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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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1)


즈믄누리에 살던 한 도깨비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도깨비는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도깨비는 자신의 옆에 앉아서 자신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이 깨어났고, 그래서 도깨비는 자신에게 무슨 꿈을 꾸었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자신이 대답했다. 꿈속에서 그는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아서 자신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이 깨어났고,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무슨 꿈을 꾸었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자신이 대답했다. 꿈속에서 그는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아서 자신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이 깨어났고,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무슨 꿈을 꾸었냐고 질문했다…….

그 도깨비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다른 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사흘 뒤 즈믄누리에는 철학자가 넘쳐나게 되었다. 즈믄누리의 성주는 왜 도깨비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상 이야기만 나누는 건지 의아하게 여겨 조사를 실시했다. 상황을 알게 된 성주는 격분하여 꿈을 꾼 도깨비를 불러들였다. 도깨비는 분노한 성주를 보곤 겁에 질렸다. 한동안 도깨비를 쏘아보던 성주는 주위 사람들에게 외쳤다.

“저 자식에게 이부자리 가져다줘! 야, 이 자식아, 빨리 자! 그 끝이 궁금하단 말이다!”

-라수의 <꿈꾸는 도깨비>


출발하는 수탐자들

하인샤 대사원에서 가장 호평받는 정신 활동은 고민이다. (참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참선은 정신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영육이 동시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물론 승려들의 최종 목표는 지자가 아닌 각자(覺者)이며, 각자는 고민에서 벗어나 바람처럼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각자가 되기 위해 승려들이 애호하는 수단이 끝없는 지적 탐구와 무한한 고민이라는 사실은, 승려들에게 도착적 즐거움을 주는 것 외에, 그것에 대해 깊이 캐물었을 경우 승려들을 방어적으로 만드는 일탈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승려들은 고민한다. 사실 산사보다 고민하기 좋은 장소도 별로 없다. 많은 승려들이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모처에 모여 앉은 고승들 또한 다른 승려들처럼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즐거움 속에서 고민하는 다른 승려들과 달리 그 고승들은 두통과 흉통, 그리고 복통 등 심인성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질병 속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에 지친 그들은 간혹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상대방의 얼굴에서도 별 신통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다시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 중 하나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요. 그 분은 언제나처럼 우리의 주문을 수용한 겁니다. 우리는 왕을 원했고, 그래서 케이건 님은 우리에게 왕을 주셨습니다.”

“비늘이 덮인 것을 주문한 기억은 없군요.”

누군가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한숨들이 흘러나왔다. 다른 누군가가 분위기를 호전시키고 싶다는 듯이 말했다.

“일단 그 나가에 대해 좀 알고 싶군요. 케이건 님이 추천한 분 말입니다.”

“오레놀 대덕, 들려주시겠습니까?”

오레놀은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곳의 구성원들은 법계와는 무관한 요건에 의해 선출된 자들이며, 실제로 그곳에는 오레놀보다 법계가 낮은 승려도 있었다. 하지만 종단의 최연소 대덕인 오레놀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격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레놀이 그곳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쥬타기 대선사를 보좌하며 계획의 실무를 담당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오레놀은 다른 고승들의 묵인 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며, 그 행운에 대해 즐거워하기보다는 끔찍한 실수나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륜 페이의 누나입니다. 침묵의 도시에서 도망쳤을 때 륜 페이는 일종의 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나가들은 륜이 저지른 것으로 오해한 범죄에 대해 쇼자인테쉬크톨이라는 처벌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범죄자의 친족 한 명에게 범죄자의 추적과 살해를 일임하는 처벌입니다. 사모 페이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이곳까지 륜 페이를 추적해 왔습니다. 도중에 예의 흑사자 모피를 손에 넣었기에 한계선을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실로 필사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군요. 그것은 정의 실현에 대한 의지였습니까? 그렇잖으면 가문에 대한 의무감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필사적인 추적에는 실은 뜻밖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모 페이는 륜 페이에게 살해되기를 원했습니다.”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승려들 중 일부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무슨 말입니까?”

“쇼자인테쉬크톨은 암살자와 범죄자 중 한 명이 죽음으로써 끝나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가문의 구성원이니,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가문에 부과된 처벌이 완료되는 겁니다. 사모 페이는 그 점을 이용하여 륜 페이를 살려 주려 한 것입니다. 륜 페이가 아닌 사모 페이가 죽어도 죄값은 지불되므로, 사모 페이가 살해되면 거꾸로 륜 페이는 자동적으로 살 권리를 얻게 되는 겁니다.”

고승들은 가벼운 탄성을 지르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목숨도 보존하고 그들의 규칙도 보호하는, 실로 무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군요.”

또 다른 사람이 질문했다.

“인상적인 수호수(守護獸)를 데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마루나래라는 이름의 대호입니다. 사모 페이는 여행 도중 그 대호와 우연히 조우했고 본인도 뚜렷이 말할 수 없는 이유에서 함께 행동하고 있습니다. 케이건 님은 그 대호가 왕의 수호수라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만. 그리고 또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들도 데리고 있습니다. 그 두억시니들은 우연히 살신 계획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구출대를 추적해 왔습니다. 사모 페이 또한 같은 자를 추적하고 있었기에 그 둘은 서로 손을 잡았으며, 둘의 목적이 모두 무의미해진 지금까지도 그 동맹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억시니들은 자신들이 우연히 관련되게 된 이 일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많은 역할을 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두억시니들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오레놀은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설명했다. 승려들은 그 이야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한참 후 한 승려가 입을 열었다.

“그 여인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은 분명하군요.”

“범상한 ‘나가’가 아니지요.”

누군가가 거의 구슬프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덧붙이자 승려들은 다시 몸 곳곳의 질환을 느끼며 신음했다. 긴 침묵 후 누군가가 말했다.

“침묵은 많은 경우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만,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의 대용이 되는 경우에는 곤란한 악덕일 뿐입니다. 사태를 직시하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케이건 드라카 님은 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사모 페이를 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종단은 그 분의 추대를 진지하게 검토한 후 만민들 앞에서 그녀를 지지할지, 그렇잖으면 그녀를 거부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말하기 괴롭더라도,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숨 쉬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 분을 제외한다면 왕을 보거나 가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왕은 이래야 한다. 혹은 저래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거위가 닭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경우나 소가 말 무리를 이끄는 경우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영웅왕은 레콘이었지만 인간이나 도깨비도 그를 섬겼습니다. 오히려 레콘들이 왕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지요. 그 시절에도 레콘들은 그들이나 도전할 법한 기상천외한 일에 도전하거나 신부를 찾기 바빴으니까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는 결점이 되지 못합니다.”

“나가가 우리와 같은 선민 종족임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세계에서 나가가 점하고 있는 특수한 위치를 무시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대확장 전쟁을 벌인 이후로 나가는 다른 세 종족을 적으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확장 전쟁은 나가들 자신도 실감을 느낄 수 없는 과거사로 여길 겁니다. 도당을 이루고 전쟁을 벌이는 일이라면 오히려 우리 인간들의 전문 분야 아니던가요?”

“나가 아닌 누군가가 한계선 이남으로 내려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해당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왕위를 주어 떠받들 수도 없는 노릇잖습니까.”

대화가 지지부진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뚜렷했고, 그래서 승려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오레놀은 겨우 입을 열 용기를 짜낼 수 있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스님들.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뭐죠?”

“사모 페이 자신에게 왕이 될 생각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승려들은 당황하여 오레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사모는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 버렸다.

“잔치를 파탄 내는 가장 극적인 방법이었어.”

케이건은 그 자신의 땀으로 흠뻑 젖은 마당 위에서 바라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젖은 웃옷도 벗어 버려 땡볕은 그의 살갗을 직접 난타하고 있었다. 케이건은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사모가 보기엔 다시 쓰러지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를 학대하듯 쌍신검을 휘두르며 케이건 역시 아무렇게나 말을 시작했다.

“당분간은 외부에 공표할 수 없다. 대관식 같은 것도 불가능하고. 섭정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내 생각엔 괄하이드 규리하가 좋을 것 같군. 그리고 즈믄누리의 도움을 요청하도록. 즈믄누리의 바우 성주는 한 번 웃은 다음 ― 아마도 자신의 판단력을 좀 자랑하고 나서 ― 너에게 협조할 거다. 도깨비들은 딱정벌레와 도깨비불을 가지고 있고, 재미를 볼 일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그들에게 피만 요구하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도움을 줄 거야.”

“케이건.”

콱! 하는 소리와 함께 바라기가 땅에 꽂혔다. 케이건은 칼자루를 놓았고 바라기는 옆으로 조금 기울다가 그대로 멈췄다. 그 비스듬한 모습이 사모를 잠깐 심란하게 했다. 사모 페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우습지만, 나는 나가야.”

“그 사실이 불만인가?”

“나는 자신이 나가라는 사실에 불만이 없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텐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가가 불신자들의 왕이 된다는 것은 허튼소리야.”

케이건은 의식을 잃은 동안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난 수염을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묻어났고, 케이건은 옆으로 손을 뿌렸다. 날아간 땀방울이 땅에 부딪혔다. 사모는 그것이 화로에 던져진 물방울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속으로 조금 웃었다. 케이건은 마루나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루나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사모 역시 마루나래를 잠시 돌아보았다. 그 대호는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여름의 태양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모는 다시 속으로 웃었다.

“네가 잘못 봤어. 물론 나는 마루나래를 정신 억압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나는 우리 둘의 관계를 설명할 말로 더 괜찮은 것을 가지고 있어. 우정이라는 이름의.”

“키탈저 사냥꾼들은 대호를 가리켜 산노인이라고 불렀지. 산노인은 비정하고 교활하고 난폭하며, 우정을 몰라. 그런 그가 우정을 느낀다면 상대의 격이 자신에게 어울려야 하겠지.”

“나는 너를 잘 모르겠어. 케이건. 때론 차갑다 싶을 정도로 논리적인데, 어떨 때는 터무니없이 미신적이고 신비주의적이군. 어떻게 그렇게 상반된 정신이 한 몸에 공존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하긴, 너는 아라짓 전사이며 동시에 키탈저 사냥꾼이라는 믿기 힘든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리고 네가 가진 또 다른 정체는…….”

“나가 살육자를 말하려는 건가.”

사모는 비늘을 조금 부딪쳤다.

“륜은 그것 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어.”

“잡아먹힐 뻔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괜한 생각이라고 전해. 나는 그때 길잡이였어.”

“그런 게 아니잖아. 케이건. 륜은 너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동족들을 잡아먹는 괴수였던 거야.”

“동족?”

케이건은 메마른 어조로 반문했다. 사모는 눈살을 찌푸리며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나에 대해서라면 어떻게 생각해도 좋지만, 나가를 동족으로 여기는 것은 삼가는 편이 륜에게 좋을걸. 나가들은 누나를 보내어 그를 죽이려 했고 속임수를 통해 그의 신부를 감금했다. 만약 륜이 한계선 이남으로 돌아간다면 나가들은 그를 비에나가라 니르며 잡아먹을 테지. 그런 동족이라면 타인보다 못한 것 같은데.”

사모는 비늘을 부딪치며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녀의 비늘이 누그러들었다.

“륜도 알아.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운 거야. 지금 륜은 나가와 단절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너를 용납하면 단절이 아니라 적이 되는 거지. 너는 나가의 적이지?”

“그래.”

“그런 네가 어떻게 나가인 나를 왕으로 추대한 거지? 내가 왜 왕이 되어야 하는지 설명해 봐.”

“너는 왕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질이 뭐지? 흑사자 모피를 가지고 있다거나 대호가 따른다는 따위의 말을 정말로 믿으라는 거야?”

“그건 그런 것을 좋아하는 자들을 위한 설명이지.”

“역시 그렇군. 그럼 네 이유는 뭐지?”

“너는 죽을 뻔한 나가다.”

“기묘한 대답이군.”

“심장을 적출한 나가들은 쉽게 죽지 않아. 나를 만나지 않는 이상은. 나는 나가의 최종 선고다. 내 앞에서는 어떤 나가도 자신의 불사성을 자랑할 수 없어. 나는 죽이고, 먹고, 소화시켜 없애 버리지. 그러나 너는 달라. 내 앞에까지 도달했지만, 내가 아닌 네 의지로 죽음을 선택했지. 그것은 나가에겐 보기 드문 일이야. 그것은 네가 눈물을 마실 줄 안다는 증거가 되지. 나가로서는 유일한 존재이며……………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지.”

사모는 얼굴을 약간 기울인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북부에는 곧 많은 눈물이 흐르게 될 거야. 그걸 마실 자가 필요해. 나가가 그들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할 테니 또 다른 나가가 그 눈물을 마셔야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 줄 수 없겠나?”

“눈물을 마신다는 것은 도대체 뭘 말하는 거지? 동정심을 말하는 거야?”

“아니. 동정심은 함께 눈물 흘리는 것을 말하지. 예를 들어 비형이 그렇지. 그 착한 도깨비는 아마 앞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거다. 하지만 함께 우는 자는 왕으로서 필요 없어. 눈물만 더 많아질 뿐이니까. 왕은 눈물을 마셔야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케이건.”

“차차 알게 될 거야.”

“그 말은 아마 내가 왕이 되었을 경우 그렇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너는 왕이 되기 위해 이곳에 왔어.”

“나는 죽기 위해 온 거야.”

“같은 말이야.”

“같다고?”

“죽기 위해 북부로 온 너는 북부의 왕이야. 의심할 필요도 없이.”

사모는 두 손 들었다는 심정이 되었다. 케이건의 말을 납득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들려준 네 설명은 결국 너 자신만 만족시킬 뿐이야. 나를 조금도 납득시키지 못해. 나는 거절하겠어.”

“네게도 유리한 제안인데. 사모 페이.”

“나는 불신자들을 지배하고픈 욕망이 없어.”

“권력이나 지배욕의 충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너는 네 사회를 수호자들에게 맡겨 둘 건가? 신을 모독한 사제들에게?”

“……그건 나가가 해결할 문제야.”

“꼭 그렇지는 않아. 그들이 침략을 시작한다면 북부는 어차피 그에 맞서 싸워야 한다. 너와 북부는 같은 자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지. 이건 나가만의 문제가 아니야.”

사모는 당황하여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기울어 있는 칼날의 아래쪽으로 무릎을 가져가며 손으로 칼자루를 세게 내려쳤다. 바라기는 회전하며 튕겨져 올랐고 현란한 반사광이 사모의 눈을 아프게 했다. 케이건은 솟아오른 바라기를 그 정점에서 붙잡아 머리 위에서 두 번 돌린 다음 뒤로 휘둘러 내렸다. 바람이 공간을 베었다.

사모는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왜 네가 왕이 되면 안 되는 거지? 불신자들도 나가보다는 인간 쪽이 받아들이기 쉬울 텐데. 내 생각엔 그 쪽이 훨씬 상식적인 것 같아.”

“나는 왕이 될 수 없어.”

“왜? 너는 영웅왕의 검도 가지고 있고 아라짓 전사이기도 하다면서?”

“나는 눈물을 마실 줄 몰라.”

사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의 대화에서 형이상학적 철학은 잠시 배제하면 안 될까. 케이건. 내가 보기에 그런 것은 조금도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지배와 피지배라는 현실적인 이야기 아니었나?”

“나는 네가 나가라는 극복하기 힘든 심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네가 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굳이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로 한정하고 싶다면, 그래도 좋아. 너는 지배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피지배자들을 억압할 강력한 힘 말이다. 너에겐 여신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하며,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원조자가 있지.”

사모는 비늘을 곤두세웠다.

“케이건. 나는 내 동생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현실적인 관점을 요구한 것은 그쪽이야.”

“나에게 네 동족을 억압하라고 권하는 것은 현실적인 거야? 너는 륜이 홍수를 일으켜 내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인간들을 쓸어 버리는 것을 원하는 거야?”

케이건은 다시 머리 위로 바라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과녁을 겨냥하며 말했다.

“너는 왕에 대해 모르겠군. 왕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지.”

“권한이 있다고?”

“슬퍼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할 권한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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