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장 – 구출대 (4)
인간들이 등불이나 촛불로써 낮의 일부를 밤 속으로 끌어들였을 때 그 낮에 의해 추방된 밤의 일부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방황했다. 어떤 도깨비가 그 방황하던 밤을 낮 속으로 끌어들였다. 밤을 얻음으로써 그는 밤의 다섯 딸인 혼란, 매혹, 감금, 은닉, 꿈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도깨비는 그들의 도움으로 거성을 쌓았다.
도깨비다운 품위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재미있을거라 여겼다.
혼란은 성의 내부를 결정했고 매혹은 성의 외형을 결정했다. 감금은 무수한 미궁과 미로와 함정을 결정했고 은닉은 비밀통로 와 비밀문, 암호를 결정했다. 그러나 다섯째 딸이 성의 건축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밤의 막내딸 인 꿈은 다른 네 언니와는 전혀 다르다. 꿈은 가장 밤다운 것이 지만 동시에 밤과는 정반대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밤은 감추 고 숨기고 덮지만 꿈은 드러내고 발견하고 열어보이며, 그러한 꿈의 성질은 공교롭게도 낮을 닮아 있다. 그러나 밝은 낮에는 볼 수 없고 암흑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꿈의 성질은, 별과 마찬가지 로, 그 본성이 밤에 속함을 증명한다. 이 복잡한 성질의 막내딸 은 언니들과 함께 성의 건축에 개입했지만 그 개입이 어떤 성질 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꿈의 개입을 차치하더라도 즈믄누리는 충분히 불가사의 한 건축물이다.
즈믄누리가 모두 몇 층인지, 그 안에 몇 개의 방이 있고 몇 개 의 통로가 있고 몇 개의 계단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성주뿐이다. 물론 즈믄누리를 자주 방문하는 자들에게 알려 진 몇 가지 사실은 있다. 예를 들어, 본관 4층은 항상 7층에서 올라가야만 도달할 수 있다든지, 성 안 어디에서든 모퉁이를 세번 오른쪽으로 돌면 대식당에 도달하게 된다든지, 동쪽 탑 꼭대 기에 서서 왼쪽으로 두 바퀴를 돌면 반드시 성주의 서재에 엉덩 방아를 찧게 된다든지 하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리고 즈믄누리의 역대 성주들은 취향에 따라 서재 가운데 방석을 갖다놓거나 쇠못 을 뿌려두거나 불 붙은 초를 놓아두거나 했다. 초야 옷자락을 좀 태울 뿐이니 도깨비다운 장난이라 할 수 있겠지만 쇠못의 경우는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다. 도무지 도깨비 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즈믄누리의 무사장 사빈 하수언이 동쪽 탑 꼭대기에 서 서 우수에 찬 얼굴로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쇠못에 대 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다. 사빈 하수언은 조금 전 딱정벌레 똥을 가득 담은 양동이를 들고 걸어가던 성주를 목격했던 것이다.
원래 서재 바닥에 엉덩이를 찧는 건 성주의 몸종인 비형의 일 이었다. 하지만 지금 무사장은 성주에게 직접 전해야 하는 전갈 을 가지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사빈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 로 두 바퀴를 돌았다. 주위의 풍경이 확 바뀌는 것과 동시에 사 빈은 서재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빈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일어났다. 서재 바닥에는 아무것 도 없었다.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사빈은 성주의 책상이 있는 쪽 을 돌아보았다.
즈믄누리의 11대 성주 바우 머리돌은 모종삽을 든 채 사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빈은 성주의 발치에 있는 양동이와 창가에 놓인 화분들을 보고는 그제서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꿈 꾸셨습니까, 성주님. 그건 거름을 주려고 가져오신 겁니까?”
“그럼?”
“아, 저는 혹시 그걸 바닥에 뿌려두시려고………….”
사빈은 말을 멈췄다. 성주의 눈이 번득였던 것이다.
“흐음!”
성주의 헛기침 소리를 들으며 사빈은 마음속으로 다음 번 방문 자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동시에 ‘성주님이 부르셨다네.’ 라고 말해 줄 사람의 인명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누가 좋을까? 사빈 이 이런 망상에 빠져 있자 바우 머리돌 성주는 약간 초조해하며 말했다.
“그런데, 용건은?”
“아, 성주님. 거름보다는 일조량의 문제가 아닐까요? 즈믄누리 는 어두우니까요.”
“용건은!”
사빈은 싱긋 웃었다. 성주는 그를 당장이라도 내보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사빈은 성주에게 협조하기로 했다. 사빈은 의자 를 끌어와 앉았다.
“머리를 빡빡 깎는 킴들의 딱정벌레가 성주님께 전할 전갈을 가져왔습니다.”
“아, 자기를 중이라고 부르는 킴들 말인가. 그런데 왜 자네가 직접 온 건가? 비형은 뭐 하는데?”
사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킴들이 그걸 원하더군요. 아시잖습니까? 자기들이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 자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어떻게 처리하더라?”
“……최소한의 사람만이 그 일의 내용에 대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
“이건 제 이론입니다만 킴들은 중요한 일은 몇몇 사람만이 알 아야 그 중요성이 유지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참 괴상한 생각 이죠? 아는 사람이 많아야 도와줄 사람도 많아질 텐데.”
“훼방꾼도 많아질 수 있잖아.”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방해하겠습 니까?”
“킴들은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서 그래. 어쨌든 그 자들이 그걸 원하니 맞장구를 쳐주기로 하지. 우리 둘만 알자고. 무슨 전갈 인데?”
“그 킴들은 도깨비 한 명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보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한계선 아래로 내려가서 나가 한 명을 구출해 올 구출 대를 구성한답니다. 그래서 그 구출대의 일원이 되어줄 도깨비 한 명을 보내달라더군요.”
바우 성주는 놀란 표정으로 무사장을 바라보았다. 성주는 그의 무사장이 성주를 놀려먹길 좋아하고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 을 성주를 놀려먹을 기회를 찾는 데 할애하곤 한다는 것도 잘 알 고 있었다. 그리고 성주는 그의 무사장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 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우 머리돌 성주에게 일종의 희극적 재 미를 부여했다. 사빈 하수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성주를 놀 려먹을 기회를 포착하곤 하지만, 실제로 시도하는 것은 그중 1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성주는 일부러 빈틈을 보여 무사 장을 갈등에 빠뜨리는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 무사장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 킴들이 나가 한 명을 한계선 이북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했단 말인가? 왜지?”
“글쎄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 자 들의 비밀주의인가 보지요.”
“나머지 대원들이 누군지도 비밀인가?”
“아, 그건 말해 줬습니다. 그 킴들은 아무래도 셋만이 하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옛말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킴 한 명과 레콘 한 명이 또 다른 대원이라더군요.”
“그것 재미있군. 대가는 뭐지?”
“금편 200개를 내놓겠답니다.”
“대단히 파격적이군. 내가 가고 싶어지는데. 어? 잠깐, 그 얼굴은 뭐야?”
“별 뜻은 없습니다. 차기 성주 선출에서 누구를 지지할까 고민 해 보고 있는 무사장의 표정이랄까요.”
성주는 그의 무사장이 만족할 만큼 으르릉거려준 다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누구를 보낼까.”
사빈은 약간 놀랐다.
“보내실 생각입니까? 셋이 하나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옛말 일 뿐입니다. 그 웃기는 구출대라는 것은 키보렌에 들어가자마자 모조리 살해당할 겁니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일입니다.”
“왜 가능성이 없지?”
“모르니까요. 키보렌이나 나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킴이 알 거야.”
“예?”
“구출대의 일원인 그 킴. 나는 그 킴이 누굴지 짐작이 되는걸. 나가와 키보렌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런 구출대를 이끌 수 있는 킴은 한 명뿐이야.”
“그런 킴이 있습니까?”
“케이건 드라카.”
사빈은 놀랐다. 그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십여 년 전 도깨비 장사들을 상대로 해서 판막음을 기록한 전설적인 킴 씨름꾼의 이름이었다.
“그 킴 씨름꾼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살아 있어. 한계선 근처에서 나가를 잡아먹고 있지.”
사빈은 웃으려 했다. 그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성주의 말 이 일종의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주는 웃음 을 기대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사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잡아먹고 있다니요?”
“말 그대로야. 나가를 사냥한 다음, 먹어.”
사빈은 두 손으로 음식을 집어들어 입가로 가져가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성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사빈은 파랗게 질 렸다.
“미친 겁니까?”
“요리는 한다던데.”
“아, 그렇습니……. 예?”
성주는 두 손을 깍지 껴 무릎 위에 얹은 다음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음. 케이건은 나가를 증오해. 말 그대로 ‘잡아먹을 정도로’ 증오하지.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야. 한계선 근처에서 나가들을 습격한 다음 토막내어 삶아 먹어.”
사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잡아먹을 정도로 증오한다고 해서 잡아먹는다면, 그걸 가리켜 언행일치라고 말하기보다는 정신 착란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 다만?”
“글쎄. 이유가 있긴 해. 자네도 알 테지만 심장이 없는 나가는 죽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잖아.”
“아, 그래서 삶아버리는 겁니까? 재생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기 낭비잖아.”
사빈 무사장은 잠시 그의 성주를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 다. 성주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건 케이건의 대답이야. 나도 자네처럼 물어봤고, 케이건은 그렇게 대답했어.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지. 흐음. 잠시만.” 성주는 책상 서랍을 열어 그 안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성주는 그 안에서 오래된 양피지 하나를 꺼내었다.
“케이건이 6년 전인가 보낸 편지일세. 읽어보게.”
조심스럽게 편지를 받아든 사빈은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평안히 계신지요. 케이건입니다.
한동안 격조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한계선 근처의 이 황폐한 땅에 서는 문방구보다 병장기들을 구하는 편이 더 쉽습니다. 어제 우연히 만나게 된 방물장수가 양피지 몇 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겨우 이렇게 연락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 주셨던 서신에서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짓을 그만둘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예. 저는 요즘 도 여전히 나가들을 먹고 있습니다. 굳이 끔찍하게 말하고 싶진 않습 니다만 돌려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키탈저의 호랑이 사냥꾼들 이야기를 아십니까? 키탈저의 호랑이 사냥꾼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면, 죽은 사냥꾼의 아들은 다른 사냥꾼 들 전부의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사냥꾼들은 자신의 모든 기술을 그 아들에게 가르치지요. 그리고 아들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그들은 함께 호랑이 사냥에 나섭니다. 호랑이를 잡게 되면, 사냥꾼들은 그 자리에서 호랑이의 배를 갈라 간을 꺼냅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먹 입니다.
저는 살아남은 아들입니다. 성주님.
나가는 제 추한 몸뚱이를 제외하고 제게 소중한, 제게 유의미한 모든 것을 삼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먹습니다. 언젠가 저자 신이 그 놈들에게 먹힐지도 모릅니다. 한계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 려 애쓰고 있습니다만, 비틀거리는 나가를 뒤쫓다보면 어느새 밀림 속에 서 있는 저 자신을 깨닫곤 합니다. 나가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 는 단 하나의 유리함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성주님. 살갗을 지지는 밀림의 열풍 속에서도 저는 나가들처럼 추위를 느낍니 다. 황급히 북쪽으로 돌아옵니다만 며칠 후엔 똑같은 처지에 빠져 있 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더 이상 바라기를 휘두르지 못하게 될 때 저는 죽겠지요. 광인의 죽음으로 치부하시고 잊어주셔도 상관없습니다.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서신의 아래쪽엔 서명 대신 기묘한 낙서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사빈은 고개를 들었고 그러자 성주는 설명했다.
“키탈저 사냥꾼들의 사냥 기호야. 흑사자와 용(龍).”
“흑사자와 용이오?”
“둘 다 나가에 의해 멸종한 것들이지. 키탈저 사냥어로 읽으면
케이건 드라카가 되네. 그 친구가 사용하는 이름은 거기서 따온 걸세.”
사빈은 서신을 성주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아아. 그럼 그 이름은 본명이 아닌가요?”
“응. 하지만 그의 동의 없이 본명을 말해 줄 수는 없네.”
서신을 돌려받은 바우 성주는 그것을 도로 서랍에 넣은 다음 즈믄누리의 무사장을 돌아보았다.
“자,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니까 이 씨름꾼은 수백 년 전에 지상에서 사라진 키탈저 사냥꾼들의 방식으로 나가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원수를 살해하고 먹어버리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도대체 나가들이 그 킴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광기어린 복수를 하는 겁니까?”
“매우 지독한 일을 했지.”
사빈은 성주의 말이 더 이어지길 기다렸지만 성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려던 사빈은 문득 이상한 것을 느끼며 성주를 바라보았다. 성주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정말 지독한 일이었어.”
사빈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어떤 일입니까?”
고통스러운 상념에 빠져있던 성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본명과 마찬가지로 그의 과거 또한 그의 동의 없이는 말 해줄 수 없네. 어쨌든 이 친구가 나가와 키보렌에 대해 누구보 다 잘 알 거라는 것은 짐작되지? 포식 동물이 먹잇감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당연하잖아.”
사빈은 언짢은 듯이 말했다.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저라면 그런 위험한 곳에 들어갈 때의 동료가 제정신이라는 확증이 있는 편이 좋겠습니다. 혹 그 킴이 늘상 먹던 나가에 질린 나머지 별식으로 도깨비를 먹고 싶어하면 실로 곤혹스러운 일이지 않겠습니까?”
웃어넘길 말이 아니었지만 바우 성주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케이건의 분노는 모조리 나가들에게 돌려져 있어. 그리고 그에게 다른 분노를 살 수도 없어.”
“분노를 살 수 없다고요?”
“그래. 서신에서 본 것처럼 그에겐 더 뺏을 수 있는 것도 없 어. 나가들이 모조리 다 빼앗아갔으니까. 역설적으로 들릴 테지 만 나가를 제외한 자들에게 있어서 케이건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분노하게 할 수 없으니까.”
“슬픈 말씀이군요.”
“그래. 슬픈 일이지. 그리고 사실이야. 케이건의 안전성은 확 실히 말할 수 있어.”
사빈은 성주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빈은 성주의 판단에 대해 반박을 시도하려는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즈믄누리의 성주에게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엔 성주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반박도 포함된다. 그래서 사빈은 본래 화제로 돌아갔다.
“장사 케이건이 그토록 안전하고 나가 대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라면, 키보렌에 들어가야 할 구출대에게 그 이상 적 임인 사람도 없겠군요. 그래서, 보내실 겁니까?”
“셋만이 하나를 대적할 수 있지. 도깨비가 가야 셋이 돼. 따라 서 보내겠어.”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이런 일엔 자격이라는 것은 없는 거잖아? 나가나 키보렌에 대 해 조금이라도 아는 도깨비는 없어. 그러니 모든 도깨비에겐 똑 같은 자격이 있는 거지. 따라서 길게 생각할 것도 없어. 다음 번 이 방에 들어오는 첫 번째 도깨비를 보내겠네.”
“”…..첫 번째 도깨비요?”
“그래.”
만일 이곳이 즈믄누리 바깥이었다면, 사빈 하수언은 성주가 내 놓는 모든 의견을 단지 성주가 내놓았다는 이유로 점잖게 무시했 을 것이며, 그것을 불충으로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사 빈 하수언은 바우 성주가 그다지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 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성주에 대한 그의 존경에 아무런 영 향도 끼치지 않음은 그와 성주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 지만 이곳 즈믄누리의 안에 있을 때 성주의 의견은 단지 성주가 내놓았다는 이유로 완전히 수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빈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진 않았다. 짧게 불평하긴 했지만.
“여기서 같이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밖으로 나갔다간 제가 그 불운한 도깨비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바우 성주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성주와 무사장은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조금 후 서재 한 가운데서 화가 잔뜩 난 도깨비가 나타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도깨비는 무사 장을 보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무사장님! 제 일을 뺏으시려는 겁니까? 그럼 자신을 죽이는 신의 이름으로 오늘부터 제가 무사장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성주의 몸종인 비형 스라블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젊은이였 다. 사빈 하수언은 그것이 그의 불운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 로저었다. 바우 성주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지. 자넨 구출 대원이 되어야 하니까.”
비형 스라블은 눈을 껌벅거리며 성주의 말을 되풀이했다.
“구출 대원이오?”
“그래. 자넨 수백 년 동안 아무도 감히 들어가지 못했던 곳으 로 들어가서 누군가를 구출해 와야 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