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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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5)


북부군의 보병들은 모두 세 자루씩의 작살검을 휴대하고 있었다. 나가들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흉측한 병기인 작살검은 한 번 몸에 박히면 잘 빠지지 않으며, 지속적인 고통을 줌과 동시에 나가들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미처 소드락을 복용할 틈이 없었던 나가들은 작살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가들에게 작살검은 이미 익숙한 병기였다. 나가들은 몸을 헤집는 격통을 견뎌내었다. 그리고 작살검을 몸에 꽂은 채 북부군을 향해 사이커를 휘둘렀다.

참혹한 비명이 피의 분출과 어우러져 전장을 물들였다.

살인이 집단 살육으로, 그리고 다시 전투 행위로 바뀌어갔다. 혐오스러운 도덕의 파괴가 무미건조한 역사적 사건으로 변모되는 속도는 가공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을 적시는 유혈은 뜨거웠다. 습기를 강탈당해 푸석푸석해진 땅은 욕심껏 피를 들이켰다. 쓰러지는 시체를 위해 유혈의 널이 제공되었다. 언젠가 그 음부에서 꺼내어 건네준 강철의 대가로, 대지는 냉정하게 시체를 수령하고 있었다. 차가운 정산.

바쁘고 소란스럽고, 구슬프다.


칼릭 미소레스는 판사이에서 온 청년이다. 물려받은 가산도 없는데다 중병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느라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고 어느 정도 포기한 지도 오래였다. 효자라는 입에 발린 소리 대신 딸을 내주면 어떻겠냐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셀 수 없이 느꼈지만, 끝내 그런 험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대신 겸손하게 웃어 버리며 39년의 세월을 살아온 청년은, 눈앞의 나가를 향해 작살검을 내찔렀다. 탁월한 솜씨였다.

곤두선 비늘 사이로 매끄럽게 파고드는 작살검이 짐보리 투나의 근육을 찢고 뼈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비스그라쥬에서 온 짐보리 투나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다섯 살짜리 딸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 어린것이 발코니에서 추락하여 죽은 후 짐보리는 그 끔찍한 집을 떠나와 성전에 종군했다. 작살검이 몸을 파고드는 고통은 짧은 순간 그녀에게 알을 낳을 때의 느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추락사한 딸과 달리 작살검은 어미의 몸을 찢는 고약한 딸이었다. 작살검이 흔들릴 때마다 잔혹한 고통이 육체를 불살랐다. 짐보리는 미쳐 버렸다. 분노와 슬픔 속에서 짐보리는 사이커를 휘둘렀다.

다음 작살검을 미처 빼 들지 못한 칼릭 미소레스의 턱에 강렬한 충격이 찾아들었다. 자신이 입은 손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칼릭은 어깨로 눈앞의 나가를 밀쳐 버렸다. 짐보리 투나는 휘청하다가 쓰러졌다. 칼릭은 가까스로 뽑아낸 두 번째 작살검으로 짐보리의 배를 내찔렀다. 짐보리는 땅에 꿰었다. 니름을 듣지 못하는 칼릭은 당연히 짐보리의 비명을 들을 수 없었다. 쓰러진 적수에게 욕설을 퍼부어 주려던 칼릭은, 그제야 자신의 아래턱이 떨어져 나갔음을 깨달았다. 턱을 만지려던 손길로 입천장을 만지게 된 칼릭은 피와 침이 뒤섞인 괴이한 비명을 내질렀다.

칼릭은 단검을 뽑아 들며 짐보리의 가슴에 쓰러졌다. 마치 서로를 애무하는 연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짐보리 투나의 입술에 날아든 것은 단검이었다. 짐보리의 입에 단검을 쑤셔 넣은 칼릭은 악착같이 그 아래턱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짐보리는 정신적 비명을 내지르며 사이커로 칼릭의 옆구리를 난도질했다. 하지만 아래턱을 도려내는 단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의 등 위로 코끼리의 거대한 앞발이 떨어졌다. 대지의 종기가 터지듯 피와 체액이 비산했다.

코끼리에겐 이름이 없었다. 켄테롭 평야에서 16년을 살아오는 동안 이름이 없어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그 거수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은 코를 휘둘러 아카시아 가지를 휘감던 기억이었다. 아카시아 가지는 의외로 단단했고 코끼리는 더 힘을 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물론 코끼리는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두 앞발로 적들을 짓밟고 코를 휘둘러 주위를 텅 비워 버리는 그 순간에도 코끼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두 알면서 그 상황과 자신 사이의 관련성은 느끼지 못했다. 객관성이라는 말은 그 코끼리를 위해 발명된 것 같았다.

카시다에서 온 주라타는 낙천적인 사내였다. 조부모는 있으되 부모는 없는 아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그 낙천성은 언제나 주라타의 최고 재산이었다. 눈물 짓는 것을 손자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조부모를 보면서도 주라타는 슬퍼하지 않았다. ‘젠장. 근친상간을 벌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은 남매의 자식이라는 것이 어쨌다고? 썅이다!’ 작살검을 거꾸로 쥐고 미친 듯이 날뛰는 코끼리를 향해 달려들 때도 주라타는 한없이 낙천적이었다.

“요 덩치 큰 바보야, 즈믄누리제 가시 하나 꽂아 주마!”

코끼리의 등 위에 있던 수디 가리브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젠가 소드락을 복용한 비에나가에게 어처구니없는 공격을 당한 이후로 그녀를 괴롭혀온 두통은 때론 격렬하게, 때론 미약하게 계속되었고 절대로 멋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통은 꽤 심한 편이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주라타를 발견한 수디는 왈칵 화를 내며 개념을 코끼리에게 전달했다. 코끼리는 주저 없이 코를 휘둘렀다.

주라타는 코와 입, 그리고 귀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선혈과 함께 그의 영원한 반려였던 낙천성도 흘러나왔다. 그런 주라타의 머리 위에 다시 코끼리의 발이 떨어졌다. 주라타의 투구는 사체의 두개골을 보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수디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풀이가 되지 못했고, 그리고 수디는 가일층 격화되는 두통에 비늘을 세웠다. 수디의 분노가 그대로 전달된 듯 코끼리는 충혈된 눈으로 다음 희생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코끼리의 다음 상대는 위쪽에 있었다. 살아 있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예감에 수디 가리브와 그녀의 코끼리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고토(下古土) 출신의 즈라더는 레콘이었고, 그 사실에 좀 지나칠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벼슬이 근사하다고 믿었고 자신의 부리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엔거 평원에서, 수디 가리브와 그녀의 코끼리를 향해 똑바로 낙하하며, 즈라더는 자신의 벼슬과 부리도 멋지지만 날 폭이 2미터에 가까운 자신의 양날 도끼야말로 정말 환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즈라더는 코끼리의 두개골을 대상으로 자신의 도끼가 얼마나 멋진지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의 예감에 코끼리는 찰나의 순간 정신 억압을 벗어났다. 코끼리는 공포 속에서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즈라더의 도끼는 의도와 행동 사이의 짧은 틈을 파고들었다.

즈라더는 단박에 코끼리를 8톤짜리 살코기 덩어리로 바꾸어 놓았다. 코끼리의 거대한 몸이 허물어졌다. 즈라더는 그 몸 위에 서서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계명성이 천지를 울렸다.

코끼리의 등에서 추락한 수디 가리브는 땅에 부딪히자마자 비처럼 쏟아지는 작살검에 유린당했다. 약속이나 한 듯 인간들은 내찌른 작살검을 억지로 잡아뽑았다. 살이 덩이째 떨어져 나가며 수디 가리브의 시체는 넝마 조각처럼 바뀌었다.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던 두통에서 영원히 해방된 수디 가리브가 만족감을 느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그 전장에서 수디 가리브의 만족감 따위는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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