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17화 : 귀마혈투 (3)
귀마 혈투 (3)
‘그물로 귀마를 잡는다? 처음 얘길 들었을 땐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물건을 보니 그 자신감이 이해가 돼. 강기를 견뎌 낼 수 있다면 귀마 의 손발도 충분히 묶을 수 있을 테 지.’
궁악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 고 이 괴물 같은 그물을 만들어 낸 설우진에게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험해 보니 어떻습니까?”
“대단하군. 이 정도면 신외병기라 고 해도 무방하겠어. 자네, 이걸 만 들어서 팔 생각은 없나? 자네만 좋 다면 우리 애들한테 소개를 시켜줄 수도 있는데.”
“그건 곤란합니다. 일단 이 그물에 덧씌워진 강기는 무한히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깎 여 나가 종국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지요. 그리고 강기를 덧씌우는 작 업은 막대한 내력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도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안은 텅 비었습니다.”
설우진이 아랫배를 매만지며 이유 를 설명했다.
궁악비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물에 대한 욕심을 접었다.
“놈이 나타났다고?”
“네.”
하우연에게 설우진의 위치를 전하 던 흑랑사자가 갑자기 등 뒤에서 전 해지는 거대한 마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를 긴장케 한 이는 고수태였다.
“놈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고수태가 앞뒤 말을 자르고 물었다.
그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상태였 다. 하우연의 말만 믿고 사흘을 기 다렸지만 끝내 설우진을 보지 못한 것이다.
마기에 압도된 흑랑사자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서, 설우진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등천 마방입니다.”
순간 고수태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 러졌다.
등천 마방은 그도 익히 이름을 들 어 알고 있는 곳이었다. 전국 단위 로 운영되는 몇 안 되는 마방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천 마방은 무한에 자리하 고 있었다.
“크큭, 이거 꼴좋게 됐구나, 이 앞 을 지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 데 놈이 우리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고수태의 진한 마기가 하우연 쪽으 로 향했다.
하우연은 몸을 바들거리며 힘겨워 했다. 홉뜬 두 눈에서 핏물이 흘렀 다.
“지난번에 내가 한 경고는 잊지 않 았겠지?”
고수태가 걸음을 옮기며 허리에 차 고 있던 사혈검을 뽑아 들었다. 방금 전 핏속에서 건져 올린 듯 사혈검의 검신은 진한 붉은빛을 띠 고 있었다.
“제, 제 실책은 인정합니다. 하나, 지금 무한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네놈이 끝까지 날 물 먹일 셈이 냐?”
사혈검이 하우연의 목덜미를 가볍 게 훑고 지나갔다.
살짝 베었을 뿐인데도 금세 목덜미 는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놈은 이제까지 교묘하게 우리의 눈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한데 갑자 기 무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상 하지 않습니까?”
“놈의 집이 무한에 있다고 하지 않 았느냐.”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겁니다. 무 한에 뻔히 우리들의 눈이 깔려 있을 걸 알고 있을 텐데 놈은 스스로 자 신의 위치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 모든 게 놈 이 꾸민 함정이다?”
“네.”
“하아, 사마 군사도 불쌍하군, 이런 얼빠진 놈을 제자로 두고 있다니. 네놈 눈엔 우리가 뭘로 보이느냐?”
고수태가 하우연과 눈을 맞췄다. 그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 르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실력을 못 믿어서가 실수를 아닙니다. 단지 실수를 방지코 자…… 커억!”
고수태가 하우연의 목덜미를 거칠 게 틀어쥐었다.
진짜 목뼈라도 부러뜨릴 기세였다.
“네놈이 본 천에 발을 들이기 이전 부터 우리는 천주님의 곁에서 마업 을 쌓아 왔다. 애당초 네놈이 쓸데없이 우리의 발목만 붙잡지 않았다 면 그 애송이는 진즉에 내 손에 들 어왔을 것이다. 하니 이제부터 우리 는 따로 움직인다.”
고수태가 하우연을 바닥에 내동댕 이치며 돌아섰다.
그가 밖으로 나서자 남은 귀마들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쫓아갔다.
“괜찮으십니까?”
흑랑사자가 달려와 걱정스러운 어 투로 하우연의 상세를 살폈다. 하우 연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숨 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너, 넌 은밀히 저들의 뒤를 쫓아 라.”
“제 실력으론 저분들의 이목을 속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멀리서 위치만 확인하면 된다.”
“다른 복안이 있는 겁니까?”
“놈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것 이라면 이쪽에서도 귀마들을 미끼로 쓰면 그만이다.”
하우연의 눈빛에 스산한 살의가 번졌다.
잠시 후, 하우연이 머물고 있던 방 안에서 검은 물체가 날아올랐다. 마천에서 운용하는 전서구였다.
전서구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북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마차 한 대가 관도 위를 천천히 달렸다.
마부석에는 초립을 눌러쓴 궁악비 가 앉아 있고 마차 안쪽에는 설우진 이 앉아 있었다.
“정말 놈들이 이 마차를 쫓아올 거 라 생각하는가?”
궁악비가 마차 안에 대고 물었다. 설우진이 처음 마차를 빌려 움직이 자고 했을 때 그는 강한 의구심을 표했다. 어차피 귀마들을 유인하는 게 목적인데 굳이 마차를 타고 움직 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구심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귀마들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아마 대놓고 함정을 마련해 두고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한 둘 정도는 분명 눈치채고 빠져나갔 을 겁니다.”
“흠,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하기 야, 귀마들은 좀 짐승 같은 구석이 있지.”
궁악비는 설우진의 말에 금세 수긍 했다.
그 후로 일각여를 더 달렸다. 어느 새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인적이 뚝 끊겼다. 번화가를 벗어난 것이다. 궁악비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거 오랜만에 심장 쫄리네. 처음 의뢰를 맡아 화적 떼를 토벌하러 나 섰을 때보다 더 떨려.’
고삐를 쥔 손이 축축해졌다.
고조되는 긴장감에 절로 손바닥에 땀이 맺힌 것이다.
-옵니다.
잠시 후 설우진의 전음이 전해졌다.
궁악비는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진 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내력을 끌어올 렸다.
쉬익.
귓전에 거친 파공성이 일었다.
둔탁한 물건이 날아드는 소리였다. 쾅.
마차 바퀴에 큰 충격이 전해졌다. 바퀴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 이 부서졌고 그 여파로 마차는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 마차 안에서 설우진이 문 을 박차고 나왔다.
그의 손에는 이미 천뢰도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마부석에 앉아 있던 궁악비가 보이질 않았다. 그 실력에 마차에 깔리지는 않았을 텐데.
채 의문을 풀 새도 없이 설우진의 주변으로 다섯 개의 신형이 내려섰 다.
고수태를 비롯한 귀마들이었다.
설우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살기등등했다.
“쥐새끼 같은 놈,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더구나. 하지만 우리 눈에 띈 이상 더는 도망가지 못한다.”
고수태가 오른손을 구부리며 으름 장을 놨다.
그는 조법의 고수였다.
겉보기엔 가늘고 주름져 도통 힘이 라곤 못 쓸 것 같이 고목 같은 손 이지만 그의 손을 본 자들은 이제껏 한 명도 무사히 살아 돌아가지 못했 다.
귀마들이 사납게 마기를 뿜어 댈 동안 설우진은 그들의 힘을 하나하 나 가늠했다.
‘조법을 사용하는 늙은이 빼고는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군. 이 정도면 낭왕 영감만 제 역할을 해 주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겠어.’
“무슨 말들이 그리 많아. 날 잡으 러 온 거면 어서 덤벼.”
설우진이 귀마들을 도발했다. 귀마 들은 처음엔 어이없어하다 이내 불 같이 화를 내며 사방에서 달려들었
다.
그들의 움직임은 쾌속무비했다. 야수안으로도 겨우 궤적을 읽어 냈 을 정도였다.
덕분에 설우진은 금세 수세에 몰렸 다. 열심히 천뢰도를 휘둘러 귀마들 의 공격을 상쇄해 내고는 있었지만 힘에서 밀리는 탓에 자꾸만 마차 쪽 으로 몰렸다.
“크큭, 아까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간 게냐!”
고수태가 흉흉한 마소를 입가에 그리며 혀끝으로 오른쪽 손톱을 핥았 다.
살점을 찢는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얼굴에서 진한 살기가 느 껴졌다.
“늙은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 어. 내 반드시 그 손목을 잘라 줄 테니까 아가리 닥치고 덤벼.”
또 한 번의 도발에 고수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라.”
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다섯 방향에서 동시에 응축된 마기가 들이쳤다.
설우진은 뇌기를 천뢰도에 끌어모아 정면에서 그 마기들을 모두 받았 다.
“크윽.”
옅은 신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마 차 한복판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보며 귀마들은 손을 내 렸다. 설우진이 더 이상은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린 바로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벼락같이 하나의 인형이 떨어져 내렸다. 마차가 부서 지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궁악 비였다.
‘빌어먹을, 꼭 통해야 할 텐데.’
궁악비가 양손에 쥐고 있던 그물을 활짝 펼쳤다.
넓게 펴진 그물은 귀마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정확히 날아갔다.
“쥐새끼를 한 놈 더 숨기고 있었 군. 하지만 그따위 그물로 우리 발 을 묶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머리를 덮쳐 오는 그물을 보면서 고수태는 오른손을 거칠게 휘둘렀 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물이 찢 어지지 않았다.
이번엔 남은 왼손으로 내기를 실어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고수태가 안일하게 대처하는 사이 그물은 그들의 몸을 옥죄었다. 떨쳐내려 한껏 힘을 쓰는데도 출렁이기만 할 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거 전세가 역전됐네.”
귀마들이 그물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부서진 마차 안에서 설우진 이 걸어 나왔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멀쩡해 보였 다.
“이, 이깟 그물로 우릴 막을 수 있 을 것이라 보느냐.”
고수태가 열심히 손을 휘저으며 소 리를 질렀다.
“솔직히 그것만으론 힘들겠지. 하 지만 손발이 묶인 지금 내가 공격을 가한다면 어떨까?”
설우진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뢰도의 날을 반대로 틀었다.
그 모습에 귀마들은 움찔했다. 설 우진이 그걸로 뭘 하려는지 눈치챈 것이다.
“형님, 이 빌어먹을 그물 어떻게 할 수 없소? 이대로 있다간 저놈한 테 꼼짝없이 두들겨 맞을 판이오.”
“지금 내 손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다.”
귀마들 사이에 바쁘게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원망만 커져갈 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사이, 설우진이 맹렬하게 천뢰도의 칼등을 그물 위쪽으로 힘차게 내 리쳤다.
그물 안쪽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귀마들이 부랴부랴 몸을 피했지만 그물이 움직임을 억제하고 있는 탓 에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 주질 않았 다.
결국 다섯 귀마들 중 몸뚱이가 가 장 단단한 목태윤이 방패막이로 나 섰다. 그는 흑철마공의 전수자로 어 지간한 충격은 그대로 흡수해 버릴 수 있었다.
한데 등판을 두들겨 맞은 목태윤이 휘청거렸다.
흑철마공을 전력으로 발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몸에 전해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에 목태윤은 다급히 소리쳤다.
“형님들, 조심하십시오. 육성의 흑 철마공이 한 번의 공격에 깨졌습니 다.”
귀마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 다. 흑철마공은 그들도 인정하는 마 도일절의 외공이었다. 한데 그 흑철 마공이 일격에 깨졌다니, 이에 그들 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그물 안 귀마들의 발버둥이 절정에 달했다.
찌직찌직.
효과가 있었다. 공격이 집중된 그 물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확실히 마천이 자랑하는 괴물들답군. 이대로 조금만 시간을 끌면 그물이 무용지물이 되겠어.’
설우진은 거듭된 충격에 금방이라 도 찢어질 듯 요동치는 그물을 보면 서 천뢰도에 뇌기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차 뒤에 몸을 숨기고 있 던 궁악비도 불러들였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전력으 로 공격해요.”
두 사람이 동시에 공격을 전개했다.
강기를 머금은 혈부와 천뢰도가 소 낙비처럼 그물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귀마들은 열심히 손을 놀려 공격을 받아 냈다. 그들은 급이 다른 고수 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충격은 누적되 고 있었고 이를 방증하듯 조법을 사 용하는 고수태를 제외한 다들 얼굴 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특히 빠른 발검으로 상대의 숨통을 꿰뚫는 검산호의 손바닥은 거의 넝 마가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