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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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6)


시우쇠를 저지하기 위해 전장에서 습기를 박탈해야 했던 그로스와 수호 장군들은 자신들이 레콘들에게 최적의 전쟁터를 제공했음을 깨닫고는 분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레콘들은 닥치는 대로 코끼리를 거꾸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 장군들은 당장은 레콘들을 위해 수력을 차출할 수 없었다. 나가의 보병대 한가운데서 사납게 불타오르고 있는 시우쇠의 존재감이 더욱 큰 문제였다. 대지의 습기는 이미 고갈되었기에 수호 장군들은 지하수의 수맥을 더듬고 하늘의 습기까지 그러모았다. 수호 장군들이 갈취하다시피 습기를 모아 들였기에 하늘의 빛깔이 바뀔 지경이었다. 최초로 자신을 죽이는 신의 화신이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나가들은—그러니까, 살아남은 나가들은—시우쇠에 대한 대략적인 대응 수단을 정의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전제는 이러했다. 절대로 상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수 규리하가 넉 달에 걸쳐 준비한 잔인한 기만에 의해 시우쇠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수호 장군들은 어쩔 수 없이 대전제를 포기하고 ‘그러나, 여의치 않을 경우’ 운운하는 부분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수호 장군들은 사방의 습기를 다 끌어모아 시우쇠를 ‘식히고’ 병사들은 주위의 불신자들에게 밀착하는 현재의 움직임도 바로 ‘여의치 않은 경우’에 사용되는 해결책이었다.

시우쇠에 대해 알려진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의 기량이 보통의 도깨비와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시우쇠가 구사하는 도깨비불은 다른 도깨비들 또한 어렵잖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도깨비불의 운용에 있어 다른 도깨비들과 시우쇠 사이의 차이점은 하나뿐이었다. 전자가 나가를 새긴 목각상을 불태울 때조차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각오해야 하는 것에 반해 후자는 살아 있는 나가를 땔감 취급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가들은 비늘이 무더기로 뽑혀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도깨비들의 가치관이 지금 알려진 모습과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키보렌과 나가들은 오래전에 잿더미로 바뀌었을 것이다. 시우쇠는 화산을 폭발시키거나 지상에 별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단지 페시론 섬과 아킨스로우 협곡의 재난을 ‘침착하게’ 구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죽이는 신이 가진 신성(神性)의 증명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늘과 땅으로부터 시우쇠에게 퍼부어 줄 물을 짜내며 그로스가 터무니없이 감사를 느낀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저런 행패를 부릴 수 있는 놈들 중에서 저런 행패를 실제로 시도하는 녀석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나이다. 여신이여.’ 마호가니 군단의 수호 장군들은 모두 스무 명 정도였고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력은 시우쇠를 억류하는 것으로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그 시점에서 그 지긋지긋한 륜 페이가 나타난다면 그로스와 수호 장군들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전선의 어느 지점에서도 륜 페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스는 괄하이드가 왜 륜을 내보내지 않는지 의아하게 여겼다. 그로스의 의문에 대한 답은 그 시점에 이미 제시되고 있었다. 그로스는 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이.


코네도 빌파는 자신의 행동에 해학을 부여하는 감각이 부족한 사내였다. 하지만 해학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웃어 버릴 도깨비들의 작품은 코네도 빌파 같은 사납고 잔인한 사내에게서도 희극적 감각을 이끌어내었다. 어쨌든 코네도는 상대방의 정면에 서서 오른손을 흔들어 대며 “지금부터 네 면상을 이걸로 쓰다듬어 주겠다.”라고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히 즐거웠다.

모처럼 고무된 희극적 감각은 코네도로 하여금 한 마디 말을 덧붙이게끔 했다. “대답이 없으면 동의하는 것으로 알겠다.” 물론 상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코네도는 경의 어린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수호자의 턱을 겨냥하여 오른손을 세심하게 날렸다.

수호자의 얼굴이 단박에 으스러졌다.

코네도는 휘파람을 불며 왼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그의 장남 그룸 빌파가 도살장의 돼지와 접전이 예상되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신부를 감금한 신랑은 천하에 둘도 없는 개새끼야.” 어쩌고 하는 퇴폐적이고 몰지각하기 짝이 없는 노래였다. 또 다른 방향에서 코네도의 차남 토카리 빌파가 형의 소름 끼치는 노래 실력에 대해 야유를 보내었다. 빌파 삼부자는 그렇게 제멋대로 떠들며 수호자들의 얼굴을 뭉개어 놓았다. 서로의 위치를 파악한다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긴 했지만, 삼부자가 그렇게 떠들어 대는 것에는 책임질 필요가 없는 악담을 즐기는 못된 성벽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했다. 정면에서 혀를 낼름거려도 보지 못하고, 턱을 빠개어 주겠노라고 외쳐 주어도 듣지 못하고, 잘 죽지 않기 때문에 사정도 볼 필요가 없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었다. 폭력의 강도를 낮출 수 있는 완충 기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혹 있다 하더라도 삼부자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허리춤에서 쇠못을 꺼낸 코네도는 쓰러진 수호자를 내려다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그의 오른손은 망치를 쥘 수 없었지만, 그 자체로도 망치가 부럽지 않았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우쇠에게 쏟아지고 있던 진눈깨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우쇠가 뿜어 올리는 불길이 진눈깨비를 꿰뚫고 치솟아 올랐다. 그로스는 기겁하며 다른 수호 장군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당황해 버렸다. 어처구니없게도 수호 장군들은 땅에 누워 있었다.

<프리앗! 키베인! 맙소사, 그루이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봐, 코키타!>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에 있던 수호 장군 코키타가 당황하여 그로스를 돌아보았다. 그로스는 손짓을 하며 수호 장군들이 왜 땅에 누워 있는지 물어보았다. 코키타 또한 당황이 역력한 기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그로스는 비늘 서는 장면을 보았다.

코키타의 얼굴이 갑자기 뭉개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망치가 그의 얼굴을 후려친 것 같았다. 코키타는 허공으로 떠올랐고 기절한 다음에 땅에 떨어졌다. 그로스는 입을 쩍 벌린 채 코키타를 바라보았다.

그때 코키타의 복부 근처의 허공에서 불꽃이 튕겨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꽃이 튄 허공에서 쇠못이 출현했다. 그 쇠못은 코키타의 복부를 관통하여 땅에 꽂혀 있었다. 그로스는 다시 땅에 누워 있는 수호 장군들을 돌아보았고, 그제야 그들의 뭉개진 얼굴과 복부를 꿰뚫고 있는 쇠못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스가 가진 나가의 정신은 미신적 공포를 이겨 낼 만큼 냉정했다. 그래서 그로스는 불가해한 공포에 휩싸이는 대신 분노하여 닐렀다.

<도깨비 감투! 그렇게 발달했나!>

그의 곁에 있던 비아스 또한 비늘을 부딪치며 닐렀다.

<후퇴해야 합니다!>

그로스는 비아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닐렀다.

<너는 그 니름밖에 할 줄 모르나! 비아스 마케로우! 지금 병사들을 후퇴시키면 시우쇠가 병사들을 다 불태울 거다!>

비아스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로스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로스는 이곳에 감투를 쓴 암살자들이 있는 이상 시우쇠가 함부로 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로스의 등을 노려보던 비아스는 곧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비아스의 모습은 언덕 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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