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7권 – 9화 : 흑선 경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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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7권 – 9화 : 흑선 경매 (2)


흑선 경매 (2)

바로 그때 설우진이 한손으로 사내 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손 목에 순간적인 힘을 가해 머리 위로 내던졌다.

풍덩.

사내는 속절없이 바다 위로 떨어졌 다. 그 한 수로 배 안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특히 귀빈석의 분위기는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설우진에게 눈을 부라렸던 자들은 행여나 그와 눈이 마주칠세라 고개를 돌리기 바 빴고 나머지도 잔뜩 긴장한 시선으 로 설우진을 응시했다.

“어이, 상황이 이쯤 됐으면 대가리 가 나와서 수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설우진의 시선이 소문혁의 얼굴로 향했다.

소문혁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머뭇 거리다 이내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손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 친구 가 다른 건 다 좋은데 성격이 급해 서 가끔 이런 실수를 하곤 합니다.” 

“후훗, 부하한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겠다는 심산이군. 뭐, 흑도패다 운 전개네. 근데 난 그 말뿐인 사과가 굉장히 기분 나빠.”

설우진이 소문혁의 뺨을 가볍게 툭 툭 쳤다.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소문 혁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이 새끼, 그냥 바닷속에 수장시켜 버려?”

소문혁은 순간적으로 살의가 일었 다.

외당주에 오른 이후로 이렇게 치욕 스러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감정을 억눌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워 버리면 모 를까 이곳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았 다.

“저희가 어떻게 해 드리면 기분이 풀리시겠습니까?”

소문혁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이에 설우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귀빈석의 한 자리를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곳 의자는 너무 딱딱해.”

자리를 바꿔 달라는 노골적인 요구였다.

‘어쩐다, 놈에게 자리를 내주면 귀 빈들이 싫어할 터인데?’

소문혁은 설우진의 요구에 골머리 를 앓았다.

단순히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면 가 벼운 마음으로 몇 푼 던져 줬을 것 이다. 소란을 이어 가는 것보단 그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한데 귀빈석은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았다. 지금 귀빈석에 앉아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난 특별하다는 말 같지도 않은 자기최 면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설우진을 붙여 놓는 다? 그건 화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 이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에 소문혁은 머리를 쥐어짰다. 그리고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다. 

“손님, 귀빈석은 미리 지정되어 있 는 것이라 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입찰비를 모두 면해 드리겠습니다.”

“입찰비?”

“이곳이 처음이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저희 흑선에서는 경매에 참여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입찰비로 내게 되어 있습니다.”

소문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 에 떠올리며 입찰비에 대해 간략하 게 설명했다.

‘이것들 순 날강도네.’

설우진은 기가 찼다.

낭인 시절에 수많은 경험을 해봤 지만 노예 경매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젊을 땐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여 유가 없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낭왕 이라는 위치 때문에 관심 있어도 모 른 척해야 했다.

“어떠십니까? 입찰비 부담이 없으면 모든 경매에 자유롭게 참여가 가 능합니다. 이는 저기 귀빈석에 앉아 계신 분들도 누리지 못한 특별한 혜 택입니다.”

‘특별한’이란 문구에서 소문혁의 목소리가 커졌다.

설득력을 높이는 그만의 화법이었 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나빴 다.

“그 특별한 혜택, 너나 많이 가져, 돈이라면 나도 저것들 못지않게 가 져왔으니까.”

설우진이 가슴 어림에서 전낭을 끄 집어냈다. 그리고 주둥이를 열어 전 낭 안에 것들을 바닥에 쏟아 냈다. 누런빛을 띤 황금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황금에 소문혁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애송이 놈, 정체가 뭐지? 귀빈 들 중에서도 저 만한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이는 드문데………… 이젠 별수 없군, 원하는 대로 자리를 내줄 수 밖에.’

돈을 본 소문혁은 더 이상 설우진 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가 지고 있는 현금만 해도 귀빈 대접을 하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힘과 돈.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설 우진에게 소문혁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깍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설우진을 바라보는 귀빈들의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한데 단 한 사람 초금저만은 오히 려 그 눈빛이 더 사나워졌다. 초금 저는 지금의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흑선에 오를 때마다 그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모든 경 매에 참여해 돈을 물 쓰듯이 써대 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한데 오늘은 그 자리를 난데없는 애송이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애송이 놈이 감히 내 앞에서 돈 자랑을 해대다니. 두고 봐라, 네놈 은 이번 경매에서 그 어떤 물건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초금저는 결의를 다졌다.

노예 경매는 정오로 예정돼 있었다.

흑서문에서는 이른 점심을 준비해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이때도 귀빈석과 일반석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반석에는 객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면과 소채가 제공됐고 볼품 없는 식사였지만 허기져 있던 일반 석의 손님들은 허겁지겁 그릇을 비 웠다.

그에 반해 귀빈석에는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생선이 회로 나왔 다. 물론 그 회에 어울리는 술도 곁들여졌다.

그런데 바다에 어울리는 최고의 점 심상을 받고서도 설우진의 표정은 영 좋질 못했다.

‘이 물컹물컹한 게 뭐가 맛있다고.’ 

설우진은 입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 은 회를 씹으며 오만상을 지었다. 그는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았다. 식감과 날것의 특유의 비린내가 코 와 입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결국 설우진은 몇 점 먹지도 않고 손에서 젓가락을 놨다.

접시 위에는 여전히 생선회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저어기, 대협.”

바로 그때, 왕고대가 뜨거운 눈초리로 설우진을 불렀다.

“왜?”

“그거 더 안 드실 건가요?” “

“응, 내 입맛에는 영…………….

“그럼 제가 대신 먹어도 될까요?”

“어차피 남기면 버려야 하니까 마음대로 해.”

설우진은 별 미련 없이 회가 담긴 접시를 왕고대에게 건넸다.

왕고대는 그야말로 생선회를 흡입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그는 생 선회를 맛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입이 떡 벌어

질 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왕고대가 회를 흡입하는 동안 설우진은 술을 들이켜며 무대를 주시했 다. 무대 위에서는 흑서문의 무사들 이 바쁘게 뭔가를 옮기고 있었다. 흑막에 가려진 형태가 네모꼴인 것 이 아마도 노예들을 가둔 철창인 듯 했다.

길었던 점심 식사가 끝나고 소문혁 이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도 저희 흑선을 찾아 주신 많 은 분들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 립니다. 오늘 경매에 나설 노예들은 총 열 명으로 자체 품평 결과 특품 이 둘, 중품이 일곱, 하품이 하나입 니다.”

“호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흥분된 감정을 드러냈다. 한날에 특 품의 노예가 둘이나 올라온 건 흑선 이 영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특품의 노예는 구 하기가 어려웠다.

‘이번엔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리 라.’

귀빈들의 얼굴에 똑같은 감정이 떠 올랐다.

경매 시작 전부터 후끈하게 달아오 르는 분위기. 소문혁은 그 분위기를 몰아 첫 번째 경매를 시작했다.

“첫 번째로 선을 보일 노예는 하품 입니다. 본래 예정에 없던 물건인데 갑작스럽게 들어와 상태가 조금 불 량합니다. 낮은 가격에라도 처분할 생각이니 원하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소문혁이 노예에 대한 간략한 설명 을 마치고 철창을 가리고 있던 흑막 을 걷었다.

철창 안에는 백발의 노인이 쇠사슬 에 발이 묶인 채 위태롭게 서 있었 다.

설우진은 노인을 흘깃 쳐다본 후 왕고대를 불렀다.

왕고대는 앞으로 고개를 쭉 빼서 노인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자,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은 은자 한 냥입니다.”

소문혁이 첫 번째 경매를 시작했다. 

역시나 손님들의 반응은 미적지근 했다. 귀빈석은 일찍이 관심을 접었 고 일반석에서도 이렇다 할 적극적 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 노예의 가치는 길게 쓸 수 있는 노 동력에 있다. 한데 지금 경매에 나 온 노예는 노동력이 의심되는 나이 와 부상을 안고 있었다.

동정심에 사는 것이 아닌 뒤에야 은자를 한 냥이나 주고 저런 짐덩 어리를 살 리가 없었다.

‘젠장, 반응을 보아하니 은자 한 냥도 어렵겠군. 그냥 노잡이나 시키 는 게 낫겠어.’

소문혁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속 으로 유찰을 예상했다.

한데 바로 그때, 뜻밖의 인물이 경 매에 뛰어들었다.

“시, 십팔 번 분께서 입찰에 응하 셨습니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를 분 이 없으시다면 셋을 센 후에 경매를 종료토록 하겠습니다.”

소문혁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혹시 라도 마음을 바꿀까 하는 조바심에 서였다.

그런데 그가 막 숫자를 세려는 순 간 다시 한 번 이변이 벌어졌다. 

“은자 열 냥!”

초금저가 번호표를 들며 시작가의 열 배를 불렀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 시선들에는 공통적인 의 문이 담겨 있었다.

왜?

은자 한 냥도 과하다고 생각했던 늙은 노예다. 한데 은자 열 냥이라 니, 믿기지 않는 상황 전개에 소문 혁은 이례적으로 초금저를 지목해 물었다.

“초 대인, 정말 은자 열 냥에 사시 겠습니까?”

“내가 언제 돈 가지고 허튼소리 하 는 것 봤나? 마차용 발판으로 쓸 생각이니 빨리 경매나 마무리하게.”

초금저는 퉁명스레 답하면서 설우진 쪽을 슬쩍 쳐다봤다.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두 사람 시선.

설우진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초금 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야, 지금 저 돼지 놈이 나한테 싸 움을 건 거지?”

설우진이 왕고대에게 물었다.

왕고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초대인은 한 번도 자신이 찍은 물 건을 놓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 니다. 괜히 경매에서 가격을 올리지 마시고 경매가 끝난 후에 따로 거래 를 하시죠.”

“나보고 지금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치라는 거야?”

“돈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댑니다.”

“그건 붙어 보지 않고선 모를 일이 지. 은자 백 냥!”

설우진이 번호표를 들며 다시 한 번 금액을 열 배로 부풀렸다. 

‘아니, 저놈이 돌았나?’

초금저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솔직히 다 늙어 빠진 노예에게 은 자열 냥도 과하다 생각한 그였다. 한데 그 열 배인 은자 백 냥을 부 르다니.

바로 그때, 설우진과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고 이번엔 설우진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래, 어디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가 보자.’

초금저가 불을 붙인 경매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졌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금액을 끌어올렸고 경매가 시작된 지 이각여 만에 노예 의 값은 금자 일백 냥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그 금액을 부른 이는 초금저였다.

‘이번엔 얼마까지 올리려나?’

초금저가 초조하게 설우진의 입을 바라봤다.

그는 승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부른 금액이 얼마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설우진은 냉정함을 유지 하고 있었다.

‘뭐, 저 노인의 입이 필요한 거지 그 몸이 필요한 건 아니니.’

“자, 금자 일백 냥. 더 부르실 분 이 없으면 셋을 세고 경매를 종료하 겠습니다. 하나, 둘, 셋! 축하드립니 다! 칠 번 손님께 최종적으로 낙찰 됐습니다!”

소문혁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 다.

그는 당장이라도 설우진에게 달려 가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급 경매 건에 금자 일백 냥이라 는 거액이 나온 것은 흑선이 영업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도 노예 하나 를 사는 데 그만한 돈을 투자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 지?’

흑서문의 문도들이 유례없는 대박 에 기뻐하고 있을 때 초금저는 뒤늦 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스스로 내뱉은 말도 안 되 는 금액에 경악했다.

“이, 이번 경매는 무효야, 무효! 저 놈이 흑서문 놈들하고 짜고 날 끌어 들인 거라고.”

초금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에 설우진과 소문혁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경매였기에 아무래도 여론은 초금저 쪽에 유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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