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2)
“나가에게 우리의 생명과 자유를 좌우할 권한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코마 성주의 질문을 뚜렷이 들었지만, 괄하이드 규리하는 침묵한 채 망치만 내려쳤다. 특별히 주문했던 쇠가 도착한 지금 변경백은 대사원의 대장간에서 손수 자신의 대도를 복구하고 있었다. 대장간의 일을 맡고 있는 행자들은 그런 제안에 별 제지를 가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나다가 한두 가지씩 조언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언도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한참 망치질을 하던 변경백은 두드리던 쇳덩이를 노 속에 집어넣은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그럴 의도가 아니시라 믿소만, 편협한 말씀이시오. 지코마 성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모 페이에게 그럴 권리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야 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이 땅에서 호의를 바라기 힘든 겉모습을 가진 채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우리의 고매함을 보여 주는 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 대다수가 그렇게 고매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겠지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괄하이드는 입가를 조금 올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
지코마 성주는 잡동사니가 담겨 있는 통을 비운 다음 그것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 위에 걸터앉아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케이건 드라카라는 그 인물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가혹한 요구를 한 것일까요.”
“아, 케이건 드라카. 그는 그런 요구를 할 만한 자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변경백은 붉게 타오르는 노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과 벗은 상체가 붉게 물들었다.
“그는 아라짓 전사의 후예이며 마지막 키탈저 사냥꾼이라고 말했소. 어떤 사람이 그런 내력을 가질 수 있는지 상상도 되지 않소만, 대사원의 주지까지 그 주장의 사실성을 보장하니 일단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보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그는 숙명을 걸머진 사람이오. 죽을 때까지 나가와 싸워야 되는 거지. 하지만 상대는 세계의 반을 지배하고 있는 불사의 괴물들이오. 그런 자들과 싸우는 것이 그의 숙명이었소. 나라면 숙명을 무시해 버렸을 거요.”
지코마 성주는 부정했다.
“하지만 변경백. 당신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도 왕이 돌아올 때까지 규리하를 지키는 숙명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에게는 과텔과 케나린이 남겨 준 변경백령과 강력한 군대가 있었소.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아라짓 전사도, 키탈저 사냥꾼도 존재하지 않는 이 현재에서 그는 고립무원일 수밖에 없었소. 하지만 그는, 자신이 혼자라는 것도, 상대가 키보렌의 죽지 않는 지배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받아들였소. 그의 무력함과 그의 적수의 강력함을 비교해 보시오. 어떤 사내가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괄하이드 규리하는 달아오른 쇳덩이를 꺼내어 다시 모루 위에 놓았다. 망치를 내려치기 직전, 변경백은 잠깐 지나가듯 말했다.
“그런 사내이니 나가를 왕으로 섬기라는 무리한 요구도 할 수 있겠지.”
가열히 내려쳐지는 망치와 비산하는 불똥을 보며 지코마 성주는 불안한 듯 말했다.
“묘한 의심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군요. 케이건 드라카라는 그 인물의 정신 상태에 어떤 결함이 있는 것 아닐까요? 나가를 잡아먹고 살았다지 않습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해 왔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텐데요.”
거센 망치질을 끝낸 변경백은 그것을 들어 노 속에 쑤셔 넣었다. 열기와 불티가 흩날렸다.
“글쎄. 그걸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소.”
“네?”
“모르겠소? 승려들이 이미 다 말해 주지 않았소. 우리는 더 이상 대확장 전쟁을 학자들의 관심거리로나 유용한 과거사로 남겨 둘 수 없단 말이오.”
지코마 성주는 소름 끼치는 깨달음에 몸을 떨었다. 노 변경백은 노를 노려보았다.
“편안한 나날은 다 갔소. 피와 눈물의 시대가 올 거요. 나는 지금 그것을 대비하고 있소.”
지코마 성주는 흠칫하며 노를 바라보았다. 쇳덩이가 불을 마시며 작렬하고 있었다.
“내 자존심과 내 생명과 내 열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오.”
지코마 성주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성주는 수치를 느꼈다. 그는 무의식 중에 다가올 공포를 부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노인은 어제까지의 나날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보편적인―그리고 즐거운 망상을 거부했다. 그 노인은, 그 노령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괄하이드는 달궈진 쇳덩이를 꺼내어 모루 위에 놓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성주, 내 작은 소망 하나를 들려주고 싶소.”
“무엇입니까?”
“내가 만들고 있는 이 대도가 왕을 위해 휘둘러질 대도가 되었으면 좋겠소.”
지코마 성주는 실로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대신 그는 작렬하는 쇳덩이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대사원의 법당은 고요했다. 티나한은 본능적으로 이 장소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이 고요하고 경건한 장소를 견뎌하지 못했다. 서른여섯 번째로 법당을 둘러본 티나한은 좌절 섞인 눈으로 비형을 바라보았다. 그의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비형은 여전히 정좌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티나한은 불편한 신음을 삼키며 자세를 바로했다. 그들의 앞쪽에는 륜이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을 이루며 앉아 있었다. 앞쪽에 놓인 제단을 바라보고 있는 륜의 등은 꼿꼿했다. 그리고 아스화리탈은 륜의 다리 옆에 엎드린 채 그 머리를 륜의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향로에서 흩어지는 향기가 고요한 법당을 휘감았다.
그들이 그곳에 모여 앉은 지 한 시간 만에 륜의 입이 열렸다.
“이제 알겠군요.”
비형과 티나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륜의 등을 쳐다보았다. 륜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케이건은 누님을 죽일 작정이에요.”
“네? 무슨 말입니까, 륜?”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라지요.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가장 빨리 죽는다고도 했지요. 케이건은 북부를 위해서 누님을 죽이기로 결심한 거에요. 아마 저를 위해 죽으려 했던 누님의 모습에서 착상한 것이겠지요.”
티나한과 비형은 서로를 쳐다보았고, 상대방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티나한이 먼저 정신을 수습하여 말했다.
“륜. 케이건은 바우 성주의 조언에 따라 왕의 상징인 흑사자 모피를 가지고 있는 네 누나를…….”
“티나한. 그건 바보를 위한 각주에 불과해요. 진짜 의미는 행간에 있어요. 케이건은 누님이 제게 해 주었던 일을 북부의 불신자들에게도 해 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불신자들을 위해 죽으라는 거지요.”
티나한은 부리를 닫았다. 그리고 수염 볏을 비틀며 륜의 이야기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비형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륜. 당신 예언도 할 수 있게 된 겁니까?”
“뭐라고요?”
“당신은, 어, 그러니까, 여신의 힘을 이용해서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겁니까?”
티나한은 질겁하여 깃털을 부풀렸다. 그는 비형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의혹에 빠진 눈으로 륜의 등을 바라보았다. 륜은 그들에게 등을 보인 채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건 추정인가요?”
“예.”
비형은 안도했다.
“그렇다면 륜. 당신의 추정은 틀렸습니다. 다가올 위험한 시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들에게는 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일 왕이 죽는다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보다 더 큰 혼란을 겪게 되겠지요. 그러니 당신 누님이 왕이 될 경우, 당신과 당신 누님은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게 될 겁니다. 그게 당연하잖습니까?”
티나한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륜은 어떤 보호도 소용이 없는 심장 파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비형과 티나한이 걱정 외에는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형은 계속 말했다.
“무엇보다도 사모 페이가 아직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어요. 지금 케이건을 만나러 가셨으니 곧 결정이 나겠지요. 아무리 케이건이 추대했다 하더라도 당신 누님이 거절하면 소용없는 일이잖습니까?”
“왜 그가 나가 살육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비형은 찔끔한 얼굴로 티나한을 돌아보았고, 그리고 배신감을 느꼈다. 티나한은 자신이 건축가이기나 하다는 듯이 법당의 천장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륜. 그게 말하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우리는 당신의 구출대였습니다. 당신이 우리들을 믿지 못하게…………… 아니, 혐오한다고 하죠. 그렇게 되면 구출이고 뭐고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니, 아니. 이건 다 핑계입니다. 저는 케이건 자신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륜. 제가 말해 주는 편이 더 좋았겠습니까?”
륜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떠나겠습니다.”
“예?”
륜은 몸을 돌렸다. 비형과 티나한은 긴장하여 그 나가를 바라보았다. 륜은 그들 중간쯤의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님이 돌아오면 저희들은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경악한 비형은 말을 더듬었다.
“하, 하지만 사모는 북부의 왕으로 추대되었는데요?”
“그 왕좌에 앉는 순간 누님은 죽습니다. 저는 그걸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륜, 정말로 케이건이 사모를 죽일 거라고………….”
“케이건이 손수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며 제 누님을 왕좌에 앉히는 겁니다. 왜 누님이 죽으면 북부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케이건만이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그 이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님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떠나겠습니다.”
“어디로, 어디로 떠난다는 말입니까?”
“하텐그라쥬로 돌아가서 여신을 구출할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들 두 사람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더군다나 하텐그라쥬로 돌아가면 쇼자인테쉬크톨 때문에 당신과 사모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륜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전 세계가 우리 남매에겐 죽음의 땅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