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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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1)


극연왕 6년, 칼리도에 한 어르신이 출현했다. 자신의 이름을 수수깨비라 칭한 이 어르신은 칼리도 사람들을 상대로 한 수수께끼를 내었다. 그리고 수수께끼를 맞추는 자에게는 막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수께끼의 내용은 단순했다.

‘신을 잃은 종족은 누구인가.’

대답은 분명했다. 사람들은 모두 “두억시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수수깨비는 그 대답이 틀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수께끼에 응했다가 틀린 사람들을 괴롭혔다. 어르신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는 없지만, 한밤중에 잠을 깬 사람이 천장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4미터 크기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것도 대단한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수수깨비는 그렇듯 사람을 기겁하게 만드는 장난으로 칼리도 사람들을 괴롭혔다.

지쳐버린 사람들은 수수깨비에게 인간, 도깨비, 레콘, 나가 등 닥치는 대로 선민 종족의 이름을 주워섬겼다. 하지만 수수깨비는 설명을 요구했고 아무렇게나 대답한 말에 설명을 덧붙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수수깨비의 장난은 점점 심각해졌고 그 대상은 모든 칼리도 사람들에게로 확대되었다.

더 견딜 수 없게 된 칼리도 사람들은 수수깨비를 쫓아낼 방도를 고려했다. 하지만 어떤 접촉도 할 수 없는 어르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근처의 도깨비를 모두 쫓아버리는 방법뿐인데, 당시 칼리도에는 많은 수의 도깨비가 살고 있었고 그들 모두를 쫓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기는 아직 대학장 전쟁의 초기였고 훗날의 모습과는 달리 많은 도깨비들이 세상에 흩어져 살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괴로워하던 칼리도 사람들에게 극연왕이 왕의 특사를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칼리도 사람들은 황송해하면서도 당황했다. 그들은 전쟁이나 반역 같은 국가적 재난도 아닌 상황에서 왕의 특사가 온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사흘에 한 번 꼴로 기절해야 했던 처녀들은 왕의 결정을 크게 반겼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왕의 특사는 칼리도 사람들을 또다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도착한 것은 레콘이었다. 레누카라는 이름의 그 레콘은 극연왕이 훗날 4대 경이라 불리워진 건설을 하던 도중 왕의 친구가 된 자였다.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왜 레콘이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제아무리 레콘의 용맹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물질적인 피해를 줄 수 없는 어르신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칼리도에 도착한 레누카는 별다른 설명 없이 곧장 수수깨비를 찾아갔다.

수수깨비는 레누카에게도 같은 수수께끼를 내었다. 레누카는 지그시 수수깨비•를 바라보다가 벽력처럼 외쳤다.

“꺼져라!”

수수깨비는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레누카는 어처구니 없어하는 칼리도 사람들을 내버려둔 채 왕에게로 돌아갔다. 레누카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후 기이한 풍문이 나타났다. 수수깨비가 사라진 직후 레누카가 혼잣말로 ‘그래. 두억시니는 아니지.’라고 중얼거린 것을 들은 사람이 있다는 풍문이었다. 하지만 그 소문은 사실로 확인되진 않았다. 그리고 칼리도 사람들에겐 다른 고민거리가 남겨졌다.

아무도 그 정답을 말하지 못했기에 칼리도 사람들은 수수깨비가 어떤 보상을 할 작정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칼리도 지방의 오래된 민담 中


혈루

키준 산맥의 바이소 계곡, 박명조차 요원한 꼭두새벽이었지만 계곡 바닥에선 몇 개의 횃불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꽤나 바빠 보이는 횃불들은 이리 뛰고 저리 돌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때마저 까딱거려 뭔가 상당히 분주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커다란 횃불을 움켜쥔 채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한 사내가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신없이 달리는 꼴은 도깨비요, 사람들에게 뭔가를 을러대는 형상은 영락없이 레콘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나가의 침착함일 듯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미덕은 함양하지 못한 듯하다. 사내는 지금도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흥분하여 한 동료를 다그치고 있었다.

“날이 벌써 밝아오고 있잖아! 도대체 왜 안 나타나는 거냐?”

질문을 받은 사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이 묽어지는 징조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려 보쇼, 롭스, 그리고 날이 밝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좀 여유를 가지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데. 아직 별이 새파랗소.”

동쪽 하늘을 돌아본 롭스는 사내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초조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제기랄, 그 빌어도 못 먹고 뱉어야 할 도르래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으면 만사휴의란 말이다. 다음 하늘치는 몇 개월이나 기다려야 해. 그때도 나가들이 없을 거라고 누가 보장하냐?”

사내는 ‘빌어도 못 먹고 뱉어야 할’ 물건은 빌어먹을 물건보다 얼마나 나쁜 것인지 생각하며 대답했다.

“때 되면 도착할 거요. 그 놈도 바이소 계곡으로 오라고 말하니 정말 좋아했소. 꼭 가지고 올 거요.”

롭스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그의 초조함은 특출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 모인 사내들 모두 내심 초조함과 긴장을 짙게 맛보고 있었다.

그들은 하늘치 유적 발굴대였다. 하늘로 오르는 그 형태에서부터 땅 속으로 파들어가는 보통의 발굴과는 상이한 하늘치 발굴은, 오늘 그 속도에서도 전무후무함을 강조해 보일 예정이었다. 롭스의 계획에 따르면 발굴은 겨우 여섯 시간만에 완료될 것이다. 계획은 대충 이러하다. 먼저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던 발굴자들이 각자의 장비를 챙겨들고 새벽에 바이소 계곡에 모인다. 그리고 일출 전까지 장비 설치를 마칠 것이다. 롭스는 일출 후 한 시간쯤에 하늘치가 나타날 것이라 예견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발굴대는 하늘치가 나타나자마자 벼락같이 그 등에 오르는 것이다. 그 속도만 놓고 본다면 발굴이 아닌 도굴의 속도다. 하지만 발굴 대상이 고정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것이며, 나가의 준동 때문에 북부를 오가는 것이 위험해진 상황에서 롭스는 쓸데없는 시간의 낭비는 완전히 무익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유적 발굴자들은 모두 해당 작업의 경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기에 작업은 신속했다. 롭스가 짜증을 부리고 안달을 내는 것도 그들에게 별로 지시할 것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롭스는 곧 자신의 짜증이 그들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르래 도착하면 알려줘. 좀 쉬어야겠다.”

“엇저녁에 왔죠? 쉬는 게 아니라 눈 좀 붙이는 편이 좋지 않겠소?”

어젯밤 발굴자들 중 가장 먼저 바이소 계곡에 도달했던, 그리고 그때부터 도착하는 동료들에게 반가움의 인사를 건네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조감에 짜증을 부리고 있던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이오냐?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은 피식 웃어버렸다.

나가들의 진격은 키준 산맥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굴자들이 고향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유적들처럼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대상이라면 그것을 꾸준히 파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하늘치 유적 발굴은 하늘치가 바이소 계곡을 통과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하기에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롭스는 상황을 인정하고 발굴대의 해산을 명령했다.

군령자인 롭스에게 특별히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것은 없었다. 충분한 고민 끝에 롭스는 규리하 지방으로 방향을 정했다. 규리하는 차가운 북쪽 땅이고 그 땅의 사람들은 강맹하다. 규리하에 도달한 롭스는 손수 오두막을 지은 다음 사냥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장만했다. 군령자는 당연히 팔방미인일 수밖에 없고 그들 대부분은 아침에 알몸으로 세상에 던져져도 저녁엔 옷가지와 잠자리와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을 준비해 둘 수 있는 수완 좋은 자들이다. 롭스는 어려움 없이 규리하에 정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록을 검토하고 군령들과 노닥거리며 전쟁이 끝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보름쯤 전, 나가들이 전선 전체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뻐하는, 혹은 의문스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롭스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기록들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롭스는 당장 쓸 몇 가지 물건 이외에 나머지 재산을 모조리 알고 지내던 나뭇꾼에게 넘겨주었다. 잘 만들어진 오두막과 막대한 저장 식량, 그리고 질 좋은 모피들을 얻게 된 나뭇꾼은 롭스의 작은 부탁을 쾌히 들어주었다. 전 발굴 대원에게 보내는 서한들을 발송하는 일을 나뭇꾼에게 떠맡긴 롭스는 규리하에 도착했을 때처럼 간편한 차림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긴 시간을 걸어 바이소 계곡에 도달했다.

모든 기록을 검토하여 하늘치가 오늘 바이소 계곡을 지나칠 것을 예견하고 발굴 대원들에게 소환 명령을 보낸 사람은 롭스였지만 당장 그에겐 할 일이 없었다. 대원들은 익숙한 과정들을 밟아나가고 있었고 그들에겐 어떤 종류의 참견도 필요없었다. 다행히 그곳에는 롭스 이외에 당장 할 일이 없었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롭스는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스님. 추우시지 않으십니까?”

화톳불 곁에 앉아 있던 오레놀 대덕이 고개를 들었다. 대덕은 롭스를 보자마자 눈을 비볐는데, 아무래도 졸고 있었던 기색이다. 하지만 오레놀은 곧 정신을 차렸다.

“아직 날이 밝진 않았군요. 일출 후 한 시간쯤에 시작된다고 하셨지요?”

롭스는 그렇다고 대답한 다음 횃불을 땅에 거꾸로 꽂아 불을 껐다. 오레놀의 곁에 앉은 롭스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입니다. 도르래를 가져와야 할 녀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연은 조립을 다 끝냈고 말들도 준비되었는데, 도르래가 없어서 연결을 못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험 비행을 해 볼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레놀은 당신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꼼꼼하고 계획성 있었던 사람들이었냐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옛날에 여러 번 연습해 보았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연에 탈 녀석들이야 여러 번 이 짓을 해봤으니 상관없습니다만, 문제는 연입니다. 조립이 제대로 되었는지 알아보려면 가볍게 날려봐야 합니다. 하늘치 배 아래에서 연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저는 실망 때문에 두억시니가 되고 말 겁니다.”

오레놀은 빙긋 웃었다.

“사실 저는 놀랐습니다.”

“놀라다니요?”

“참관하러 오라는 서한을 받고 오긴 했습니다만, 보나마나 당신에게 위로나 건네고 돌아가는 것이 고작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안 올 거라고 믿었지요.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고 무서운데 하늘치 등 위에 올라가 본다는 목적 때문에 위험한 길을 찾아오실 분이 몇 명이나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보고 있으니 제 예상이 완전히 틀렸더군요.”

“나가들이 남쪽으로 물러갔잖습니까. 모르십니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레놀은 생존 자체가 최우선의 목적이 되고 있는 이 험악한 북부 땅에서 꿈을 이루려고 모여드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아무리 반나절 동안의 전격적인 발굴이라 하더라도 이곳에 모여들기 위해 사람들이 소비해야 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또한 그들이 포기하거나 잠시 방기해 두었어야 할 일들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롭스 같은 자가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든 시기일 것이다. 오레놀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잠시 고민했다.

오레놀이 간신히 괜찮은 말을 떠올렸을 때 어둠 저편이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롭스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고 오레놀 또한 몸을 일으켰다. 롭스를 향해 걸어가던 오레놀은 잠시 후 그의 환호를 듣게 되었다. 횃불이 모여든 곳에 도착한 오레놀은 큼직한 달구지를 보게 되었다. 그 옆에는 한 남자가 흥분한 투로 외치고 있었다.

“그 썩을 주인놈이 때려죽여도 달구지 못 주겠다잖아. 저 도르래들을 들고 가라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 보고 미쳤대. 정작 미친 놈이 누군데? 나 떠나고 나면 어차피 이 달구지 쓸모도 없단 말씀이야. 그 녀석 달구지가 두 개거든. 4년 동안 일해 준 새경 대신에 이걸 받겠다고 말한 내가 은인인데도 대체 무슨 미친 지랄을 부리는 건지. 결국 내 돈 주고 사왔어.”

“새경도 안 주고 거기에 달구지 값을 받았다고? 그 자식 완전히 나가 같은 놈일세.”

“흥. 그래도 염치는 있는지 반값만 받더라.”

“그런데 새경도 안 받았는데 반값이나 줄 돈은 어디서 난 거냐?”

“같이 머슴살이 하던 친구들이 상당히 협조적이었지.”

“노름했구나. 그런데 너 떠날 땐 달구지 가지고 있었잖아. 도르래 싣고 떠났으니까. 그건 어떻게 됐는데?”

“말 마라. 그거 사라진 것이 4년 전이다. 주막에 밥값 대신 줘버렸다. 그러고 나니 그냥 그 마을에 죽치고 있는 수밖에 없더라고. 저 도르래들을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 짜증나는 주인놈 집에서 4년 동안 머슴살이 해야 했지. 야야, 말하면 가슴 아프니 이거 내리는 거나 도와다오.”

사내들은 사납게 웃으며 도르래를 끌어내렸다. 거대한 연을 지탱하기 위한 도르래들인지라 여간 우악스러운 물건이 아니었다. 사내들은 낑낑거리며 그것을 옮겼다. 놓일 자리는 미리 다져져 있었고 사내들은 곧 말뚝을 가져와 그것들을 고정시켰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오레놀은 조금 전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꼈다. 오레놀은 그저 도르래 하나를 간수하기 위해 4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와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적다면 모를까, 마흔은 되어 보이는 사내가 그런다는 것은 오레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하늘치의 등 위에서 믿을 수 없는 보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저 그 높은 곳의 전경이나 구경한 다음 빈손으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 올라가 본 자가 아무도 없기에, 게다가 그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기에 하늘치 유적에서 그들이 맞닥뜨리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오레놀은 문득 이들에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이들이 혹 성공하더라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엄청나게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적당히 말을 건넬 기회를 기다리던 오레놀 대덕은 아무도 보물이나 재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이소 계곡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하늘치 등에 올라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레놀이 뭔가 말을 붙여보기도 전에 어느새 도르래와 연, 말들, 그리고 밧줄들이 연결되었다. 그들은 밧줄이 엉키지 않도록 늘어놓느라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고 근처에 다가갔다가는 조언자는커녕 훼방꾼 취급을 당하기 십상인지라 오레놀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 했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자 롭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레놀은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한 번쯤 시험 비행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만, 그건 그냥 포기하자. 지금부터 밥 지어먹는 쪽이 낫겠다. 배가 고파서는 큰 일 못하지.”

열심히 일하던 사내들은 군말없이 삭정이를 모으러 떠났다. 몇 명은 음식을 꺼내어 조리할 준비를 갖추었다. 롭스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오레놀에게 다가왔다.

“스님. 시장하시죠? 식사 준비가 될 동안 곡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걸 들고온 녀석이 있군요.”

오레놀은 도저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모든 일을 팽개치고 온 분도 있는 겁니까?”

“예? 어, 그런 셈이지요.”

“롭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어쩌면 북부의 멸망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르는 거대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걸 당신들에게 말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까?”

롭스는 히죽 웃었다. 곡차 동이를 찾아내자 그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사발을 집어들며, 롭스는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러니 북부가 끝장나기 전에 발굴에 성공해야지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는 오레놀은 입을 다물었다. 롭스는 곡차를 떠 대덕에게 내밀었고 오레놀은 그것을 받아마셨다.

발굴대의 태도에 대해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오레놀은 그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참관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위험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기에 하인샤 대사원은 대덕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어도 오레놀은 하늘치 유적보다는 남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물론 사람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한 시간 후, 오레놀은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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