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20화 : 거듭되는 위기, 구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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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20화 : 거듭되는 위기, 구원 (2)


거듭되는 위기, 구원 (2)

“왜 그렇게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거 지? 내가 몇 차례 마천과 악연을 맺기는 했지만 귀마들까지 동원해서 잡을 정도의 거물은 아닐 텐데.” 

“천주님께서 널 원하신다.”

“그런 대단한 양반이 왜……?” 

설우진은 진심으로 놀랐다.

그가 기억하는 마천주는 범접할 수 없는 하늘 위의 또 다른 하늘이었 다.

일대 혈전으로 기억되는 파천무전에서 그는 여덟 명의 정사 고수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위를 뽐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는 끊임없이 마기를 뿜어 대고 있었고 쌍룡맹을 지탱하던 여덟 고수는 지쳐서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그대로 싸움이 이어졌다면 중원 무 림의 주인은 그가 되었을 것이다. 한데 마지막 순간에 역천회의 오성 들이 난입했다.

마천주는 잠력을 폭발시키면서까지 그들과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천주님께선 인재를 중히 여기신 다.”

‘허어,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전개 야, 날 죽이려고 기를 쓰고 쫓아다녔으면서 이제 와서 날 원한다니.’ 

설우진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하우연은 그의 혼란한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제 할 말만 해댔다.

“얌전히 따라나서라. 저항하면 네 놈의 사지 중 하나를 잘라내 데려갈 것이다.”

노골적인 협박에 설우진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빌어먹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대로 놈을 따라갔다가는 마천주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마천의 주구가 되 어야 할 텐데.’

진퇴양난이었다.

두 개의 선택지 중 어느 것도 설우진에겐 정답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등장했 다.

“네놈들한텐 안된 일이지만 저 친 구는 내가 데려간다.”

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목소리.

‘흑성’

설우진은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챘다.

워낙에 그와의 첫 만남이 인상적이 었기에 또렷이 기억했다. 

“웬 놈이냐!”

하우연이 두 눈을 희번득거리며 사 나운 마기를 발산했다. 귀마들과 있 을 땐 상대적으로 묻힌 구석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도 입마의 경지를 훌쩍 넘어선 초절정 초입의 마인이었 다.

하지만 서슬 퍼런 마기의 위협에도 흑성 진추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 았다.

“그 정도 마기로 날 찍어 누르려 하다니, 날 너무 얕본 거 아니야?” 

진추성이 하우연에 맞서 기운을 발 산했다.

폭풍이 몰아치듯 그를 중심으로 사 나운 소용돌이가 일었다.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흑풍마령인가?”

설우진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 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흑성의 무공은 흑풍마령이었다.

흑풍마령은 형태가 없었다. 바람을 근간으로 하는 만큼 시전자가 자유 자재로 공격을 구사할 수 있었다. 흑풍마령을 창안한 풍신마 도휼은 마도 제일의 살객이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적들을 살 해했다. 죽이기 편한 형태로 마기를 변환해 사용한 것이다.

해서 한동안 그의 존재는 전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네가 이곳엔 웬일이지?

설우진이 전음을 통해 진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보다는 고맙다는 말이 먼저일텐데.

-네가 무슨 목적으로 찾아온 것인 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건 성급하지 않을까?

-후후, 까칠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안심해라. 널 찾아온 건 적성의 개인적인 부탁 때문이니까. ‘적사호, 그 인간이 왜?’

설우진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사이 진성과 하우연을 필두로 한 흑랑사자들이 정면에서 충돌했 다.

진추성은 흑풍마기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편한 번을 만들었다.

“동요하지 마라. 놈은 혼자니 사륜진으로 체력을 깎아라.”

하우연이 침착하게 흑랑사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데 진이 발동하기도 전에 흑풍번 이 그들 사이로 들이쳐 진형을 뒤흔 들었다.

하우연이 급하게 막아 보려 검을 뻗었지만 진추성의 움직임이 한 발 짝 더 빨랐다.

퍼퍼퍽.

흑풍번에 두들겨 맞은 흑랑사자들 이 좌우로 튕겨져 나갔다. 흑랑사자 들이 검을 들어 흑풍번을 받아 냈지 만 그 안에 실려 있는 힘을 감당해 내지는 못했다.

속성의 성격을 지닌 마공은 그 수준에 따른 편차가 심했다. 하위 마공으로는 상위 마공을 꺾을 수 없다 는 뜻이다.

싸움이 벌어진 지 불과 반 각여 만에 흑랑사자의 절반이 흙바닥 위 에 나뒹굴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하우연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판이 기운 싸움에 그는 과감히 철 수를 결정했다.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어렵게 양성 한 흑랑사자들을 헛되이 잃을 순 없 었다.

“철수한다.”

하우연이 검을 거두고 소리쳤다. 이에 흑랑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구해 움직였다.

진추성은 굳이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들이 물러남으로써 이곳에 온 목 적은 이미 달성했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들판, 세 사 람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 다.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설우 진이 토끼 뒷다리를 뜯으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적 학사가 왜 날 찾는 거지? 우 리 관계는 지난번에 확실히 정리했 었는데.”

“최근에 적성이 쌍룡맹주를 찾아가 비밀 협약을 맺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설우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는 얘기에 내심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자신과 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했다.

“적성은 널 필요로 한다.”

“……?”

“후훗, 그냥 공짜로 부리겠다는 것 이 아니다.”

진추성은 설우진의 속내를 짐작한 다는 듯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대체 얼마나 위험한 일을 시키려 고.’

설우진은 밀려드는 부담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 적성은 칼날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한순 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런 처지인 걸 뻔히 아는데 설우 진이 진성의 말을 달가워할 리 없 었다.

“날 도와준 건 고마운데 그쪽하고 얽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오늘 신세진 건 어떤 식으로든 갚을 테니 그냥 돌아가.”

설우진은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 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찾아온 진성이 그 말을 순순히 따를 리 만무했다. 

“적성에게 널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니미럴, 그럼 날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는 거야?”

“네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어 쩔 수 없겠지. 하지만 난 그런 상황 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진추성은 은 연중에 흑풍마령의 기운을 끌어올렸 다.

불길하게 빛나는 검은 기류가 그의 손끝에서 형상을 이뤘다.

‘지금 상태론 놈의 흑풍마령을 감 당할 수 없어. 흑풍마령보다 벽뢰진 천이 상위의 마공인 건 확실하지만 그것도 내 몸이 온전했을 때 얘기 지.’

다섯 귀마들과의 싸움으로 그는 꽤 나 심각한 수준의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단순한 운기로는 회복이 불가 능할 정도였다.

“그 인간이 날 원하는 이유가 정확 히 뭐지? 내 무력이 더해진다고 해 서 대세를 바꿀 수는 없을 텐데.” 

설우진은 반쯤 체념한 얼굴로 적사 호의 속내에 대해 물었다. 진추성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 물 음에 답했다.

“적성은 쌍룡맹과의 연계에 있어 믿을 만한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고리로 널 뽑은 것 이지.”

“대체 왜? 난 반쯤 망해 버린 학관의 일개 관도일 뿐인데.”

설우진은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듯 언성을 높였다.

가뜩이나 마천이랑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인데 여기서 역천회라는 또 다른 적을 만드는 건 그의 입장 에선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적성에게 직접 들어라, 나도 그 이상은 아는 바가 없으니.”

‘그래. 어차피 이놈하고 입씨름을 벌여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그렇 다면 적사호 그 인간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게 나아.’

설우진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억지로 매달리지 않았다.

덕분에 진추성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설우진을 적성에게 데려갈 수 있게 됐다.

“난 어찌하는가?”

설우진이 진성을 따라나설 때 궁 악비가 다급히 물었다.

“저 대신 설가장에 들러 적린을 전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의 일 이 끝나면 철사자회로 가셔서 애들 을 좀 봐 주십시오.”

“애들이라면…?”

“황룡 학관 동문들입니다. 아직 나 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니 낭왕 의 가르침이 금과옥조가 될 겁니 다.”

설우진은 궁악비에게 훈육을 떠맡겼다.

하지만 궁악비는 대번에 싫은 내색 을 보였다.

이에 설우진은 눈꼬리를 씰룩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그게 싫으시면 저랑 함께 가시든지요.”

순간 궁악비는 흠칫했다.

그는 옆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를 세세히 경청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지라 태반의 내 용이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한 가지 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설우진 을 따라가면 오늘보다 더한 개고생 을 하게 된다는 걸.

“허허, 내가 언제 싫다고 했는가. 내 설가장에 들렀다 바로 철사자회 로 감세.”

궁악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급 하게 대화를 끝맺었다.


진추성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하우연은 홀로 황룡 학관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곧장 사마중달을 찾아갔다. 앞서 전서를 통해 상황을 보고했던 터라 그를 바라보는 사마중달의 눈 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쿵.

“불민한 제자를 벌해 주십시오. 저 의 불찰로 천의 소중한 전력을 헛되 이 잃었습니다.”

하우연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죄 를 빌었다.

으깨진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 왔지만 그 모습을 보고서도 사마중 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각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우연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력이 크게 소진된 것이다.

그제야 사마중달이 입을 뗐다.

“귀마가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었 다. 한데 어찌하여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냐?”

“그것이, 거의 싸움이 끝난 뒤에 도착했던지라……… 아, 그러고 보니 현장에 이것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우연이 힘겹게 주머니에서 실 가 닥을 꺼내 내밀었다.

설우진이 만든 강기 그물의 잔해였다.

‘이, 이건……’

사마중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잔해에 남아 있는 강기의 흔적을 발 견한 것이다.

마천 내에서의 공식 직함은 군사이 지만 그의 무공은 결코 낮지 않았 다.

‘이 그물에 담겨 있는 게 진짜 강 기라고 한다면 귀마들이 당한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야. 그들이 아 무리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강기를 종잇장처럼 찢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사마중달은 그물의 잔해를 몇 번이 고 만졌다. 그리고 판단이 섰는지 급하게 방을 나섰다.

그가 찾아간 곳은 황룡 학관의 관 주실이었다. 관주실에는 서진용이 마공 수련에 열중이었다.

지금의 경지로도 강호에 적수를 찾 아볼 수 없는데 그는 끊임없이 자신 의 마공을 갈고 닦았다.

사마중달이 방으로 들어서자 서진 용이 깊게 내리깔고 있던 눈을 치켜 떴다.

“기별도 없이 무슨 일이지?”

서진용의 목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목소리에도 마기가 실렸는지 사마 중달의 얼굴이 고통으로 살짝 일그 러졌다.

“설우진을 시험하기 위해 보냈던 다섯 귀마가 모두 죽었습니다.”

“큭, 농이 지나치구나.”

방 안의 마기가 술렁거렸다.

“저, 저도 잘못된 보고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마중달은 목줄을 조여 오는 마기에도 힘겹게 대화를 이어 갔다.

“설마 놈에게 당한 것이냐?”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탁.

서진용의 양손이 팔걸이를 찍어 눌렀다.

만년오금을 섞어 만든 것임에도 팔 걸이는 갓 삶은 두부처럼 으깨졌다.

“나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란 것이 냐? 고수태는 귀마들 사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마인이다. 한 데 그 고수태가 이끄는 귀마들이 애 송이 놈한테 당했다고?”

“뜻하지 않은 함정과 귀마들의 방 심이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 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 것이냐?”

“이것을 봐 주십시오.”

사마중달이 강기 그물의 잔해를 앞 으로 내밀었다. 서진용은 허공접물 의 한 수로 그 잔해를 손에 넣었다.

“흠, 그물에 강기가 덧씌워져 있 군.”

“네. 아무래도 설우진이 그리한 것 같습니다.”

“강기 그물이라, 방심한 귀마들이 라면 대처가 늦었을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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