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8화 : 흑선 경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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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7권 – 8화 : 흑선 경매 (1)


흑선 경매 (1)

“이 인간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둘러봐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잖아.”

왕고대는 돈을 위해 발바닥에 땀나 도록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 어디에 도 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를 두고 멀리 가진 않았을 텐 데.’

왕고대는 다시 한 번 길을 되짚었다.

그렇게 백 걸음 정도 내디뎠을까, 갑자기 주루 쪽에서 찢어지는 비명 이 들려왔다.

“이건 예월이 목소린데…………어떤 미친놈이 우리 예월이를 건드린 거 야!”

왕고대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 했다.

예월은 그가 짝사랑하는 청도루의 기녀였다. 예쁘장한 얼굴에 마음씨 까지 착해서 점소이들 사이에선 만 인의 여인으로 불리고 있었다.

청도루는 항구가 훤히 내려다보이 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도의 화려한 기루들과 비교하면 규모나 시설 면에서 어느 정도 손색 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녀들의 미모 만큼은 사내들의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할 정도로 빼어났다.

왕고대가 청도루에 도착했을 때 손 님들이 앞다퉈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제대로 사달이 났는지 그들의 얼굴 은 하나같이 사색으로 질려 있었다. 왕고대는 겁이 났지만 예월의 얼굴 을 떠올리며 애써 용기를 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피비린 내가 풍겼다.

냄새를 쫓아 떨리는 걸음을 옮기니 활짝 열려 있는 문 너머로 그가 애 타게 찾아다니던 김씨의 모습이 보 였다.

김씨는 살집이 두툼한 사내의 목덜미에 검을 들이대고 호위 무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앞서 한바탕 칼부림이 일었었는지 호위 무사들 중 일부는 바닥에 피를 흘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대,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 이 행수가 죽은 게 내 탓은 아니지 않느냐!”

김씨에게 붙들려 있는 조선 상단의 행수 박상원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리쳤다.

그는 이성철과 같은 상단에 몸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철에게 예도상 단을 연결시켜 준 장본인이기도 했 다.

“행수 어르신, 전의 일은 굳이 따져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도련님의 시신을 제때 고향으로 가져갈 수 있 도록 배를 내주십시오.”

“항구에 짐을 푼 지 이제 겨우 이 틀이 지났다. 한데 어찌 벌써 배를 띄운단 말이냐?”

“그럼 동료의 시체가 타국에서 썩 어 가도록 놔두시겠단 말씀입니까?” 

“여, 염장을 하면 되질 않느냐. 나 흘만 시간을 더 다오. 최대한 빨리 가져온 물건들을 처분하고 배를 띄우마.”

박상원은 김씨를 살살 달랬다.

그 사이 두 사람의 등 뒤로 검은 음영이 아른거리며 다가섰다.

그들보다 먼저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눈치챈 왕고대가 다급히 입술을 크게 벌렸다. 소리를 낼 수 없으니 입모양으로라도 김씨에게 경고해 주 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둘 사 이는 너무 떨어져 있었고 김씨의 시 선은 눈앞의 호위 무사들에게 고정 돼 있었다.

결국 등 뒤까지 다가서는 데 성공 한 음영이 김씨의 어깨에 검을 찔러 넣었다.

힘이 전달되는 부분을 제압당한 탓 에 김씨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놓 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김씨를 제압한 음영의 정체가 드러났다.

검은 야행복을 걸친 날렵한 체구의 사내, 청도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 는 흑서문의 부문주 노달이었다. 뭐, 말이 좋아 치안을 맡는다고 하 는 것이지 실제로 흑서문은 청도항 에 기생하는 흑도 무리였다.

“노 대협,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 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아닐세. 내 부하 놈들이 제 대로 일만 했어도 이런 불상사는 미 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걸세. 그나 저나 이 노인네는 누군가?”

노달이 김씨의 어깨를 발로 찍어 누르며 물었다.

“이 행수의 노복입니다. 시체가 썩 기 전에 고향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배를 띄우라고 하지 뭡니까!”

“호오, 충성심이 대단한 자로군. 그 래, 이자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 오.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제 호위 들을 제압할 정도로 무력이 출중한 잡니다. 노예로 팔아도 상당한 가격 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노예 매매는 흑서문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다.

노달은 기쁘게 박상원의 성의를 받 아들였다.

“이놈을 흑옥으로 데려가라. 몸이 상하면 제값을 받을 수 없으니 어깨 의 상처도 치료해 줘라.”

언제 대기하고 있었는지 흑서문의 무사들이 달려와 김씨의 양쪽 겨드 랑이를 붙잡아 올렸다. 김씨는 거세 게 저항했지만 정식으로 무공을 익 힌 자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 다.

그가 끌려 나가고 청도루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박상원과 노달은 미처 못 즐긴 여흥을 함께하자며 양쪽에 기녀들을 끼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걸 어쩐다?”

청도루 밖으로 나온 왕고대는 고민 했다. 김씨의 소재를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직접 데려가지는 못해도 잡혀 있는 장소는 알아 왔으니 약속한 돈의 절반은 주겠지.’

왕고대의 발걸음이 고려각으로 향했다.


다음 날, 흑서문의 무사들이 다양 한 연령대의 노예들을 데리고 항구 외곽에 정박해 있는 큰 배로 향했 다.

그 배는 노예 매매가 이뤄지는 경 매장이었다.

원칙적으로 노예 매매는 금지돼 있 지만 흑서문은 청도 관인과 은밀히 결탁해 바다 위에서 노예 경매를 진 행했다.

노예들이 탑승하고 얼마 후, 돛이 활짝 펼쳐지며 배가 앞으로 나아가 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가 출발하기 무섭게 항구 여기저기서 소선들이 앞다퉈 그 뒤를 쫓았다. 노예를 구매하려는 자들이었다.

한데 그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 였다. 설우진과 왕고대였다. 당연한 전개겠지만 한 쌍의 노는 왕고대의 손에 쥐여 있었다.

“설 대협, 꼭 제가 따라가야 하는 겁니까?”

“네가 물어 온 정보이니 끝까지 책 임을 져야지.”

“하, 하지만 저 배에는 위험한 자들이 득실거린다는 소문이 있는 데………….”

“걱정 마, 배에 탄 놈들 중에 나보 다 위험한 놈은 없으니까.”

설우진은 왕고대의 어깨를 툭툭 치 며 허리에 차고 있는 천뢰도를 내보 였다. 한데 그 행동이 오히려 왕고 대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하아,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돈은 좀 있어 뵈지만 저 칼은 그냥 장식으로 들고 다니는 느낌이야. 지금이라도 돈을 포기하고 돌아갈까?’

왕고대는 멀어지는 항구를 바라보며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어이, 돈 벌기 싫어? 어째 노 젓는 게 시원찮은데.”

돛대를 등지고 누워 있던 설우진이 왕고대의 어깨를 발끝으로 툭툭 치 며 물었다. 이에 왕고대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어렵게 입을 뗐다. 

“아무래도 전 안 되겠습니다. 돈은 안 주셔도 되니 저 배에는 혼자 타십시오.”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잖아. 그냥 내 옆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건데 정말 포기하겠다는 거야?”

“저 배를 소유하고 있는 흑서문은 청도항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세 력입니다. 자칫 그들의 눈 밖에 났 다간 점소이 자리에서 잘리는 건 물 론이고 쥐도 새도 모르게 땅 속에 묻힐 수도 있습니다.”

청도항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흑서 문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입고 다니는 흑색 무복만 봐도 절로 어깨를 움츠릴 정도였다. 

“음, 그건 좀 곤란하겠는걸. 난 그 노인의 얼굴을 모르잖아. 흑서문 놈 들이 경매를 진행할 때 이름을 호명 한다면 모를까 내가 무슨 수로 얼굴 도 모르는 노인을 찾아?”

“이런 경매에 노인이 상품으로 나 오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상식적 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미친놈 이 노예 경매에 참여해 노인을 사 가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미친놈이라는 거네?”

설우진이 두 눈을 사납게 치켜뜨자 왕고대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벌 렁거렸다.

“그, 그냥 하나의 예를 든 겁니다. 추호도 그런 마음을 품지는 않았으 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됐고, 그냥 조용히 따라와. 한 번 만 더 그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튀 어나오면 그때는 네놈을 억지로 끌 고 올라가 그 노인네하고 바꿔 버릴 거야. 아마 흑서문 놈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걸.”

설우진은 대놓고 협박했다.

육지였다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으 련만 지금 왕고대가 서 있는 곳은 망망대해였다.

결국 왕고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설우진과 함께 노예선에 올랐다. 노예선은 크고 넓었다. 특히 노예 경매가 이뤄지는 선상은 한가운데 상품을 올려놓을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그 주위로 손님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노예선에 오른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얼굴에 화려 한 복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만 금상 초금저였다.

오척 단구에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는 그는 청도 제일의 부자이면서 변태였다.

그는 가학적인 성행위를 즐겼다. 그래서 여러 명의 부인과 첩이 있 음에도 돈을 주고 노예를 사들였다.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를 해 대는지 그에게 팔려 간 노예들은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이구,대인, 오셨습니까? 미리 자리를 봐 뒀으니 그쪽으로 가시지 요!”

흑서문의 외당주 소문혁이 초금저 를 발견하곤 한달음에 달려왔다. 노예 경매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절 반 가까이를 그가 책임져 주고 있으 니 흑서문으로서는 그를 남달리 대 우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소 당주, 왜 이리 경매가 늦는 겐가? 내 흑선이 뜨기를 얼마 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죄송합니다. 최근에 단속이 심해 져 물건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흠, 나도 모르는 새 감찰어사가 떴던 모양이군?”

초금저가 가뜩이나 작은 눈을 가늘 게 늘어뜨렸다. 심기가 불편해졌을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그 일에 대해선 너무 괘념치 마십 시오. 어사도 제 밥벌이는 해야 하 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뭣보다 이번 에는 특품을 하나 건졌습니다.”

“특품?”

“네, 화전민촌에 살고 있던 계집인 데 몸매가 한마디로 끝내줍니다. 허 리는 세류요처럼 가는데 가슴이 잘 익은 수박처럼 큼지막합니다.”

“호오, 고것 손맛이 끝내주겠군. 내 기대함세.”

초금저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번들 거리며 지정된 좌석으로 향했다. 그를 시작으로 단골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귀빈석 은 고급스러운 자단목에 앞쪽에는 간단하게 술을 줄길 수 있도록 술병 과 안줏거리가 놓여 있었다.

그에 반해 일반석은 허름했다. 투 박한 나무 의자에 그 간격도 상당히 빼곡했다.

일반석에 배정된 설우진과 왕고대 는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귀빈석이 보 이는 불편한 자리였다.

하지만 설우진은 귀빈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고 다리를 꼰 채 정면 의 무대를 주시했다.

“저어, 발 좀 내리시죠, 저쪽의 분 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왕고대가 넌지시 설우진에게 말을 건넸다.

이에 설우진이 귀빈석 쪽으로 고개 를 돌렸다. 몇몇 귀빈들이 노골적인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 어떤 이는 뻔히 들릴 걸 알면서도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했다.

“어이, 다들 눈에 힘 좀 풀지. 나 도 네놈들처럼 손님 자격으로 이곳 에 온 거야. 가뜩이나 자리가 다른 것도 열 받는데 괜히 가만있는 사람 건드리지 마.”

‘하아, 괜히 말했나?’

설우진의 거친 반응에 왕고대는 얼 굴을 감싸 쥐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귀빈들이 흑서 문의 사람을 불러 거칠게 항의했다. 잠시 후 흑서문 쪽 사람이 설우진 에게 다가왔다.

경매장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외 당 소속의 무사였다. 칠 척이 넘는 커다란 체구에 호목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치기에 멋모르고 배에 오른 것 같은데 조용히 뒷자리로 옮겨라. 이 이상 소란을 피우면 네놈을 집어 다 바닷속에 처박아 버릴 것이다.” 

“크큭, 누가 흑도 놈들 사업체 아 니랄까 봐 손님한테 대놓고 협박질 이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설우진은 사내의 협박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이에 사내는 설우진의 양쪽 어깨를 거칠게 틀어쥐고 위로 올렸다. 진짜 바다에 던져 버릴 기세였다. 한데, 아무리 힘을 줘도 설우진의 몸은 의자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사내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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