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13)
베미온에게 물이 접근하는 것을 느낀 륜은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 물이 한 인간임을 느낀 륜은 긴장을 풀면서 고개를 돌렸다.
베미온은 땅바닥에 앉아 흙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키타타 자보로가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자보로 장군은 베미온에게 흙을 먹지 말라고 말리고 있었다. 베미온은 별 불평 없이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베미온의 손에서 흙을 털어내어 준 키타타는 륜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던 키타타는 곧 결심을 한 듯 륜에게 걸어왔다. 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잠시 신경을 못 쓰고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물기가 별로 없는 흙이더군요.”
“예. 나가를 학살할 겁니다.”
키타타는 륜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륜은 키타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들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우월함이 열등함에게 미안함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공작님. 그런데.”
거기까지 말한 다음 키타타는 입을 다물었다. 륜은 고소를 머금었다.
“끝까지 말씀하십시오. 듣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규리하 상장군의 계획은 나가에게 참혹한 것입니다.”
물론 규리하 상장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그럴 경우 괄하이드와 혼동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부군은 라수 상장군, 괄하이드 대장군으로 부르고 있었다. 빌파 삼부자 또한 그런 규칙에 따라 불리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키타타 자보로는 규리하 대장군, 규리하 상장군이라는 호칭을 고집했으며 빌파 삼부자의 경우 빌파 교위와 빌파 부위, 빌파 부위라고 불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키타타 자보로가 그런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대충 짐작하는 사람들은 그를 키타타 장군이라 부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예민한 륜은 당연히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자보로 장군. 저는 그 계획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규리하 상장군은 나가 병력의 대회군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심장탑을 파괴해서라도 그들을 유인할 생각이십니다.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은 공격할 수 없겠지요. 폐하의 심장이 그곳에 보관되어 있을 테니. 하지만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 시모그라쥬의 심장탑은 분명한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유인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전술적 견지에서 그보다 더 적절한 공격 목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일거에 적 거점 내의 모든 전투 가능한 병력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잔인한 방법입니다.”
륜은 손을 들어 베미온을 가리켰다.
“판사이의 육형제를 익사시킬 때 그들은 잔인함에 대한 고려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키타타는 륜의 손을 따라 베미온을 돌아보았다. 베미온은 눈을 감고 태양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햇빛을 마시는 모습이었다. 륜은 계속 말했다.
“그는 아직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미온의 몸속으로 수분을 이동시켜 줍니다. 베미온이 물의 공포를 물리칠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갈증에 목이 타들어 가면서도 한사코 물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곤 합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자보로의 모든 씨족을 다 죽였을 때도, 그들은 잔인함에 대해 고려하지는 않았지요. 공작님. 저는 그들의 슬픔에 아무런 동정도 보내지 않을 겁니다. 심장탑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저는 환희를 느낄 겁니다. 그리고 무너지는 자보로 성벽에 깔려 죽은 제 씨족의 비명을 잊을 겁니다. 그들이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저는 이것을 준비했습니다.”
키타타 자보로는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였다. 륜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륜은 키타타가 보아 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것을 보았다. ‘자보로, 복수.’ 나무 방패에 구리로 된 글자를 박아 넣어 만들어진 그 선언은 나가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키타타는 이마에 구리선을 박아 넣어 금속 문신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럴 만한 기술이 있는 유일한 자들인 도깨비 대장장이들이 그것을 거부했다. 대장장이들이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은 반응을 보였기에 키타타 자보로는 하는 수 없이 방패로 만족해야 했다.
“그들은 제 저주를 듣지 못할 테니 죽어가는 그들의 면전에 이것을 보여 줄 겁니다. 저는 잔인함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물론 심장 적출을 하지 않은 당신을 동족 취급도 하지 않을 테고 당신의 혈육으로 하여금 당신을 죽이게 획책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당신은 그런 이유로 대학살에 나설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제 이유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예. 이해합니다.”
“예?”
“나가 녀석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키타타 자보로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하지만 그는 용인을 상대로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화를 내어 자신의 졸렬함을 강조해 보일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았다.
“그 나가 녀석을 믿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공작님.”
륜은 베미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베미온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도 아니고 글자도 아닌, 추상적인 선들이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누님 때문입니다.”
키타타 자보로는 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륜은 베미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님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폐하께서 병에 걸릴 리도 없는데…………….”
“당신들이 누님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케이건 드라카가 예언한 대로.”
키타타는 입을 다물었다. 륜의 눈가에서 은빛이 빠르게 명멸했다.
“누님은 더 이상 제가 알던 누님이 아닙니다. 가면을 쓴 이후로, 그 분은 제 누님은커녕 나가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병사들은 그 분의 용모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분의 음성은 듣지요. 그리고 그들은 저의 음성,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지만 다른 나가의 음성도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님의 목소리가 나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분명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들의 주관이 객관을 구축한 거죠. 보늬인지 나늬인지 알려면 두 사람이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두 사람이 보늬라고 우기면 나늬도 보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병사들이…… 감히 폐하가 나가일 거라는 상상을 하긴 어렵겠지요. 하지만 죽어간다는 것은…….”
“누님은 자멸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님은 꿈을 꾸십니다. 병사들 앞에서 누군지 모를 자에 의해 가면이 벗겨지는 꿈이지요.”
키타타는 그런 꿈쯤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가면을 쓴 채 사람을 대해야 하는 자라면 그 답답함 때문에 그 가면을 벗어 버리는, 특히 타의에 의해 벗겨지는 꿈을 꾸는 것쯤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말을 하려 하자마자 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를 상상해 보세요.”
“실제로?”
“예. 실제로 병사들 앞에서 누님의 가면이 갑자기 벗겨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병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당신이 4년 동안 함께 싸운 저를 믿을 수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존경스러운 자제력입니다. 저는 그런 당신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나가를 어떻게 대할까요?”
키타타는 당황했다. 그런데 륜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마귀의 준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예?”
“예전에 이곳에서 어떤 광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왕 병자였던 그는 제 목소리만 듣고는 저를 왕비감으로 삼고 싶어했지요. 결국 저 탑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있던 저를 목격하게 된 그 광인은 상황을 그렇게 설명하더군요. 어떤 고약한 마귀가 왕비에게 마법을 걸었다고.”
륜 페이는 그렇게 말하며 베미온이 기대어 앉아 있는 높새바람 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을 거부하는 방법이 환상을 조장하는 온건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방법도 있지요.”
키타타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륜은 말했다.
“나가들은 저 같은 나가를 비에나가라고 니릅니다. 병신이라는 말로 바꾸면 의미는 통하겠지만, 그 니름이 담고 있는 독특한 색조까지 전달하긴 어려울 겁니다. 많은 나가들이 비에나가라는 니름은 ‘도깨비의 나가’ 라는 니름에서 파생되었다고 믿지요. 병신이라는 말이 사람으로서 많이 모자라다는 의미라면, 비에나가는 나가가 아닌데 나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의미 정도가 될 겁니다. 도깨비불처럼 말입니다. 적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키타타는 흠칫했다. 륜은 조금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높새바람 탑을 바라보며 말했다.
“흑단 군단이 이제야 결심을 내렸군요. 그들이 보유한 수호 장군은 다섯 명. 시우쇠 님 한 분도 상대하기 힘든 숫자입니다. 게다가 이 메마른 땅에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키타타는 부지불식간에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래봐야 평원 저편에 있는 흑단 군단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키타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륜은 그런 키타타에게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말했다.
“저는 나가가 아니라 비에나가입니다. 저들과 동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누님은 저들과 같은 나가입니다. 저는 누님이 왕의 가면을 쓴 채 당신들을 위해 죽는 것이 싫습니다. 북부의 왕으로서 죽는 대신, 그 분은 키보렌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들의 증오는 저주받을 용인 륜 페이가 받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 지금 당장.”
“당장?”
“흑단 군단이 물러나는 방향이 인상적이군요. 아마도 남쪽 저 멀리에 또 다른 군단이 북진 중인 모양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지나가게 한 다음 그 정체 모를 군단과 함께 전후 포위를 펼칠 작정인 것 같습니다. 뱀단지를 이용하면 작전 범위 50킬로미터 정도에서 그렇게 시간을 맞추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키타타는 기막힌 기분을 느꼈다. 나가들이 거의 묘기라 불러야 할 작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분명했다. 50킬로미터 떨어진 두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한 군단이 정해진 지점에서 정해진 시간에 만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빗나간다면 각개격파를 당하게 되므로 두 군단은 반드시 동시에 전장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나가들은 그것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키타타는 긴장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흑단 군단의 수호 장군 다섯 명은 제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들과 맞서는 동안 아스화리탈이 할 일이 있을 겁니다. 대장군께 전하십시오. 남진 속도를 약간 늦추라고.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베미온 굴도하가 시우쇠 님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좀 돌봐 주십시오.”
키타타가 대답하기도 전에 륜은 아스화리탈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아스화리탈이 고개를 숙이자 키타타는 뒤로 조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륜은 아스화리탈의 가슴에 있는 뿔들을 붙잡으며 민첩하게 그 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아스화리탈은 하늘로 뛰어올랐다. 아스화리탈이 날개를 펼침과 동시에 벼락과 돌풍이 뿜어져 나왔다. 얼굴을 가렸던 키타타가 간신히 팔을 내렸을 때 아스화리탈은 이미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기적에 한숨을 내쉬며 키타타는 돌풍과 벼락에 겁을 집어먹은 판사이의 마립간이 어디에 숨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높새바람 탑 안쪽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