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12)
북부군의 뒤편에서, 시우쇠는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두 팔을 앞으로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움직임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먼 곳에서 화신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시우쇠의 온몸에서 불길이 끝없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신의 몸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불은 모두 위쪽으로 흘렀다. 시우쇠의 배와 가슴, 그리고 목과 얼굴을 타고 흘러오른 불길은 그 정수리에 도달하여 시우쇠와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 머리 위 하늘에서 하나로 엉기었다. 그 불덩어리가 거대해질수록 시우쇠의 몸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시우쇠는 그의 몸 자체를 짜내어 불덩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듯했다. 지독한 열기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공포에 질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시우쇠의 머리 위에 형성되던 불덩어리는 점점 커져 마침내 직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구가 되었다. 시우쇠 근처의 나무들은 이미 새카맣게 불타 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우쇠는 멈추지 않았다. 불덩어리가 커짐에 따라 공기가 난폭하게 불탔고 시우쇠를 향해 사방의 모든 바람이 몰려들었다. 웅왕거리던 나뭇가지들이 정신없이 떨리다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떠오른 풀잎과 나뭇잎이 시우쇠를 향해 휘몰아쳤다. 숲은 기묘하게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바람은 창백해진 모습으로 떠돌았다. 땅이 덜덜 떨렸고 공기는 그대로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마침내 직경이 100미터도 넘을 것 같은 불덩이를 만들어낸 시우쇠는 불의 포효를 뿜어내며 오른손을 쳐올렸다. 순간 불덩이는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떠올랐던 형제와 함께 키보렌의 하늘을 불사르는 세 번째 태양이 되었다.
산더미 같은 불 두 개를 하늘에 띄워보낸 시우쇠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불을 지나치게 뿜어내어 그의 몸이 오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시우쇠의 코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빠르게 드나들었다. 시우쇠는 낮게 으르릉거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륜 페이가 서 있었다. 륜 페이는 두 손을 가볍게 맞잡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그 두 눈은 감겨 있었다. 시우쇠가 불처럼 말했다.
“끝나가나?”
륜 페이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눈을 뜬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두었던 물통을 집어든 륜은 그것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끝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저 높은 곳의 하늘에서 태양의 열기를 머금은 습기를 계속해서 강하시키고 있던 륜은 마침내 그 강하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륜은 물통을 머리 위부터 뒤집어썼다. 물 또한 미지근하게 바뀌어 있어 추위에 얼어붙는 일은 없었다. 륜은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열기는 계속 쏟아지고, 다른 곳으로는 이동하지 않을 겁니다.”
바닥을 본 륜은 그림자가 기묘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하늘을 흘끔 본 륜은, 주의 깊게 곁눈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꼈다. 세 개의 불타는 태양은 하늘의 빛깔을 바꿔 버렸다. 마귀 같은 열기가 하늘을 치달아 륜이 끌어내린 습기를 광분하게 만들었다. 두억시니 같은 하늘이었다.
“무서운 태양이군요. 열이 지나치게 집중되었습니다. 오늘 낮이나, 적어도 내일은 육지에서 태풍이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 같군요. 전투가 끝난 후에는 비를 만들어서 열기를 좀 줄여야겠습니다.”
“내버려둬.”
“내버려두라고요?”
“싹 쓸어버리도록.”
멀리서 거대한 계명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들으며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수에게 가보겠습니다.”
라수는 핏발선 눈으로 외쳤다.
“땀 흘릴 줄 모르는 짐승들, 다 뒈져버려라!”
라수의 곁에 있던 레콘은 그의 말을 몇 배나 부풀려서 외쳤다. 전장 전체에 그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북부군 병사들은 이제야 반격의 기회가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노호했다.
나가들이 한계선 이북으로 올라올 수 없는 까닭은 변온 동물인 그들에게 한계선 이북의 땅이 지나치게 춥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온 동물은 그 체온을 유지할 수 없는, 혹은 유지하기 힘든 동물이 지 피가 차가운 동물은 아니다. 라수는 그 점에 착안하여 발상의 전환에 성공했다. 추위가 나가들을 둔하게 만든다면, 정도 이상의 더위 또한 나가들에게 같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라수는 세계에서 가장 더운 그 지방을 ‘더 덥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인간들이나 레콘들이 일사병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라수는 그보다는 땀 흘릴 수 없는 나가들이 먼저 쓰러질 거라 믿었다.
작열하는 세 개의 태양 아래에서 북부군 병사들은 나가를 향해 돌격했다.
이글거리는 세 개의 태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가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거세게 치닫는 열류의 흐름은 나가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라수의 예상과 달리 나가들을 정말 당혹하게 만든 것은 더위가 아닌 시야의 혼란이었다. 세 개의 태양은 키보렌의 그림자를 대폭 줄여버렸고 얼마 남지 않은 음지와 광활한 양지 사이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열교환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집결한 나가의 여섯 개 군단은 시각적 회오리라 할 수 있는 상황에 빠졌다. 만약 심장이 있었다면 그들은 맥박이 무서운 속도로 높아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나가들의 몸은, 그리고 그 피는 계속 뜨거워졌다. 그리고 열 배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잔혹한 고온과 압도적인 혼란 속에서 10만 명에 가까운 나가들은 단체로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나가들은 좌절과 공포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꼈다. 이성의 샘은 잔혹한 삼 형제 태양 앞에 말라붙었다. 그리하여, 나가들은 옆에 서 있는 것이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나가들에게 돌격하던 북부군은 서로를 찔러대는 나가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나가의 눈에 주위의 모든 사람이 뜨겁게 보였다. 혼미해진 정신 속에 나가들은 자신이 불신자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말았다. 나가들은 정신적 비명을 내지르며 사이커를 휘둘렀다. 예리한 칼날이 비늘을 파고들어 피를 갈취했고 칼날에 묻어나는 피의 뜨거움은 나가에게 확신을 부여했다. ‘불신자다, 불신자다!’ 그들은 서로를 무참하게 베고 찔렀다. 어떤 나가는 자신의 왼팔에 놀라 엉겁결에 그것을 베어내고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런 나가의 등 위로 무수한 사이커가 쏟아졌다.
전선 뒤편에서, 륜은 다시 물을 뒤집어쓰며 그 참상을 보지 않으려 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감각은 지나치게 예민했다. 눈을 감아도 륜은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비늘을 부딪치는 륜에게 라수가 외쳤다.
“공작!”
륜은 몸의 물기가 마르는 것을 느끼며 라수를 바라보았다. 라수의 눈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두뇌는 놀라운 속도로 움직였다.
“공작! 악타그라쥬로 가시오!”
“악타그라쥬?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수의 얼굴엔 그림자가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그림자들은 지나치게 어둡게 보였다. 밝은 부분이 평소의 세 배나 되는 빛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숯으로 그린 괴이한 초상화 같은 모습으로 라수는 고함 질렀다.
“그렇소. 지금 용인의 감각은 필요 없소. 필요한 것은 용의 화염이오. 악타그라쥬로 곧장 날아가시오! 그곳의 시민들 또한 더위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거요. 제기랄, 추위보다 더위가 훨씬 효과적이군. 그들은 당신을 방해할 수 없을 거요. 그 틈을 타 심장탑을 부숴버리시오!”
“심장탑을…… 왜?”
“그러면 악타그라쥬 시민들뿐만 아니라 저기 있는 악타그라쥬 출신의 병사들도 다 죽을 테니까!”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륜은 라수의 사고 속도에 비늘 서는 느낌을 받았다. 륜은 이런 더위 속에서 어떻게 차가운 생각이 가능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륜은 거의 무의식 중에 아스화리탈을 불러들였다. 아스화리탈이 목을 내밀었지만, 륜은 가만히 선 채 용을 바라보기만 했다. 라수는 직접 달려가 물동이를 들고 왔다. 그리고 륜의 몸에 사정없이 끼얹었다. 물벼락을 맞은 륜은 성난 표정으로 라수를 돌아보았다. 라수는 빈 물동이를 집어 던지며 외쳤다.
“가시오, 륜 페이!”
“알겠습니다.”
륜은 아스화리탈의 등에 올랐다. 아스화리탈은 힘차게 날아올랐다. 푸르게 녹아흐르는 듯한 숲의 머리 위로, 세 개의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을 가로질러 용은 벼락을 뿌리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