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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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8)


아마도 나는 흩어져 먼지가 될 것이다.

칼을 휘두르며 피를 찾아 걷고 또 걷는 사이

깨지고 부서진 넋, 바람에 맡긴다.

쓰러져 죽는 대신, 걸으며 먼지가 될 것이다.

“아라짓 전사의 노래군.”

륜 페이는 고개를 돌렸다. 시우쇠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우쇠를 바라보던 륜은 문득 화염의 화신 어깨 너머로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격했다. 륜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연기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우쇠는 불꽃의 눈동자로 륜을 응시했다.

“고목에 기대어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던 전사는 마침내 쓰러져 죽기를 거부하고 일어난다. 썩어 들어가는 수족을 흩뿌리며 세상을 방랑하기로 한다. 도무지 나가에게 어울리는 노래라고 할 수 없어. 노래를 부른다는 것부터가 나가다운 일은 아니지만.”

“제가 아는 노래라곤 그것뿐입니다.”

륜은 베미온을 가리켰다. 베미온은 륜의 무릎을 벤 채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시우쇠는 싱긋 웃었다.

“자장가로도 어울리진 않아. 그런데 뭣 때문에 보자고 했지?”

“저와 함께 어디를 좀 가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이 근처에 두억시니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그 질질 흐르는 녀석? 그렇군. 태워 줘야겠군.”

시우쇠는 그렇게 말하며 륜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륜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시우쇠를 쏘아보았다. 시우쇠는 귀찮다는 어투로 말했다.

“뭐냐?”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유해의 폭포는 당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지금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는지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당신은 직접 말해야 되는 거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그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습니까.”

“내 대답이 바로 저거야.”

시우쇠는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시우쇠가 페로그라쥬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를 가리킨 것임을 깨달은 륜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는 비늘을 곤두세운 채 베미온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살육 현장을 나타내는 알림판이었고 페로그라쥬가 스스로를 태워 키보렌의 하늘에 써 보이는 고발이었다. 공격의 날, 차마 눈을 뜰 수 없었기에 륜은 살려 달라는 니름이 가장 거세게 들려오는 곳을 겨냥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모든 나가를 느꼈다. 아이를 끌어안으며 몸을 구부리는 어머니를 느꼈고 물 항아리에 뛰어들었다가 그 혹한에 정신을 잃어가는 나가를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륜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어떤 늙은 여인이었다. 하늘에 용이 나타나 불을 뿜어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차분하게 화로를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에 화로를 내려놓은 여인은 륜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던 륜은 여인의 다음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고 말았다. 여인은 물그릇에 손을 담갔다가 화로에 물방울을 던졌다. 충격 때문에 륜이 얼떨떨해하고 있을 때 아스화리탈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륜은 황급히 아스화리탈을 멈추려 했지만 이미 여인은 뿜어져 나간 불의 격류에 휩쓸린 후였다.

그 모든 기억이 륜을 뒤흔들었고 륜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갑자기 시우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직접 만나야 된다고 한 거지.”

“예?”

“태우려면 직접 만나야 된다고.”

륜은 한동안 시우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그것을 이해했을 때 륜은 분노했다.

“왜 태워야 한다는 겁니까!”

륜의 고함에 베미온은 깜짝 놀랐다. 공포스러운 경외감으로 이 대화를 훔쳐보던 북부군 병사들도 황급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륜은 놀라서 눈을 뜬 베미온을 다독이며 시우쇠를 노려보았다. 시우쇠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화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용인의 감각으로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마침내 시우쇠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륜을 경악시켰다.

“네가 관련된 이유가 좋겠군. 대호왕 때문에.”

륜은 놀라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시우쇠는 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변태 두억시니는 대답을 듣고 나면 분노할 거다.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녀석과 연결되어 있는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가 있지. 금군 말이야. 그 두억시니들이 대호왕을 공격할 거다. 이제 알겠나, 갇힌 여신의 신랑?”

겨우 륜의 말문이 트였다.

“왜 분노한다는 거죠? 두억시니들이 신을 잃은 것이 범죄와 연관되어 있는 겁니까?”

“범죄라. 모호한 표현이로군. 페로그라쥬가 불탄 것은 아스화리탈의 범죄냐? 그렇다면 아스화리탈에게 그런 명령을 한 네 범죄냐?”

륜은 다시 화로와, 거기 던져진 물방울을 떠올렸다. 볼 수 없는 거리였지만 륜에겐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륜은 베미온을 내려다보며 힘겹게 말했다.

“먼저 전쟁을 일으킨 것은 한계선 이남의 나가들입니다. 설마 피가 차가운 제 동족들이 적은 죽고 자신은 죽지 않는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전쟁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은 그런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또 이것 저것 끼워 맞추는군.”

“뭐라고요?”

“불은 네 거다. 그리고 네가 그러고 싶어서 태운 거지. ‘불탈 만한 짓을 했다. 그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너절해. 집어치우라고. 그냥 속 시원하게 ‘이유 따위 묻지 마라, 불을 가진 것은 나다.’라고 외치며 태워 줄 수는 없나? 칼을 가진 사람은 찔러 죽이고 불을 가진 사람은 태워 죽이는 거다. 갇힌 여신의 신랑. 이빨 달린 놈이 물어뜯고 발톱 달린 놈이 할퀴듯이. 그것뿐이야.”

“불은 무엇이든 삼키지요.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맹수들이 물고 할퀴는 것에는 배를 채운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다는 식의 그런 말씀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인정하지 않겠다고?”

“예.”

“우리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륜은 소스라치게 놀라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륜은 그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저 대책 없이 유쾌하기만 한 도깨비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륜은 비늘을 부딪치며 말했다.

“당신들께서………, 우리를 이유 없이 살육하는 생물로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다. 이유는 있지.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 같은 너절한 이유는 아니야.”

“그럼 어떤 이유입니까?”

“우리는 너희들을 먹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지.”

“먹는다고요?”

“그래. 먹는 것. 그게 너희야. 그게 생명이지. 모든 동물들이, 식물들이, 생명이라는 생명은 모두 먹는다. 먹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지. 우리가 만든 것은 그런 것이다. 너희들이 벌이는 모든 짓거리의 경계엔 큰 글씨로 뚜렷하게 적혀 있지. ‘일단, 먹고 나서’.”

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그와 반대로 시우쇠의 목소리는 점점 차분해졌다.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지. 일단 먹어야 살아 있는 것이 저지르는 모든 웃기는 일이 가능해지지. 먹지 못하면 소용없어.”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야. 륜 페이. 먹는다는 것은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외의 것을 파괴한다는 것이지. 그렇기에 바위를 뚫는 낙수는 바위를 먹는 것이 아니야. 바위가 낙수를 유지시켜 주는 것은 아니니까. 나무를 찍는 도끼도 나무를 먹는 것이 아니야. 도끼의 유지에 나무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니까. 그것이 먹는 파괴와 보통의 파괴의 차이점이지. 하지만 둘 다 파괴야. 알겠냐? 우리는 너희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파괴하는 것으로 만들었어. 하지만 생명은 파괴를 일으켜서 자신을 유지하지. 그런 것을 가리켜 ‘먹는다’고 하는 거야. 무생물은 그렇지 못하지. 낙수가, 파도가, 태풍이 아무리 파괴를 일으켜도 그것은 자신의 유지와는 상관없어. 그것들은 먹는다고 하지 않아. 파괴한다고 할 뿐이지.”

“우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그래서 태우고 찌르고 들이받으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겁니까?”

시우쇠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륜의 질문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범죄 같은 것은 없다. 륜. 두억시니가 신을 잃은 것도 범죄와는 관련 없어. 하지만 그 질질 흐르는 녀석은 화를 낼 거다. 그게 싫으면 네가 그걸 먹어야 해. 그걸 먹어서 네 누나의 모습을 유지시켜 주라고. 하지만 먹기 싫은 것, 먹으면 안 되는 것은 다른 사람 먹이는 방법도 있지. 그러니 입 다물고 안내나 해라. 그 피라미드엔 네 아스화리탈이 들어갈 수 없을 테니 내가 먹어 주지. 네 말처럼 뭐든 삼키는 불인 내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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