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11)
주퀘도는 비아냥을 잔뜩 섞은 어투로 바르사의 계략을 떠벌렸다. 바르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것을 들으며 대응을 고심했다. 그런데 주퀘도의 말이 점점 그 대상을 바꿔갔다. 바르사, 혹은 북부군을 겨냥하여 외치던 말은 어느새 유료 도로당을 향해 있었다.
“이 짐승의 굴 같은 요새에 기대어 만인에게 오만을 부리는 짓에도 이제 고별을 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의 수의는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었다. 너희들은 산양의 가죽에 싸인 채 계곡에 버려질 것이다!”
요새의 다른 부분들에서 당원들의 거친 욕설과 저주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북부군과 나가들의 일, 즉 여행자들 간의 일이었고 거기에 참견하는 것은 유료 도로당의 정신에 맞지 않았지만, 주퀘도의 폭언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주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던 케이 보좌관은 나가임에 분명한 자가 토해 내는 증오에 미심쩍은 기분을 느꼈다.
요새에서 들려오는 폭언에 주퀘도는 사납게 웃었다.
“개자식들. 250년 전 내게 은편 열 닢을 받아낼 때의 그 거만함은 어떻게 된 거냐?”
당원들과 북부군은 엉뚱한 숫자에 당황했다. 그러나 케이 보좌관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눈을 비비며 나가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때 주퀘도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나가의 목을 빈 그 목소리는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 산적놈들아, 귀를 씻고 잘 들어라! 죽음을 뛰어넘어 내가 돌아왔다! 주퀘도 사르마크가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에 돌아온 것이다!”
바르사 돌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창턱을 짚으며 비명처럼 외쳤다.
“죽음의 거장!”
유료 도로당의 당원들도 충격 때문에 침묵했다. 죽음의 거장은 그 침묵에 만족하며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 저편에서 돌덩이들이 폭풍처럼 날아왔다. 대수호자를 구출하기 위한 일념으로 나가 병사들이 슬픔을 억누른 채 만든 투석기들이 일제히 발사된 것이다.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돌덩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지만, 주퀘도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무한히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최후의 대장간의 계단에서, 시루는 눈을 찌푸린 채 빙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비형 스라블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비형은 그 자리가 거북했다. 다른 두 사람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형은 주저하며 말했다.
“곧 올 것 같은데………… 한 번 더 날아 가 볼까요?”
“됐네. 저기 오고 있으니까.”
비형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과연 시루의 말처럼 무엇인가가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무엇인가는 완전히 지쳐 버린 레콘과 인간으로 바뀌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개썰매는 티나한이 끌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라호친가히들은 케이건과 함께 썰매에 실려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최후의 대장간 앞에 도달하자마자 티나한은 쓰러졌다. 그리고 케이건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힘겹게 썰매에서 걸어 나왔다. 화를 내어 주리라 마음먹고 있던 시루는 그 모습에 차마 언성을 높일 수 없었다.
“정말 오늘 도착할 줄은 몰랐네. 닷새 만에 오다니. 고생 많이 했겠군.”
케이건은 얼굴에 붙은 얼음 조각들을 떼어 내느라 말을 제대로 못했다. 시루는 어눌하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대장간에는 들어갈 수 없네.”
놀란 티나한은 피로에도 불구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비형은 놀라는 대신 빙원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큼직한 얼음집이 있었다. 라호친 사람들이 만드는 반구형의 얼음집이었다. 시루 역시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밖에 얼음집을 만들어 두었네. 저곳에서 머물도록 하게. 보기에는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꽤 지낼 만하다네. 비형은 이미 지난 밤 저곳에서 머물렀네.”
비형은 지난밤에 저 안에서 도깨비불 피워 놓고 자 보았더니 꽤 괜찮더라는 식으로 시루를 거들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케이건은 간신히 입을 열어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갈 거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럴 수가 없네.”
케이건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하오.”
“뭐? 이해하다니, 무슨 말인가?”
“왜 못 들어가는지 이해하오.”
시루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말을 하기가 퍽 힘든 듯 케이건은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쉰 다음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금기도 잠시 접어 두어야겠소.”
“자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런다고 해서 마귀가 붙거나 하지는 않소. 신체에 마귀가 붙을 리도 없고.”
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애석해하던 티나한과 비형은 시루의 반응에 놀라고 말았다. 시루는 세 배로 부풀어 오른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시루가 분노하여 케이건을 때려 죽이려 마음먹은 것은 아닌가 하며 긴장한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시루는 경악하고 있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그, 그, 그럼 자네 말은……?”
“그렇소.”
티나한은 결국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케이건. 그럼 진짜 그 남편 암살할 여자가 신체인 거야?”
케이건은 힘이 쭉 빠졌다. 그가 진력이 났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티나한이나 비형은 케이건이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예상대로 케이건은 친절하게 말했다.
“티나한. 접시가 안 붙었잖소.”
“그래. 그랬지. 그러면?”
“그 여인은 결혼 못 한 것이 아니오. 아마 오래전에 결혼했을 거요. 그것도 첫째 부인이겠지.”
“결혼한 여자가 뭐 하러 무기를 받으러 오냐?”
“받으러 오긴 했지만, 무기는 아니오. 그 여인은 아기를 받으러 왔소.”
비형은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시루를 돌아보았고 티나한은 깃털을 사정없이 부풀렸다. 시루는 수염 볏을 떨며 케이건을 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차분하게 말했다.
“진작 말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관두겠소. 어차피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사금파리는 이곳에 나타났소. 그렇소, 시루. 우리가 찾던 신체는 요즘 대장간에 못 나오게 되었다는 최후의 대장장이의 태내에 있었던 거요. 지금쯤은 나왔을지도 모르겠군. 어떻게 되었소?”
시루는 어지러운 듯 기둥을 짚었다. 케이건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떻게 되었소?”
“어제…… 태어나셨네.”
“어제・・”
케이건은 안도했다.
“다행이군. 그러면 숯이나 준비해 주시오. 대장간이니 많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