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12화 : 수귀, 낚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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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12화 : 수귀, 낚다 (1)


수귀, 낚다 (1)

“저, 절 죽이면 혈사보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왜 혈사보가 나오지?” 

설우진이 잠시 살기를 거뒀다. 자 신의 수가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목 가유는 설우진이 묻지도 않았는데 혈사보가 다른 삼사보와 손을 잡고 장강수로채를 부활시켰다는 얘기를 장황하게 전했다.

‘이건 정말 예상외로군. 그럼 장강 토벌은 쌍룡맹 놈들의 눈속임이었다는 건가?’

장강 토벌에 관한 건은 설우진도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워낙에 급 하게 진행된 데다 너무도 쉽게 토벌 이 이뤄진 탓이었다.

“왜 장강수로채를 부활시킨 거 지?”

“이제까지 알아서 잘 떠벌리더니 왜 여기서 멈추는 거야? 혹시 머리 에 금제라도 걸린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단지 너무 엄 청난 얘기라..”

목가유가 뜸을 들였다. 이에 설우 진은 말 대신 행동으로 그를 압박했 다.

“크윽.”

거치도의 날 선 이가 목가유의 목 에 파고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주면 네 목은 그대로 날아가는 거야.”

“마, 말하겠습니다. 삼사보가 수로 채를 부활시킨 건 남북을 가르기 위 해섭니다.”

“설마, 강을 장악해서 마천이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 겠다는 속셈이야?”

삼사보의 속셈이 머릿속에 훤히 그 려졌다.

장강은 중원의 한복판을 가로지른 다. 해서 강북에서 강남으로 넘어가 기 위해서는 장강이라는 넓은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통하지 않고도 넘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멀리 돌아가 야 하기에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 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 새끼들, 지금 제 놈들만 살겠 다는 심보잖아.’

설우진은 기가 찼다. 원래 비겁한 놈들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마천과 싸워 보지도 않고 숨을 생각부터 하 다니.

“기존의 장강수로채가 모두 삼사 보에 흡수된 거냐?”

“그게 대다수는 삼사보와 뜻을 함 께하기로 했는데 유일하게 한곳만 손잡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혹시, 노도채?”

“그걸 어떻게…?”

‘실은 놈들한테 예전에 신세를 진 적이 있거든. 마천에 쫓겨 달아날 때 뜻하지 않게 놈들의 도움을 받았 었지.’

설우진은 전생에 노도채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

마천 쟁투가 한참 격화되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쌍룡맹에 고용돼 전장 에 투입됐다. 싸움이 벌어진 곳은 무한이었다.

당시 마천은 쌍룡맹을 고립시키기 위해 섬서를 장악한 뒤 곧바로 하남 을 치지 않고 호북을 공략했다.

병력의 대부분이 하남에 집중돼 있었던 쌍룡맹은 뒤늦게 그 소식을 접 하고 부랴부랴 낭인들을 모집했다. 이에 도합 일천의 낭인이 모였다. 쌍룡맹의 수뇌부는 그 정도 숫자면 방어의 목적으로는 충분하다 여겼 다.

한데 그건 오산이었다. 수적인 우 위에도 불구하고 무한 외곽에 펼쳐 진 방어선은 순식간에 뒤로 밀렸다. 마천의 다섯 전위대 중 두 곳이 투입된 게 컸다.

지리멸렬한 낭인들은 살아남기 위 해 부나방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 중에는 설우진도 있었다.

‘참, 똥줄 타는 순간이었지. 뒤에선 마천 놈들이 미친개처럼 쫓아오고, 앞에는 드넓은 장강이 가로막고 서있고. 한데 바로 그때 노도채의 배 들이 등장했지.’

설우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데 그 표정이 묘했다.

“노도채는 지금 어디 있지?”

“그게, 워낙에 신출귀물한지라…”

“그래도 자주 목격되는 곳이 있을거 아니야.”

“굳이 한 곳을 꼽자면 신룡탄입니 다. 저희 쪽에서 몇 번 노도채주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번번이

신룡탄에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신룡탄은 호북성 남부에 위치한 장강의 지류를 일컬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강의 굴곡이 심해 마치 용이 분탕질을 하듯 요란 한 물살이 일었다. 해서 경험 많은 뱃사공들도 신룡탄을 건널 때면 신 중에 신중을 기하곤 했다.

‘수귀, 그자의 배 모는 솜씨는 정 말 귀신같았는데. 뒤쫓던 마천 놈들 이 넋을 놓고 쳐다볼 정도였지.’ 

설우진은 수귀를 떠올렸다.

당시 나이가 마흔쯤 됐을까, 반쯤 풀어헤친 상의 사이로 용 문신이 꿈 틀댔다. 그리고 입에는 항시 담뱃잎 이 물려 있었다.

‘저놈 말대로 노도채가 신룡탄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면 곧 만나 게 되겠지.’

“이쪽은 다 정리됐다. 이제 어찌하 면 되느냐?”

설우진이 잠시 상념에 젖어있을 때 선수로 나가 있던 궁악비가 목청을 높였다.

그의 주변에는 목가유를 따라 올라 왔던 광호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 다. 꽤나 심하게 두들겨 맞았는지 다들 신음을 흘리며 끙끙 앓았다. 

‘빌어먹을, 믿었던 광호대까지 저 리 돼 버렸으니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목가유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난 관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바로 그때 설우진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 네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칼에 뒈지는 거 고, 다른 하나는 날 따라가는 거다.” 설우진이 제시한 두 개의 선택지. 하지만 실상 선택할 수 있는 건 하 나에 불과했다.

“굳이 절 왜 데려가려 하시는 건지……?”

목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설우진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 로 대꾸했다.

“난 널 미끼로 쓸 생각이다. 신룡 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수귀를 끌 어내는 역할을 하는 거지.”

목가유의 얼굴이 일순 사색으로 변했다.

수귀는 장강의 저승사자다. 일신의 무위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 만 수상전에서만큼은 현경의 고수도 잡을 수 있을 만큼 신출귀몰한 실력 을 자랑했다.

“꼭 그 미끼가 저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차라리 청호채의 채주인 감여를 쓰시지요. 제가 이곳으로 부 르면 득달같이 달려올 것입니다.” 

목가유가 감여를 새로운 미끼로 추 천했지만 설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들이 미끼만 덜렁 집어먹고 도망칠 수도 있잖아.”

“……”

“그렇게 죽을상을 할 필요는 없어, 수귀가 미끼를 무는 순간 바로 낚아 챌 테니까.”

설우진이 목가유의 어깨를 감싸 안 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설우진과 궁악비의 활약으로 선상 에서의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큰 손해를 볼 뻔했던 장익환은 두 사람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감 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술상이나 좀 봐 오지,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목이 좀 컬컬하군.”

“술이라면 마침 좋은 게 있습니 다.”

장익환이 급하게 선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사이 궁악비가 말을 걸어왔다.

“정말 수귀를 낚을 참인가?”

“제가 언제 한 입으로 두말한 적 있습니까?”

“당최 이해가 안 돼서 그러네. 자 넨 지금 마천에 쫓기고 있는 몸이 아닌가. 한데 굳이 새로운 적을 만 들 필요가 있나?”

궁악비가 답답하다는 듯 잔뜩 인상 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설우진은 태연 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수귀는 보험입니다.”

“보험?”

“네, 장강은 마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중원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납니다. 이곳만 손에 넣을 수 있으면 마천 놈들이 떼로 몰려와도 최소한 제 가족과 친 인들만큼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설우진의 계획은 장강을 도피처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마천의 무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장강 전체를 도모할 수는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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