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1화 : 낭왕궁악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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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1화 : 낭왕궁악비 (1)


낭왕궁악비 (1)

-낭왕을 사러 왔다!

설우진이 내뱉은 이 두 마디 말은 낭왕루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낭왕은 수십 년 동안 낭왕루의 상 징으로만 남아 있었다. 원체 몸값이 비싸다 보니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그를 살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 다.

한데 오늘 그 낭왕을 사겠다며 사 람이 찾아왔다.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놈이.

“방금 저 애송이 놈이 뭐라고 지껄인 거야?”

“우리도 만나 뵙기 어려운 낭왕님 을 사러 왔다는데.”

“크크큭, 대체 문지기 놈들은 뭘 한 거야, 저런 정신 나간 놈을 이 안에 들이다니.”

낭인들은 여기저기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설우진이 젊은 객기로 이곳 을 찾아온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설우진은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 려 그들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입 가에 미소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낭인들은 더욱 흥분해 언성을 높였다. 이에 보다 못한 손동유가 굳은 표정으로 오른발을 힘 차게 바닥에 내리찍었다.

쿵!

요란한 굉음이 사위에 울려 퍼졌다.

낭인들은 그 소리에 놀라 움찔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다들 이 무슨 무례인가! 나이가 많든 적든 손님은 손님일세!”

손동유가 언성을 높여 낭인들을 나 무랐다.

대다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며 제자 리로 돌아갔지만 성정이 사나운 몇 몇 상급 낭인들은 어디서 개가 짖느 냐는 표정으로 되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낭왕루에서 총관이란 자리는 허울 좋은 관리직에 불과했다. 무력보다 는 경험에 높은 비중을 둬 선발하기 때문이다.

손동유가 총관으로 발탁될 때도 마 찬가지였다. 그는 마흔이라는 비교 적 늦은 나이에 상급 낭인에 올랐 다. 재능은 나쁘지 않았지만 여러모 로 운이 따르지 않았다.

-손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무래 도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 습니다.

손동유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전 음을 전하며 설우진의 손을 가만히 잡아끌었다. 그런데 끌려오는 느낌이 없었다.

그는 혹시 힘이 부족했나 싶어 힘줄이 도드라지도록 그를 당겼다. 하 지만 결과는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손동유가 뒤를 돌아 봤다.

“애먼 데 힘쓰지 마세요, 볼일을 다 보기 전까진 이곳에서 나갈 생각 이 없으니.”

설우진이 분명히 의사를 밝혔다. 손동유가 위험한 놈들이라며 극구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사이 독안의 낭인이 설우진의 맞 은편에 섰다. 한쪽 눈을 잃기 전까 지 거경마도라는 별호로 악명을 떨 쳤던 사파 출신의 위세호였다.

“나이도 어린놈이 아주 배짱이 좋 구나. 한데 어쩌지? 난 네놈처럼 천 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설쳐대는 놈 들을 아주 싫어하거든.”

위세호가 설우진의 앞에 바짝 다가 갔다.

육척이 훌쩍 넘어가는 큰 키 때 문에 설우진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 봐야 했다.

그런데 위세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 게 설우진이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거슬려서 그러는데 눈높이 좀 맞추지 그래. 내가 태생 적으로 목이 좋질 못해서 위를 잘 올려다보질 못하거든.”

말을 마친 설우진은 기습적으로 위세호의 발목을 툭 찼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위세호의 몸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 라졌다.

다행히 바닥에 얼굴이 처박히려는 순간 설우진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 잡았다.

위아래로 교차하는 시선.

그때 설우진이 위세호의 귓가로 입 을 가져가 속삭이듯 얘기했다.

“여기서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설쳐대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다 른 밥벌이를 찾을 게 아니라면 조용 히 찌그러져 있어.”

위세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끓어오르는 수치심에 위세호가 설우진의 손을 떨쳐 내며 몸을 일으키 려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어깨에 천근거 석을 올린 것처럼 묵직한 힘이 실렸 다. 이를 악물고 힘을 줘 보는데도 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괜히 용쓰지 마. 그렇게 힘 줘 봐 야 네 팔만 망가질 뿐이야.” 

뚜드득.

위세호의 어깨뼈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났다. 위에서 누르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뼈마디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 냐?”

위세호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사납게 소리쳤지만 설우진은 태연자 약했다. 오히려 그를 비웃듯이 바라 보며 대화를 이었다.

“너야말로 무사하고 싶으면 조용히 아가리 처 물어. 지금 여기 나 혼자 만 있는 게 아니잖아. 저기 저 사람 들이 오늘 이 광경을 보고 무슨 생 각을 하겠어?”

설우진이 앞서 낭왕루에 들어와 있 는 손님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확 실히 그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제야 위세호는 자신이 무슨 실수 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빌어먹을, 내가 너무 흥분했어, 아 무리 저 자식이 건방지게 굴었어도 말을 아꼈어야 했는데.’

위세호는 입이 바짝바짝 탔다.

낭왕루는 낭인들에게 목돈을 안겨 주는 고마운 돈줄이었다.

실제로 낭인 시전에서 중급, 하급 낭인들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낭왕루 의 상급 이상의 낭인들이 벌어들이 는 돈이 수 배 이상 많을 정도였다. 한데 그 돈줄이 자신 때문에 위태 롭게 됐다. 이제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해서 손 님께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너그러 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위세호가 용서 를 빌었다. 하지만 말 몇 마디에 용서해 줄 정도로 설우진은 너그럽지 못했다.

“죄송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지. 아까운 내 시간 만 낭비됐잖아. 이거 어떻게 보상할거야?”

설우진이 대놓고 보상을 요구했다. 하나 가진 거라곤 튼튼한 몸뚱이뿐 인 위세호는 그 물음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눈치를 살피던 손동유가 나섰다.

“공자님, 저 친구를 용서해 주신다 면 저희 쪽에 지불해야 할 금액의 일 푼을 깎아 드리겠습니다.”

일푼.

보통의 경우라면 코웃음을 쳤을 것 이다. 하지만 설우진이 이번에 고용 코자 하는 이가 낭왕이라는 점을 감 안한다면 결코 적은 보상이 아니었 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총관이라는 직함을 걸고 약속드리 겠습니다. 하니 그 친구는 이쯤에서 놔 주십시오.”

“좋습니다. 총관님께서 그리 성의 를 보이시는데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죠.”

그제야 설우진이 입가에 미소를 그 리며 위세호의 붙잡고 있던 어깨를 놨다.

“크윽.”

위세호가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설우진이 쥐고 있던 부위가 몽둥이 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가 통증을 달래는 사이 설우진은 손동유와 함께 위층 계단으로 향했 다.


“푸후.”

곰방대에서 피어오른 연초 연기가 위로 원을 그리며 올라갔다.

“연초가 그리도 맛있습니까?” 

“끌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곰방대를 빨 때마다 폐부 깊숙이 밀 려드는 이 연초의 알싸한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와 견줘도 뒤지지 않 는다.”

곰방대를 쥔 억센 손 뒤로 구릿빛 으로 그을린 얼굴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촌로처 럼 주름진 눈이 아래로 살짝 쳐져 있고 곰방대를 문 입은 인자한 미소 를 머금고 있었다.

한데 노인의 몸은 얼굴과 딴판이었 다. 온몸의 근육이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검으로 베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 을 것 같은 강인함이 느껴진다고 할 까?

그에 반해 노인의 맞은편에 선 이는 체격이 왜소했다.

게다가 얼마나 말랐는지 조금만 툭 쳐도 뼈가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그나저나, 요새는 왜 나를 찾는 데가 없냐? 방에서 뒹구는 것도 하 루 이틀이지 몸이 근질거려 죽겠 다.”

노인이 곰방대를 털어 내며 맞은편 의 중년인을 빤히 쳐다봤다. 한데 중년인은 자꾸만 그의 시선을 피했 다.

“네놈이 내 눈을 피하는 걸 보니 날 찾는 놈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구 나?”

“형님, 바랄 걸 바라십시오. 형님 한 명을 움직이려면 최소 금전 일백냥은 써야 합니다. 그 돈이면 일급 낭인 수백 명을 고용할 수 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형님을 쓰겠습니까?”

“니미럴, 천가 늙은이가 평소에 왕 이라고 어깨에 바짝 힘을 주고 다니 기에 좋은 자리인 줄 알았더니, 이 건 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 무것도 없잖아!”

노인, 아니 당대의 낭왕 궁악비가 버럭 성질을 냈다.

그는 반 년 전 왕의 칭호를 얻었 다. 사실 낭왕이 될 마음은 터럭만 큼도 없었다. 전대 낭왕이었던 천우 광이 왕이 된 지 오 년도 되지 않 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데 그 천우광이 급사했다.

외부에는 전염병에 걸려 그리된 것 이라 알려졌지만 실상은 복상사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왕이 되어 할 일이 없어 지니 하루가 멀다 하고 계집들을 방 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덕분에 낭인전에서 서열 이 위로 통하던 궁악비가 자연스럽게 차기 왕으로 거론됐다.

낭왕이 되기 위해선 투표를 거쳐야 했지만 이미 그는 낭인들에게 압도 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던 터라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빠르 게 낭왕의 지위를 승계했다.

처음 며칠은 좋았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과 여자를 안겨 주니 그야말 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전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맛있 는 음식을 먹어도 영 혀끝이 꺼끌꺼 끌하고 반라의 미녀가 눈앞에 있어 도 아랫도리가 서질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의뢰가 들어오길 손 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의뢰는 오 지 않았다. 총관인 손동유를 매일같 이 닦달했지만 소용없었다.

“유광아, 네가 왕 할래?”

“싫습니다. 왜 형님이 어깨에 지고 있는 짐을 저한테 떠맡기려고 하십니까?”

“크흠, 떠맡기려는 것이 아니라 늙어 가는 나보다는 아직 청춘인 네가 낫지 않겠느냐?”

“저랑 형님이랑 두 해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에이, 무정한 놈 같으니라고.” 

속상한 마음에 궁악비는 곰방대를 연신 빨아 댔다. 그 사나운 입김에 새로 넣은 연초가 활활 타오르며 방 안을 뿌연 연기로 뒤덮었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린 손가 놈의 것이고, 그 옆 의 소린…………’

궁악비의 두 눈에서 갑자기 기광이 번뜩였다. 소리를 통해 손님이 찾아 온 걸 직감한 것이다.

그는 부랴부랴 화로 위에 타다 남 은 연초를 털어 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곰방대를 침상 밑으 로 밀어 넣은 뒤 정신없이 손을 휘 저어 연초 연기를 흐트러뜨렸다. 잠시 후 문밖에서 손동유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손 총관입니다. 낭왕을 청하는 손 님이 있어 이곳으로 모셔 왔는데 어 찌할까요?”

‘역시!’

궁악비의 입이 찢어졌다.

“크흠, 손님이 오셨는데 밖에 세워 두는 건 예의가 아니지. 손님을 얼른 방 안으로 모셔라.”

궁악비가 기쁜 마음으로 답하자 이 윽고 문이 열리고 손동유와 설우진 이 나란히 안으로 들어왔다.

한데 궁악비의 시선은 두 사람이 아닌 그 뒤를 향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방금 전에 들려온 발소리에는 절제된 움 직임이 녹아 있었는데?’

“낭왕을 뵙습니다.”

그가 당황하는 사이 손동유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크흠, 오랜만이로구나. 한데 날 찾 아왔다는 손님은 어딜 가신 게냐?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너와 같이 있 었던 듯한데…”

“손님이라면 여기 계시지 않습니 까.”

손동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 로 옆에 선 설우진을 가리켰다. 궁 악비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설우진 의 위아래를 자세히 훑었다.

‘혹시 역용이라도 한 건가?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놈이 신보일체를 이뤄 내지는 못했을 텐데…………’

신보일체는 몸과 걸음이 하나가 되 는 경지로 강호에서는 고수를 구분 짓는 하나의 잣대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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