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1)
춤꾼이 춤을 출 때, 어디까지가 춤이고 어디까지가 춤꾼인지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불가능하다. 춤과 춤꾼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 둘은 하나다.
-어느 나가 춤꾼.
춤추는 자
정수리 위에서 타오르는 정오의 태양이 하텐그라쥬의 그늘을 삼켜버렸다. 높이 솟은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은 새싹의 자신만만함과 고목의 장엄함을 갖춘 기이한 나무였다. 그 태고의 나무 아래, 도시를 둘러싼 아름드리 나무들은 마치 왜소한 덤불처럼 보인다.
태어났을 때 소린실로페 메티솔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스물두 살 이후로는 인실롭이라고만 불려온 나가군의 수호 장군은 냉혹의 도시를 목도하며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 보고자 시도했다. 상당수의 수호 장군들과 거의 모든 군단장들이 냉혹의 도시 출신인 나가의 군대 안에서, 비스그라쥬 출신의 인실롭이 냉혹의 도시에 대해 느껴야 했던 감정은 특별한 것이었다. 때때로 인실롭은 키보렌에 도시라고는 하텐그라쥬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었다. 동료 수호 장군들이나 군단장이 ‘도시’라고 니를 때, 그것은 예외없이 하텐그라쥬였다. 그런 무관심함, 그러니까 그들이 ‘비스그라쥬’라고 니를 때 담아보이곤 하는 충실한 경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신경함이 오히려 인실롭의 경외감을 자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그곳이 오물과 헛소문을 자랑스러운 생산품으로 삼는 너무도 평범한 생활 공간인 것처럼 닐렀다. 그리고 인실롭은 바로 그런 무신경함에 질투를 느꼈다. 그는 그렇게 니를 수 없었다. 다른 자들이 비스그라쥬를 그렇게 니를 수 없는 것과 그가 하텐그라쥬를 그렇게 니를 수 없다는 것은 질이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마침내 두 눈으로 하텐그라쥬를 보게 된 지금, 인실롭은 자신이 심경의 동요 없이 그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착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영원히 경외감 속에서 하텐그라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동료 수호 장군 한 명이 닐렀다.
<정오입니다. 인실롭 군단장.>
그것은 하루가 지났다는 의미다. 어제 정오에 내전 시한이 만 하루였기에, 인실롭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는 동작이었고, 그 동작은 니름 없는 동의를 얻었다. 인실롭은 전령을 불렀다. 전령이 달려왔다.
<가서 전해라. 이것은 최후통첩이다. 일몰까지 어제 정오에 내건 요구 조건들이 수락되지 않으면 우리는 개전에 들어가겠다.>
전령은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곧 몸을 돌려 달려갔다. 인실롭은 전령이 놀란 이유, 그리고 주위의 수호 장군들이 수심 깃든 정신을 내비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제 정오에는 협박이 없었다. 그저 요구 조건의 전달이 있었을 뿐이다. 하루가 속절없이 지나고 시한을 넘겨버린 지금, 또다시 시한을 반나절 연장하면서 인실롭이 아무 짓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또다시 반나절이 지난다면 더 이상 시한을 연장시킬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인실롭은 제발 그녀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길 바랐다.
인실롭은 물론 합리적인 나가다. 하지만 그는 하텐그라쥬를 공격한 첫 번째 나가로 기록되는 것이 달가울 것 같지는 않았다.
하텐그라쥬 공회당, 평의회 의장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비록 평의회라는 이름이 고결한 평등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그런 평등은 언제나 실제와 무관하다. 어떤 사회에도 자신이 필요할 때만 평등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하텐그라쥬 내에서 그런 자들의 목록을 구성해 보고 싶다면 의장실에 담소라도 나누는 것처럼 모여 앉아있는 가주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각자 대가문의 가주들인 그녀들은, 그러나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지위에 대한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것을 움직이는 자는 더 많은 움직임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지위를 만끽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지위가 불러오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모였다. 현재 그녀들의 위험은 도시 바깥에 도달해 있는 다섯 개 군단과 수십 명의 수호 장군이라는 매우 실제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의원들은 인실롭의 처지를 이해했다. 피나무 군단의 군단장이 반나절을 더 연장시켜준 이유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반나절 후에는 반드시 공격할 거라는 식으로, 인실롭은 적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감정적 이유 때문에 후방의 불안을 남겨둘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의원들은 모든 이들에게 분노와 절망이 깃든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와 절망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되는 것 같았다.
모든 이들이 하고 싶지 않은 니름을 꺼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누군가가 닐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장난을 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장난이라고요? 이게 장난이었습니까?>
<예. 장난입니다.〉
반박하려던 자는 문득 상대방의 니름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장난이었다고 니르는 것이 아니라 장난이어야 한다고 니르는 것이었다. 힘을 가진 자는 수호자들이며 그들이 도시의 현관에 발을 들여놓다시피 하고 있는 지금 그들에 대한 적대 행위는 있을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장난으로 치부되어야 한다. 물론 심장탑에 대한 포위 공격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단순한 장난으로 격하시키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련된 모든 이들이 항상 그렇듯이 희생되어야 하는 어떤 자들은 제외된다.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사태의 해결책은 그것을 우발적 소동으로 치부하는 방법뿐이다.
<적극적인 대처를 필요로 하는 보다 중요한 일이 다가오고 있는 이상, 이 모든 사건은 장난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실롭 군단장이 왜 시모그라쥬가 아닌 하텐그라쥬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전쟁 전문가는 그 사람이지요. 북부군이 오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저지해야 합니다. 도깨비 장난은 그만둬야지요.>
물론 그녀가 하고 싶었던 니름은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홀로 심장탑을 지키며 다가오는 모든 도전을 물리쳐 이미 전설이 될 만한 위업을 이룩한 세리스마는 그 전설을 진행형으로 유지하는데 무리가 없는 듯했다. 나가라는 종족은 그들 자신이 느끼기에도 지겹도록 오랫동안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세리스마 한 명도 처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도시의 지척에 정예 군단 다섯 개와 수십 명의 수호 장군들을 두게 된 지금 그녀들이 선택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드리고 이세리도 의장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닐렀다.
<인실롭이 우리처럼 생각할까요? 그는 지금 이곳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게 된 이후에도 그걸 그냥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인실롭은 수호자 세리스마와 가주들이 모종의 마찰을 일으켜서 대치 중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인실롭이 충격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만약 세리스마와 가주들이 일으키고 있는 마찰의 정확한 성격을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도시 외곽에 머문 채 전령을 파견하는 식의 점잖은 대응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말했던 의원이 질문했다.
<그의 요구 조건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었지요?>
<우선 하텐그라쥬 방어를 위해 이 도시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마호가니 군단의 비아스 마케로우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그가 정보의 부족을 겪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수호자 세리스마와의 마찰을 무조건적으로 중단하라고 하는군요.>
〈이 도시에도 지도그라쥬를 위해 일하는 남자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인실롭은 비스그라쥬 출신입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대단히 궁금하겠지만, 지도그라쥬의 정보원들을 이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용의 아가리에 들어가 있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불이 얼마나 뜨거울지 토론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사태를 모두 파악한 후에도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을 거라는 니름입니까?>
<북부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그에겐 배후 근거지가 필요합니다. 그가 협박에 가까운 요구 조건을 계속 보내는 것도 빨리 전투 준비를 갖추고 싶어서일 겁니다. 그리고 비아스 마케로우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 이 도시에는 그들의 힘의 근원이 있습니다. 그는 하텐그라쥬를 보호해야 할 겁니다. 그는……………, 아마도 이것이 무의미한 소동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겁니다. 물론 이것이 장난에 불과하더라도 누군가가 책임감을 가지고 뒷처리를 할 필요는 있겠지요.>
의원들 대부분의 시선이 마케로우 가문의 대표자에게로 향했다. 그녀들은 자명한 사실에 예의를 차릴 생각이 없었다. 그 시선을 느꼈지만 소메로 마케로우는 아무런 내색 없이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리고 이세리도 의장은 수심이 깃든 표정으로 소메로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들은 비아스를 원해. 소메로.
하지만 이세리도 의장은 소메로를 다그칠 수 없었다. 소메로가 만일 남자의 협박 때문에 여자를 내준다는 식으로 그들을 비난할 경우 그보다 체면 깎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세리도는 그 마케로우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여인이 그들 모두를 구원해 주길 바라며 닐렀다.
<소메로 마케로우.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보다 더 낫게 니를 수도 있을 텐데. 이세리도는 비늘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소메로를 응시했다. 소메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의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곧 다른 의원들에게로 옮겨졌다. 그녀가 닐렀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결판이 나야 할 것이다. 의장과 의원들은 관심 있다는 표정으로 소메로의 니름을 경청했다.
<우리 세계는 현명한 가주님의 지휘 아래에 단결하는 여성들에 의해 구성됩니다. 물론 종족의 계승을 위해 남자들 또한 필요합니다만, 우리는 그들에게 명예직에 불과한 호위를 맡길 뿐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불신자의 남자들이 그들의 여자에게 그러하듯 보호로써 그들을 나태하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남자를 집에 가둬두지 않지요. 대신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제가 완고한 보수주의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나가의 사회는 그런 모양입니다. 때론 자신의 자유를 주체하지 못해 쩔쩔매고 심지어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까지 하는 남자들을 목격하면 그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저는 역시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의원들의 얼굴에 경계심이 드러났고 이세리도는 반격할 논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소메로는 차분하게 닐렀다.
<수호 장군들이 북부에서 보내오는 위대한 승전보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런 과거를 회상하게 됩니다.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세리도는 소메로의 니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메로는 남자들이 거둔 것이라고는 무분별한 소동뿐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니르고 있었다. 그것으로써 소메로는 의원들이 비아스에 맞서 남자들을 변호할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었다. 역시 당신 또한 마케로우의 일원 이군. 조용한 패배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군. 의원들의 불편한 심경을 정확하게 포착하며 이세리도는 소메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소메로는 닐렀다.
<저는 두세나 가주님의 지혜로운 지휘 하에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문제 또한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마케로우 가문에는 오랜 기간 동안 가주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상황을 좌시하기 어렵습니다.>
이세리도 의장과 의원들은 충격을 간신히 감출 수 있었다. 그녀들의 두뇌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제가 마케로우 가문을 이끄는 힘겨운 의무를 맡아볼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문이 해결해야 했음에도 방치해 두어야 했던 문제를 보살피고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에 대해 대처할까 합니다.>
‘당신은 가문을 선택했군!’
이세리도 의장은 그제야 소메로의 니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메로는 비아스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자들이 그것을 원한다 해도, 수호자들에게 목을 바치라고 비아스 마케로우에게 직접 니를 수 있는 자는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뿐이다. 소메로는 자신이 그런 역할을 맡겠다고 자원한 셈이다. 그리고 그녀는 비아스를 내주는 대신 마케로우 가문에까지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해했다. 이세리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점잖게 닐렀다.
<실로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메로 마케로우. 그토록 긴 시간 동안 마케로우 가문을 방치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수치를 느낍니다. 우리는 진작 당신에게, 다른 누구보다도 확고한 자격을 갖춘 당신에게 마케로우 가문을 부탁했어야 했지요. 우리의 게으름과 사려 없음를 용서하길 바랍니다.>
다른 의원들 또한 비슷한 의미의 니름들을 보내왔다. 소메로는 그런 사과를 물리치며 자신의 부족함을 다시 한 번 닐렀다. 그녀들 중 누군가가 언제 가주 계승을 하겠느냐고 니르자 소메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불신자들의 군대가 목전에 이른 마당에 모범을 보여야 할 자로서 번잡한 의례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을 모시고 제가 당연히 받아야 할 조언과 지도를 청하고 싶은 마음은 한량이 없지만, 번잡한 계승의 례는 생략하겠습니다.>
의원들은 그 니름을 이해했다. 비아스 마케로우가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가주 계승을 전격적으로 해치우겠다는 니름이었다. 그녀들은 소메로의 사려 깊음을 다시 한 번 칭찬했다. 그리고 소메로 또한 그녀들이 빨리 가주 계승을 해치우고 비아스를 잡으러 나서라고 권하고 있음을 이해했다. 미소 띤 얼굴로 의원들을 바라보며 소메로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비아스 이토록 품위 있는 도살을 상상할 수 있겠니? 너는 이런 도살을 당한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