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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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3)


단순한 사고는 때로 매우 복잡하고 엉뚱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데, 바이소 계곡에서 국냄비가 쏟아진 사소한 사고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그 단순한 사고는 한 유적 발굴자로 하여금 약간의 임기응변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한 대덕을 자포자기 상태로 몰아넣는 매우 특이한 발전 양상을 보였다.

롭스의 제안은 오레놀을 파랗게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롭스는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대덕을 끈덕지게 설득했다.

“스님, 스님 이외엔 적임자가 없습니다. 툭 터놓고 말해서, 연에 탈 사람은 좀 멍청해도 된단 말입니다.”

“지금 저더러 연에 타라고 설득하는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사실만 말할 거라는 뜻도 되고요. 저 망할 국냄비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쉬허츠가 손을 데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쉬허츠는 손을 데었고, 연에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연에 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타면 되잖습니까. 사람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물론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연을 타고 저 위에 올라갈 자격이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연에 타는 것보다는 연을 조종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짐작되시겠지만, 연에 매달려 있는 것보다는 아래쪽에서 말을 달리고 도르래를 조종하는 쪽이 훨씬 중요합니다. 저 위에 올라갈 자격이 되는 사람 중에서 연을 조종하는 것보다 연에 타는 것이 나은 사람은 스님뿐입니다.”

“그 자격이라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설마 멍청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롭스는 낄낄 웃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자격은 첫째, 글을 읽을 줄 알 것. 둘째, 고소공포증이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자격은 이해가 되는데, 첫 번째는 뭡니까?”

“우리는 유적 발굴자입니다. 저 위에 도착한 다음 대문짝만 하게 씌어져 있는 간단한 경고문을 읽을 줄 몰라서 위험에 빠지게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 유적에 우리가 아는 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지요.”

오레놀은 다급하게 연들을 가리켰다

“혹 연 하나가 날아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연이 세 개나 있잖습니까?”

오레놀의 지적대로 연은 모두 네 개였다. 하지만 롭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 개뿐이라고 해야 합니다. 최소한 네 사람은 올라가야 합니다. 네 사람이 아니면 소용이 없습니다.”

“네? 왜 그렇다는 겁니까? 무슨 미신입니까?”

“천만에요. 미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저 위에 도착한 다음 도로 내려오려면 길이가 거의 1킬로미터에 가까운 밧줄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저 위에서 굶어죽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 밧줄이 연줄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가볍고 질긴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길이가 1킬로미터라면 그 무게는 엄청납니다. 게다가 하늘치 자체도 움직이고 바람도 방해하기 때문에 세 사람의 힘으로는 다루기 어렵습니다. 티나한 대장이 있다면 그 대책 없는 힘이 있으니 세 명으로 충분했을 테지만, 지금 우리의 경애하는 대장은 이곳에 없습니다. 그러니 네 사람이 올라가야 합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제가 거절하면 시도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인 겁니까?”

“정확하게 요점을 집어내셨습니다. 스님.”

오레놀은 난처하다는 얼굴로 롭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새 주위가 제법 밝아졌기에 오레놀은 다른 발굴 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전부는 대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라는 것이 실로 기막힌 것이었는데, 날이 밝아온다는 것이 그들의 초조감을 증대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말없는 압박감에 대덕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안된 일이지만 대덕에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늘치 등에 오르기 위해 달려온 자들을 실망시킬 배짱이 없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환호가 터져나왔을 때 오레놀은 자신이 무의식 중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을 깨달았다. 기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레놀은 자신이 이렇게 황당하게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 봤다는 생각만 되풀이했다.

계곡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그를 연에 묶어 죽음의 하늘로 추방하려 안달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오레놀이 ‘잠깐만’이나 ‘그러니까’, 혹은 ‘생각해 보니’ 등의 말을 할 겨를은 없었다. 오레놀은 전격적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을 요구받았고 그러자마자 연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롭스로부터 연에 매달릴 때의 주의사항에 대한 쾌속 강의를 들어야 했다. 오레놀은 롭스의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단 한 마디만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엉뚱한 밧줄을 자르면 티나한 대장처럼 추락합니다.”

오레놀은 벌벌 떨며 자신이 잘라야 할 밧줄에 표시를 해달라고 애원했다. 롭스는 ‘칼자국을 내드릴까요.’ 라고 말해서 오레놀을 폭력적인 충동에 빠져들게 한 다음 낄낄거리며 밧줄 하나에 천조각을 묶어놓았다.

“이 밧줄을 자르십시오.”

오레놀은 자신이 기필코 천이 묶이지 않은 밧줄을 자르고야 말 거라는 확신을 느꼈다.

‘표시를 한다는 것은 보통 중요하다는 의미지. 혼란에 빠진 나는 중요하지 않은 밧줄을 자르려고 할 거야. 그런데 그 밧줄을 자르면 나는 죽는 것이잖아.’

오레놀이 그런 자기 의심에 빠져 있는 동안 사람들은 밧줄과 연, 그리고 말들을 정해진 위치로 끌고가 버렸다. 그리고 롭스는 오레놀의 연을 지탱하는 사내들과 함께 남아서 말했다.

“스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전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올라갈 수가 없지요. 꼭 성공하셔서 저를 끌어 올려주십시오.”

입을 열면 승려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쏟아져나올 것 같았기에 오레놀은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오레놀은 지금껏 굼벵이처럼 흘러가던 시간이 왜 갑자기 빨라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동쪽 하늘은 화가 치밀어 오를 만큼 밝아져 있었다. 오레놀은 아직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려 했지만 롭스는 그런 희망마저도 날려보냈다.

“여기는 계곡이라서 해가 늦게 뜨지요. 사실 해는 벌써 떴습니다. 곧 하늘치가 나타날 겁니다.”

“곧? 곧이라고요? 한 시간 뒤가 아니고?”

“곧 나타납니다.”

“다, 당신 일부러 그 사실을—-”

“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쓸데없이 고민할 시간이 길어서 뭣하겠습니까? 아, 옵니다!”

오레놀은 고개를 돌렸고,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주위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편 계곡에서 하늘치의 거대한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치의 출현 아래 장엄함을 뽐내고 있던 키준 산맥은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다가오던 아침은 갑자기 실종되었고 하늘치의 배 아래에서부터 저녁이 되돌아왔다. 그 충격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오레놀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저 위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레놀은 그런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롭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롭스는 조금 전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본 오레놀은 롭스가 저만치 떨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롭스는 두 손을 입 앞에 모아 외쳤다.

“티나한 대장은 스님을 정말 부러워할 겁니다! 준비하십시오!”

‘준비? 준비라니, 뭘? 무엇을? 잠깐. 이거 아무래도 내가 잘못 결정한 것 같아. 내게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어.’

갑자기 다가왔던 이해의 감정은 갑자기 떠나갔다. 오레놀은 뭔가 큰 실수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레놀은 그의 연을 지탱하고 있던 사내들을 다급하게 바라보았지만 사내들은 모두 롭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오레놀이 가까스로 비명을 내지를 수 있게 되었을 때 롭스는 무자비하게 신호를 보냈다.

“달려!”

“에ᅳ하!”

말들이 출발했다. 갑자기 몸이 당겨진 오레놀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비명을 도로 삼켰다. 연을 지탱하던 사내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렸지만 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곧 연은 그들의 손을 벗어났고 사내들은 우당탕 쓰러졌다. 연이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동작이기도 하다. 그 순간 오레놀은 땅이 발 아래로 쑥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몸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지 마!’

땅을 향해 외친, 오레놀의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헛되이 꿈틀거리는 두 발은 허공을 찰 뿐이었고 땅은 가차없이 낮아졌다. 오레놀이 고정 장치를 풀고 연에서 뛰어내리려고 마음 먹었을 때 이미 연은 뛰어내렸다간 뼈가 박살이 날 속도로 치솟았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볼이 아파왔고 꽉 깨문 어금니에서는 열이 치솟았다. 사람들이, 계곡이, 마침내 산이 그의 발 아래로 내려갔다. 오레놀은 더 이상 당혹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때 저 아래에서 다급한 신호가 왔다. 롭스가 두 팔을 휘젓고 있었다. 밧줄을 끊으라는 신호가 분명했다. 오레놀은 바람의 압력에 힘겹게 저항하며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대덕은 무서운 고민을 직시하게 되었다.

‘어느 밧줄이더라’

그의 연에서부터 시작되어 저 아래로 까마득하게 사라지는 밧줄은 두 개였고 그중 하나에는 천조각이 묶여 있었다. 정신없이 펄럭거리는 천을 보며 오레놀은 멀미가 일어날 것 같았다.

‘이걸 자르라는 표시인가? 아니면, 이걸 자르지 말라는 표시인가? 어느 거였더라? 이런! 천에 글을 적어두는 건데! 어디에도 없는 신이여, 제발! 분명히 말해 줬는데. 들었는데. 칼자국? 칼자국이 무슨 말이더라? 그게 어쨌다는 거지? 아, 그래. 칼자국을 내면 어떻겠냐고 했지. 망할 자식! 아, 이런 내 죄가 크구나. 용서하십시오. 롭스. 그런데, 젠장! 어느 걸 잘라야 하지? 어느 거야! 어, 너무 늦으면 안 돼! 내가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자르자! 빨리 잘라야 해! 잠깐. 그런데, 이게 도르래와 연결된 밧줄이라면?”

오레놀은 밧줄 하나에 단검을 가져갔다.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밧줄이었지만 질긴 것이라 단번에 잘려지지는 않았다. 조금씩 밧줄을 썰어내며 오레놀은 자신의 목을 조심스럽게 베어내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밧줄에 가해지는 장력이 한계를 넘었고 단검 아랫부분의 밧줄이 갑자기 사라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당겨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리고 남은 부분은 거세게 튕겨져 오레놀의 뺨을 때렸다. 이 어처구니 없는 모욕에 오레놀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네가 정확한 밧줄이라면, 뺨 때린 것은 용서해 주겠다. 천조각 묶여 있는 밧줄! 그걸 자르는 것이 맞는 거지?”

그것이 맞는 밧줄이었다.

연이 갑자기 뒤로 불쑥 치솟았다. 갑자기 치솟아오른 오레놀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은 격심하게 요동쳤고 영원히 솟아오를 것 같았다. 오레놀은 자신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죽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은 곧 자세를 회복했다.

겁에 잔뜩 질린 채 눈을 뜬 오레놀은 환희에 찬 외침을 터뜨렸다.

연을 잡아당기던 말 대신 이제 도르래가 연을 떠맡고 있었다. 계곡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였지만 오레놀은 그들이 박수를 보내어오는 모습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르래에 메달린 사내들은 주의 깊게 밧줄을 늦췄다 풀었다 하며 연이 안정적으로 상승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오레놀은 가슴이 벅찼다.

“날고 있다!”

펄럭거리는 옷이 살갗을 아프게 했다. 귀는 얼얼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오레놀은 바람에 의지하여 날고 있었다. 풍경은 기가 막혔다. 키준 산맥 전체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아스라한 지평선이 내려앉은 자리로 하늘이 새파랗게 불타올랐다. 때는 아침인지라 태양은 옆에서 비춰오고 있었고 그것마저 오레놀을 행복하게 했다. 어쩌면 그는 조금 더 그 광경을 즐길 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연에 타고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산마루 위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승낙했으니. 하지만 함께 날고 있을 동료들을 돌아보기 위해 시선을 옮긴 오레놀은 하늘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다. 하늘치의 눈은 수천 개였고 오레놀을 직시하는 것은 그중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레놀이 전무후무한 사건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기엔 충분했다.

‘하늘치와 정면 충돌해서 죽은 승려에 대한 이야기는 행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사회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서사학적으로, 어쨌든 대단히 흥미로운 질문이었지만, 오레놀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구해 볼 시간이 없었다.’

시야의 모든 부분을 가려버리며 박력 있게 다가오는 하늘치는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산이 갑자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발 앞의 도시로 산책을 시작한다면 그 시민들은 지금 오레놀이 느끼는 기분과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레놀은 고함쳤다.

“어떻게 좀 해 줘요!”

오레놀의 외침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승려를 하늘치와 충돌시킬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롭스는 주의 깊게 바람을 살폈다. 물론 바람을 볼 수야 없으니 롭스가 본 것은 밧줄과 연의 움직임이었다. 마침내 적당한 순간이 왔다. 롭스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도르래에 붙어 있던 사내들이 한꺼번에 손을 놓았다. 도르래들은 불꽃을 튀기며 회전했다. 도르래와 줄다리기를 하던 바람은 갑작스러운 승리에 당황한 것이 틀림없다. 줄이 풀려나며 연이 맹렬하게 치솟았다.

오레놀은 연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래에 있는 자들이 자신을 하늘치의 위쪽으로 올라가게 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었지만, 오레놀은 그 결심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더럭 느꼈다. 분명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지만 하늘치는 너무도 거대했다. 한참을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레놀은 여전히 하늘치와의 충돌 궤도 안에 있었다. 오레놀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나타났다.

오레놀은 비로소 거리가 충분히 남아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하늘치보다 더 높은 하늘에 있었고 하늘치의 등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르렀다. 그리고 오레놀은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각도에서 하늘치 유적을 보았다. 거리는 멀었지만 그것은 마치 지평선에 있는 고대의 유적 같았다. 물론 그 지평선은 지상 1,000미터 이상에 있는 좀 특별한 지평선이긴 하지만.

광활한 하늘치의 등을 내려다보던 오레놀은 차츰 착륙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하늘치의 등에 내려서는 방법에 대해 들었던 것인지 듣지 않았던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고, 특별히 떠오르는 계획도 없었다. 어쨌든 그는 지상 1,000미터 위치에 외롭게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고정 장치를 풀고 아래로 뛰어내려야 하나?”

다행히도 롭스는 그보다 나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롭스는, 그리고 그의 지상 동료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밧줄을 정확한 순간에 풀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키준 산맥의 상공에서는 매우 거대하고 극적인 곡예가 펼쳐졌다.

풀려나고 있던 밧줄에 하늘치의 거대한 지느러미가 걸렸다. 그 순간 상승하던 연들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급격한 충격에 오레놀은 토할 뻔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오레놀은 하늘치의 등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연줄이 하늘치에게 걸리는 바람에 연은 하늘치의 등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그 속도가 살인적이지 않은 까닭은 아래쪽에서 도르래를 놔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은 계속 풀려나면서 서서히 하늘치의 등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오레놀은 발 앞으로 미지의 땅이 다가오는 것을 볼 배짱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연은, 마침내 하늘치의 등 위에 내려앉았다. 깃털처럼 내려앉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착륙이었다.

충격 때문에 오레놀은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거대한 연에 깔린 채 낑낑거리는 것이 고작일 뿐, 오레놀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밧줄에 매달려 있다면 그는 다시 하늘치의 등에서 끌어내려져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레놀은 일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고정 장치를 풀어내려다가 손가락을 부러뜨릴 뻔했지만 오레놀은 간신히 그것을 풀어내고 연 아래에서 기어나왔다.

오레놀은 다른 세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세 사람은 연을 내버려둔 채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달려오면서 고함을 질렀지만 오레놀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오레놀은 멍하니 그들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의 연은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밧줄이 아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레놀은 문득 밧줄이 없으면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연으로 돌아보았을 때 오레놀은 겨우 사내들의 외침을 이해했다.

“그걸 잡아요! 제기랄!”

연은 이미 오레놀의 발 근처까지 미끄러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레놀은 몸을 던졌다. 연위에 엎드린 오레놀은 그것을 꽉 붙잡았다. 하지만 미끄러지는 속도가 느려졌을 뿐 연은 오레놀을 태운 채 끌려갔다. 함께 끌려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레놀은 연을 놓을 수 없었다. 그때 세 사람이 간신히 당도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오레놀처럼 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밧줄을 움켜쥐었다. 각자 밧줄을 손목에 감은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밧줄은 연과 네 사람을 한꺼번에 끌어당겼다. 복부가 쏠리는 고통 속에서 오레놀은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계획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스러워졌다.

그때 앞쪽에 있던 두 남자가 갑자기 우당탕 쓰러졌다.

오레놀은 끌려가던 것이 멈춰진 것을 깨달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오레놀을 내버려둔 채 연 위에 올라탔던 남자가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앞쪽에 있던 두 사람과 함께 밧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힘껏 끌어당기며 외쳤다.

“스님! 정신차렸으면 와서 좀 도와주쇼! 밧줄을 감아올려야 하니까!”

“밧줄을 감아올려요? 도르래가……”

“젠장, 당연히 끊었지! 롭스가 제때 끊었을 거요. 이걸 놓치면 우리는 끝장이란 말이요! 와서 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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