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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장 – 구출대 (2)


가장 높이 날아오르는 하늘치도 이곳에서는 땅을 볼 수 없다. 동서남북의 모든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키보렌에서는.

열기를 머금은 채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먹구름은 숲의 정수리 에 거의 닿을 듯하다. 어떤 도낏날도 경험하지 않은 키보렌의 나 무들은 늙고, 거대하고, 음험하다. 긴 시간 동안 무질서하게 자 라난 가지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뒤얽혀 있고, 허공에 서 손을 맞잡은 가지들은 그 위에 말라죽은 나뭇잎을 잔뜩 얹은 채 아래로 휘어져 있었다. 하여, 거센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키보 렌에선 숲의 머리 부분에서 나뭇잎들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거대한 나무들은 죽은 후 쓰러지기도 하지만 좀 작은 나무들은 죽은 후에도 뒤얽힌 가지 때문에 쓰러지지 못하고 그 자신을 위 한 비목이 되어서 있게 된다. 그중엔 옆의 형제들에게 비스듬하 게 기댄 채 죽어 있는 나무들도 많았고, 따라서 초록빛 바다를 연상시키는 키보렌의 아래쪽에는 무질서하게 뻗어나간 수직선과 사선, 그리고 수평선이 뒤얽혀 새들조차 길을 잃을 미로가 형성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 질환자의 망상 같은 미로는 자라나 며, 휘어지고, 썩어 들어가며, 살아 있는 척하고, 간혹 ‘와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바스러진 나무껍질과 나뭇잎을 사방으 로 흩날린다. 하지만 대개의 나날 동안 키보렌은 그 초록빛 베일 아래쪽에 암흑을 감금한 채 침묵의 나날을 보낸다.

그곳에 냉혹의 도시가 있었다.

강대한 레콘도 그 이름을 말할 때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 는 곳,쾌활한 도깨비도 그 이름을 말할 때 미소지을 수 없는 곳, 그리고 날조에 능한 인간은 자신들이 붙인 이름 ‘침묵의 도 시’를 고집하는 곳. 그러나 그곳은 냉혹의 도시이며, 자신을 증 거하기 위해 타인의 찬양이나 저주가 필요하지 않은 위대한 업적 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들 중 하나다.

하텐그라쥬.

무한히 펼쳐진 키보렌의 푸른 밀림 가운데서 하텐그라쥬는 외 로운 흰색 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하얀 섬은 중앙에 솟아오른 200미터 높이의 심장탑이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대도시다. 곧게 뻗은 대로들 좌우로 장엄한 건물들이 위용을 뽐 내며 서 있고 건물들보다 더 자주 눈에 들어오는 광장들은 나가 들이 노획한 전리품들로 치장되어 있다. 한계선 이남에 있는 나 가들의 다른 도시들은, 역시 높은 심장탑과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 위대한 도시 하텐그라쥬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모사품들도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종족들의 도시와 매우 다르다. 이 도시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밤을 추방하는 불빛이 없다. 하얀 열주와 회랑과 광장들 사이로 나가들은 아무런 소리 없이 유령처럼 오가며, 어디에서도 목소리나 노래 같은 것은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륜 페이가 입을 열었을 때 화리트 마케로우는 큰 충격 을 받아야 했다.

“심장을 가지고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등뒤로 도깨비 일개 군단이 행진해도 알아듣기 어려운 나가의 청력이지만, 하텐그라쥬의 비정상적인 고요함 때문에 화리트는 친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화리트는 당황했고 친구의 무 례를 탓할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심장을 가지고 사는 것? 매일매일 죽을까봐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지.>

륜 페이는 화리트의 니름이 몹시 혼란스러운 것을 감지했다. 친구를 더 이상 당혹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륜은 입을 다물고 닐 렀다.

<매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니름도 되잖아?> 

그리고 륜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위에 얹어보였다. 똑 같은 행동을 취한다면 화리트 역시 자신의 가슴속에서 뛰고 있을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겠지만 화리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 무 창피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지 않겠지?>

<그러다니, 뭐?>

<가슴을 만지지는 않겠지? 그러지 마. 무례한 짓이야. >

화리트는 자신이 너무 딱딱하게 닐렀다고 느끼고는 덧붙여 닐렀다.

<어차피 열흘 후에는 그런 행동 그만두게 되겠지만.>

륜은 오른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하텐그라쥬의 중심 부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심장탑이 하텐그라쥬의 가장 높은 건물 들의 수십 배 높이로 솟아 있었다. 심장탑을 바라보는 륜의 눈동 자에는 혐오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발코니의 난간을 움켜쥔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페이 저택의 발코니에 서 있는 륜 페이와 그의 친구 화리트 마케로우는 모두 스물두 살로 같은 나이이며, 나가의 규범으로는 아직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없는 나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흘 후, 샤나가 성(星)이 달 뒤로 숨는 날이 오면 그들은 심장탑으로 불려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낼 것이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화리트.〉

<꺼림칙해할 건 전혀 없어. 륜. 적출식 중에 죽은 나가는 한 명도 없어. 사고가 생긴다느니, 매년 한두 명은 들어가서 꼭 나 오지 않는다느니 하는 건 모두 어른들이 애들 겁주려고 하는 농 담이야.〉

화리트의 자상한 니름에도 불구하고 륜의 얼굴은 어두웠다.

<사고가 생길까봐 무서워하지는 않아. 나는 심장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리트는 놀랐다.

<왜지? 륜. 불사가 싫다는 거야?>

<불사는 아니지.>

<그러면 반불사라고 하지. 그것이 별 것 아니라고 니를 거야? 어떤 적의 공격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시시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적이라고? 나가의 적이 어디에 있지? 한계선 남쪽엔 더 이상 나가의 적은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는 한계선 위로 올라가 지도 않고, 도대체 나가를 위협하는 적이 어디에 있단 니름이야?> 

륜의 니름은 격앙되어 있었다. 화리트는 차분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한계선 이북의 그 추운 땅으로 올라가진 않아. 하지만 그들, 더운 피의 불신자들은 한계선 이남으로 내려올 수 있어. 그들은 곡물을 먹어. 그래서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 하지 만 우리는 그들처럼 숫자를 늘일 수 없어. 불사의 몸은 불신자들 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나가의 무기야.>

“그들이 내려온다고!”

륜은 다시 육성으로 외쳤다.

“어떻게! 인간의 말은 우리의 숲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 저 거대한 레콘은 자기 몸조차 추스릴 수 없고! 그리고 그 들 모두는 열을 볼 수 없어. 밤이 찾아들지 않게 할 재주가 있다 면 모를까, 그 불신자들이 어떻게 감히 우리의 숲에 들어온단 말 이야!”

륜은 성난 하늘치처럼 외쳤다. 마치 자신을 불신자 대하듯 말 을 하는 륜을 보며 화리트는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화리트는 꾹 참으며 부드럽게 닐렀다.

<도깨비는?>

나가의 가장 큰 적의 이름은 륜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가는 말을 타고 곡물을 먹는 인간도, 바위를 깨고 하늘을 나는 레콘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깨비의 경우는 좀 다르다. 화리트 는 모든 나가들이 잘 아는 사실을 차분하게 닐렀다.

<나가 잡는 것은 도깨비라지? 우리는 도깨비와 그 놈들의 그 저주스러운 불꽃을 구분할 수 없어. 그들도 열을 볼 수는 없지 만, 우리들 또한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야. 그리고 도깨비의 불은 우리의 아름다운 숲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어. 페시론 섬과 아킨스로우 협곡을 생각해 봐.>

〈그것은 너무도 예외적인 경우야. 도깨비들은 절대로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 그게 아주 재미있는 장난거리라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가능성 있는 일이잖아? 나는 그 놈들의 장난에 한계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어. 어쨌든 어느날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면 나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아아. 어느 자제력 부족한 도깨비 하나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구나.〉

친구의 장난스러운 니름에 륜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도깨비에 대한 농담은 몇 개 알고 있어. 화리트. 그리고 그 농담들이 도깨비에 대해 내가 들은 유일한 것들이야. 나는 어 디서도 도깨비들이 위협적이라는 니름은 듣지 못했어. 물론 그들 은 우리의 눈을 현혹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자들이지만, 동시에 그 자들은 전쟁에 아무 관심이 없는 유일한 불신자들이기도 해. 그렇다면 도깨비 또한 우리가 심장 없는 생물로 살아야 하는 이유 가 될 수 없어.〉

<넓은 세상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적이 있을 수도 있지.>

<아아, 물론 있지. 적은 존재해.〉

그리고 륜은 혐오감을 담아 육성으로 외쳤다.

“바로 저기에!”

화리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친구의 무모함과 무례함을 익 히 알기에 대단히 높은 관대함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이번의 행동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륜 페이는 심장탑을 가리키고 있었다.

<륜. 목소리를 내지 마. 심장탑은 그런 불경의 대상이 될 수 없어.>

탑을 가리키던 손을 내리긴 했지만 륜은 말로도 니름으로도 화 리트의 니름에 대답하진 않았다. 화리트는 갑자기 자신이 불청객 이나 된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화리트는 안색을 바꾸며 몇 가지 시시한 잡담으로 화제를 돌려보았지만 륜의 반응을 얻을 수 는 없었다. 결국 화리트는 륜이 침묵으로써 주장하고 있는 것에 부딪쳐 보기로 했다.

<심장을 적출하지 않겠다는 거야?>

륜은 여전히 아무 니름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 돋아난 비 늘들은 서로 부딪히며 불길한 소리를 내었다. 화리트의 얼굴이 슬퍼졌다.

<그걸 정말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만일 그러겠다면, 그들은 어떻게 하지?>

화리트는 절망감 가득한 니름을 보내었다.

<그건 불가능해.>

<대답해 줘. 수련자니까 알고 있을 것 아냐. 만일 어떤 나가가  자기 심장을 가지고 살다가 죽겠다고 주장한다면, 수호자들은 어떻게 하지? 강제로 적출하나?>

<아냐. 수호자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아. 하지만 도움이 될 경우를 몇 개 알긴 해.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적출식을 못한 나가들이 몇 명 있었지. 피치못할 사정 같은 것들 때문에.> 

<어떻게 됐지?>

<여자들은 물론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다음 해까지 기다렸다가 무사히 심장을 적출했지.>

〈남자들은!〉

<다음 해가 올 때까지 필사적으로 숨어다녀야 했어. 하지만 살 아남은 남자들은 아무도 없어. 모두 살해당했지.>

<살해? 누구에게?>

<모르는 척하지 마라,륜. 불신자들이 한계선 이남으로 내려오

지 못한다고 닐렀던 것은 너잖아.>

그러나 화리트는 설명을 덧붙였다.

〈모두 나가에게 살해당했지.>

륜의 비늘들이 다시 서로 부딪히며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화리트는 의자에 앉았다. 탁자엔 그가 가져온 상자가 놓여 있 었다. 친구와 함께 먹기 위해 선물 삼아 가져온 것이지만 도대체 뭔가를 먹거나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화리트는 상자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닐렀다.

<륜. 열흘 후엔 더 이상 페이 가문은 너를 보호해 주지 않아. 너는 자유로운 남자가 되니까. 하지만 자유로운 남자와 자유로운 사냥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심장을 적출한다면 여자들은 너를 남자로 인정하겠지만,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저 비에나가자기 심장을 가지고 살다가 죽겠다고 주장한다면, 수호자들은 어떻게 하지? 강제로 적출하나?>

<아냐. 수호자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아. 하지만 도움이 될 경우를 몇 개 알긴 해.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적출식을 못한 나가들이 몇 명 있었지. 피치못할 사정 같은 것들 때문에.> 

<어떻게 됐지?>

<여자들은 물론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다음 해까지 기다렸다가 무사히 심장을 적출했지.>

〈남자들은!〉

<다음 해가 올 때까지 필사적으로 숨어다녀야 했어. 하지만 살 아남은 남자들은 아무도 없어. 모두 살해당했지.>

<살해? 누구에게?>

<모르는 척하지 마라,륜. 불신자들이 한계선 이남으로 내려오

지 못한다고 닐렀던 것은 너잖아.>

그러나 화리트는 설명을 덧붙였다.

〈모두 나가에게 살해당했지.>

륜의 비늘들이 다시 서로 부딪히며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화리트는 의자에 앉았다. 탁자엔 그가 가져온 상자가 놓여 있 었다. 친구와 함께 먹기 위해 선물 삼아 가져온 것이지만 도대체 뭔가를 먹거나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화리트는 상자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닐렀다.

<륜. 열흘 후엔 더 이상 페이 가문은 너를 보호해 주지 않아. 너는 자유로운 남자가 되니까. 하지만 자유로운 남자와 자유로운 사냥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심장을 적출한다면 여자들은 너를 남자로 인정하겠지만,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저 비에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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