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5)
칸비야와 륜은 둔덕길을 따라 시모그라쥬로 향했다. 둔덕 옆으로 아름다운 습지가 펼쳐져 있었다. 잎사귀 넓은 수상 식물들 때문에 물은 상당 부분 가려져 있었지만 드러나 있는 수면은 비스듬히 드리우는 햇빛을 받아 흩뿌려진 금편처럼 빛났다. 황혼의 하늘 아래 도요새가 습지 위를 한가롭게 날아다녔다. 고마리와 여를 떨게 만드는 가느다란 바람은 둔덕길 가운데를 따라 걸어가던 두 사람에게 습지의 풍부한 향취를 퍼다날랐다. 칸비야가 습지를 바라보며 닐렀다.
<륜 페이. 내가 호위자도 없이 처량하게 도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했었니? 그랬던 기억은 없는데, 혹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건가?>
<그런 적은 없으십니다. 그저 제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겁니다. 용단으로써 도시를 지킨 당신이 호위자도 없이 도시에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괴로울 것 같은데. 나가들은 너를 ‘백안시’ 할지도 몰라. 내 표현이 맞는 건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제가 한 일을 압니다.>
<분명히 너는 내가 아는 나가들 중에 가장 많은 나가를 죽인 사람이지. 하지만 그것은 여신을 구하기 위한 일이었지.>
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습지 가운데에서 젖은 통나무가 반짝거렸다. 그 위에 똬리를 튼 뱀이 저물어 가는 태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가서 너 자신을 변호하겠니? 내가 도와줄까?>
<아니요.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이 편하지 않구나. 여신의 구원자인 네가 나가 살육자 취급을 당해야 하다니.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나가 살육자는 만나본 적이 있지요.>
<정말이야?>
<예.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라고?>
<예. 어떤 인간입니다. 나가에 대해 누구보다 더 큰 증오를 가진.>
둔덕길이 끝나는 지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곳에 시모그라쥬가 석양을 받으며 서 있었다. 넓은 습지와 흩어진 수풀들 사이로 심장탑은 가느다란 바늘처럼 보였다. 륜은 칸비야 의장을 쳐다보았다.
<그럴 리가 있냐니,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니? 음. 그래. 이상한 일이야. 나가 살육자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야. 내가 할머니께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내 할머니께서도 당신의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던 그런 이야기지.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살 수가 있나.〉
륜은 약간 놀랐다. 칸비야의 지적은 그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륜은 나가 살육자의 이야기가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것이 칸비야의 말대로 몇 세대 전부터 계속되어온 이야기라면 케이건 드라카는 나가 살육자일 수 없다. 칸비야는 닐렀다.
<키탈저 사냥꾼처럼 대를 이어서 나가 살육자라는 이름을 받는 건가?>
<글쎄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시모그라쥬의 모습은 이미 풍경의 일부에서 생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도시를 바라본 칸비야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비늘을 약간 세웠다.
<벌써 다 왔군. 륜. 지금이라도 힘들 것 같다면 그냥 여기서 돌아가렴.>
<저는 도시 내에서 필요가 되어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갈로텍이 말에서 떨어졌을 때 그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놀랍게도 포로인 데오늬 달비였다.
대나무 군단의 군단병들은 데오늬 달비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해도 제지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군단의 뒤편에 있어야 할 포로 데오늬가 군단의 중간, 혹은 전위에서 발견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해도 병사들이 다급한 조치를 취하는 일은 없었다. 내버려두면 당황한 키베인이 그녀를 데리러 달려오거나, 혹은 그녀 스스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달려가다가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때 데오늬는 군단의 앞쪽에서 달리다가 숨이 턱에 닿아 쫓아온 키베인에게 “습지입니다! 대수호자님!”이라는 대답을 하여 대수호자를 상당한 지적 모험에 밀어넣고 있던 도중이었다.
“습지에서의 구보 속도가 궁금해진 겁니까?”
“누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대수호자님.”
“습지니까 누가 말에서 떨어져…… 예?”
데오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달려갔다. 키베인은 또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데오늬가 뒤쪽이 아니라 앞쪽으로 달려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에 군단병들은 놀랐다. 그리고 데오늬가 달려가는 방향을 보곤 기겁하며 사이커를 뽑아들었다.
데오늬는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엎드린 대장군을 내려다보았다. 뒤이어 도착한 대수호자는 놀란 표정으로 갈로텍과 데오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사이커를 뽑아든 수호 장군들과 군단병들이 대수호자의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대수호자는 기겁하며 닐렀다.
<그만! 그만둬요!>
수호 장군들과 군단병들은 다행히도 대수호자를 대장군만큼 존중했다. 그래서 데오늬를 향해 겨누어지려던 사이커는 허공에서 멈췄다. 데오늬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갈로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수호자는 설명을 요구하는 병사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그들 사이를 헤치고 데오늬와 갈로텍에게 다가갔다. 그가 몸을 구부리자 데오늬가 말했다.
“이 분이 갑자기 낙마하셨습니다. 대수호자님.”
“소리를 들은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닐러보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달비 부위.”
<대장군? 대장군.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떨어지셨지요?>
대답 대신 괴로운 신음이 돌아왔다. 키베인은 갈로텍이 낙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극도로 긴장하여 바라보는 시선들에 거북함을 느끼며 키베인은 조심스럽게 갈로텍을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키베인은 비늘을 세웠다.
<이런, 허물벗기로군!>
그에게 집중되던 시선들의 성격이 바뀌었다. 보라크 군단장이 정신을 점잖게 유지하려 애쓰며 닐렀다.
〈그렇군요. 비늘이 일어나고 있군요.>
좋은 상황 설명이라 하기도 어렵고 대안 제시는 절대로 아닌, 별 볼 일 없는 니름이었다. 대수호자는 고민하다가 문득 데오늬가 아직까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위의 나가들을 둘러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그때 키베인은 데오늬가 여자임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황당함 비슷한 감정까지 떠올렸다.
그러나 그의 입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달비 부위. 지금 대장군은 허물벗기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살갗이 벗겨지는 겁니까, 대수호자님?”
“그렇습니다. 당신이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요.”
“제가 요리를 잘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대수호자님?”
완전히 멍해진 대수호자는 힘겹게 데오늬에게 질문했고, 가까스로 데오늬가 매우 독창적인 상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데오늬의 머릿속에서 대수호자의 요청은 대략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일으켰다. ‘나가가 허물을 벗는다. ─도와달라고 했으니 누군가가 그 허물을 벗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 나가는 아마도 박피 전문가 등으로 불리는 사람일 것이다. 대나무 군단에는 그 박피 전문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신 인간 포로가 있다. 인간은 요리를 해서 먹으니 동물의 껍질을 다루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박피 전문가를 대신할 수 있다. 요리를 잘 하는 데오늬 달비여, 도와주오.’
키베인은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쥐고 싶은 것을 참으며 말했다.
“놀라운 상상이지만, 아, 정말 놀랍군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박피 전문가라는 것이 없습니다. 허물은 자기가 알아서 벗습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대수호자님?”
“갈로텍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데오늬는 멍한 표정으로 키베인을 바라보았다. 차츰 그녀의 얼굴에 뚜렷한 결심이 떠올랐다. 데오늬는 갈로텍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안녕! 잘 생긴 오빠. 저랑 놀아볼래요?”
“……달비 부위. 그게 아닙니다.”
“아닙니까, 대수호자님?”
“그거 아마 유혹인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다. 그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여인이 되어주십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대수호자님.”
데오늬는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갈로텍에게 말했다.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은 내가 네 어머니란다.”
갈로텍이 혹 그런 반생물학적인 고백을 믿어주지 않을까 공상해 보던 키베인은, 자신이 데오늬에게 꽤 물들었음을 깨닫고는 두려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