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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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7)


데오늬 달비는 주변의 건물들을 감탄 속에서 바라보았다. 나가들의 도시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조명이 거의 없기에 데오늬는 많은 부분을 볼 수 없는 것에 애석해했다. 반면, 그녀 자신은 말과 함께 나가들에게 뚜렷하게 보였다. 데오늬는 듣지 못했지만 무수한 니름이 그들에게 다가왔고 키베인은 그 모두에 정신없이 대답했다.

그때 갑자기 갈로텍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데오늬는 기뻤다. 그녀는 갈로텍이 드디어 자신의 말에 대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갈로텍은 그녀의 소망을 무시하며 전방을 응시했다.

<저게 뭐지?>

말고삐를 쥐고 걸어가던 키베인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대장군! 괜찮은 겁니까? 우리는 당신이 허물벗기를 할 수 있도록 시모그라쥬에 들어온 겁니다. 인간과 말에 대해 꽤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들은 결국 당신이 허물벗기를 하는 동안 체류를 허락했습니다. 지금 괜찮아 보이는 저택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질문들에 대해 해명하는 것도 이제 힘들어지려는 판국이군요.>.

<저건……, 저건…….>

키베인은 그제야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들의 앞쪽에는 심장을 가진 나가가 서 있었다. 키베인은 그 심장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갈로텍은 비늘을 부딪치며 전방을 응시했다.

<나는 저자를 알아.>

키베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데오늬 또한 마찬가지였다. 데오늬는 반갑게 외쳤다.

“공작님! 공작님이시군요!”

아직 뜨거운 석조 건물들 사이에서, 륜 페이는 뜨거운 심장을 불태우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륜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시모그라쥬의 시민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그들을 조직화하는 사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륜은 몰려나온 군중들에게서 위험한 감정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칸비야 고소리의 중립 선언은 그 도시의 모든 시민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적지 않은 숫자의 나가들이 그녀에게 찬성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은 비참함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은 겁쟁이 의장 때문에 자신들이 나가의 위대한 전진에서 탈락한 낙오자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밤, 그들의 도시 한가운데서 목격하게 된 불길한 대치를 보며 시모그라쥬의 많은 시민들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만은 자신이 지나치게 한적한 길에서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열을 볼 능력도 없고 조명 상태도 열악한 그곳에서, 데오늬 달비는 몰려드는 나가를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외쳤다.

“공작님! 접니다! 북부군 부위 대나무 군단 포로 데오늬 달비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달비 부위. 직함이 길어지셨군요.”

다행히도 데오늬의 육성이 나가들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륜은 다시 말했다.

“당신과 그 수호자는 대호왕 폐하와 함께 있어야 하는데, 잠깐만요. 아니, 말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그냥 옛날 생각을 해주십시오.”

데오늬는 쾌히 그렇게 했다. 데오늬의 심상은 깨끗했고 륜은 어렵잖게 북부군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 있었다. 륜은 사모가 키보렌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거의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기분 속에서 그녀가 아직 안전하다는 사실을 통해 간신히 자신을 억누른 륜은, 데오늬가 아직도 충실하게 옛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내버려두기로 했다. 륜은 키베인을 향해 닐렀다.

<당신이 키보렌의 대수호자였습니까.>

<그래. 륜 페이.〉

대답하던 키베인은 문득 륜이 그저 확인하기 위해 그런 니름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륜은 몰려드는 군중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명징하게 닐렀다. 그럼으로써 그 군중들이 돌발 행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단속한 것이다. 키베인은 감탄했다. 륜은 말 위의 나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장군 갈로텍.>

갈로텍은 쇠약해진 몸을 무시하며 닐렀다.

<용인 륜 페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군중들은 더욱 긴장했다. 칸비야는 갈로텍이 륜을 배신자로 지목하여 군중들을 선동하려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용인이니 조심하라고 경계시키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륜은 담담하게 닐렀다.

<허물벗기군요. 많이 편찮으신 듯하군요.〉

<즐거운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군.>

륜은 칸비야를 슬쩍 돌아보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은 순전히 의장을 위한 동작이며 니름으로 바꿔본다면 ‘안심하세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륜은 갈로텍을 향해 닐렀다.

<먼저, 이 도시는 중립 지대임을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나도 알아. 인실롭이 내게 확인 요청을 했으니까.>

칸비야는 안도했다. 하지만 갈로텍은 날카롭게 닐렀다.

<우리 서로는 그런 관계가 아니지.>

〈그런가요.>

대답하던 륜은 문득 그의 눈 앞의 수증기들이 기묘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사실에 감탄했다. 갈로텍은 대기 중의 습기를 움직여 글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륜 같은 용인만이 읽어낼 수 있는 미약한 움직임이고, 고도의 집중력이 엿보이는 훌륭한 기술이었다. ‘몰려든 자들에게 여신의 감금자 따위의 니름을 한다면 등 뒤의 여자를 죽이겠다.’ 기술에 대한 순수한 감탄을 표시한 다음, 륜은 닐렀다.

<그냥 생각만 하셔도 됩니다. 힘드시겠군요.>

이번에는 갈로텍이 감탄할 차례였다. 여신의 두 신랑은 서로에 대한 순수한 놀라움을 느꼈다. 그들 모두 같은 힘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한 명은 예민함에 의해, 한 명은 자기화에 의해 그들은 발자국 없는 여신의 힘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구현해내고 있었다.

갈로텍이 공격을 시작했다.

갈로텍은 륜의 심장을 노렸다. 단순하면서 직접적인 수단이었다. 그는 륜의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을 끓어오르게 하려 했다. 그러나 륜은 예민했다. 갈로텍이 채 시도도 하기 전에 륜은 그 의도를 읽었다. 륜은 용인의 방식으로 반격에 나섰다.

륜과 달리, 예민함을 가지지 못한 갈로텍은 다가오는 륜의 정신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장기는 외부에 대한 민감함이 아니었다. 그러나 군령자의 방어는 륜을 놀라게 했다. 륜은 갈로텍의 신명을 포착하여 묶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을 예견하고 있던 갈로텍의 뒤에서 그라쉐가 야수적 본능으로 위험을 깨달았다. 갈로텍은 륜의 심장을 공격하려던 것을 재빨리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내부에 있던 군령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어 전면을 빠르게 지나가게 했다. 호흡 한 번 하기도 힘든 짧은 시간 동안, 륜은 눈앞의 상대에게서 수십 명의 인격을 느꼈다. 용인은 그중에서 군령자의 신명을 읽어낼 수 없었다.

용인의 물 같은 날카로움은 무엇이든 꿰뚫는다. 하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은 꿰뚫을 수 없다.

무서운 공방이었지만, 그들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한 순간의 시선의 엇갈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륜 이외엔 아무도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여럿이 되어버렸던 갈로텍 또한 그 전체 상황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로텍은 륜의 니름을 빨리 이해하지 못했다.

<화리트? 당신, 화리트를 데리고 있군요!〉

내가 화리트의 영도 내보냈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를 아는 영이 잠시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그를 데리고 있는 겁니까?>

무의식 중에 화리트에 대해 생각하려던 갈로텍은 순간 그라쉐의 감각을 통해 위험을 직감했다. 갈로텍은 그것이 어떤 위험인지 생각했고, 곧 뇌리에서 모든 생각을 지웠다. 륜은 갈로텍에게서 화리트에 대한 것을 더 이상 읽어낼 수 없었다.

대신 륜은 다른 것을 읽었다.

<많이 아프시군요.〉

<동정할 필요 없어.>

륜은 갈등을 느꼈다. 그것은 다시 없는 기회였다. 그곳에서 갈로텍의 신명을 묶을 수 있다면 북부군은 하텐그라쥬 공격에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니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륜은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두 명의 갈로텍이 있었다. 오기에 가까운 의지로 륜에게 맞서오는 갈로텍과 무서운 고통을 호소하는 갈로텍이 있었다. 갈로텍 자신마저도 그중 전자밖에 알지 못했지만 륜은 둘 다 볼 수 있었다.

다 보인다는 것은 너무 괴로워. 지그림 자보로, 이런 걸 얻지 못한 당신은 행운아야.

<화리트에 대해 닐러주십시오. 강제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갈로텍은 잠깐 고민했다. 그에겐 잠깐 동안 자신을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화리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군중들 때문에 불가능했다. 영의 납치자라는 악평은 두렵지 않았지만, 갈로텍은 악평이 가져다줄 손실이 두려웠다.

<강제로 해봐. 기대가 되는데.>

<당신은 더 아파할 겁니다.>

<그건 내가 신경쓸 문제인 것 같군. 네 문제가 아니야.>

그런데 내 문제이기도 해. 보이니까.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일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그 니름들을 들은 키베인은 그가 알 수 없는 수준에서 두 초인이 뭔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음을 짐작했다. 키베인은 닐렀다.

<륜 페이. 지금 대장군은 불편한 상태야. 아량을 베풀어줄 수 없나?>

<똑같은 니름을, 판사이를 수장시키기 직전의 갈로텍에게 닐렀다면 그가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하군요.>

<나는 갈로텍 대장군이 아니라 륜 페이에게 물었어.>

<제게요?>

〈그래.〉

<제게…… 갈로텍은 제 적입니다.>

<이곳은 중립 지대야. 그렇잖나?>

〈그렇게 니른 것은 접니다. 하지만 대장군이 받아들이지 않으시는군요.>

키베인은 공격을 시작한 것이 누구인지 짐작했다. 그는 갈로텍의 비늘이 일어난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장군. 관두십시오.〉

<대수호자. 륜 페이가 없다면 북부군은 오합지졸입니다.>

<당신은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허물이 벗겨지고 있는 것은 륜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포기하세요. 륜! 대장군이 포기한다면, 칸비야 의장의 중립 선언을 존중하겠다면 당신도 그렇게 할 텐가?>

잠깐 망설이던 륜은 갈로텍을 주시하며 닐렀다.

<화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닐러준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화리트를 앞으로 내보내십시오.>

키베인은 다시 갈로텍을 바라보았다. 고통에 까무러치고 싶은 기분 속에서 갈로텍은 힘들게 닐렀다.

〈저 아래에 틀어박혀서 나오려고 하지 않아.〉

<설득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려가서? 미안하지만 그것도 어렵군. 내 속에는 괴물이 하나 있거든.>

<괴물?>

갈로텍은 필사적으로 카린돌에 대한 생각을 쫓아내며 무미건조하게 닐렀다.

<나를 잡아먹으려드는 괴물이야. 그래서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어.>

<그러면 다른 영을 내려보내십시오.>

갈로텍의 몸에서 비늘이 부딪혔다. 키베인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갈로텍은 한참 후에야 말했다.

“주퀘도 내려가서 화리트를 좀 데려다주시겠습니까?”

주퀘도는 대답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갈로텍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았던 륜은 질문하지 않았다.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며 륜은 조심스럽게 닐렀다.

<고소리 의장님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공격당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을 끝내는 문제에 대해 토의해 보고 싶습니다.〉

<너희들이 발자국 없는 여신을 방면하기 전까지는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륜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륜은 정의감 때문에 사실을 니르려 하는 칸비야에게 조용히 손을 들어올렸다. 칸비야는 정신을 닫으며 왜 그러느냐는 표정으로 륜을 바라보았다. 군중들 때문에 니름을 이용할 수 없었던 륜은, 그래서 간단한 방법을 이용했다. 륜은 칸비야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의미가 분명했기에 칸비야는 청력에 주의를 기울였다. 륜은 속삭였다.

“사실을 니르면 데오늬 달비가 죽을 겁니다. 갈로텍의 등 뒤에 있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다른 자들은 믿지도 않을 겁니다.”

칸비야는 비늘을 부딪쳤다. 륜은 그녀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갈로텍을 향해 닐렀다.

<북부인들은 여신을 감금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랬는지는 그들도 모릅니다.〉

<거짓니름하지마라.>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북부인들은 누가 그랬는지 모릅니다. 북부인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끝까지 북부인들을 핍박한다면, 북부군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하텐그라쥬를 공격할 겁니다. 그러니 전쟁을 그만두고 여신을 감금한 범인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파멸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거짓으로 모든 사실을 덮어버리려 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텐그라쥬는 파괴될 겁니다. 갈로텍.>

<너희들이 파멸할 것이다! 감히 이 땅에 발을 들여놓고 살아남기를 바라느냐?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보복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륜은 넘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것을 보았다. 언젠가 그들 자신들에게서 발견한 만연한 허위를, 륜은 상대방에게서도 느꼈다. 그것은 륜을 슬프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용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용인 같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주퀘도가 되돌아왔다.

“갈로텍. 문제가 있군.”

“문제?”

“화리트는 어떤 괴물을 막고 있어서 나올 수 없다고 하더군. 그가 지금 있는 자리를 비우면 괴물이 위로 올라올 거라고 하더군.”

눈치 있게 말을 얼버무리는 주퀘도에게 갈로텍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다시 륜에게 닐렀다.

<들었나?>

<듣지는 않았지만, 알았습니다.〉

륜의 공포스럽기까지 한 능력에 갈로텍은 비늘을 세웠다. 그 때문에 허물이 살갗에서 떨어지며 온몸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들었다. 갈로텍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륜을 노려보았다.

륜은 우울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인은 아니지만 갈로텍은 그 시선에서 고통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자신이 고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륜은 부드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은 결국 하텐그라쥬에서 해결되겠군요.>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어떻게 해결될지 알아.〉

<저도 압니다.>

갈로텍은 차게 웃었다. 륜은 그 웃음에 호응하듯 미소지으며 닐렀다.

<화리트에게 전해 주십시오.>

다음 순간 갈로텍은 정신이 타버릴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륜은 갈로텍의 정신을 파고들어 그 본능에 각인시켜둘 듯이 닐렀다.

<나를 위해 죄책감을 묶어준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상실감까지 함께 느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그 가차없는 난입을 저지하기 위해 헛된 시도를 하면서, 갈로텍은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리트가 륜의 죄책감을 묶어놓은 것처럼 륜은 갈로텍에게 자신의 전언을 묶어놓았다. 갈로텍은 이제 죽을 때까지 륜의 니름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모욕감과 패배감 속에서 두 눈을 불태우며 갈로텍은 륜을 노려보았다.

륜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외면했다.

<고소리 의장님. 사정이 여의치 못해 댁까지 바래다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키보렌의 대수호자와 대장군 갈로텍이 저를 대신하여 의장님을 모실 겁니다.>

칸비야 고소리가 뭐라 대답할 틈은 없었다. 륜은 곧장 눈을 돌려 데오늬 달비를 바라보았다.

“달비 부위. 아직도 옛생각을 하고 있도록 내버려두었군요. 미안합니다. 이제 그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당신을 구출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 윷놀이도 윷가락 셋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공작님.”

키베인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륜은 이해할 수 있었다. 데오늬는 모든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는데 억지로 시도하면, 즉 윷가락 세 개로 윷놀이를 시작하면 재미도 없고 놀이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었다. 륜은 빙긋 웃으며 그녀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예. 셋으로는 부족하지요.”

데오늬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은 세상 없어도 그녀가 구출될 거라고 믿게 되었다. 륜은 키베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대수호자님. 제가 묶었던 것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만 시모그라쥬와 북부군의 약속에 따른다면 이곳에는 수호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갈로텍을 위해 좀더 참아주십시오.>

갈로텍이 독 오른 뱀 같은 기세로 닐렀다.

<그 따위 동정을 닐러서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짓은, 너자신을 위해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다. 하텐그라쥬에서 네가 돌려받아야 할 것만 불어날 뿐이니까!>

륜은 부드럽게 웃으며 닐렀다.

<예. 다음에 만날 때는 분명히 하텐그라쥬겠군요.>

<그 다음에는, 아마도 더 이상 서로를 볼 일이 없을 겁니다.>

<동의한다.>

<하텐그라쥬에서.〉

<하텐그라쥬에서.〉

륜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군중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시모그라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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