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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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1장 – 침수(浸水) (7)


보병들을 전선에 먼저 보낸 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기병들의 앞쪽에서, 괄하이드 규리하는 시우쇠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는 진눈깨비를 유심히 관찰했다. 진눈깨비의 기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한 대장군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기병들은 환호를 지르며 창을 똑바로 세워 들었다.

대장군의 두 번째 명령이 떨어지자 전선 전체에서 놀랍도록 장대한 움직임이 펼쳐졌다.

시우쇠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 참고 기다려 왔다는 듯이 맹폭한 동작으로 두 팔을 좌우로 펼쳤다. 그러자 그의 팔을 따라 난폭한 불의 벽이 일어났다. 땅에서 솟아오르듯 형성된 불의 벽은 번개 같은 속도로 동서 방향을 향해 뻗어 나갔다. 불길에 휘말린 나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지도 못한 채 탄화되고 말았다.

거대한 불의 벽이 엔거 평원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순간 나가의 군대는 남북으로 동강났다.

불의 벽 남쪽에는 시우쇠와 나가 보병대의 절반이 남게 되었다. 시우쇠를 억제할 수호 장군들이 모두 공격을 당한 이후인지라 보병대는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나가들을 상대로 시우쇠는 만행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둘렀다. 그저 달리기만 해도 주위가 불타 버렸지만, 시우쇠는 거기에 덧붙여 화염의 검으로 나가들을 자르고 화염의 채찍으로 그들을 후려쳐 쓰러뜨린 다음 화염의 수의를 입혀 주었다. 그러나 도망을 선택할 수 있었던 남쪽의 나가들은 차라리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전장 북쪽의 형편은 끔찍했다. 먼저, 거꾸로 된 쐐기 모양이던 북부군의 보병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둘로 나뉜 보병들은 동서 방향에서 나가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자 보병들이 좌우로 갈라진 틈에서 저수지가 무너진 형상으로 나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지점을 향해 기병들이 장려한 나팔 소리와 함께 돌격해 들어갔다. 기병들을 상대해야 할 코끼리들은 이미 레콘에 의해 처리된 후였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기병들을 가로막을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의 벽에 의해 구분된 전장 북쪽에서, 동강난 마호가니 군단의 1만 명 남짓한 부대는 4만 명에 달하는 북부군에게 완전 포위되고 말았다. 남쪽에는 불의 벽이 퇴로를 막고 있었고 동쪽과 서쪽에서는 보병대가 그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기병들이 나가 병사들을 짓밟고 들어왔다. 동서남북 어디로도 도망칠 길은 없었다.

물론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 그들은 위쪽으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동쪽 보병대를 지휘하고 있던 무핀토 장군이 먼저 기성을 올렸다. 그러자 서쪽에 있던 세미쿼 장군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이 외쳤다. “용이 날아온다!” 뒤이어 보병들도 환호를 올렸다. 전쟁터 전체에서 희열에 들뜬 외침이 폭발처럼 일어났다.

“뇌룡공(雷龍公)이 온다!”

라수 규리하가 구상한 포위 작전의 마지막 병력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라수 규리하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나가들이 갑자기 비상의 재주를 터득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한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부터 등장한 북부군의 다섯 번째 병력은 포위보다는 소각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이 한자리에 억류된 나가들은 공포에 미쳐 버릴 것 같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쪽 하늘에서 나타난 아스화리탈이 포위된 나가의 머리 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 목에 저 저주스러운 용인 륜 페이를 태운 채. 길지만 강력한 힘에 의해 뻗은 아스화리탈의 목은 천공의 극점을 가리키는 지남철 같다. 가슴에서 마치 터럭인 양 뻗어 나온 무수한 뿔은 그 길이와 크기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앞쪽을 향해 굽어 있었다. 길고 거대한 날개의 모양은 뚜렷하지 않다. 날개 가닥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개가 으르릉거리고 있었기에 차라리 번개로 이루어진 날개인 듯하다. 동체 뒤편에서 춤추는 다섯 가닥의 꼬리 끝에서도, 그리고 등에서 수직으로 돋아 있는 세 번째 날개에서도 규모가 조금 작지만 형태는 유사한 번개를 찾아볼 수 있었다.

갑자기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번갯불을 흩뿌리며 날아든 아스화리탈은 나가의 머리 위에서 천천히 선회했다. 나가들은 모두 아스화리탈의 목에 타고 있는 륜 페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륜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애쓰며 아스화리탈의 목을 두드렸다. 그러자 아스화리탈은 가볍게 번개를 뿌리며 허공에 멈췄다. 아스화리탈의 양쪽 뺨—다른 적당한 이름이 없기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에는 상어의 아가미를 연상시키는 다섯 줄의 홈이 비스듬하게 나 있었다. 하지만 뒤를 향해 열리는 상어의 아가미와 달리 그것들은 앞으로 열렸으며, 상어보다 훨씬 넓게 벌어졌다.

륜의 어깨에 앉기를 좋아하던 조그맣던 시절 아스화리탈은 꼬리를 이용하여 자신이 뿜어낸 기체에 불을 붙이곤 했다. 하지만 그 점화 기제는 이제 아스화리탈의 뺨 속으로 옮겨져 있었다. 따라서 다음 순간, 도합 열 개의 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열 줄기의 불꽃이었다.

폭발적으로 커지는 불길이 눈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순간 거의 모든 나가들은 눈을 감았다. 그중 많은 수의 나가들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키베인은 전투가 끝난 시점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 전투는 끝났다고 니르기 어려웠다. 키베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전투 후의 씁쓸함이나 비장함, 시체들 사이를 맴도는 음습한 슬픔 따위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70센티미터 길이의 쇠못 같은 요소는 배제되는 편이 적절하다.

피는 그다지 배어 나오지 않았다. 못이 빠르게 관통했기 때문이다. 땅이 부드러운 탓도 있겠지만 쇠못을 때려 박은 자의 완력이 상당했다. 보이지 않는 상대는 단 네 번의 못질로 못 대가리를 키베인의 배에 밀착시켰다. 그 때문에 조직의 파괴가 적었고 피의 유출이 적은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키베인은 그 쇠못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못 대가리와 자신의 배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키베인은 머릿속이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건 별로 재미없군.>

키베인은 수호자였다. 다른 신분도 가지고 있었지만 마호가니 군단 내에서 그의 위치는 수호 장군이었고 다른 수호 장군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 말은 그가 언제나 전선 뒤쪽의 비교적 조용한 위치에 머문 채 전장의 습기를 통제해 왔다는 의미다. 그것이 수호 장군 키베인의 전투였다. 그리고 키베인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의 전투가 몸에 이미 작살검을 꽂은 채 두 번째 작살검을 꽂아 넣으려 광분하는 상대에게 사이커를 내찔러야 하는 보병의 전투와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특별히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키베인 또한 때가 오면 자신 또한 작살검을 몸에 꽂은 채 영광에 찬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오후의 대기를 물씬 적시는 피 내음을 맡으며 키베인은 그것이 자기 과신이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좀 다른 방법으로 확인되었어도 좋았을 텐데.>

재가 거대한 까마귀 떼처럼 날아올랐다. 하늘은 분명 맑을 테지만 키베인의 눈에 들어오는 하늘은 끔찍했다. 나가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하늘을 보는 사람들도 그 하늘을 마음에 들어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기로 뒤덮인 하늘 아래로 재와 흙먼지가 우울하게 부유했다.

<예. 저도 이 풍경이 마음에 들진 않는군요.>

누군가가 니름을 보내어 왔다. 키베인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통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떤 나가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키베인은 그 나가보다 그 뒤에 있는 초월적 존재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용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낭떠러지를 올려다보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모습에 키베인은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하게 크군.’ 용은 날개를 접고 번개의 성장 또한 흩어 버린 모습이었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점유하고 있는 공간 내에서 현실성을 추방하기에 충분했다.

키베인은 힘겹게 눈길을 내렸다.

용 때문에 터무니없이 작게 보이는 젊은 나가 남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름을 물어볼 필요는 없었고, 그래서 키베인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소문대로 정신을 읽는 건가?>

<그냥 날카로운 감각을 가졌을 뿐입니다. 당신도 꼭 물어보거나 독심술을 하지 않아도 친구의 기분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요. 남달리 눈치가 좋은 사람에 대해서도 들어보셨을 테고, 그것과 비슷한 겁니다.>

<용인은 눈치의 달인이라는 니름인가, 뇌룡공?>

<물론 당신에게 현재의 풍경이 만족스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는 데는 용인의 예민함까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름이 뭡니까?>

키베인은 감히 지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상대방의 날카로움은 비늘 설 정도였다. 그래서 키베인은 곧장 닐렀다.

<키베인.>

키베인은 안도했다. 용인은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아직 북부군에는 키베인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륜은 담담하게 닐렀다.

<항복하겠습니까, 키베인?>

<항복하면 어떤 이점이 있지?>

<항복한 것을 후회할 권리를 얻으실 겁니다.>

<실로 매력적인 제안이군. 륜 페이.>

키베인의 니름은 비꼼이 아니었다. 예민한 륜은 그것을 잘 알 수 있었다. 키베인은 담담하게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마운 제안이군. 하지만 모래로 밧줄을 꼴 수는 없는 법이야. 나를 묶을 다른 밧줄은 없나?>

<스스로 꼬아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럴 각오도 되어 있으신 것 같은데.>

<역시 날카로운 용인이군.>

륜은 씁쓸한 미소에 해당하는 니름을 보내었다.

<부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키베인. 기회가 된다면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둔감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가르쳐 드리고 싶군요. 꼭 알고 싶지 않은데도 사람들의 기분이나 심리를 바로 깨달아 버린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도.>

키베인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륜의 등 뒤에 있는 거대한 재앙을 바라보며 키베인은 힘겹게 닐렀다.

<한 가지 더 물어보지.>

<용이 나가를 태운다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나가가 용을 싫어한다는 사실에 대해 용이 신경 쓸 거라고 믿는 것은 나가의 오만입니다. 그리고 용근에 대해서는, 용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씨를 보호하는 식물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용근 또한 먹히는 것이 싫었다면 발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용근은 저에게 먹히길 수락하고 발아한 거죠.>

키베인은 정신을 닫았다. 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날카로운 것일 뿐입니다.>

<쳇. 그렇게 날카롭다면 내가 니르기도->

<전에 당신 질문에 대답해 버리는 것이 당신을 당혹시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과 비슷한 곤경에 빠져 있는 다른 수호자들에게도 찾아가 봐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 자신과 당신 동료들을 위해 대화를 좀 빠르게 진행시켰으면 합니다. 어쩌실 겁니까?>

<역시->

<항복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정신을 여세요.>

<뭐?>

<정신을 여세요. 키베인. 당신 속에서 당신의 신명을 결박해야 하니까.>

키베인은 비늘을 부딪쳤다. 그리고 곧 그것을 후회했다. 미칠 것 같은 고통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복부를 부여잡은 채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키베인을 내려다보며 륜은 담담하게 닐렀다.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키베인. 신명을 가지고 있게 놔둘 수는 없잖습니까. 저는 당신의 신명을 지울 수도 있습니다.>

<신명->

<-도 지울 수 있습니다. 완전히 잊어버린 기억 같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당신의 신명을 잠시 묶어 두겠다는 겁니다. 예.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제 친구가 제게 그렇게 했지요. 그는 제 마음속에서 제 죄책감을 묶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의 모든 추억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미 죽어 버린 제 친구는 그것을 풀어 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잃는 것은 신명을 통해 구현되는 수력의 통제력뿐입니다. 여신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심 같은 것을 잃지는 않습니다. 아니, 믿어도 됩니다. 제 니름은 사실입니다. 속일 이유가 없지요. 굳이 당신을 속여서 신명을 지워 버릴 바엔 제 등 뒤에 있는 친구에게 당신을 건네주는 편이 훨씬 속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키베인은 그것이 훨씬 끔찍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때가 되면, 여건이 되면 저는 당신 정신 속의 결박을 풀고 신명을 돌려드리겠습니다.>

합리적인 나가답게 키베인은 륜의 제안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의견 조정을 시도할 만한 여건은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키베인은 한 가지 약속에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륜은 그가 니르기도 전에 대답했다.

<여신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그런데 뭘 잃는 것에 당황하는 겁니까?>

<뭐?>

<당신은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있군요. 여신의 이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그런데 그 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군요? 그게 무엇입니까?>

키베인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그가 뭔가 변명이나 설명을 하기도 전에 륜이 닐렀다.

<니르고 싶지 않다면, 됐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잃는 것에 대해 크게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러니 저도 구태여 묻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신명을 결박해도 되겠습니까?>

<묶어.>

고통 속에서 키베인은 륜을 향해 정신을 열었다. 그리고 상실의 공포를 억누르려 애썼다. 륜은 키베인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역시 나가군요.>

<무슨 니름이지?>

<아니, 아닙니다.>

륜의 정신이 부드럽게 키베인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지막지한 고통이나 정신을 뒤흔드는 혼란 같은 것은 없었다. 인식할 수 있는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키베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키베인은 자신의 신명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베인은 신명을 알 수 없었다. 지나치게 오래전에 보았던 책의 뒤표지처럼, 혹은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처음 맡았던 냄새처럼. 륜은 차분하게 닐렀다.

<묶었습니다. 아니, 연상은 소용이 없습니다. 우회한다고 해서 그걸 떠올리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기꺼이 그 못을 뽑아 드릴 겁니다. 저는 다른 분께 가봐야 하니 저기 오는 불신자들이 그 못을 뽑아 줄 겁니다. 그들의 명령을 따르십시오. 청각에 집중하십시오.>

륜은 어디론가로 손짓을 보낸 다음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아스화리탈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청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에 키베인은 아스화리탈이 일으키는 엄청난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현실 감각을 앗아가는 용의 뒷모습을 보느니 쇠못을 뽑아 줄 구원자를 보는 쪽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키베인은 륜이 손짓을 보낸 방향을 돌아보았다.

몇 명의 불신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불신자들은 쇠못을 뽑아 낼 도구 같은 것은 가져오지 않았다. 그리고 키베인은 그 사실에 낙담하지 않았다. 선두에 있는 자가 레콘이었기 때문이다. 큼직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레콘의 뒤로는 인간 사내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

레콘은 키베인의 곁에 도달하자 장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못을 뽑을 테니 서툰 짓은 하지 마.”

“하지 않을 테니 빨리 뽑으시죠.”

불신자들 중 일부가 뚜렷한 동요를 보였다. 의아해하고 있는 키베인을 무시하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말했다.

“내 말이 맞지?”

“뭐?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 정도면 똑같잖아?”

“똑같긴 뭐가 똑같아. 우리 폐하의 옥음에 비하면 저건 변비 걸린 까마귀 힘주는 소리구먼. 완전히 달라.”

“야야, 까마귀는 좀 심했다. 멋진 목소리잖아.”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의미야.”

“음. 뇌룡공의 목소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건 당연하잖아! 같은 나가니까.”

키베인은 불신자들이 목소리에 관련된 어떤 토론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깨달았지만 그 이상은 알고 싶지 않았다. 수호자는 약간 언성을 높였다.

“이봐요들. 보편 상식의 이름으로 요구하겠는데, 배에 못을 꽂고 있는 자를 앞에 두고 토론을 벌이는 짓은 좀 삼가 주면 안 되겠습니까? 정 어렵다면 못을 제거한 다음으로 연기해 주는 것으로도 만족하겠습니다.”

사내들은 키베인을 돌아보더니 낄낄거렸다. 키베인의 예상대로 레콘이 가까이 다가왔다. 거북할 정도로 거대한 신장을 구부린 레콘은 키베인의 옆에 무릎을 꿇고는 못을 움켜쥐었다.

“각오 단단히 하라고. 나가.”

“저는 심장도 뽑았습니다.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 그까짓 못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불신자들은 다시 사나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콘은 못을 쑥 잡아 뽑았다.

북부군 병사들은 키베인이 어떤 비명도, 심지어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키베인은 자신이 머리가 터져라 정신적 비명을 내질렀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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