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8)
륜이 떠난 다음, 칸비야는 대수호자와 대장군, 그리고 데오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자신의 쥐 사육사에게 손님에 대한 몇 가지 주의를 한 다음― 데오늬 달비는 특별 요리가 아니라 방문자라고 설명해 주는 칸비야는 못 들을 니름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사육사를 내버려둔 채 응접실로 돌아왔다. 응접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키베인과 데오늬뿐이었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기 전 칸비야는 사용인들의 부주의를 저주하며 불을 가져오라고 닐러야 했다. 응접실은 데오늬에게 도저히 적절한 밝기가 아니었다. 사용인들이 당황하며 밤에 책을 읽을 때 사용하곤 하는 불을 가져오자 칸비야는 그들을 모두 쫓아낸 다음 응접실에 앉았다.
<대수호자님. 누옥을 방문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소리. 저는 대수호자의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허물벗기를 해야 하는 어떤 남자의 동료 자격으로 시모그라쥬를 방문 중입니다. 이곳에는 수호자가 있어서는 안 되지요?>
<예. 그렇긴 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키베인은 빙그레 웃었다.
<예. 그리고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을 하나 더 드리자면, 제 또 다른 동료를 위해 육성으로 대화했으면 하는군요. 그녀가 대화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요.>
칸비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데오늬를 바라보았다. 데오늬는 나가 저택 안의 모습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데오늬 달비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북부군 부위 대나무 군단 포로 데오늬 달비입니다.”
그리고 데오늬는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키베인은 눈치 빠르게 말했다.
“의장님입니다.”
“아, 예! 의장님!”
칸비야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비록 육성 대화의 요구라든가 데오늬의 말을 거든다거나 하는 대수호자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칸비야는 대수호자를 위해 경의를 가지고 데오늬를 대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내 집 안이니 가주라고 부르면 됩니다. 속박당하고 있는 몸이니 상심이 크겠군요.”
데오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주님. 공작님께서 구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가주님.”
하마터면 꼭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할 뻔했던 칸비야는 아무리 중립 도시의 평의회 의장이라도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칸비야는 말을 바꿔 얼버무렸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데오늬. 미안하지만 잠시 우리끼리 니름으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말은 좀 어려워서 그럽니다.”
“그러십시오, 가주님! 그런데 그동안 이 방을 구경해 봐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
데오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키베인은 데오늬가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칸비야를 바라보았다.
<무슨 긴한 니름이라도 있으십니까, 고소리?>
<대수호자님. 이 도시의 중립 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그 륜 페이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약간 놀라던 키베인은 곧 체념하는 얼굴로 닐렀다.
<여신이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겠군요.>
<예. 그것이 사실입니까?>
<제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어려운 질문이시군요. 일반론을 니른다면, 모든 나가들을 상대로 그 사실을 공표하고 사건 관계자 전부가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 사건 관계자가 거의 모든 수호자들인 것 같군요. 이 사기극의 거대함에 할 니름을 잃게 되는군요.>
<계속 가정에 입각해 니르겠습니다. 만일 그것이 기왕의 사실인 경우,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호자들도 영원히 여신을 가둬둘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수호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간단한 문제부터 보다 복잡한 문제까지, 그 감금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는 산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척하고 계신 겁니까?>
<어떤 수호자들은 수중에 들어온 힘의 강대함에 매료되기도 할 테고 어떤 수호자들은 심장탑 밖에서, 한계선 너머에서 만나게 된 모험에 만족하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어떤 수호자들은 언젠가는 여신이 다시 풀려날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할 겁니다.〉
<북부군이 성공한다면 그 시기는 앞당겨지는 겁니까?>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럴 경우 힘과 모험을 잃게 된 수호자들은 화를 내겠지요.>
<대수호자님. 그런 것에 만족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제 경험상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모르되 이미 손에 들어온 것을 다시 포기하는 것은 니름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니르시는 그 힘과 모험을 동경하는 수호자들은 모든 북부인들을 궤멸시킨 후에도 그 힘을 포기할 것 같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물론 동족들을 상대로 쓰겠지요. 당신이 대수호자가 되기 전에 발생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잖습니까.>
키베인은 침울하게 긍정했다. 칸비야는 닐렀다.
<이미 중립을 선언한 시모그라쥬는 키보렌 전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개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키보렌의 대수호자입니다. 수호자들이 저지른 일을 고백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괴로운 지적이군요. 차라리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대수호자의 자리를 물려주는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만. >
키베인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던 칸비야는 조심스럽게 닐렀다.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
<도대체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수호자 이외의 사람들에게 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여신의 구출이지요. 하지만 여신을 감금한 것은 사실은 수호자였습니다. 그러면 수호자들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우리에겐 북부의 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에겐 필요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수호자들에겐 필요했습니다.>
<무슨 니름입니까? 수호자들이 무엇 때문에 땅이 필요합니까?>
키베인은 창가 쪽을 돌아보았다. 데오늬는 그곳에 없었다. 그녀를 찾던 키베인은 데오늬가 방 한쪽에 있는 화로와 춤채들을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가설 속에서,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하텐그라쥬의 수호자들일 겁니다. 그들이 모든 일을 시작했을 테니까요.>
〈모두 가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그 가정형은 제외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 모든 일을 시작한 하텐그라쥬의 수호자들만이 의장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짐작해 본다면, 그들이 그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그럴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칸비야는 비늘을 부딪쳤다.
<다른 이유가 없다고요! 그토록 많은 나가와 불신자들이 죽었는데!〉
<능숙한 춤꾼이 춤채를 휘두르는 것에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춤꾼이 오른팔이나 왼팔을 들어올리는 것, 혹은 도약하거나 회전하는 것에 이유는 없습니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물론 춤꾼에게 물어본다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예술적 고취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등으로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의 대답이라면 저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키베인은 옷자락을 어루만졌다.
<여자들을 위한 세상에 태어나 실질적, 물질적, 현실적 권력은 가지지 못한 채 가식적인 존경만을 받은 끝에 모든 나가들을 증오하게 된 수호자들은, 그러나 차마 나가 전체를 공격할 수 없어 그 증오를 돌릴 상대가 필요해졌습니다. 그것이 불신자들입니다. 그들을 증오할 이유는 사실 없습니다. 서로 얼굴 볼 일도 없는 자들을 증오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수호자들이 찾아낼 수 있는 이유는 까마득한 옛날의 대확장 전쟁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신자 공격에 대한 역사적 당위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를 공격하는 대신 불신자들을 공격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런 공격을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해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설명이 더 그럴듯합니까?>
칸비야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키베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막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닙니다. 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입니다. 오직 할 수 없는 일만 무시됩니다. 왜 아무도 하늘치에 올라가지 않으려 하는지 아십니까? 아무도 하늘치에 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시도됩니다. 그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춤꾼은 닐렀지요. 춤꾼이 춤을 추는 까닭은 그곳에 춤채가 있기 때문이라고.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한다는 겁니까?>
〈예. 먹을 수 있는 것은 먹고요.>
무슨 니름인지 몰라 당황하던 칸비야는 곧 정신적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먹을 만한 것을 가져오라고 닐렀다. 꽤나 시장했던 대수호자는 칸비야의 배려에 감사했다. 칸비야는 다시 질문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만다면, 수호자들의 죄상을 고발할 수 있는 당신은 그렇게 해야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단 하텐그라쥬에 대한 북부군의 공격의 결과를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때쯤 되면 실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사람도 더 많아지리라 생각됩니다. 의장님이 니르시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데 있어 호응을 얻기도 쉽겠지요.>
칸비야는 그 대답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군요. 저도 일단 대수호자님의 모범을 따르겠습니다. 중립 선언을 지켜야 하니까요. 하지만 북부군의 공격이 실패한다면, 저는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니르겠습니다.〉
<그건 의장님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의장님의 뜻대로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키베인은 오래간만에 만찬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키베인은 데오늬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칸비야는 하인들에게 약술사의 도구들을 얻어오라는, 그들을 꽤 당황시키는 명령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데오늬는 약술사의 도구들이 요리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곧 깨달았고, 그래서 칸비야에게 감사한 다음 그 도구들로 요리를 했다. 자신이 우수한 요리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데오늬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한 키베인은 그 요리를 먹고 말았다. 그리고 밤새도록 배탈에 시달려야 했다. 칸비야는 그것이 그녀가 겪어야 했던 온갖 놀라운 일의 웃기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은 옳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