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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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2)


긴 시간이 지난 후, 비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주워 담아야지요?”

티나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케이건은 무릎을 꿇고는 천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비형이 상자 뚜껑을 열었고 케이건은 꾸러미를 그 안에 집어넣었다. 상자 뚜껑을 닫은 비형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그 분이 오겠지요. 티나한. 방으로 돌아갈까요?”

“으아으아-아-!”

메아리가 사라진 다음, 비형은 귀 언저리를 몇 번 두드리고 말했다.

“그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군요. 동의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언젠가는 올 거라고?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냐! 북부인들이 다 죽은 후에? 즈믄누리와 최후의 대장간마저 파괴된 후에? 세상의 모든 경치 좋은 땅에 심장탑이 건설된 후에?”

“여기 오는 레콘들의 말로는 시우쇠 님이 나가들의 북진을 상당히 저지하는 것 같더군요.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은 피하도록 하지요. 낙관적인 편이 좋잖아요?”

티나한은 깃털을 부풀렸다 눕혔다 하며 바라보는 비형을 꽤 정신 사납게 만들었다. 그리고 티나한은 지난 1년 동안 그들 사이에서 몇 백 번이나 거론되었던 주제를 다시 꺼내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우리는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1년 전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 사금파리는 이곳에 있었어. 그렇다면 이곳에 있던 레콘 중 한 명이야. 이곳으로 올 레콘이 아니고! 우리는 그 레콘을 놓친 것이 분명해!”

지겹도록 반복된 이야기에 비형과 케이건은 자신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티나한의 지적은 타당했다. 즈믄누리에서 사라진 파편은 시우쇠가 사는 마을에 나타났었다. 그 마을에 있는 도깨비라곤 시우쇠뿐이었기에 수탐자들은 시우쇠가 자신을 죽이는 신의 신체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에 의해 두 번째로 사라진 파편은 그들의 희망대로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신체가 있는 근방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최후의 대장간에 도달했을 때, 인간과 도깨비가 최후의 대장간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레콘들 중에서, 수탐자들은 신체를 찾아내지 못했다. 최후의 대장간에 있는 모든 레콘을 상대로 실험해 보았지만 접시는 하나로 결합하지 않았다. 그때 레콘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은 최후의 대장간에 온다는 사실을 떠올린 수탐자들은 자신들이 조금 일찍 도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조금’은 1년으로 늘어나 있었다. 티나한은 그들이 조금 빨리 온 것이 아니라 조금 늦게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금파리를 찾는 데 2년이나 걸렸다. 그 2년 사이에 이곳에 왔던 신체는 자기 무기를 받아서 이곳을 떠난 거야! 신체가 떠나고 사금파리만 남아 있는 곳에 우리가 도착한 거라고!”

케이건이 실망과 피로감 모두를 지우지 않은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하지만 확인할 방도가 없소. 티나한. 신체를 찾아내려면 접시를 깨는 방법뿐인데, 복구되지 않은 접시는 깰 수가 없는 거 아니오. 그 때문에 우리는 건너뛸 수도 없고.”

티나한은 다시 비명인지 포효인지 딱히 구분 지어 말하기 어려운 계명성을 내뿜었다. 그들이 무려 1년 동안이나 최후의 대장간에 주저앉아 있어야 했던 것은, 언젠가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신체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신체에 대한 수탐을 잠시 접어 두고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 나설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티나한은 바우 성주가 왜 접시 세 개를 내주지 않은 거냐는 결과론적인 불평을 터뜨렸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주어진 접시는 하나뿐이었고 그것이 복구되지 않았기에 ‘건너뛰는’ 것은 불가능했다. 티나한이 즈믄누리로 돌아가서 접시 하나를 새로 받아오자고 강변할 때 누군가가 티나한을 불렀다. 수탐자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 곁에 늙은 레콘이 다가와 있었다. 모습이 퍽이나 특이했다. 물에 젖은 레콘만큼이나 비참하게 보이는 레콘이 있다면 깃털이 빠진 레콘일진데, 수탐자들 곁에 다가와 있는 레콘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특히 두 팔뚝은 인간과 비슷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볼품없는 모습에 무례한 미소를 짓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팔뚝은 평생 동안 불을 다루고 얻은 관록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티나한을 부르며 말했다.

“티나한. 또 찾아오는 젊은이를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을 봤네.”

“죄송합니다. 시루.”

“자네가 그렇게 뛰쳐나가서 과부 보쌈하듯이 끌고 오지 않아도 그 젊은이들은 어차피 이곳으로 오네. 이곳에 오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으니까.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그냥 여기 앉아서 그들의 도착을 기다리는 인내력과 도착한 그들에게 간단한 실험 좀 해 봐도 되냐고 물어볼 만한 예의를 함양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부당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티나한은 과부 보쌈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의미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송구스러워하며 말했다.

“저,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던데요.”

“내가 보기엔 자네가 그들의 기분에 무관심한 것 같은데. 주위에 무관심한 자들이 보통 주위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지.”

티나한과 시루의 대화는 케이건이나 비형이 참여하기엔 꽤 거북할 정도로 높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어차피 케이건과 비형에겐 참여할 권한도 없었다. 인간과 도깨비는 물론, 나가도 최후의 대장간에 올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 두 사람의 체류는 무시되는 방법으로 허용받고 있었다. 시루는 두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자네도 그랬을 거라고 믿지만, 이곳에 도착하는 그 순간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야.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그 젊은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 순간을 보다 위엄 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라네. 알겠나?”

티나한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사과했다. 시루는 다른 두 사람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 티나한은 시무룩한 얼굴로 동료들을 돌아보며 방에 돌아갈 것을 제의했다. 두어 걸음을 뗀 다음 티나한과 비형은 케이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형은 그에게 다가갔다.

케이건은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움켜쥔 채 바닥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키가 작은 케이건은 고개를 조금 숙이기만 해도 그의 얼굴을 완전히 감출 수 있었다. 비형이 허리를 숙이려 했을 때 케이건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들 가시오. 나는 잠시 나갔다 와야겠소.”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요?”

“그렇소.”

비형과 케이건은 놀라기보다 걱정을 느꼈다. 상식적으로는 놀라는 쪽이 적절할 것이다. 최후의 대장간 바깥은 빙원이며, 동시에 빙원밖에 없다. 어떤 용무를 지닐 만한 장소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케이건은 이곳에 머문 1년 동안 아무도 나가지 않는 그 빙원에 간혹 나가곤 했다. 때론 며칠 후에야 돌아오기도 했다. 보편적인 레콘으로서 티나한은 발아래가 바다인 그 빙원으로 나가는 것에 큰 우려를 느꼈다. 그리고 티나한과 다른 이유에서 비형 역시 걱정을 느꼈다. 여름은 끝나고 있었고 길고 길었던 백야의 시절 또한 끝난 후였다. 그랬기에 비형은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질문했다.

“함께 나갈까요?”

“혼자 가겠소.”

“곧 밤이 될 겁니다. 요 며칠 날씨가 좋긴 했지만 혹 눈이라도 오면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대단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케이건은 간단히 대답했다.

“나는 길잡이요.”

잠시 후 케이건은 개 썰매에 탄 채 최후의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케이건은 레콘들을 질리게 만드는 얼음 위로 몰아갔다. 그 아래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라는 사실은 케이건에게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썰매를 끄는 라호친가히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영민한 라호친가히라 하더라도 발 디디고 있는 얼음 바닥 아래의 바다를 상상할 능력은 없다. 따라서 라호친가히들은 아무런 거부 없이 빙판에 접어들었다. 빙판 위에 올라선 다음부터 케이건이 라호친가히들에게 보낸 것은 달리라는 지시뿐이었다. 방향은 어디라도 좋았다. 그런 목적 없는 질주를 이미 몇 번 경험했기에 우두머리 개는 당황하지 않고 다른 개들을 인도했다.

비형의 우려처럼 밤이 빠르게 다가왔다.

케이건은 썰매를 멈췄다. 비참한 석양이 하늘을 엷게 물들이는 짧은 시간 동안, 라호친가히들은 붉은 암흑 속에서 헐떡이는 그림자가 되어 케이건을 응시했다. 케이건은 왼손으로 얼어붙은 고깃덩이를 꺼내어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개들이 난폭하게 고기를 물어뜯는 동안 케이건은 등롱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왼손 하나만을 사용했기에 그 동작은 좀 불안했다. 케이건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썰매 앞쪽에 등롱을 매단 케이건은 개들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려 다시 출발을 지시했다. 썰매 날이 다시 얼음 위로 미끄러졌다. 밤이 찾아들었다.

혼란, 매혹, 감금, 은닉, 꿈.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들이 불타올랐다.

한없이 펼쳐져 있던 지면이 등롱의 미약한 빛이 닿는 제한적인 영역 안으로 황급히 축소되었다. 그리고 그 너머 암흑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번득였다. 날지 못하는 동물의 영원한 기준점인 지면이라는 준거는 무성의한 거짓말처럼 별들 사이의 암흑으로 후퇴했다. 케이건과 열두 마리의 라호친가히들은 거짓이 된 땅 위를 달리기보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를 달렸다.

일순, 극야의 침정함 가운데로 하늘이 파랗게 불타올랐다. 하늘 한 자락을 찢으며 나타난 푸른 불기운은 별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팽창했다. 뒤이어 초록과 노랑, 보랏빛의 불기운들이 나타났다. 소리 없으나 사나운 불기운들은 밤을 무참하게 불살랐고 상처 입은 밤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뜨겁게 달아올라 녹아내리는 밤. 극광이 사위를 뒤덮었다.

썰매는 고요히 달렸다.

썰매의 진행 방향 왼쪽 하늘에서 하늘치 한 마리가 나타났다. 실로 거대하고 터무니없이 늙은 놈이었다. 수천 개의 눈 중 대다수는 이미 시력을 상실한 듯 생기를 잃고 검게 물들어 있었다. 한때 폭풍을 쳐부수고 벼락을 희롱했을 그 가슴 지느러미는 갈가리 찢어져 볼품없이 나부꼈다. 멀어 버린 눈으로 꿈을 보며 별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퇴락. 그가 밤이 녹아내리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눈먼 거수는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멀어 버린 눈에 극광이 닿자 검게 물든 눈이 하나둘씩 깨어났다. 기묘한 성좌를 이루던 눈들이 차츰 불타는 성운으로 변모했고, 어른거리는 극광은 빛의 휘파람이 되어 거대한 몸 위로 미끄러졌다. 극야를 녹여 낸 빛으로 몸을 두른 하늘치는 모든 것에 태초의 잔광이 남아 있던 시절 하늘을 치닫던 그 강대하고 위엄 있는 생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늘치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케이건의 개 썰매와 하늘치는 서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케이건은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인사일까? 바위나 산 같은 무정물이나 사용할 수 있을 시간 단위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황량한 시간의 방랑자들끼리 주고받은 시선은?

‘오래간만이군.’

‘그렇군.’

케이건은 다시 고개를 숙였고, 라호친가히들이 이끄는 세계로 돌아갔다. 하늘치 역시 장엄한 극광을 벗어났다.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다시 나아갔다.

3킬로미터를 더 나아갔을 때, 케이건은 썰매를 멈춰 세게 했다. 육리한 극광은 사라졌다. 주위는 완벽한 암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어디에서도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토록 찬란하던 별빛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등롱의 조그만 불빛만이 세계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직경 5미터 정도의 구체로 축소된 세계. 그 너머로는 가혹한 거짓말들뿐이다. 케이건은 한참 동안 멍하니 앉은 채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라호친가히들의 으르렁거림에 케이건은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았다. 라호친가히들은 자신과 주인의 관계를 재설정할 정도로 영특한 몇 안 되는 가축들 중 하나다. 그들은 동사한 주인을 뜯어 먹는다. 소란을 부리는 다른 개들과 달리 우두머리 개는 어둠 속에서 케이건을 물끄러미 노려보았다. 그것은 관계 재설정을 시작해도 되겠냐는 점잖은 질문이었고, 케이건은 어떻게든 그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케이건은 왼손으로 바라기를 뽑아 썰매 옆의 빙판을 찍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일어났다. 라호친가히들은 약간 미심쩍다는 눈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썰매 옆에 서서 다시 고깃덩이를 집어 들었다. 팔이 쇳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지만 케이건은 고깃덩이를 집어 던져 줄 수 있었다. 라호친가히들은 그것으로써 자신의 태도를 정립했다. 게걸스러운 식사가 시작되었고 케이건은 겨우 한숨 돌릴 여유를 얻었다. 케이건은 썰매에 걸터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바라기를 무릎에 얹어 놓은 케이건은 왼손으로 다시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너무 강하게 움켜쥘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간 오른쪽 어깨가 뭉개져 버릴 테니까.

항상 징후는 오른쪽 어깨부터 나타났다. 감히 옷을 벗고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케이건은 지금 자신의 오른쪽 어깨가 어떤 모습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윤기와 탄력을 모두 잃은 살은 희게 변해 있을 것이고 세게 누르기라도 하면 싸락눈처럼 뿌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함몰될 것이다. 그렇게 살이 결정화되는 것과 반대로 뼈는 흐물흐물해진다. 필요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몸은 모조리 결정화된 다음 더 이상 신체를 지탱할 수 없게 된 뼈와 함께 무너져 내릴 것이다.

라호친가히들이 얼어붙은 고기를 깨트리고 뼈를 바숴 먹는 소리 때문에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긴 수월했다.

케이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왼손을 썰매로 옮겼다. 포장을 묶은 밧줄을 풀어 낸 케이건은 등롱의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커다란 자루를 찾아내었다. 케이건이 라호친에서 개 썰매를 구입한 까닭은, 도보로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가혹한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목적은 그 자루를 운반하는 데 있었다. 케이건은 자루의 주둥이를 벌린 다음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붙잡힌 큼직한 물체가 끌려 나왔다. 왼손 하나만으로는 다루기 힘든 무게였기에 케이건은 그것을 겨우 썰매 위에 내려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가 가져왔던 것 중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손 하나로는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 케이건을 곤란하게 했다. 케이건은 고개를 돌려 개들을 바라보았다. 사납게 고기를 물어뜯는 개들을 보던 케이건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고마워.”

케이건은 허리를 숙였다. 왼손으론 자루에서 꺼낸 나가의 머리를 단단히 누른 채 케이건은 개처럼 그것을 물어뜯었다.

혀가 찢어지고 이가 뽑혀 나갈 것 같은 반 시간가량의 악전고투 끝에 케이건은 비늘 두 장과 살점 몇 조각을 얻는 데 성공했다. 케이건은 화내지 않았다. 겨우 얻은 그 노획물들을 입 안에 넣은 채 케이건은 그것이 흐늘흐늘해지길 기다렸다. 얼어붙은 비늘에 할퀸 케이건의 입과 볼엔 상처가 가득했고 그곳에서 배어 나온 피는 그대로 얼어붙어 케이건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 주었다. 케이건은 눈만 내놓은 모습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입 안에 있는 것들을 계속 혀로 굴리고 잘근잘근 씹었다.

썰매 주위의 땅에는 심하게 부식된 철판에서 떨어진 것 같은 검붉은 가루가 가득했다. 피와 침이 뒤섞여 얼어붙은 가루였다.

입 안에 든 것이 어느 정도 부드러워졌다. 케이건은 목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그것을 삼켰다. 그리고 온몸을 떨며 다시 허리를 숙였다.

식사를 끝낸 라호친가히들이 그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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