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5)
수레는 요동치고 있었다. 뱀부리미는 뱀단지들이 쏟아지지 않도록 선반에 줄을 묶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수레가 흔들릴 때마다 갈로텍의 몸 또한 흔들렸다. 탁자 곁에 서 있던 갈로텍은 탁자에 매달리다시피 해야 했다.
태풍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처지도 그다지 곱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뱀들이 전해 오는 소식 또한 끔찍한 것이었다. 갈로텍의 몸에서 비늘이 부딪치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갈로텍은 무한한 독기를 품은 눈으로 탁자 위의 뱀들을 노려보았다.
‘비아스 마케로우, 비아스 마케로우! 이 은혜도 모르는 년!’
뱀부리미가 바빴기에 갈로텍의 의사는 상대편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어차피 내용이 내용인지라 갈로텍은 뱀부리미에게 그것을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수레의 진동 때문에 계속 움직이면서도 뱀들은 간신히 읽을 수 있는 사어를 형성했다.
‘빨리 하텐그라쥬로 돌아와 주게. 비아스는 대가문들과 완전히 결탁했어. 심장병을 가지게 되면 우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거지. 그녀들에게 상당히 많은 수의 심장병의 이름들이 먹으로 지워졌다는 것을 닐러줘서 지금은 잠시 소강 상태야. 하지만 그녀들은 그것이 거짓니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심장병 하나를 깨버려요!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것 중 하나를 골라서 파괴하라고요! 본보기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비아스를 따르지 않게 될 겁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 수레 안에 울려퍼졌다. 뱀들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그 도깨비 같은 비아스가 설마 가장 중요한 비밀을 닐러버릴 정도로 생각 없는 여자일 줄은 정말 몰랐어. 젠장! 도대체 지성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걸까? 그녀의 계획이 성공하면 뭐가 남는 건 줄 모르는 걸까? 이제 아무도 심장을 적출하지 않으려들 거야. 모든 나가들이 이성적일 수는 없단 말이야. 갈로텍. 이젠 북부 정복이 문제가 아니야. 갈로텍. 우리는 하텐그라쥬를 공격해야 돼!’
강렬한 충격에 갈로텍은 무릎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사어의 준엄함은 공포스러웠다.
‘알겠나? 다시 반복하겠어. 우리는 하텐그라쥬를 정복해야 돼. 그래서 다른 나가들의 도시까지 심장 파괴의 비밀이 전해지는 것을 막아야 돼. 그러지 못하면 나가는 끝장이야! 1,50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라고! 최대한 빨리 하텐그라쥬로 돌아와. 그리고 알겠나? 하텐그라쥬의 나가들을 제압해.’
그 명령이 암시하는 바는 명확했다. 세리스마는 친절하게도 그 암시까지 설명했다.
‘북부군과 협력하게.’
“오, 제기랄.”
“제기랄!”
‘여신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북부군과 손을 잡아. 거짓니름이 아냐. 륜 페이는 용인이니까 거짓니름을 알아볼 거야.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돼. 여신의 힘을 포기해서라도 심장 적출만은 지켜야 해. 만약 자네와 북부군이 실패한다면, 나는 이 심장탑의 모든 심장병을 깨버리고 죽겠어. 미안하지만 자네 심장병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군.’
필사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심장병 중에는 갈로텍의 심장병이 없었다. 그의 심장병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상태였다. 탁자 위의 뱀들은 불길함을 표현했다.
‘더 이상 니르지 못하겠군. 또 공격이 시작되었어. 이만 가봐야겠어. 갈로텍.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아. 그러니, 제발 성공하게! 북부군과 손을 잡고 이 도시를 점령해!’
뱀의 움직임이 멎었다. 하지만 갈로텍은 탁자를 움켜쥔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태풍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4년 전, 손에 넣은 힘의 가공함에 전율한 이래로 갈로텍은 그것의 이용에 대해 어떤 감정적 어려움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근시안적인 얼간이가 저지른 추악한 실수 때문에 갈로텍은 다른 도시도 아닌 냉혹의 도시를 상대로 그 힘을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빠져 있었다. 판사이를 수장시킨 그조차도 그런 일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가들에게 심장 적출을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인식시킬 방법이 없을까? 심장 파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엄숙한 맹세를 한다면? 회의적이었다. 갈로텍은 나가들의 이성을 믿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제2의 비아스나 제3의 비아스가 등장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신의 힘은 신명을 가진 수호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심장 파괴는 병을 깰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모든 자들이 심장병의 통제권을 원하게 될 것이며, 바로 그렇기에 모든 자들은 심장 적출을 거부할 것이다. 갈로텍은 그런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뱀단지들을 고정시켜둔 뱀부리미가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탁자 위의 뱀에 손을 뻗었다. 갈로텍은 뱀부리미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탁자에서 물러났다. 그때 수레가 또다시 진동했다. 폭언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누르며 갈로텍은 수레 밖으로 걸어나왔다.
대장군이 수레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자 보라크 군단장과 수호 장군들이 반가워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갈로텍은 강렬하게 닐렀다.
<니름 걸지 마! 도대체 아직까지 이 태풍 하나 어쩌지 못하나!>
보라크 군단장과 수호 장군들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육상에서 발생한 이 황당한 태풍은 나가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기적적으로 살아난 선인장 군단의 세키리 군단장이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이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키리 군단장은 여섯 개 군단 몰살과 악타그라쥬 파괴의 비보 이외에도 이 태풍이 륜 페이와 시우쇠가 집중시킨 열의 잔재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었다. 두 개의 인공 태양이 뿜어낸 열과 륜 페이가 강제로 끌어내린 뜨거운 수증기는 태풍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했다.
보라크는 자존심의 반란을 억누르며 닐렀다.
<대장군님. 저희들의 힘으로는 이 태풍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버려둬! 4년 동안 물을 다뤄왔으면서도 물에 대해 모르나? 열을 보관하는 것은 물이다. 바다가 아닌 이곳에서는 태풍에게 열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거대한 물이 없어. 여기 나타났다는 그 가짜 태양도 없어진 마당이니 태풍은 곧 사그라들 거다!>
수호 장군들은 군령자가 뿜어대는 지식의 급류에 힘겨워했다. 보라크는 고심 끝에 다시 닐렀다.
<하지만 군단병들은 몹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대수호자님과 마호가니 군단의 수호 장군들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분들은 현재 신명이 묶여서……>
<잠깐! 자네 지금 뭐라고 닐렀나?>
<예? 아닙니다. 저는 대수호자님의 위엄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니른 겁니다.>
그리고 보라크는 한참 동안 횡설수설했다. 그의 니름에 따른다면 보라크는 대수호자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만약 그런 세상에 내팽개쳐졌다가는 죽어버리고 말 대수호자의 첫째 가는 추종자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갈로텍은 보라크의 니름을 듣지 않았다.
갈로텍은 자신이 처해 있는 끔찍한 상황을 타파할 수단을 찾아내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상황이란 당연히 태풍 따위를 니르는 것은 아니다.
‘만약 키보렌의 대수호자에게 모든 심장병의 통제권을 넘기겠다고 니른다면?’
타협과 야합, 그리고 견제의 산물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첩된 우연의 결과로 대수호자 키베인은 현재 키보렌의 그 누구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자가 되어 있다. 실제로 키베인에겐 단순한 돌출 행동만으로 하텐그라쥬와 지도그라쥬의 두 도시를 긴장하게 만든 전력이 있다. 만약, 그 키베인의 권위라는 것이 감히 여신의 신랑을 사도구화하려는 발칙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대가문의 가주들의 권위마저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대가문의 가주들은 감히 키보렌의 대수호자를 상대로 심장병의 통제권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수호자는 현재 신명이 묶여 무력하기 짝이 없는 상태다. 갈로텍은 점점 빨라지는 사고의 속도에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갈로텍은 문득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누군가가 예를 들어,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군령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 느낌은 기묘했다.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재능이 발휘되는 것을 바로 곁에서, 아니, 그 내부에서 바라보는 느낌. 갈로텍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혼란스러워하자마자 곧 사고가 흐트러졌다. 그래서 갈로텍은 다시 사고의 흐름에 집중했다. 주의력을 여러 군데로 분산시켜도 무방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닌 힘을 자유롭게 써왔다. 다른 군령의 재능을 이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 상각하며 갈로텍은 키베인에게 집중했다. 가장 강대한 자이며, 동시에 가장 무력한 자, 그리고 그의 손 안에 들어와 있는 키보렌의 대수호자. 갈로텍은 머릿속에 계획이 정리되는 것을 느끼며 그 느낌에 푹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