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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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5)


카시다의 마지막 시민인 이름 모를 소년은 덤불 아래에 몸을 숨긴 채 바위 아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해하기 힘든 모습의 일행이었다. 도깨비와 인간, 레콘이 있었고 딱정벌레가 있었으며 레콘은, 분명히 남자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등에 레콘 아기를 업고 있었다. 소년은 아마도 레콘의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아이의 새엄마가 될 여자를 탐색하려는 것이리라 추측했다. 그렇다면 그 레콘에겐 동정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그렇기를 원했다. 그는 그 일행에 합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년은 어젯밤에 만났던 무서운 사내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소년은 일행이 출발하면 그 뒤를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기회를 얻는 것이 소년의 계획이었다. 어쩌면 그 무서운 남자 외에 다른 일행들은 부모 잃은 소년을 불쌍히 여겨 거두어줄지도 모른다. 무서운 남자는 소년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모든 가족을 잃고 세상에 홀로 내몰린 남자애만큼 특별한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동정과 사랑은 그런 자에게 보내어져야 하지 않는가?

일행이 걸음을 뗐다. 소년은 그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곧 소년은 덤불을 박차고 나왔다.

실망과 좌절, 그리고 혼란에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그 일행은 분명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번개 같은 속도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소년은 앞으로 달렸다. 하지만 굶주림 때문에 후들거리는 소년의 다리가 소년을 배신했고 소년은 요란하게 쓰러졌다. 눈앞이 새하얗게 바뀌었다. 입술이 터졌는지 혀끝에 짭짤한 피 맛이 느껴졌다. 허둥거리던 소년은 간신히 눈을 떠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미 일행은 지평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소년은 어이가 없었다. 누가 버린 쓰레기마냥 팽개쳐진 모습으로 땅 위에 엎드린 소년은, 지독한 장난에 말려든 것 같은 억울함에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던 소년이 다시 땅을 짚고 일어섰을 때, 그 얼굴에는 덤불 속에 숨어 있을 때와는 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결국 소년은 특별하지 않았다.

일어서는 것마저 힘들었기에 소년은 바위에 등을 기댔다. 소년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한참 동안 바위에 기대어 있던 소년은 결국 바위를 짚었다. 그의 손바닥에 음각된 글씨의 일부가 만져졌다. 소년에겐 익숙한 글자들이었다. 글자를 배우던 시절 소년은 카시다 암각문을 하나씩 읽어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때 소년에게는 이름을 불러주는 부모와 유치한 별명을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소년은 단검을 뽑아들었다.

카시다 암각문이 새겨진 바위는 오랜 세월 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독특한 침식을 경험하게 되었다. 소년의 단검은 결국 끌과 망치에 필적할 수 없었지만, 소년은 손톱 아래에서 피가 배어 나오도록 거칠게 단검을 내리찍었다. 겨우 한 단어를 새겨 넣는 동안 소년은 몇 번이나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운 채 휴식해야 했다.

마침내 목적을 달성한 소년은 비틀거리며 바위를 떠났다. 소년이 떠난 바위에는 새로 새겨진 암각문이 다가올 풍화의 세월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이 새겨 넣은 단어는 ‘미움’이었다. 그 단어는 암벽에 있던 글자들과 어울려 완전한 문장을 이루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미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안개가 티나한을 기분 나쁘게 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는 손에 만져질 듯했고, 티나한에게 마치 물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깃털 부푸는 느낌을 선사했다. 티나한은 그곳이 싫었다. 하지만 티나한이 탈 경우 딱정벌레에는 한 사람밖에 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티나한은 케이건의 뒤를 따라 걸었다.

“도대체 이 황당한 안개는 뭐야?”

“아무래도 나가들이 기온을 높이기 위해 이곳에 뭔가를 지나치게 모아 놓은 모양이오.”

티나한은 그 ‘뭔가’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케이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 말을 잊으려 애썼다. 케이건은 티나한의 고충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발앞의 폐허를 가로질렀다.

폐허의 규모는 놀라웠다.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 위에는 돌들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비탈진 산의 경사 때문에 굴러내린 거석들은 수백 미터 이상 되는 넓은 범위에 걸쳐 흩어져 있었다. 케이건은 안개 속에서 마치 괴물의 뼈대처럼 보이는 공성병기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폭풍 같은 기세로 거석들을 날려 보냈을 그 공성병기들은 무관심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은 단지 튼튼한 지지력을 위해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어진 초대형의 것도 있었다. 처음부터 가지고 떠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나가들이 사용하고 버린 것임이 분명했지만, 그것은 케이건의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티나한조차도 나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제작된 그 대형 병기들의 모습에 놀랐다.

“나가들이 미친 걸까?”

“모르겠소.”

길을 가로막는 거석의 크기가 차츰 거대해졌다. 무게 때문에 아래로 굴러내릴 수 없는 거석들이 길 위에 내팽개쳐져 두 사람의 걸음을 방해했다. 자욱한 안개와 거대한 돌더미 때문에 두 사람은 우윳빛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받았다. 케이건은 가까스로 길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길이 완전히 막혔을 때는 티나한이 괴력을 발휘하여 바위를 밀었다.

악전고투 끝에 그들은 관문 요새에 도달했다. 최소한 관문 요새가 있던 자리에는 도달했다. 두 사람은 말을 잃은 채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바라보았다.

자연암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관문 요새는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등과는 달리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바위를 관통하는 통로 또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관문 요새는 자신의 참상을 폐허 속에 숨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가 겪어야 했던 일이 선명하게 재구성되었다.

투석기에서 날아든 거석들은 암벽을 수백, 수천 번 이상 강타했을 것이다. 그런 무참한 공격에 그토록 단단한 암벽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굵은 금이 간 바위들이 깨진 얼굴마냥 흉측한 모습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래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을 투석구들은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중 어떤 투석구에는 인간의 머리와 팔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꽉 끼여 있는 그 유해는 그가 경험해야 했던 무서운 사건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내부로 침입한 적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투석수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리고 설령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추락사할 그 구멍으로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머리와 팔 하나를 꺼내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투석수는 그런 무시무시한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굶어 죽었다.

통로를 메우고 있는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티나한은 흠칫하며 철창을 꼬나쥐었다. 그러나 케이건은 가만히 선 채 상대를 기다렸다. 나가가 움직일 기온이 아니었다. 케이건의 예상대로 안개 속에서 나타난 것은 나가가 아니었다.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인간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행색이 말이 아니게 초라했기에 두 사람은 눈앞의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 인간이 입을 열었다.

“은편 열다섯 닢 내시오.”

티나한은 신음을 흘렸다. 케이건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보좌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좌관은 설명을 덧붙였다.

“당신과 그 아기는 면제요. 그러니 레콘의 통행료만 지불하면 되겠습니다. 도깨비도 있었는데, 그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안개 속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기에 딱정벌레에 태워 산맥 건너편으로 날아 가게 했소.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소.”

“잘 생각하셨군요.”

그리고 보좌관은 손을 내밀었다. 완전히 무감각한 그 동작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은편 대신 질문을 꺼냈다.

“당주님은 어떻게 되었소?”

“지불하시오.”

케이건은 말없이 은편을 꺼내어 보좌관에게 쥐어주었다. 보좌관은 더러운 옷가지 사이에 그것을 챙겨 넣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케이건과 티나한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통로 안으로 들어온 보좌관은 걸음을 멈추었다. 케이건과 티나한은 다시 충격을 받았다.

통로 안쪽에는 단 하나의 횃불만이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횃불 걸이의 반대쪽 벽 일부는 무너져 있었다. 그 때문에 벽에 기다란 틈이 나 있었다. 그 틈은 보좌관의 무릎 높이 쯤에서 가장 넓게 벌어져 있었는데 수탐자들은 그 뒤쪽에서 노파의 얼굴을 발견했다. 거미줄 같은 가느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 있는 얼굴은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의 보늬 당주의 얼굴이었다.

케이 보좌관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목이 메어 말했다.

“저 방은 비밀 방이었소. 당주님을 저곳에 숨겨 두었는데, 그만 방이 무너지고 말았소. 당주께서는 저 안에 선 채로 파묻혀 계시는 거요. 간신히 이런 틈이 있어 제가 먹을 것을 드리고 있소. 망치로 벽을 깨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저 방 안에서 붕괴가 일어날까 봐 그렇게 할 수 없었소.”

티나한이 깃털을 부풀린 채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는 벽을 쓰다듬고 흠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내부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티나한은 다시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무릎을 꿇고 갈라진 부분 안쪽을 바라보았다. 보늬 당주는 기절한 것인지 잠든 것인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케이건은 그녀의 코 아래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가져갔다.

당주는 숨을 쉬고 있었다. 티나한은 뒤를 돌아보려 애쓰며 말했다.

“저 방 안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저희들이 당주를 구출할 방도가 있을까요?”

케이 보좌관은 멍한 표정으로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아기가 부리를 열어 말했을 때, 그 속마음이야 어쨌는지 알 수 없지만 보좌관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기는 말했다.

“글쎄. 티나한.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당주가 재채기만 좀 심하게 하더라도 깔려 죽고 말 거라는 사실뿐이군.”

“이런, 빌어먹을! ….당신에게 한 말은 아닙니다.”

아기는 웃으며 노란 머리를 다시 강보에 파묻었다. 케이건은 당주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산적과 제왕 병자와 각종 악당들의 공격을 버텨 온 이 요새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거요?”

“갈로텍 대장군이 왔소.”

“갈로텍이?”

“예. 놀랍게도 그 자는 군령자더군요. 오면서 투석기들을 봤을 거요. 나가들이 그런 것을 만들 수는 없소. 하지만 군령자인 그 자는 그렇게 하더군. 그 자는 그걸로 이 요새를 공격하여 쇠뇌 배출구와 투석구, 기타 이 요새의 공격 수단을 초토화시켰소.”

“하지만 250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소. 주퀘도 사르마크가 이곳을 공격했을 때 그 또한 비슷한 방법을 썼소. 그때 당신들은 그 공격을 버텼소.”

“그 자였소.”

“그 자라니?”

“죽음의 거장. 군령자 갈로텍의 군령 중에는 주퀘도 사르마크의 영도 있었소.”

케이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의아하게 여겨왔던 것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케이건은 어떻게 전쟁 경험이 없는 나가들이 그토록 훌륭한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 준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용인이 아닌 갈로텍이 어떻게 륜 페이에게 필적하는 수력 통제력을 발휘한 것인지도 깨달았다. 군령자는 타인의 지식과 기억을 이용하는 것에 익숙하다. 갈로텍은 다른 이보다 훨씬 쉽게 여신의 힘에 적응했을 것이다.

“당신들을 잘 아는 적이 온 것이군. 하지만 그 자가 250년 전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을 얻은 거였소?”

“그 자의 공격 자체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소. 문제는 수호 장군들이 요새 내부의 우물을 마르게 하고 수도관의 위치를 파악해서 오폐수를 역류시키고 금속 도구에 습기를 몰아넣었다는 점이오. 그들이 주로 힘을 집중시킨 부분은 철문의 돌쩌귀였소.”

“녹슬게 한 것이군.”

“그렇소. 우리는 긴 시간을 버텄소.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요새를 두드리는 돌 때문에 많은 당원들이 귀머거리가 되었소. 그들이 우리에게 날려 보낸 돌은 거의 산 하나에 필적할 거요. 어느 날 철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고, 보병들이 요새 안쪽으로 난입했소. 그 다음은 미친 듯한 살육이었소. 그 다음 그들은 나가 포로를 찾아 떠났소.”

“포로?”

“즈믄누리로 호송되던 포로들 중 일부가 이곳에 있었소. 그리고 대호왕 또한.”

케이건은 고개를 들어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보좌관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했고, 그 설명은 티나한과 케이건을 긴장하게 했다. 티나한은 벼슬을 빳빳하게 세우며 말했다.

“어, 그렇다면 북부군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하텐그라쥬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군?”

“그렇소.”

“이런 빌어먹을!”

티나한은 주먹을 서로 부딪치며 분해했다. 보좌관은 차분하게 설명을 끝내었다.

“전투가 끝난 후 그들은 포로들과 요새에 남아 있던 북부군을 끌고 남쪽으로 떠났소. 나는 다른 비밀 장소에 숨어 있다가 나온 것이고.”

티나한은 격분하느라 보좌관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케이건은 다시 고개를 숙여 바위틈에 갇혀 있는 당주를 바라보았다.

“당주님은 언제부터 이런 모습으로?”

“스무이레째요.”

“스무이레?”

“그렇소.”

케이건은 놀랐다. 건장한 젊은이라도 꼼짝할 수 없는 이런 모습으로 그 긴 시간을 버틸 수는 없다. 하물며 보늬 당주는 백 살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때 케이건은 보좌관이 뜻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케이건은 보좌관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보좌관은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아마도 당신을 기다리신 것 같소. 어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돌아올 거라 확신하셨던 모양이오.”

티나한은 놀란 표정으로 보좌관과 케이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땅 속에 파묻힌 당주를 바라보았다.

당주의 쪼글쪼글한 얼굴은 그나마 핏기조차 없어 뭉쳐 놓은 걸레처럼 보였다. 유료 도로를 가득 메운 안개에서 흘러내린 이슬들이 그녀의 부서지기 쉬운 몸을 서른 날 이상 적셔왔고 그 위에 돌가루와 먼지, 그리고 머리카락들이 뭉쳐져 다시없이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당주의 다른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건은 다른 모습의 그녀를 부를 때와 같은 목소리로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의 당주를 불렀다.

“보늬.”

당주의 몸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케이건은 한 번 더 불렀다.

“보늬.”

당주는 눈을 떴다. 티나한은 놀라서 무릎을 굽혔지만 그러자 그의 거대한 몸 때문에 횃불의 빛이 가려지며 틈 앞에 그림자가 졌다. 티나한은 황급히 다시 일어섰다. 눈이 부신 듯 몇 번 눈꺼풀을 떨던 당주는 가까스로 케이건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의 함몰된 입술이 힘겹게 움직였다.

“어엿븐 소드락이요?”

티나한은 어리둥절하여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좌관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게다가 케이건은 그 기묘한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대답까지 했다.

“그렇습니다.”

“너므 너즈러비 오셨소.”

“그렇군요.”

당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흙먼지로 뒤덮인 볼에 긴 자국을 남겼다. 보좌관이 그것을 닦아주려 했지만 당주는 눈짓으로 그것을 거부했다. 보좌관은 다시 물러났다.

소리 없이 울던 당주는 겨우 숨을 골라 말했다.

“바라믄 롱호미라 호나 모딘 길헤 빼러디여 우니난 곳니픈 엇디호리오.”

“원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보좌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용을 알 수 없었던 티나한은 당혹하여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려 애썼다. 바위 틈에 갇혀 있는 당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원치 아니하오.”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는 것이 힘든 듯 당주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동안 세 남자와 여신은 조용히 기다렸다. 당주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했다.

“이 늘근 겨지베 소망은 네와 이제 왜 혼가지요.”

케이건은 침묵했다. 당주는 갑자기 또렷하게 말했다.

“어쓰난 겨지블 어위키 용서하오. 드위힐훠 니르노이다. 다시 태어나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티나한은 갑자기 당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내용에 놀랐다. 하지만 뒤이어 일어난 일 때문에 그의 놀람은 묻혀지고 말았다.

당주는 갑자기 머리를 뒤로 힘껏 젖혔다. 보좌관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당주는 다시 한 번 그렇게 했다. 순간 틈이 벌어지다가 다시 함몰되었다. 틈 저편에서 무엇인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피어오른 흙먼지가 모든 사람의 눈을 가렸다. 보좌관은 미친 듯이 손을 휘저었다. 가까스로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사람들은 벽의 틈이 흙과 파석으로 완전히 메워졌음을 발견했다.

보좌관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 손으로 벽을 짚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틈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보좌관은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머리를 벽에 댄 채 보좌관은 짐승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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