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19화 : 거듭되는 위기, 구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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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19화 : 거듭되는 위기, 구원 (1)


거듭되는 위기, 구원 (1)

‘이거,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데. 강기 그물로 진을 빼놓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겠어.’

설우진은 급소로 치고 들어오는 고 수태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고수태의 손은 막강한 경력을 담고 있었다.

뇌기를 충분히 실었음에도 그 힘은 천뢰도가 뒤로 밀릴 정도였다.

그리고 고수태의 손톱에는 혈독이 응집돼 있었다. 혈독은 그가 익힌 마공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인데 살 짝 피부에 닿기만 해도 그 부위를 괴사시킬 정도로 독기가 강했다. 이 싸움은 시간을 끌면 불리해, 다른 건 몰라도 내공은 저쪽이 우위 에 있을 테니.’

설우진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 다.

고수태는 강기 그물 속에서 상당한 내력을 소모했음에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마기를 분출해 내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고수태의 내공이 자신을 능가한다는 것.

해서 설우진은 벽뢰진천의 마지막 정수인 신뢰를 떠올렸다.

신뢰는 그에게 가깝고도 먼 경지였 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 은데 막상 손을 가져가면 저만치 멀 어졌다.

덕분에 백 번을 시도했음에도 만족 할 만한 결과가 나오는 건 채 다섯 번도 되지 않았다.

한데 설우진은 지금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하고자 했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가르기 위해선 한 점에 힘을 집중해야 해. 그러려면 신뢰 말고는 방법이 없 어.’

설우진은 고수태의 파상공세를 막 아 내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만성철벽의 작은 구멍에 뇌기를 밀 어 넣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지속적으로 뇌기를 밀 어 넣었다.

‘기세가 변했어.’

공세를 이어 가던 고수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변화를 감지한 곳은 천뢰도였 다. 천뢰도를 감싸고 있던 뇌기의 질이 달라졌다.

기존의 뇌기가 거칠고 사나웠다면 지금의 뇌기는 그 위에 날카로움까 지 새로이 덧씌워졌다.

‘이대로 부딪치면 부서진다.’

고수태는 그리 판단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양손은 마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격 을 멈춘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몸 에 전해질 터였다.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정면승부.

잠시 후 핏빛 수강과 뇌기를 머금은 천뢰도가 맞닥뜨렸다.

그 충격의 여파는 거센 돌풍으로 이어져 사방으로 뻗어나 갔다.

‘크윽, 내력이 달린다.’

설우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수강을 다 부수기도 전에 천뢰도에 실린 도강이 급격하게 힘을 잃고 있었다.

이대로 공방이 이어진다면 힘에서 밀린 천뢰도가 제 주인에게 칼날을 돌리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결국 설우진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 다.

천뢰도로 거칠게 수강을 밀어붙이 다 한순간에 힘을 빼면서 손을 놔 버린 것이다.

휘리릭.

천뢰도가 설우진의 어깨를 훑으며 뒤로 날아갔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피와 함께 살점이 찢겨 나가는 중상이었다.

고수태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완전한 승기를 잡았다 여긴 것이다.

한데 그 잠깐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틈을 만들었다.

천뢰도의 칼날에 베여 뒤로 밀려났 던 설우진의 오른손이 벼락같이 앞 으로 쇄도했다.

그 상황에서 설우진이 반격을 꾀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 못했기에 고 수태의 대응은 전처럼 기민하지 못 했다.

퍽.

설우진의 오른 손바닥이 고수태의 얼굴 한복판에 그대로 꽂혔다. 지축 을 뒤흔드는 충격이 고수태의 머리 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코와 입, 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손바닥에 실려 있던 신뢰의 뇌기가 머릿속을 완전히 헤집어 놓은 것이 다.

“비, 빌어먹을, 다, 다 이긴 싸움이 었는데…………….”

고수태의 무릎이 바닥에 떨어졌다. 설우진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 그 머리를 향해 다시 한 번 일격을 날 렸다. 이번엔 오른쪽 발이었다.

이에 고수태의 머리가 잘 익은 수 박처럼 부서졌다.

“형님!”

궁악비와의 혼전 중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목태윤이 안타까운 비명을 질렀다.

그 덕에 궁악비는 처음으로 기회를 얻었다, 목태윤의 목을 노릴 수 있는.

‘이 한 방으로 승부를 낸다.’

궁악비는 아껴 쓰던 내력을 혈부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뒤는 없다는 각오로 공격을 전개했다.

빠르진 않지만 강한 힘이 실려 있 는 일격이었다.

평소의 목태윤이었다면 흑철마공을 한 점에 집중해 막아 냈을 것이다. 한데 고수태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 도한 탓인지 그는 좀체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크윽!”

짧은 신음과 함께 목태윤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그의 목덜미에는 궁악비가 휘두른 혈부가 절반 가까이 틀어박혀 있었다.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었다.

하지만 목태윤은 귀마답게 그 와중 에도 궁악비의 손을 거칠게 잡아챘 다.

궁악비는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지만 죽음을 초월한 그 힘은 감당 키 어려웠다.

‘비, 빌어먹을, 손목이 뜯겨 나갈 것 같잖아.’

궁악비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낭왕이 된 이후 처음 느껴 보는 생경한 감정이었다.

“도, 도와줘.”

궁악비가 급하게 구원을 청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설우진이 오른팔을 부여잡고 위태롭게 서 있 었다.

설우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천뢰도를 향해 오른발을 힘껏 내찼다.

발끝에 걸린 천뢰도는 정확히 목태 윤의 손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흑철마공이 풀린 탓에 손목은 천뢰 도의 예기를 이기지 못하고 깔끔하 게 잘려 나갔다.

털썩.

설우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강기 그물이 없었으면 내가 저 꼴 이 됐겠지.”

그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귀마들의 시체로 향했다.

다시 떠올려도 참 힘든 싸움이었다.

강기 그물로 셋을 먼저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대로 반대의 결 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싸움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것인가?”

맞은편에서 궁악비가 물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가 쌓인 탓인지 귀주를 떠날 때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다.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공격해 오는 건 저놈들 맘인데!”

답답하기는 설우진도 매한가지였다.

마천에서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 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 만 설마 귀마를 다섯이나 붙일 줄이 야.

“저………… 지금이라도 계약을 철회하 면 안 되겠나? 오늘도 봐서 알겠지 만 나는 데리고 있어 봐야 크게 도 움이 안 될 걸세.”

궁악비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최대한 힘든 표정을 지으며, 하지만 결과적으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건 불가합니다.”

“왜인가? 자네도 봤다시피 내 실력으론 귀마 하나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네.”

궁악비가 강한 어조로 반문했다. 그만큼 그는 이번 싸움에서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목태윤과의 싸움에서 그는 전력을 다해 혈부를 휘둘렀다.

하지만 제대로 몸에 박히는 공격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오늘은 상대가 나빴을 뿐입니다. 귀마는 마천에서도 쉬이 부릴 수 없 는 중요한 전력입니다. 오늘 다섯이 희생됐으니 마천에서도 한동안 자중 할 것입니다.”

“흠, 그럼 보수라도 올려 주게. 상 대가 귀마라면 자네가 앞서 지불한 선금은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가.” 

설득이 통하지 않자 궁악비는 실속 이라도 챙길 요량인지 보수를 올려 달라 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뜻은 가볍게 무산됐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보수를 두 배로 올려 드리죠. 대신 아까 제 가 구해 드린 목숨값도 계산에 넣었 으면 합니다.”

“그, 그건 자네가 자의로…………….”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죠,이 두 귀로 분명히 구해 달란 외침을 들었는데.”

“끄응, 아까 한 얘기는 못 들은 걸로 치게.”

결국 궁악비는 한발 물러섰다.

더 얘길 나눠 봐야 자신에게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마십시오. 어 르신께서 열심히 뛰어 주신 만큼 차 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 드릴 겁니다.”

“정말 그 말을 믿어도 되나?” 궁악비가 불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설우진을 바라봤다.

“전 한 번 입 밖으로 낸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하니 믿고 끝까지 따라오세요.”

설우진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궁악비는 쓰린 속을 애써 달래며 설우진 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두 사람은 얼마 걷지도 못하 고 멈춰 서야 했다.

‘하아, 이거 너무하잖아. 귀마 다섯 도 모자라서 이제 검은 늑대까지 떼 …….’

흔들리는 설우진의 시선.

그의 정면에는 검은 복색을 갖춰 입은 무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 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우연이 있었 다.

하우연은 고수태가 자신을 배제하 고 움직이자 급하게 전서구를 상남으로 보냈다.

상남은 하북과 하남의 경계에 걸쳐 있는 도시다. 하우연은 그곳에 예비 흑랑사자들을 대기시켜 뒀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를 대 비한 그의 숨은 수였다.

전서구를 통해 소집 명령을 받은 흑랑사자들은 발 빠르게 무한으로 넘어왔다. 언제라도 움직일 준비가 갖춰져 있었기에 그 움직임은 무척 이나 기민했다.

“놀랍군, 다섯 귀마를 단 둘이서 제압하다니.”

하우연이 설우진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귀마들과 달리 그는 노골적으로 살기를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설우진의 눈에는 귀마들보 다 그가 더 위험하게 비쳤다.

‘저 새끼의 눈은 냉정해. 무식하고 성질 급한 귀마들보다 다루기 까다 롭단 뜻이지. 게다가 지금 몸 상태 가 최악이야. 한둘이라면 모를까 저 만한 숫자를 감당해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하우연이 데려온 흑랑사자의 숫자 는 서른 남짓.

귀마들에 비하면 턱없이 약한 놈들 이었지만 내력이 완전히 고갈된 지 금에는 한둘도 상대하기 부담스러웠 다.

이에 설우진은 슬쩍 궁악비 쪽을 쳐다봤다.

-나에 대한 기대는 접게. 마지막에 놈한테 손목을 잡힌 탓에 당분간은 혈부를 쥐기도 힘드네.

궁악비가 전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전했다.

확실히 그의 손목은 눈에 띌 정도 로 부어 있었다. 아마도 근육이 파 열된 듯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회복해야 해.’

설우진은 시간을 벌 요량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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