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9) [3권 끝]

랜덤 이미지

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9)


소메로의 몸에서 비늘이 섰다. 청력에 집중하고 있던 두 남자는 그 소리를 들었다. 소메로는 그것을 눕히려 애쓰며 말했다.

“무서운 말을 하는군. 어떤 파국이지? 나가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두고 있고 전세계의 불신자들은 나가라는 이름에 벌벌 떨고 있어.”

“수호자 계급과 대가문들이 대립을 넘어서 본격적인 격돌을 시작했고 모든 나가들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무서운 권한은 주인을 잃은 채 절대로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할 리가 없는 자들의 사냥감이 되어 쫓기고 있습니다.”

“……설명해 봐.”

카루는 쫓겨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말했다.

“먼저, 비아스 마케로우가 최근에 저지른 실수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심장 파괴에 대해 고발했습니다. 다시 없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지금 대가문들은 비아스와 마찬가지로 그 힘을 이용하여 수호자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인 신의 신화가 약간 변형되어 도래한 것에 불과합니다. 생각 부족한 자들은 신은 만능이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가주들은 수호자들이 만능이며 또한 그 심장을 틀어쥐면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심장 적출은 스물두 살 이상의 모든 나가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규칙을 깬 사람은 제가 아는 한에는 한 명밖에 없습니다.”

“륜 페이.”

“예. 그렇습니다. 그외의 다른 나가들은 모두 심장을 적출했습니다. 심장병의 통제권을 얻는 자는 수호자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가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가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쥔 자는 키보렌에서 짝을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비아스에게 협력하고 있는 가주들도 내심 모두 심장병의 통제권을 자신이 가지길 원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만일 그것이 성공한다면, 이후부터 누가 심장을 적출하겠습니까? 아무도 그러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강제로 그렇게 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네가 말한대로 심장병의 통제권을 얻은 자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니까 그 힘으로 어린 나가들을 강제로 적출하게 할 수 있어. ‘저 아이를 데려와서 심장을 적출하라. 그러지 않으면 네 심장을 파괴하겠다.’는 식이라면 가능하지.”

카루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륜 페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미 성공했습니다.”

“그건 특별한 예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카루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소메로는 이 어처구니없는 무례에 격분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고함을 지를 정도라면 뭔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카루는 말했다.

“우리들 사회는 엄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심장 적출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래서 당신들은 그들을 은근히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는,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장난감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쥬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륜페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인 쥬어는 감히 당신들에게 남자의 가주 계승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장 적출을 받지 않은 어린애인 륜 페이는 나가 군단의 최대의 적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런 자들에 대해 신경쓰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거론하지 않습니다. 엄연한 사실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대신 무시하는 겁니다! 남자와 어린애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당신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비에나가 같은 경우엔 심장을 적출한 당신들 고귀한 여자들과 같은 약점도 없습니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소메로는 이해심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카루의 말에는 분명히 새겨들을 구석이 있었다. 카루는 격한 호흡을 가눈 다음 다시 말했다.

“마케로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숲으로 도망치면 아무도 나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숲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요. 점점 더 심장 적출을 받지 않은 비에나가가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자들이 그렇게 되겠지요. 사회 구조는 붕괴되고 도시들은 텅텅 비게 될 겁니다. 모든 나가들이 야만의 시대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면? 그때 대확장 전쟁이 다시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나가들이 아닌 불신자들에 의한 대확장 전쟁이겠지요. 곡물을 먹는 불신자들은 야만인이 되어 있는, 그리고 더 이상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나가들을 마음껏 유린할 겁니다. 우리들은 영웅왕 시대까지 후퇴해 버릴 겁니다. 그것이 나가의 파국입니다.”

소메로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카루와 스바치는 조바심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범한 무례가 카루를 걱정시키고 있었기에 카루는 더 이상 무례하게 굴 수 없었다. 소메로가 보여주는 인내심은 놀라운 것이었다.

겨우 소메로의 입이 열렸다.

“무서운 예언이군. 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말은 아니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케로우.”

“그래.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한 것은 대책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되는군. 내 생각이 맞나? 그렇다면 그 대책에 대해 설명해 주겠나?”

카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메로에 대한 평을 믿었기에 찾아왔지만 그는 솔직히 첫 번째 고비를 넘을 수 있을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 고비는 넘어갔다. 카루는 열성적으로 말했다.

“먼저, 여신이 풀려나야 합니다.”

“여신이?”

“예. 수호자들이 뺏어간 그녀의 힘이 다시 그녀에게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수호자들은 대가문의 가주들이 탐낼 만한 무기가 아니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여신을 모시고 심장병을 관리하는 원래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 카루. 내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장병의 통제권을 얻고 싶어할 것 같은데. 그걸 가지면 모든 나가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까. 최소한 수호자들에게 그런 힘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을 획득하기를 원할 것 같군. 그렇잖아?”

“맞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수호자들은 심장 파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신의 힘도 없는 상태에서 수호자들이 함부로 심장 파괴를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철회하겠어. 하지만 그 통제권을 가지면 다른 가주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른 가주가 그것을 가지게 될까봐 두려워서 자기가 가지려 나서게 되는 모든 가주들을, 어떻게 말릴 생각이지?”

카루는 갑자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스바치 또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대책이 있습니다. 저는 진작 그런 방법이 사용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책인지 말해 봐.”

“마케로우. 지금 심장탑에서는 세리스마가 농성 중입니다. 그런데 세리스마는 왜 비아스 마케로우를 처벌하지 않을까요?”

“처벌이라고?”

“세리스마는 언제든지 비아스 마케로우의 심장병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약한 선동자를 제거하고 가주들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소메로는 탄성을 내질렀다. 카루의 말대로였다. 소메로는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수호자들이 그토록이나 심장 파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겁니다. 세리스마가 비아스 마케로우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그럴 수 없어서일 겁니다.”

“그럴 수 없다니, 왜 그렇지?”

“그녀의 심장병에는, 아마 먹칠이 되어 있을 겁니다.”

소메로는 입을 벌린 채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카루는 쾌활하게 말했다.

“예. 언젠가 저희들은 저 탑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탈출한 다음에도 심장 파괴를 당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탈출하기 직전 닥치는 대로 심장병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마케로우. 저희들은 장차 심장 적출이 실시될 때 그런 절차가 덧붙여지기를 원합니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심장병에 이름을 적지 않으면 되겠군요. 그러면 누구도 심장 파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심장 적출은 유지되면서 모든 자들이 원하는 위험한 힘은 사라지는 겁니다.”

소메로 마케로우가 행하는 사고의 중심에는 언제나 마케로우 가문이 있었다. 그녀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은 가문의 복지, 평화, 안정이다. 그리고 사실 나가 여인들은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일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정치 단위는 도시이며 그 도시에서조차 가주들의 회의 회의이지 일방적 집행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에 의해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 이상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쇼자인테쉬크톨이라는 무서운 해결책이 있는 상황 하에서 가문들이 정도 이상의 대립을 일으키는 일은 없으며, 대립을 일으킬 사안조차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문들이 필요로 하는 외부의 것이 있다면 남자들이지만, 거리로 나가서 남자들을 끌어들인 카린돌에게 쏟아진 악평과 사모 페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없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들이 어느 가문을 방문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가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사회는 갈등의 요소가 배제된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 소메로는 전세계의 모든 나가들이 관련된 거대한 문제에 대해 참여할 것을 요구받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오래 전에 물러나 버렸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파국의 예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소메로는 그것에서 물러나는 대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카루와 스바치를 만족시킬 만한 접근 속도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방법이군. 누구의 심장병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아무도 심장 파괴를 사용할 수 없겠군. 너희 말대로 진작 그런 방법이 사용되는 것이 마땅해. 왜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을까.”

“사용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수호자들은 심장 파괴의 수단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거지요.”

“그렇군. 그렇다면 너희들의 그 계획에 나는 어떤 식으로 포함되어 있는 거지?”

스바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케로우. 당신은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가 되셔야 합니다.”

거의 분노를 일으키기 직전 소메로는 간신히 자신을 참아내었다. 그녀는 싸늘하게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참 묘한 일이군. 남자에게서 가문의 일에 대한 참견을 이렇게 정면으로 당하고도 내가 아직 너의 입을 찢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스바치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공포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소메로는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메로는 말했다.

“계속해 봐.”

“감사합니다. 현재 마케로우 가문에는 가주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가문의 최연장자입니다. 당신이 가주가 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비아스 마케로우는 당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수호 장군들이 우리 세계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오랜 전통이 4년 만에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가주가 되신다면, 당신은 비아스에게 정찰 대원이 되라고 명령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이커 한 자루 들고 밀림으로 떠나라고 할 수 있으신 거지요.”

“그래서?”

“그러면 잠시 동안 심장탑에 대한 공격이 중단되겠지요. 그때 저희 두 사람이 심장탑에 들어가서 여신을 구출하는 겁니다.”

“흐음. 그리고?”

“먼저 심장탑의 세리스마가 당신에게 고마워하겠지요. 대가문과 수호자들의 알력을 선동한 비아스 마케로우를 쫓아내신 거니. 그리고 나가들에게 닥쳐온 위험을 일깨운 당신에게 가주들도 고마워할 겁니다. 그리고 이미 여신이 구출된 이상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하게 된 수호 장군들이 돌아오겠지요.”

스바치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들에게 심장병의 관리를 맡기면 됩니다. 물론 앞으로는 심장병에 이름을 표시할 수 없게 해야겠지요.”

소메로는 스바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하지 않은 말이 뭐지?”

“네?”

“수호 장군들이 돌아오겠지요.’ 라고 말한 다음 네가 하지 않은 말이 있는 것 같군. 그게 뭐지?”

스바치는 갑자기 고개를 조금 돌렸다. 벽을 바라보던,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곳도 바라보지 않던 스바치는 그렇게 소메로를 외면한 채 말했다.

“갈로텍이 돌아오면, 카린돌 마케로우의 영을 다시 카린돌 마케로우의 육에게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군령자에게서 한 명의 영만을 다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신을 구출하면서 동시에 내 동생도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말이군.”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메로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4년 전, 너는 주로 카린돌과 함께 있었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소메로는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동생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카루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소메로가 다시 말했다.

“나는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가 될 수 없다.”

카루는 고개를 들었고 스바치는 고개를 돌렸다. 소메로는 그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는 두세나 마케로우 님이야. 그 분의 죽음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내가 감히 그 분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어.”

카루는 다급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두세나 마케로우 님이 무사하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예?”

“그렇게 생각한다고. 수호자들은 아마도 가주님을 해쳤을 거야. 그것은, 틀림없이, 비아스의 요구에 의한 것이겠지.”

소메로의 덕성스러운 얼굴에서 무서운 분노가 피어올랐다. 카루와 스바치는 긴장했다. 하지만 소메로는 곧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추측일 뿐이야.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이상 두세나 마케로우 님은 실종된 것이지 돌아가신 것이 아니야.”

스바치는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마케로우. 하지만 수호자들이나 비아스 마케로우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이 될 수 없는데,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인정하는지 알아봐야지.”

“무슨 말씀입니까?”

“수호자에게 물어봐야겠어.”

스바치와 카루는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소메로는 어떻게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루와 스바치는 소메로 마케로우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나가의 여인이었다.

“일어나. 두 사람. 나를 따라와.”

두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소메로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걸어갔다. 카루와 스바치는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2층으로 올라간 소메로는 잠시 멈추지도 않은 채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방문 앞에 도달했을 때에야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옛기억을 떠올린 스바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졌다. 소메로는 스바치의 표정을 한번 확인한 다음 나직하게 말했다.

“이곳은 카린돌의 방이야. 지금은 비아스가 쓰고 있지.”

스바치는 격분을 숨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카루는 소메로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황급히 말했다.

“왜지요? 자신의 방에 모든 연구 시설이 있는 걸로 압니다만.”

“그래. 비아스는 이곳에서 자지는 않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

소메로는 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었다. 가주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4년 동안 이 저택의 주인 역할을 했었고 그래서 열쇠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소메로를 따라 들어가려던 두 사람은 갑자기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흠칫했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탁한 공기가 복도로 흘러나왔다. 험한 일에 어지간히 익숙해져 있는 두 사람조차도 그 안에서 풍겨나오는 공기에는 비늘이 서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냄새에 두 사람이 주춤거리자 먼저 들어갔던 소메로가 말했다.

“빨리 들어와. 이 냄새를 온 저택에 퍼지게 하고 싶지는 않군.”

부드러운 부탁이었지만 어쨌든 여자의 명령이었고 두 사람은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소메로의 명령에 따라 카루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몸을 돌려 문을 닫았다. 그때 카루는 스바치의 무시무시한 비명을 들었다.

카루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스바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여 주먹을 움켜쥐었을 때 카루는 스바치가 무릎을 꿇은 것을 깨달았다.

“왜 그래, 스바치?”

스바치는 말하지도, 니르지도 못한 채 팔을 들었다. 그가 비늘이 뻣뻣하게 선 팔로 가리키는 방향을 본 카루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얼핏 보기에 그것은 의자에 꽁꽁 묶여 있는 나가 남자였다. 하지만 그 참혹한 꼴은 살아 있는 해부도를 연상시켰다. 갈라진 배에서 쏟아져나온 내장은 무릎 위에서 썩고 있었고 그 내장 무더기에서는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내장 무더기 아래의 두 다리는 각자 독특한 처지가 되어 있었다. 왼쪽 다리는 살을 발라내어 뼈만 남아 있었고 그 뼈는 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모루 위에 올려져 있었고 망치로 수없이 내려 친 듯 잘 다져져 있었다. 온몸에 있는 별의별 상처들을 다 거론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을 정말 전율하게 한 것은 두 눈이었다. 그 자의 두 눈에는 안구가 없었다. 대신 꼭 맞는 굵기의 말뚝이 꽂혀 있었다. 그곳에서는 진득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카루는 벽에 몸을 기댄 채 비늘을 부딪쳤다. 소메로는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동생은 학자지. 그 애는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고통을 주는지 시험하고 있어. 언젠가 수호자들에게 베풀어줄 신속하고 효과적인 처벌을 찾아내기 위해서. 재생력이 좋은 나가가 시험 대상이니 재료로는 그만이지.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재생하니까. 나가의 몸은 썩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 여기 그 애가 올린 개가를 봐. 그 고명한 약술사가 거둔 부분적인 성공을. 내장이 썩고 있지. 오, 여신이여. 내가 왜 이런 꼴이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좌시하고 있었습니까. 이토록 무서운 일을!”

카루는 마치 물 속으로 빠지는 사람 같았다. 계속해서 손으로 벽을 밀어대며 카루는 간신히 말했다.

“그, 그 자는 누굽니까.”

“직접 물어봐.”

“살아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실험을 하는 거지.”

카루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대신 무릎을 꿇고 있던 스바치가 힘겹게 닐렀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놀랍게도 차분한 니름이 돌아왔다.

<수호자 보트린입니다.>

카루는 깜짝 놀라서 소메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메로는 그 꼴을 더 볼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벽을 향해 서 있었다. 스바치가 다시 닐렀다.

<우리는 스바치와 카루입니다. 우리를 기억합니까?>

<아아, 물론 잘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속았던 분들이지요?>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을 당하신 건지…………, 아니, 잠시만요. 일단 당신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일어서서 걸어가려던 스바치는 멈춰섰다. 살아 있는 해부도가 다시 닐렀다.

<그러지 마십시오. 이건 제 벌입니다. >

<벌이라니오?>

<신부를 보호하지 않은 신랑이 받아야 할 벌입니다. 비아스는 처벌자로서는 최고지요. 풍부한 상상력과 좋은 기술, 그리고 과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니름도 안 됩니다! 이런 꼴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풀어드리겠습니다. 재생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강력한 니름에 머리가 아파올 정도였다. 스바치는 자신도 모르게 물러났다. 보트린의 니름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당신들도 내게 이러고 싶지 않습니까? 나를 증오하지 않습니까?>

스바치는 할 니름이 없었다. 그는 냉동 장치 안에 갇혀 있는 카린돌을 생각했다. 카루가 닐렀다.

[여신을 가둔 당신들을 증오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신을 풀어드리고 당신들이 그 분께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사람들의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보트린.]

보트린은 웃음에 가까운 니름을 보내어왔다. 카루는 주위를 둘러보며 닐렀다.

[왜 여신의 힘으로 저항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은 신명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눈이 보이지 않아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미 닐렀다시피 이건 제 벌입니다.]

[당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 벌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여신입니다! 저 미친 비아스가 아닙니다!]

[저는 그 분께 벌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왕 오셨으니 부탁 하나 해야겠습니다.]

보트린의 내장이 꿈틀거리며 비어져나왔다. 카루는 토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보트린이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카린돌을 구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 겁니다. 먼저 당신을 구하고나서.]

[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문제는 카린돌입니다.]

카루와 스바치는 왜 여신이라고 하지 않고 카린돌이라고 니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보트린은 설명했다.

[카린돌은 임신했습니다.]

스바치의 몸에서 비늘이 사납게 부딪쳤다.

[저는 냉동 장치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카린돌의 발 아래에서 비늘을 발견했습니다. 카린돌은 임신한 채 납치된 겁니다. 냉동 장치의 영향 때문인지 알의 성장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설명하던 보트린은 아예 자신의 기억을 모두 보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보트린이 보고 느낀 것을 모두 전달받았다.

[여신께서 카린돌의 육에 갇혀 계신 까닭은 그 육이 살아있으면서도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 없는 영은 존재할 수 있지만 영 없는 육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임신이라는 것은 기묘한 문제입니다. 알껍질이 형성되기 전까지 알과 모체는 하나의 몸이라고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은 분명히 두 개입니다. 만약 그것이 하나의 육이라면, 임신 상태에서 여인은 하나의 육에 두 개의 영이 있는 셈입니다. 그 상황에서 카린돌의 영이 빠져나가더라도 영 하나가 남게 됩니다.]

[아기의 영!]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신은 그 육에서 다시 빠져나오실 수 있습니다. 힘은 그 분께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체와 알은 별도의 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째, 아직 그 아기의 영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 전자라면 여신이 풀려날 방법은 카린돌을 꺼낸 다음 죽이는 방법뿐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아기의 영이 충분히 발달하면 여신은 풀려납니다. 그런데 그 경우 카린돌의 몸에는 아기의 영만이 남게 됩니다. 어쩌면 사산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카린돌을 구해달라고 닐렀지만, 정확하게 니르자면 그 아기를 구해달라는 니름입니다.]

흘깃 스바치를 돌아본 카루는 그가 지독한 흥분 상태임을 확인했다. 카루는 재빨리 닐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예. 갈로텍에게서 카린돌의 영이 빠져나와 그녀의 육으로 돌아가는 방법입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니름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제 벌을 편히 받을 수 있겠군요.]

[안됩니다. 이런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보트린은 정신을 닫았다. 카루가 아무리 닐러도 그의 니름은 보트린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보트린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혈루를 제외한다면, 그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4권에서 계속>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