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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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13)


세리스마는 당황하여 뱀들을 바라보았다. 사어를 익힌 이후로 세리스마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뱀들은 마치 달군 철판 위에 오른 것처럼 배를 보이며 몸을 비틀었다. 간혹 뱀들의 움직임이 의미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세리스마는 그것이 사어인지 고통의 몸부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늙은 수호자 세리스마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악타그라쥬에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리스마는 온힘을 기울여 강력하게 의지를 전달했다.

‘무슨 일인가, 짧게 닐러!’

‘덥다. 뜨겁다. 불신자다! 사방에 불신………….’

뱀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세리스마는 충격에 빠져 뱀들을 바라보았다. 기나긴 고통에서 해방된 뱀들은 기운이 다 빠진 듯 꿈쩍하지 않았다. 세리스마는 그것을 다시 뱀단지에 담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악타그라쥬의 심장탑에 불신자들이 들어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악타그라쥬가 이미 정복되었다는 건가? 세리스마는 황급히 일어나 뱀들을 집어들었다. 축 늘어진 뱀을 주워 쑤셔넣듯이 뱀단지에 담은 세리스마는 선인장 군단과 연결된 뱀단지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세리스마의 거듭된 호출에도 선인장 군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리스마는 뱀을 다시 주워담지도 않은 채 다른 다섯 개 군단의 뱀단지를 모조리 바닥에 쏟았다. 방 전체에 수백 마리의 뱀들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중 세리스마의 의지 이외에 다른 의지를 담아 움직이는 뱀은 한 마리도 없었다. 세리스마는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화를 내며 일어났다. 뱀 한 마리가 의자를 타고 올라와 있었다. 세리스마는 그 뱀을 집어 내동댕이치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여섯 개 군단이 모조리 격퇴되었다는 말인가?’

세리스마는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고작 한 명의 화신과 한 명의 용인이 불사의 나가로 이루어진 여섯 개 군단을 몰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혹 시우쇠가 그 옛 페시론 섬과 아킨스로우 협곡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해 보인 것일까? 하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추측이었다. 그런 대재난을 일으킬 경우 북부군의 안전 또한 보장할 수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공포가 세리스마를 짓눌렀다.

심장탑의 55층, 하텐그라쥬 전체를 내려다보는 그 높은 곳에서, 세리스마는 뱀단지를 통해 하텐그라쥬뿐만 아니라 키보렌 전체, 그리고 한계선 너머 하인샤 대사원까지 손아귀에 든 물건처럼 다루었다. 그 노회한 수호자가 해온 일들은 그가 위치하고 있는 높이와 어우러져 세리스마에게 세계를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수십 년의 시간을 주저없이 ‘계획’에 투자하며 마침내 목표의 정수리를 밟고 선 그 순간에도, 세리스마는 심장탑 55층에 있었다. 그곳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뱀단지들이 불길한 사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응답을 거부하고 있는 그 시점에서 세리스마는 갑자기 세계가 한없이 축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55층이라는 압도적인 높이는 이제 고소공포증과도 비슷한 아찔한 불안감으로 다가왔고 지나치게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진 그의 방은 폐소공포증을 일으키는 협소한 감옥으로 바뀌었다.

세리스마는 일어섰다. 늙은 수호자는 바닥에 깔려 있는 뱀들을 짓밟으며 창문으로 뛰어갔다. 빗물을 받아들이는 저수 장치를 망가뜨릴 뻔하며 세리스마는 가까스로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했다. 도저히 아래를 내려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스마의 견고한 정신은 굴복을 쉽사리 용납하지 않았다. 세리스마는 거칠게 부딪치는 비늘을 눕히려 애썼다. 한참 동안 스스로를 꾸짖던 세리스마는 마침내 결심했다.

‘결국, 모든 것은 뜻대로 될 것이다. 결과는 그 누구도 번복할 수 없다. 내가 그것을 원하기에!’

세리스마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실로 비늘 서는 높이였다. 세리스마는 창턱을 꽉 부여잡았다. 언제나 아무런 불안 없이 내다보던 그 높이가, 권력욕을 보채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던 그 풍경이 그를 겁나게 했다. 세리스마는 아무런 지지물도 없이 낙하한다는 느낌에 질겁했다. 그러나 결국 세리스마는 침착을 되찾았다. 세리스마는 모든 지붕과 대로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발로 걸어본 것이 십수 년 전이건만 그곳은 그에겐 너무도 익숙한 거리와 지붕들이었다. 세리스마는 안도했다. 그리고 세리스마는 기묘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일단의 병사들이 심장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규모로 나뉘어 여기저기로 흩어진 채 다가오고 있었지만 세리스마의 위치에서는 그 전체적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심장탑을 ‘기습 점거’ 하기 위해 다가오는 병사들이었다.

불안 때문에 세리스마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즉 세리스마는 이미 북부군이 하텐그라쥬까지 도달하여 마호가니 군단이 심장탑을 수호하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러나 곧 세리스마는 그것이 니름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능성이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만약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병사들이 저렇게 나뉘어서 올 리가 없는 것이다.

어떤 불쾌한 단어가 세리스마의 뇌리에 떠올랐다. 세리스마는 그 또한 자신의 불안감이 조장해 낸 니름도 안 되는 상상을 나타내는 단어로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그 단어는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문득 세리스마는 보트린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쥬어와 밤을 함께 보내고 돌아오려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트린의 미귀환은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거의 대부분의 수호자들이 군단을 지휘하기 위해 떠난 지금,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에는 여신의 힘을 다루는 수호자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세리스마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려 애써도, 세리스마에게 그 병사들의 모습은 심장탑을 ‘기습 점거’ 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돌린 세리스마는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연 세리스마는 잠시 낯선 풍경에 당황했다. 그러나 세리스마는 자신의 신명을 니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수호자 세리스마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왔다.

병사들의 모습이 하텐그라쥬 시민들을 당황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비아스의 생각은 맞아들어 갔다. 하텐그라쥬 시민들은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돌아 다니는 병사들의 모습에 익숙했다. 따라서 서너 명, 혹은 예닐곱 명씩 나뉘어진 마호가니 군단과 쥬어의 의용군이 심장탑 근처에 이르는 동안 그들이 누군가의 주의를 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속으로 안도하며, 쥬어는 어느 방물장수의 좌판을 구경하는 순박한 병사의 모습을 취했다. 그리고 방물장수의 니름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심장탑을 훔쳐보았다. 심장탑의 모습에서는 아무런 이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쥬어는 자신이 저지르려는 일에 약간 질려 있는 상태였다. 그는 감히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을 공격하는 무도한 일이 저질러져도 우주가 제대로 유지될지 의문스러웠다.

‘카루와 스바치의 니름을 들을 걸 그랬나.’

생각할수록 쥬어는 스바치와 카루의 계획 쪽이 사리에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계획을 따른다면 수많은 대가문들과 함께 당당하게 수호자들을 찾아가 여신을 풀어주라고 니를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쥬어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신의 감금을 폭로한 그의 공이 대가문들을 흡족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쥬어는 결국 비아스의 니름을 따르고 말았다. 만약 스바치와 카루의 계획대로 행동한다면 심장탑으로 걸어가 당당하게 여신을 풀어주라고 말하는 역할은 절대로 그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강대한 가문의 가주들이 그러니까, 그가 아닌 맡을 일이었다. 쥬어는 그들 가주들이 베풀어줄 호의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가주들은 틀림없이 자신의 공을 추켜세울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점차 근본도 없는 전쟁터의 승냥이를 방해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비아스의 니름을 따른다면 여신 구출의 모든 영광은 오로지 그의 것이 된다.

‘여신의 감금을 폭로한다’는 것과 ‘여신을 구출한다’는 것의 의미차는 막대했다. 방물장수의 설명에 완전히 빠져버린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쥬어는 허리 뒤에 숨겨둔 쇠망치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비아스의 신호를 기다렸다.

소메로 마케로우는 난처한 표정으로 모든 이의 시선을 피하려 애쓰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평의회장에 모인 각 가문의 대표자들은 모두 소메로의 성격에 대해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 덕 있는 여인이 그들을 모아들였다면 뭔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회의가 지연되는 것은 분명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가주들과 가주 대리인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의회 의장은 소메로 마케로우와 마찬가지로 회의 시작이 지연되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의장석에 앉아있던 드리고 이세리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메로를 바라보았다. 이세리도 의장은 다른 자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무개성한 니름으로 소메로를 불렀다.

<소메로 마케로우. 아직 멀었소?>

<정말 죄송합니다. 의장님. 잠시만 더 기다려주시면 비아스가 올 것입니다.>

당황한 나머지 소메로는 니름을 무개성하게 바꾸는 것도 잊은 채 닐렀다. 그래서 그녀의 니름은 대부분의 의원들에게 들렸다. 의원들은 예의바르게 짐짓 소메로의 니름을 듣지 못한 척했다.

이세리도 의장이 한 번 더 질문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문을 바라보고 있던 소메로는 하마터면 벌떡 일어설 뻔했다. 안으로 들어온 것이 비아스임을 깨달은 소메로는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세리도 의장과 다른 의원들은 약간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비아스의 입장 선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아스의 뒤편으로 사이커를 뽑아든 병사들이 차례로 들어서자 그들의 의아함은 혼란으로 바뀌었다.

의원들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의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평의회장의 무력 진입은 나가의 역사에 없었던 일이었기에 의장 또한 당혹에 빠졌다. 그녀들이 어찌할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벽쪽에 붙어섰다. 그리고 비아스는 평의회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의장석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비아스는 소메로를 잠시 돌아보았다. 소메로는 당황 때문에 비늘을 세운 채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비아스는 씩 웃어준 다음 다시 의장을 바라보았다. 의장석 앞에 선 비아스는 닐렀다.

<의장님. 마호가니 군단의 군단장인 마케로우 가문의 비아스 마케로우입니다. 연설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세리도 의장은 겨우 한 마디를 니를 수 있었다.

<감히 남자를!>

비아스는 잠깐 동안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벽에 붙어선 병사들 사이에서 사나운 미소에 해당하는 감정들이 흘러나오자 비아스는 이세리도 의장의 니름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비아스가 데려온 병사들 중에는 남자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비아스는 이세리도 의장이 병사들을 데리고 입장한 것을 탓하는 대신 남자를 데려온 것을 탓하는 것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글쎄요. 의장님. 군단에서 남자들에게 지휘를 받아온 저는 의장님의 니름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들은 수호자들이잖은가! 여신의 신랑들이야!>

<여신의 간수지요.>

<뭐라고?>

<여신의 간수라고 했습니다. 여신의 납치자라는 호칭 또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의원들은 당황의 니름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던 병사들 또한 엄격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비아스의 니름에 놀란 표정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은 놀라는 대신 긴장된 표정으로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비아스는 그들 가운데서 콘수마 발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콘수마는 비아스의 요구대로 몇몇 의원들을 회유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의원들의 반응을 확인한 비아스는 웃으며 의장석을 돌아보았다. 이세리도 의장은 비아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비아스는 닐렀다.

<제 언니를 통해 의회 개회를 요청한 것은 바로 그런 사실들을 설명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실종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꼭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아스는 의장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연단에 올랐다. 최초의 혼란이 사라진 지금 이세리도 의장은 이미 비아스를 저지하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병사들이 사이커를 든 채 평의회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허락을 받고 연설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자초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의원들 또한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비아스가 니른 심상치 않은 니름들 또한 그녀들을 제자리에 앉아 있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이세리도 의장과 의원들은 비늘을 눕히려 애쓰며 비아스의 니름에 주의를 기울였다.

모든 청중들의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비아스는 쉽게 니를 수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너무도 좋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만을 바라보며 그녀의 니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그녀를 무한히 행복하게 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상황을 끝없이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비아스는 심장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쥬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석한 마음을 억누르며 비아스는 빠르게 닐렀다.

비아스의 설명이 끝나자 의원들은, 그리고 병사들은 모두 합의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을 닫아버렸다. 이세리도 의장을 비롯하여 모든 의원들은 그 경악할 만한 내용이 던져준 충격에 그런 대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소메로 마케로우만은 비아스에게 계속 눈길을 보내며 니름을 걸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의 니름이 뻔한 것이리라 생각한 비아스는 언니의 시선을 무시했다. 의원들과 병사들이 모두 사태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비아스는 천천히 닐렀다.

<우리들이 그토록 찾아헤맸던 여신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갇혀 계셨던 겁니다. 그 분이 우리들의 눈 어두움을 얼마나 탓하셨을까요. 따라서 우리가 취할 행동은 자명합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저들 간특하고 어리석은 수호자들이 스스로의 분수를 모르고 일으킨 끔찍한 사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비아스는 열렬한 찬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미 콘수마 발텐의 반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주들과 그녀의 대리인들은 군대가 북부로부터 거둬들이는 부의 감소를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낯빛을 지어보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비아스는 준비했던 미소를 보내주었다.

<물론 지금 당장 여신을 풀어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의원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가공할 충격이 평의회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충격의 진원지에서 비아스는 모의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는 여신께서 수호자들에게 억류되어 있는 사태를 시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당장 여신의 힘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로 현명한 결정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북부군이 이곳을 향해 진격해 오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기까지 합니다.>

의원들 가운데서 콘수마 발텐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기다리고 있던 일이지만 비아스는 마치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콘수마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마케로우. 당신이 니르고자 하는 바는 뭡니까?>

<심장탑을 점거해야 합니다.>

<여신을 풀어드리지 않을 거라면 심장탑을 왜 점거해야 합니까?>

<그곳에는 심장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호자들의 심장병 또한 보관되어 있지요. 우리는 수호자들에게 보다 나은 통찰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제할 수단을 얻어야 합니다.>

의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아스는 빠르고 단호하게 닐렀다.

<여러분들은 심장 파괴라는 니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비아스의 두 번째 설명은 훨씬 빠르게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설명이 야기한 혼란과 충격은 먼젓번과는 비교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의원들은 발자국 없는 여신이 수호자들에게 감금되었다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목숨이 수호자들에게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병사들 또한 심장을 적출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의원들과 분노를 공유할 수 있었다. 비아스는 그들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의 혼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단호하게 닐렀다.

차츰 의원들은 비아스의 니름을 이해했다. 비아스의 계획은 단순했다. 비아스는, 다른 자들이 그렇게 오해하도록 유도했지만, 결코 여신을 풀어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심장탑을 점거함으로써 심장 파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의원들 모두에게 분명했다. 심장병을 손에 넣었음으로써 그들은 수호자들, 여신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수호자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그녀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콘수마 발텐은 완전히 매혹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닐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비아스 마케로우?>

<여러분들이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미 병사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동의와 허락을 얻고자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의원들이 당혹과 불쾌감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콘수마 발텐이 비아스의 준비성과 겸손함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었고 그 찬사는 다른 자들의 동의를 요구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모든 의원들이 콘수마의 예를 본받았다.

다만 소메로 마케로우만은 불안한 표정으로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덕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평을 받는 여인이지만 소메로는 그곳에서 비아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메로는 비아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꿰뚫어보았다.

‘그러니까, 비아스. 내 동생아.’

연단에 선 비아스는 실로 빛나고 있었다. 소메로는 한없이 어두워지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심장 파괴는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지? 네가 가지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저 여자들이 그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찾아와서 그들을 오해하도록 만드는 거지? 네가 자의대로 심장탑을 공격했다면 저 여인들이 가만 있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제 그녀들은 심장 파괴를 가지게 되었다고, 수호자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고 착각하며 너에게 칭찬을 보내는구나. 정말 무섭구나.’

자매끼리 통하는 감각 같은 것이었을까. 비아스는 짧은 순간 소메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소메로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비아스는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언니의 안색을 살필 여유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비아스는 그녀를 향해 쏟아지는 찬사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소메로는 고개를 떨군 채 카린돌과 죽은 것이 뻔한 어머니 두세나에 대해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왈칵 일어났다. 그러나 소메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아스를 성토하지 못했다. 카린돌이었다면, 혹 화리트였다면 그렇게 행동했겠지만 소메로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성격이었다.

소메로는 다만 짙은 슬픔 속에서 생각했다.

‘예전부터 너는 칭찬을 너무 좋아했지.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네 경우엔 심했어. 너는 너를 칭찬하지 않거나 반대로 경멸하는 사람은 죽여버릴 만큼 싫어했지. 지금 빛나고 있구나. 동생아. 순진하게 즐거워하고 있구나. 그것을 되도록 즐기길 바라. 나는 우리가, 마케로우가 파국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느낌밖에 받을 수 없으니.’

공회당 쪽에서 달려오는 병사를 보자마자, 쥬어는 그것이 기다리던 신호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쥬어는 병사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쇠망치를 뽑아들었다. 그와 흥정을 하며 상대를 거의 녹여버렸다고 자신하던 방물장수는 기겁하며 물건 값을 깎아주겠노라고 닐렀다. 물론 쥬어는 그 호의에 대해 아무런 감사 표시도 하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소드락을 꺼내들며 쥬어는 강력한 니름을 토했다. 사방의 골목길과 대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심장탑을 향해 돌진했다.

하텐그라쥬 시민들은 당혹할 겨를도 없었다. 병사들은 소드락을 복용하고 돌격했다. 따라서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났을 때 심장탑은 병사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다. 쥬어는 특별히 선별해 둔 돌격조와 함께 심장탑의 정문 앞에 도달했다. 쥬어는 신호를 보냈고 그 즉시 돌격조는 심장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심장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쥬어는 약간 당황했지만 주저없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길고 지긋지긋한 계단임을 알고 있기에 쥬어와 돌격조는 모두 소드락의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수호자들을 모두 체포해 버릴 생각이었다. 10층에 오를 때까지 쥬어는 자신이 여신을 구출해 내는 영웅이라는 가엾은 믿음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쥬어는 비아스의 당부를 무시할 계획이었다. 비아스는 그녀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냉동 장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그에게 닐렀다.

‘당신이 영웅이 되고 싶은 거지? 흥. 그럴 거라면 왜 평의회 따위에 간 거냐? 여자들끼리 다 해먹겠다는 수작이겠지만, 비아스. 그렇게는 안 될걸’

쥬어는 가슴 가득히 치밀어오르는 통쾌함에 비늘을 부딪쳤다.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쥬어는 탑이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늦게 깨달았다. 12층에 도달했을 때 쥬어는 마침내 그 진동을 달았다. 돌격조의 다른 나가가 그를 붙잡아 세웠기 때문이다.

<이상합니다. 탑이 진동하고 있습니다.>

소드락의 효과 지속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쥬어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벽에 손을 짚어본 쥬어는 그 니름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장탑은 기묘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쥬어는 청력에 집중해 보았다.

쥬어의 온몸에서 비늘이 솟구쳤다.

<내려가! 내려가!>

쥬어의 니름이 끝나자마자 다른 돌격조원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심장탑 저 높은 곳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아래로 치달아오고 있었다. 몸을 돌리기 직전,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의 정체를 목격했다.

실로 교묘한 솜씨였다. 심장병이 보관된 벽감을 강타할 정도로 높지는 않았지만 계단을 걸어올라오는 나가들을 휩쓸어버리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파도가 계단을 타고 쇄도해 오고 있었다. 쥬어는 이미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쥬어는 심장탑의 저 까마득한 꼭대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스라한 니름이 그의 추측을 뒷받침했다.

200미터라는 무시무시한 높이에 고독하게 서서, 수호자 세리스마는 광대한 하텐그라쥬를 둘러싼 키보렌과 그 하늘로부터 습기를 가차없이 끌어모으고 있었다. 구름이 그에게 호응하여 움직였고 광포하게 치달아 하텐그라쥬의 하늘을 시커멬게 뒤덮었다. 살아 꿈틀거리며 몰려드는 구름의 모습에 하텐그라의 시민들은 넋을 잃거나 공포의 니름을 토했다.

세리스마는 그 구름에서 비를 뽑아내어 심장탑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비는 그대로 200미터의 높이를 타고 흘러내리며 격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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