭인들의 피해는 제법 컸다.

칠검문을 상대할 때까지만 해도 서 너 명의 경상자가 전부였는데 마약 을 먹은 이들이 미쳐 날뛰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

“상태는 어때?”

설우진이 날카로운 인상의 조태오 를 불러 물었다.

조태오는 이번에 고용된 낭인들 중 에서 유일하게 일급 낭인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사망자 아홉에 중상자만 스물이 넘습니다.”

“손해가 막심하네.”

“이 새끼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나!’

조태오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설우진의 압도적인 무위를 확인한 뒤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들이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꾹 누르며 대 화를 이어 갔다.

“마음의 부담은 느끼실 필요 없습 니다. 죽은 녀석들이 불쌍하기는 하 지만 그게 낭인의 삶인 것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조태오는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낭인이 된 것에 강한 회의감을 느꼈 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낭인의 삶은 늪과 같아서 발을 빼 려 할수록 자꾸만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자식, 생긴 것과 다르게 감수성이 풍부하네. 그럼 더한 감동을 안겨 줘 볼까.’

설우진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품 안의 전낭을 끄집어냈다. 한눈에 보 기에도 묵직했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이, 이게 뭡니까?”

“돈이잖아.”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습니 까.”

“위로금이야.”

조태오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 졌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돈이었기 때문이다.

십수년 넘게 낭인 생활을 해왔 지만 이런 경우는 단연코 처음이었 다.

‘무슨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건 가?’

조태오는 설우진의 진의를 의심했 다.

하지만 이내 그 의심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설우진은 자신들에게 돈을 줘서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뜻은 없어. 아픈데 돈까지 없으면 너무 인생이 서럽잖아.”

그 말속에는 설우진의 진심이 깊게 묻어났다.

초보 낭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 는 부상당한 몸으로 사흘을 굶은 적 이 있었다.

수전노 같은 의뢰인이 일처리가 맘 에 들지 않는다며 잔금 치르기를 거 부한 것이다.

때문에 선금으로 받았던 돈은 고스 란히 치료비로 들어갔고 다른 일을 맡을 때까지 배를 주려야만 했다. 

“안 받을 거야?”

전낭을 앞에 두고 조태오가 머뭇거리자 설우진이 슬쩍 손을 뒤로 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아닙니다!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조태오가 황급히 전낭을 잡아챘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마음을 바꿀 까봐 잽싸게 등 뒤로 숨겼다.

“줬다 뺏는 그런 추잡한 짓은 안 할 거니까 걱정 말고 식구들한테 나 눠 줘.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서 하 는 말인데 그 돈 가지고 장난질은 하지 마. 아까도 봐서 알겠지만 난 한번 수틀리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거든.”

“그건 걱정 마십시오. 이 조태오, 동료들의 돈을 떼어먹을 정도로 약아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조태오가 두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박력 넘치게 외쳤다.

그 모습이 믿을 만했는지 설우진은 곧장 장원으로 들어갔다.

장원의 문이 닫히고 난 뒤, 조태오 는 조심스럽게 전낭을 열어 봤다.

“이, 이게 대체 얼마야?”

놀랍게도 전낭 안에는 은자가 수북 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금자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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