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6화 : 쌍룡 분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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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7권 – 6화 : 쌍룡 분열 (3)


쌍룡 분열 (3)

“대세는 이미 그쪽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뒤늦게 발목을 붙잡으면 되 레 반감만 사게 될 것이다.”

“하면 이대로 방관하자는 것입니 까?”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놈들이 바 라는 일. 늦었지만 우리도 그자들과 함께 움직인다.”

“대체 그게 무슨……?”

신추명이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적사호를 빤히 쳐다봤다.

“이런 식의 흐름이라면 외부에서 놈들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 해진다. 그럴 바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내 부에서 그들을 견제하는 것이 낫 다.”

마천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위 성웅은 발 빠르게 역천회의 실권을 장악해 나갔다.

회주와 군사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새로운 무력 조직, 삼익천을 창설했 다.

삼익천에는 통천문과 청룡문을 제 외한 나머지 세 개 문파의 정예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적사호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 엔 역부족이었다.

“그보다 군사님의 행방은 아직도 찾지 못한 게냐?”

“네, 제자들을 풀어 군사님이 가실 만한 곳을 모두 뒤져 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현무문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감시토록 해라.”

“설마, 그들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군사님은 현무문의 원로입니다! 아 무리 욕심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가 문의 어른께 어찌 그런………….”

“돈 때문에 자길 낳아 준 부모에게 도 칼을 들이대는 세상이다. 더욱이 그들은 이미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았느냐!”

적사호는 갑작스러운 해천인의 부 재에 현무문이 깊게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들이 최근에 보여 준 일련의 행 보가 해천인의 부재와 딱 맞물려 있 었기 때문이다.

“정말 군사님이 현무문에 억류되어 있는 것이라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밖으로 모셔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구 심점이 필요하다.”

적사호는 해천인의 존재가 가지는 중요성을 피력했다.

“알겠습니다. 근시일 내에 현무문 에 잠입해 군사님을 확보토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난 현무문주를 만나러 가 봐야겠다.”

적사호가 먼저 방을 나섰다.


급하게 치장된 황룡 학관의 관주실안.

융단 위 화려한 옥좌에 마천주 서진용이 앉아 있었다.

그는 섬서를 병탄한 뒤 황룡 학관 을 전진기지로 삼았다. 다시는 지난 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지원군은 언제쯤 도착하지?” 

서진용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예의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사마중달이 서 있 었다.

“늦어도 사흘 안에는 서안에 들어 설 것입니다.”

“그럼, 그때에 맞춰서 쌍룡맹의 앞 마당으로 쳐들어가면 되겠군.”

서진용이 넌지시 자신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마중달이 반박 의견을 냈다.

“천주님, 전면전은 아직 시기상조 입니다.”

“왜지, 내부 분열로 어지러운 지금 이 난 오히려 적기라고 보는데?” 

“중원 무림은 예전부터 사분오열되 어 있다가도 공통의 적이 나타나면 거짓말처럼 뭉치곤 했습니다. 이번 의 경우에도 저희가 서둘러 움직일 경우 오히려 분열된 무림을 봉합시 키는 역효과를 야기할 수 있습니 다.”

“그럼 어찌해야 하느냐?”

“섬서에 우리의 세력을 공고히 하 면서 쌍룡맹 내의 분열이 고착화되 도록 기다리시면 됩니다.”

사마중달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 해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서진용은 그 말을 듣고 잠시 고심 하는 듯하더니 이내 술을 한잔 거칠 게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좋다, 네 말대로 때를 기다리마. 한데 쥐새끼를 잡으러 간 귀마한테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게냐?”

쥐새끼라는 말에 아주 잠깐이지만 사마중달의 눈가에 가는 주름이 졌 다.

“아무래도 임무에 실패한 듯합니 다.”

“귀마가 나섰는데도 죽이지를 못했 다고?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서진용의 두 눈에서 사나운 마기가 일었다.

상대는 쌍룡맹의 맹주도 아니고 학 관의 일개 관도였다.

한데 청랑대와 적랑대 그리고 귀마 까지 연달아 실패하다니 천주인 그 의 입장에선 그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놈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움직였어야 했 는데………….”

“구차한 변명은 됐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줄 터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을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목을 원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우리 손에서 세 번이나 도망친 놈 이다. 그 정도면 재능은 출중할 터. 직접 만나 보고 뜻이 맞으면 내가 거둘 것이다.”

서진용이 뜻밖의 의중을 내비쳤다. 그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제자를 거 둔 적이 없었다. 천주 위에 오르기전까지 무공에 미쳐 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후훗, 제자로 거둬 달라 찾아오는 놈들이 하나같이 가슴에 비수를 품 고 있었다. 한데 어찌 그런 놈들을 제자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서진용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 졌다.

그 마음을 읽은 사마중달은 곧바로 명을 내리겠다며 방을 나섰다.


타다닥 타다닥.

설우진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내달렸다.

시간을 다투는 싸움이기에 말 대신 두 발을 택한 것이다. 용천혈에서 분출되는 뇌기가 그의 신형을 쉴 새 없이 앞으로 밀어냈다.

무한을 출발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설우진은 마침내 청도항에 두 다리 를 내디뎠다. 마을을 그대로 지나쳐 온 터라 그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 다.

“일단 몸부터 씻어야겠군.”

설우진은 청도항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객잔을 찾았다.

-고려각.

인상적인 이름의 가게였다.

설우진은 문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곤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 다.

일 층은 이른 식사하는 이들로 크 게 붐볐다. 한데 대부분 중원의 것 과는 양식이 다른 복색을 하고 있었 다.

‘조선 상인들이 이곳에서 자주 묵 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 군.’

“어서 오십시오, 손님!”

그가 조선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 고 있을 때 점소이가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이곳에서 나흘 정도 묵을 예정이 다.”

“어떤 방을 원하십니까? 보아하니 내륙 쪽에서 오신 것 같은데 값을 조금만 더 치르시면 바다 쪽의 전망 좋은 곳을 내드릴 수 있습니다.” 

점소이가 두 눈을 씰룩이며 방을 소개했다.

산 전망은 은전 한 냥, 바다 전망 은 은전 한 냥에 철전 열 문이 더 붙어 있었다.

‘이놈들의 얍삽한 수작질은 여전하 네. 나도 처음 바다를 찾았을 때 꼼 짝없이 속아 넘어갔지.’

설우진은 점소이의 얼굴을 빤히 쳐 다보며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바다는 내륙인들에겐 무척이나 생소한 곳이다. 장강이 드넓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륙인들은 바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 었다.

한데 그 환상은 점소이들의 뒷돈 챙기기에 좋은 먹잇감이 되곤 했다. 

“어느 방을 내드릴까요?”

점소이가 설우진의 눈치를 살살 살 피며 넌지시 물었다.

“바다 전망으로 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나흘을 묵 으신다 하셨으니 은전 네 냥에 철전 사십 문만 주시면 됩니다.”

점소이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재빨리 셈을 마쳤다.

한데 설우진은 점소이의 수작질을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순순히 숙박 비를 지불했다.

돈을 받고 신이 난 점소이는 설우 진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지극히 평범했다. 어느 객잔 을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구조 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침상이 덩그 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손님, 저곳을 한번 보십시오. 수평 선 아래로 저무는 낙조가 예술이지 않습니까?”

점소이가 창문을 열고 확 트인 바 다를 보여 줬다.

때마침 바다 위로 낙조가 지고 있 었다. 창해가 붉은 빛으로 물드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데 설우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겨우 저딴 걸 보여 주려고 내게 철전 사십 문을 더 받은 건 아니겠 지?”

“소, 손님, 겨우라니요? 저 낙조는 내, 내륙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광 입니다.”

점소이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 었다.

“네놈이 지금 내륙을 무시하는 거 야?”

설우진의 눈빛이 한결 더 사나워졌 다.

‘쓰벌, 오랜만에 호구가 걸렸다고 좋아했더니 이건 그냥 진상이잖아.’

“이곳이 맘에 안 드신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그럼 돈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돈에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진상과 싸워 봐야 득이 될 게 없 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진상은 그 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손님을 상대로 사기를 쳤으니 위 약금을 내야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는 네 쪽에서 먼저 한 것 같은데. 여기 방값! 전 망에 상관없이 같잖아!”

‘젠장, 전에 우리 가게에 왔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얼굴인데?

 점소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다. 전에 사 기를 쳤던 손님이 다시 이곳을 찾아 오는. 한데 운 좋게도 그는 아직까 지 그런 손님을 만나 보지 못했다. 

‘이럴 땐 무조건 비는 수밖에 없 어. 괜히 주인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그날로 맨몸으로 쫓겨나고 말 거야.’

“손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모실 터이니 제발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흐음, 그래?”

“네, 뭐든 필요한 건 말만 하십시 오.”

설우진의 긍정적인 반응에 점소이 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서 몇 년을 일했지?”

“십 년이 조금 넘습니다.”

“그럼 조선 상인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군”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청도항에 서 거래하는 조선 상인들 중 절반 이상이 저희 객잔을 거쳐 갑니다. 그들에 대해선 청도에서 일하는 그 어떤 점소이들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합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점소이 왕고대는 조선 상인들과 상당한 친 분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고대의 아버지가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는 조선말을 곧잘 했다.

“최근에 이성철이란 조선 상인이 이곳에서 대규모로 인삼 거래를 했 을 것이다. 혹, 그자에 대해 알고 있느냐?”

“이 행수를 만나러 오신 겁니까? 그럼 시기를 잘못 택하셨네요. 그는 며칠 전에 죽었습니다. 설가상단에 서 배상금을 회수하려 자객을 썼다 고 하는데 그 일로 청도 일대가 발 칵 뒤집혔었습니다.”

‘이곳까지 소문이 퍼진 모양이군. 하기야, 사건의 당사자가 있던 곳이 니 다른 곳보다 주목도가 컸을 테 지.’

“그자가 죽은 건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시체가 되어 버린 그가 아니라 그가 책임자 로 있던 조선 상단의 사람들이다.” “그들이라면 이미 조선으로 돌아갔 을 텐데요.”

“그래도 시체를 수습할 사람은 남 겨 뒀을 것 아니냐.”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김씨를 본 듯합니다.”

“김씨?”

“이 행수가 데리고 있던 노복입니다. 이 행수가 움직일 때면 그림자처럼 따라서 움직이곤 했습니다.”

“그럼 그자를 내 방으로 데려올 수 있느냐?”

“지,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한참 손님들이 몰릴 시간이라서……….” 

“그자를 데려오면 이걸 주겠다.” 

설우진이 전낭에서 금전을 꺼냈다. 금전을 본 왕고대의 눈이 순간적으 로 희번덕거렸다.

“정말 김씨만 데려오면 그 돈을 저 한테 주시는 겁니까?”

“믿지 못하겠다면 거절해도 좋다.” 

설우진은 굳이 왕고대에게 매달릴 생각이 없었다. 김씨가 이곳에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그를 찾을 방법은 많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머뭇거리던 왕고대는 이각여 내로 김씨를 데려 오겠다며 급하게 방을 나섰다.


“도련님, 어찌하여 저를 두고 이리 떠나신 겁니까! 이런 일이 생길까 싶어 그리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 렸던 것인데…….”

나이는 여든쯤 됐을까, 백발이 성 성한 노인이 관을 앞에 두고 애끓는 마음을 표했다.

관 안에 누워 있는 건 이성철이었 다.

노인은 이성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리나케 제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죽음을 확인한 뒤 사흘 밤낮을 오열하며 이곳으로 시체 를 가져왔다.

한데 기막히게도 상단의 배는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무정하게 떠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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