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11)
주위를 둘러본 케이건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그곳은 심장탑 안쪽이었다. 비형은 나늬의 뿔 을 만지작거렸다. 상황이 워낙 다급하게 진행되고 일행이 순식간 에 휙휙 움직이고 있었기에 비형은 나늬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늬는 독특한 경력을 얻게 되었다.
”넌 세계 최초로 심장탑에 들어와본 딱정벌레가 된 거야. 물론 네 주인은 세계 최초로 심장탑에 들어온 도깨비가 되었고, 기분 이 어때?”
나늬는 수화로 몇 마디 대답했고 비형은 그 수화를 보며 빙긋 웃었다. 나늬는 덥다고 대답했다. 딱정벌레의 수화처럼 그곳의 기온은 끔찍하게 더웠다. 티나한 또한 더위를 느끼며 비형이 아 직 도깨비불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비 형의 질문은 티나한의 추측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더운 거죠?”
티나한은 의아해하며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대답은 그의 등 뒤에서 나왔다.
”이곳에서 나가들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 그래서 한 수호자가 이 탑의 꼭대기에서 더운 공기를 계속 아래로 내려보내며 농성을 하고 있다. 정도 이상의 더위도 추위 만큼이나 나가들에게 치명 적이니까.”
아기의 대답에 케이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쇠가 흥분 하여 말했다.
”그런데 발자국 없는 여신은 어디에 있는 거야?”
케이건은 아기가 그 질문에 대답할 것을 기다리다가, 아기가 아 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시우쇠의 말을 반복했다.
”여신님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신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몰라.”
비형은 턱이 쑥 빠진 얼굴로 아기를 올려다보았다. 대답을 듣 지 못하는 시우쇠는 초조한 표정으로 수탐자들을 둘러보았다. 케 이건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모르신다고요? 시우쇠 님의 경우와 같은 겁니까?”
”그래. 시우쇠의 경우처럼 나는 그 신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곤란하군요.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 탑은 대 단히 높습니다.”
아기는 빙긋 웃었다.
”우리에겐 길잡이가 있잖아? 케이건. 네가 필요한 것이라면 뭐 든 말해 주겠어. 이곳 하텐그라쥬에서 일어난 일들 중 네가 궁금 해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질문해. 대답할 테니까. 그러면 너는 내가 알려준 것들을 통해 신체가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케이건은 아기의 말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깨달았다.
”당신이 스스로 짐작하실 수는 없는 겁니까?”
”그래. 신체나 화신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그럴 수 없어. 우회 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그러니까 네가 질문해야 해. 나 는 알 수 없어.”
케이건은 대화의 절반만 들으며 분노하고 있는 시우쇠를 잠깐 돌아보고는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시우쇠를 곧장 보지 는 못하더라도 시우쇠 주위에 있는 수탐자들은 시우쇠를 보고 있 다. 아기가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안다면, 그녀는 시우 쇠를 보고 있는 수탐자들의 시각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아기 는 시우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케이건은 자신의 생각 을 시험해보았다.
”아까 여신께서는 풀이 타고 있는 걸 보니 저기에 시우쇠가 있 을 거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시우쇠가 그곳에 있다고 말해 줬기에 짐작할 수 있게 된 거야.”
”생각한 대로군요. 알겠습니다.”
케이건은 이해했다. 그가 약간의 암시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낸다면 아기는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신체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케이건은 어떤 것이 암시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티나한과 비형은 케이건에게 대화를 맡겨두고는 주위를 경계했다. 케이건이 말했다.
”4년 전, 발자국 없는 여신의 감금이 발생한 시점을 전후하여, 이곳에 어떤 대규모의 장치가 운반된 적이 있습니까?”
”4년 전 하텐그라쥬의 유명한 대장장이 페니나 시에도가 제작 한 커다란 금속 입방체가 이곳으로 옮겨온 적이 있었지. 그것은 51층으로 운반되어 설치되었어. 꽤 거대한 물건이라 옮기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케이건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문제가 풀렸음을, 그리고 아 기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신체나 화신에 대한 것이라면 아기는 우회하여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신체는, 아마도 어떤 구속력이 있는 장치 에 의해 구속되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말씀하신 그 금속 입방체 일 겁니다. 여신의 신체는 51층에 있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이해했어. 그러면 51층으로 올라가야겠군.”
”꽤 다리가 아프겠군요.”
”괜찮아. 곧 도착할 거야.”
아기의 말대로 되었다.
수탐자들과 두 화신이 계단을 오른 순간 그들은 51층에 도착했 다. 마치 즈믄누리로 돌아온 듯한 기분에 비형은 감탄하며 주위 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에 기묘한 것이 들어왔 다. 비형은 깜짝 놀라 케이건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기 나가가 누워 있습니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움켜쥐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어떤 여자 나가가 바닥에 엎드려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케이건은 낮게 속삭 였다.
”비형. 만약을 대비해야 하니까 고개를 돌리시오.”
비형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이건은 티나한에게 도 아기를 지키라는 식의 손짓을 보낸 다음 여자 나가에게 다가 갔다. 여인의 모습을 살핀 케이건은 그 여자가 군인이며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짝 다가간 케이건이 바 라기를 뻗어 여인의 몸을 툭 건드렸지만 여인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티나한의 등 뒤에서 아기가 말했다.
”그 여인은 이곳의 열기 때문에 기절한 거다. 당장은 못 일어 날 거야.”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기를 위로 들어올렸다. 시우쇠 가 말했다.
”뭐 하는 거냐?”
”목을 자를 생각입니다만.”
”관둬! 여신을 구출하는 것이 급하다. 한가하게 그런 일을 하 고 있을 시간이 없다!”
케이건은 그 말을 거부할까 하다가 비형을 떠올리고는 바라기 를 다시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들 앞쪽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다시 움켜쥐며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그는 곧 문이 잠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우쇠가 분노를 억지로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는 거냐?”
”문이 잠겨 있습니다.”
시우쇠는 두말없이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주먹을 잔뜩 끌어당겼다가 문을 후려쳤다. 케이건은 놀라며 몸을 돌렸다. 문은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하마터면 나뭇조각에 온몸이 찢어질 뻔한 케이건은 화를 내며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우쇠는 그에겐 시선도 보내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케 이건은 시우쇠를 가리켜 성격이 불 같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 미가 있는지 생각하며 그 뒤를 따라걸었다. 그 뒤를 이어 티나한 과 아기, 비형과 나늬가 걸어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간 케이건은 시우쇠가 방 가운데서 몸의 불길을 피워올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앞쪽 에 있는 금속 입방체 또한 발견했다. 그것은 꽤 거대한 물건이었 고 그 안쪽은 나가나 인간 크기의 사람 한 명은 무리 없이 집어 넣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는 듯했다. 케이건은 그토록 큰 물 건을 이 높이까지 잘도 옮겼다고 생각했다. 그때 시우쇠가 격노 하여 말했다.
”제기랄, 도대체 어디 있어!”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있잖습니까?”
”여기라니, 그게 어디인데?”
케이건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시우쇠를 보다가 손을 들어 말 없이 입방체를 가리켰다. 시우쇠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을 바라보다가 분노를 참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금속 상자야? 젠장, 이제 보이는군.”
이제 보인다고? 케이건은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시우 쇠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은 채 앞으로 달려갔다. 시우쇠는 금속 입방체 앞쪽의 두 개의 문을 보다가 그것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활짝 열어젖혔다.
수탐자들은 입방체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움찔했다. 케 이건은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렇군. 냉기였어. 냉기로 신체를 얼려놓은 거야. 그런데 이 건 도대체 어떤 기술이지?”
케이건은 눈을 가늘게 떠서 냉동 장치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젊은 여자 나가가 얼어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몸은 금속벽에 기대어져 있었고 두터운 얼음들이 그녀의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허리 옆으로 늘어뜨려져 있는 두 팔 또한 두터운 고드름덩이에 의해 결박되어 있었고 위쪽에서 흘러내리다가 얼어 붙은 것 같은 얼음들은 그녀의 머리를 벽에 고정시켜놓았다.
<빙하에 사로잡힌 시체 같은 모습이었다. 비형은 동정심에 신 음을 흘렸다. 티나한 또한 그 끔찍한 모습에 볏을 꼿꼿이 세웠다.>
시우쇠는 절망적인 몸짓으로 냉동 장치 안을 들여다보다가 케 이건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눈동자 없는 그의 두 눈은 활활 불타며 케이건을 노려보았다.
”이 안에 있냐?”
‘맙소사. 그것도 가르쳐줘야 하나.’ 케이건은 다시 손을 들어 얼어붙은 나가의 얼굴을 가리켰다. 하지만 시우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화신의 목소리가 좌절감 때문에 흔들렸다.
”안 보여.”
케이건은 ‘풀이 타는 것’과 ‘금속 상자’가 이들의 한계임을 깨 달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암시를 주고 가르쳐준다 해도, 그럼으 로써 신체의 주위까지 다가가게 할 수는 있어도, 신체를 직접 보 는 것은 불가능하다. 케이건은 신들이 왜 이런 기묘한 구속에 놓여 있는지 의문스러워했다.
시우쇠가 몸을 돌려 케이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보이지?”
”예.”
”너는 보이지. 그래. 너는 다 볼 수 있지.”
케이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화염의 화신을 바라보았다. 시우쇠 의 코와 입으로 새파란 불길이 들락거렸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 고 있었고 그러자 원래도 친근함을 느끼기 힘든 그 모습이 더욱 소름끼치게 바뀌었다.
”너는 다 볼 수 있다고…………, 너만이!”
갑자기 시우쇠가 두 팔을 높이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