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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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15)


”그의 저즈런 므흔 지잘 알외노라!”

시우쇠가 외친 아라짓 어는 케이건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내가 무슨 끔찍한 짓을 했다는 건가? 나가를 잡아먹은 것을 말하는 건 가? 시우쇠는 다시 현대어로 바꿔 외쳤다.

”이 쳐죽일 놈의 자식아! 내가 지금 했던 말 기억나냐? 그래. 아라짓 어다! 1,500년 전의 말이다. 지금 이 말을 자유자재로 하 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오래된 말이니까. 하지만 권능왕 시대에 도 이미 그런 사람은 없었어! 이 말은 천 년 전에는 이미 사라졌 던 말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어떠냐? 사람들은 천년 전의 말 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제기랄, 너희들과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나가들마저 너희들과 말을 나누는 것에 문제가 없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언어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한계 •선 남쪽에 있던 나가들도 너희들과 똑같은 말을 쓴단 말이다!”

케이건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어가 바뀌는 것이던가? 케이건은 간신히 그랬던 적이 있다는 것을 깨 달았다. 한 때 말은 바뀌고 바뀌었다. 그가 살던 시절, 이미 고대 아라짓어는 상당한 학식을 쌓은 자 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그가 태어났던 시절의 말을 지금껏 무리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무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케이건은 그것이 상식적이지 않은 사실임을 이해했다.

’그래. 북부와 교류가 없던 나가들마저 북부와 똑같은 말을 쓰 고 있어. 그 둘의 마지막 교류가 있었던 것은, 남부와 북부가 뒤 섞여서 같은 말을 썼던 것은 대확장 전쟁이 마지막이었군. 그렇 다면 대확장 전쟁 이후로 언어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말 이 되는군.’

”대확장 전쟁 이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나가들은 남부 에. 북부인들은 북부에! 나가들은 항상 심장 뽑고 쥐 잡아먹으 며, 그러다가 죽어가. 북부인들은 항상 왕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왕 없이 죽어가! 더 이상 하늘에 용이 날지 않고 빌어먹을 왕은 항상 없었어! 이토록 엄청난 정체(停滯)를 모르겠냐! 우주가 숨 막힐 정도로 멈춰져 있다는 것을 못 느끼겠냐고!”

케이건은 무의식 중에 그 말에 대해 반대하고 싶은 기분을 느 꼈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바뀌고 있잖아?’

”그게 네가 저지른 짓이다! 이 끔찍한 정체를 바꾸기 위해 모 진 일이 일어나야 했다. 간신히 나가들은 전쟁을 알게 되었어! 북부인들은 왕을 찾았고 하늘에는 용이 날아다녀! 남부와 북부가 서로를 쳐죽이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생성이다! 변화의 생성이란 말이다! 이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런 엄청난 규칙 파괴를 일으키기 위해 발자국 없는 여신이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가혹한 것이다. 빌어먹을, 나는 규칙 파괴라고 했다. 원 래 규칙은 그게 아냐!”

케이건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래 규칙이 뭔데?”

”이 썩을 자식아. 좋은 질문이다. 윷놀이는 윷가락 네 개로 하 는 거다!”

비형은 웃음을 터뜨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저히 웃 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게 규칙이야! 윷가락 네 개가 던져져야만 말들이 움직여! 변화가 계속 일어난단 말이다! 윷가락 세 개로는 아무것도 못해. 그래서 발자국 없는 여신은 엉터리 윷가락을 만들어내야 했어. 너를 대신할 윷가락 말이다!”

케이건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나를 대신할?”

”그래. 네 번째 윷가락. 자기 속에 갇힌 윷가락. 그 엄청난 시 간 동안 전령하지 않고 한 사람의 몸 속에 숨어 있던 윷가락! 도 대체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뭣 때문이었다고 생 각하냐?”

”나는………….., 나는 나가 체내의 소드락 때문에………… 소드락 중독 으로…….”

”헛소리 하지 마! 소드락은 더운 피 동물에게는 소용이 없어. 식물과 나가에게만 작용해! 그건 네가 만들어낸 기만적인 환상일 뿐이야. 만약 그게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작용했던 거라면, 그건 네가 그 효과를 바꿔버렸기 때문이겠지!”

케이건은 뒤로 물러났다. 시우쇠는 그를 따라가며 외쳤다.

”그 웃기는 접시는 속임수고 미끼일 뿐이야. 나의 도깨비들이 흔히 만들어내는 도깨비불처럼. 너만이 모든 화신을 찾아낼 수 있다. 깨지고 다시 붙는 접시야 눈속임일 뿐이지. 네가 나를, 아 기를, 그리고 발자국 없는 여신이 있는 이곳을 찾아내었다. 우리 는 서로를 찾지 못해. 아기는 시우쇠를 찾을 수 없었어! 시우쇠 는 아기를 볼 수 없고! 너만이 모든 자를 찾아낼 수 있어. 바로 네가 자신을 죽이는 자를 죽음에서 다시 살려내며, 모든 이보다 낮은 자를 위로 떠오르게 하며, 발자국 없는 자의 발자국을 추적 할 수 있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나? 오직 바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어.”

파괴된 탑의 끄트머리에 몰린 케이건은 더 이상 물러나지 못했 다. 그의 앞을 가로막듯이 선 시우쇠는 온몸에서 불길을 일으키 며 노호했다.

”얼간아! 이제 기억을 떠올려라. 네 힘을 훔쳐 쓰던 녀석은 내 가 태웠다. 이제 네 힘과 함께 앞으로 나와라!”

”내 힘을…… 훔쳐 쓰던?”

”유해의 폭포! 그 녀석이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두억시니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었겠나? 그 녀석은 네가 한 눈 파는 사이에 네 힘을 훔쳐 쓰고 있었다. 바로 너의 힘이지. 너는 조금 전에도 그 힘을 썼어! 나가들을 빙글빙글 돌게 만든 건 우리 둘 이 아니라 너다. 너는 바람이다. 네가 어디에도 없는 신이다!”

시우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눈은 허공을 보는 듯이 방 황했고 시우쇠는 그런 방황에 분개했다. 그는 다시 케이건을 쏘아보며 외쳤다.

”이제 내게 그들을 돌려줘! 나는 두 여신과 너무 오랫동안 헤 어져 있었다. 다시 윷놀이에 참가해!”


”케이건 드라카는 극연왕의 오라버니입니다. 나가들을 쳐죽이 는 일밖에 몰랐던 누이에게 염증을 내다가 결국 누이를 떠나버린 그 왕자 말입니다.”

라수를 비롯한 역사에 해박한 사람들 몇 명이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극연왕이나 그 오라버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모 도 갑작스럽게 오래된 의문 하나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왕자! 그래서……”

”예?”

사모는 언젠가 티나한도 품었던 의문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다고 말하더 군. 그런데 아라짓 전사는 왕의 허락 없이는 아내를 얻을 수 없 잖아. 나 이전에는 북부에 왕이 없었는데 케이건이 어떻게 아내 를 얻을 수 있었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예. 그 분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라짓 전사는 물론 왕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왕족일 경우는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왕족의 혈통은 번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라짓의 왕족들은 보통 가장 용감 한 아라짓 전사이기를 요구받았고 그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기에 전쟁터에서 많이들 죽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런 규칙의 예외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 분은 아라짓 전사의 규칙을 어기지 않았습 니다. 그 분은 한 번도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어긴 적이 없었지 요. 우리에게도 그러셨습니다.”

”우리라니, 하인샤 대사원을 말하는 거야?”

오레놀은 계속 설명했다. 그의 말투는 이제 설법하는 것처럼 들렸다.

”고대 아라짓의 왕가는 대사원의 수호자이기도 했습니다. 케이 건 드라카는 아라짓의 마지막 왕족이고, 그래서 왕가의 일원으로 서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대대에 걸쳐 그 분 을 참 많이도 이용했지요. 물론 우리의 궁극적인 요구는 그 분을 다시 왕좌에 복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우리들의 다른 요구를 들어주심으로써 그 요구를 피하려 하셨던 것으로 생 각됩니다. 그 분은 왕좌에 앉으면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셨 던 것 같습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은 아닙니다만 그 경 우, 죄송합니다. 폐하. 나가들을 더 이상 사냥할 수 없기 때문입 니다. 그 분은 키탈저 사냥꾼이기도 하니까요.”

사모는 질문했다.

”어떻게 아라짓의 왕자가 키탈저 사냥꾼이기도 한 거지?”

”누이에게서 도망친 다음 그 분이 자신의 몸을 의탁한 곳이 바 로 키탈저 사냥꾼들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키탈저 사냥꾼들은 도 망쳐온 흑사자의 자손을 용의 자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분이 아내를 만난 곳도 그곳이었습니다. 아, 용의 자손이라는 것은 키 탈저 사냥꾼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모순의 힘을 믿었던 것도 모순이 용의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륜은 나가답게 식물로 태어나 식물의 가장 큰 적이 되는 용의 모순을 곧장 떠올릴 수 있었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왕의 자격이 없군. 케이건이야말로 진실 로…”

오레놀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 당신은 누구도 정당성을 의심할 수 없는 북부의 왕입니 다. 아라짓 왕가의 마지막 후손인 케이건 드라카 님이 당신을 지 명했으니까요. 아라짓의 왕가는 혈족 계승에 대해 그렇게까지 까 다롭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유연한 편에 가깝습니다. 영웅왕은 레 콘이었지요. 폐하의 정당성은 세상의 누구보다도 완벽합니다.”

”잘 모르겠군. 그리고 지금 당장 궁금한 것은 그것이 아니야. 나가들이 멸망할 거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갇혀 있던 신이 드디어 풀려나는 것이라면,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오레놀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케이건 드라카는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입니 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있어온 두 분은 이제 더 이상 둘이 아닙니다. 저는 하늘치 위에서 모두 읽었습니다. 복잡한 설 명은 관두겠습니다만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과 희망이 구현되는 능력을 잘 조합시키면 정보 자체에서 다른 정보들을 얻을 수 있 다는 정도로만 말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분들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케이건 드라카에게서 어디에도 없는 신을 일깨운다는 것은, 케이건 드라카라는 나가 살육자에게 신의 힘을 부여하는 행위가 됩니다. 세상의 그 누구 보다도 나가를 증오하는 신이 세상에 발을 딛게 되는 겁니다. 나 가 살육신이지요.”

사모는 눈 앞이 아득하게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 암흑 속을 방황하던 사모의 시야에 갑작스럽게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하텐그라쥬의 심장탑, 혹은 심장탑의 잔해 위에 우뚝 선 채, 케이건은 극연왕을 떠올렸다. 재위 전반기에는 나가들에게 맹공을 퍼부어 대확장 전쟁에서 나가들이 거둔 성과의 대부분을 무효화시켰고, 후반기에는 그런 자신을 까맣게 잊은 채 북부의 모든 극을 잇는 것에 평생을 바쳤 던 왕. 케이건은 그의 누이를 생각했다. 케이건이 떠난 이후 극연왕은 세상의 모든 극을 이으려 했다. 그녀는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당의 격언을 듣는 편이 좋았을 것이 다. 길은 방랑자가 흘렸던 눈물을 기억할 수 있지만, 그러나 방 랑자를 따라갈 수는 없다. 모든 길이 누이에게로 통했지만 케이 건은 누이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지은 죄가 너무도 가증스러웠기에. 케이건이 갑자기 말했다.

”내가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라는 것이군.”

”그렇다! 네 녀석이 죽기를 거부했기에 그 긴 시간 동안 전령 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발자국 없는 여신이 깨어나면 우리 는 네 속에 있는 그를 꺼낼 것이다!”

”그냥 죽여도 되는데.”

케이건의 말에 시우쇠는 움찔했다. 케이건은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죽이면 내 속에 있던 어디에도 없는 신은 다른 인간에게 로 전령할 거야. 그냥 나를 죽이기만 하면 돼. 그런데 왜 셋이 모인 거지? 셋만이 하나를 상대하지. 그렇다면, 이곳에 셋이 모 였다는 것은 이미 내가 하나라는 말이군.”

시우쇠의 몸 곳곳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시우쇠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아기는 케이건의 말에 집중했다. 케이건은 계속 말했다.

”나는 신체가 아니야. 이미 화신이야. 그런 것이지?”

시우쇠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아냐!”

”그렇지 않아. 나는 화신이야.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 도, 너희 셋을 찾아낸 것도 그 때문이야. 내가 느끼는 나는 극연 왕의 오라비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신이야. 하지만 나는 나를 극연왕의 오라비였던 어떤 얼간이로도 느껴. 어떻게 된 걸까.”

케이건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턱을 받쳤다. 그 동작은 한가로 워보이기까지 했다. 문득 케이건의 손이 등 뒤로 옮겨갔다. 그의 손이 바라기에 닿는 것을 보며 아기는 여린 깃털을 부풀렸다. 케 이건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둘이 하나로 합쳐졌군.”

비형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아기가 솜털을 떨며 말했다.

”비형. 티나한. 발자국 없는 여신을 깨워. 아직 셋이 아냐! 저 얼간이 같은 시우쇠가 모든 걸 망쳐버리기 전에 빨리 셋을 만들 어야 해! 저 나가를 죽여! 어딘가로 전령시키라고!”

케이건의 눈이 스르르 움직였다. 비형은 그 눈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티나한은 떨면서 냉동 장치를 바라보 았다. 열대의 햇빛 속에서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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