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16)
사모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잠깐.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오레놀이 사모를 돌아보았다. 사모는 그곳에 있지 않은 누군가 에게 말하듯이 말했다.
”그래. 기억나는군.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닐렀 지.”
다른 사람들도 사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륜을 제외한 자는 아무도 왕이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사모는 설 명하는 대신 혼잣말처럼 말했다.
”케이건은 아라짓 전사이고, 그가 한 번도 자기가 지켜야 할 규칙을 어긴 적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는 내 명령에 복종해 야 해. 왜냐하면 ”
사모는 말을 끊지 않았다. 하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의 그 짧은 순간, 누군가의 적의가 륜의 감각에 포착되었다. 그것은 비탄과 실망, 자기 혐오에 가득 찬 것이었으며 분명히 피를 원하고 있었 다. 인지하기도 힘든 짧은 순간 륜은 등 뒤에 있는 누군가를 보 았다. 그리고 륜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느꼈다. 그것 은 한 존재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인정해 버리는 것이며, 그 인 정의 순간에서 륜은 상대방의 미래까지 알게 되었다. 그 미래에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륜의 두뇌라기보다는 그 근육이었다. 륜 이 몸을 던지기 직전, 사모는 말을 맺었다.
”나는 북부의 왕이니까.”
작살검이 가슴을 관통했을 때, 륜은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것 이 예상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는 부릅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손을 내밀었을 때 륜은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앞으로 내밀어진 사모의 손은 허공을 방황했고 륜은 그녀의 발치에 쓰러졌다. 사 모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려워하며 뻗은 손으로 륜의 양볼 을 만졌다.
<륜.>
잘못 뻗어나온 기형의 나뭇가지인 양 륜의 등에서 작살검이 흉 측하게 뻗어나와 있었다. 사모는 그 끔찍한 모습에 비늘을 세웠 다. 그때 륜이 닐렀다.
<고개를 드십시오. 누님!>
피에 젖은 륜 의 두 볼을 만지던 사모는 무의식 중에 눈을 들어 공격자를 바라 보았다.
사모가 외쳤다.
”키타타 자보로!”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가슴을 찢고 폐부를 들어내는 듯한 미성의 외침. 그것은 태초에 세상을 열어버린 행위에 대해 가없 는 혼돈이 내뱉었을 법한 비명이었다.
키타타 자보로 또한 들어올린 두 번째 작살검을 허공에 내버려 둔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물론 자보로 씨족의 말에는 잠시 멈 출 계획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모의 처절하리 만큼 아름다운 비명은 그의 모든 사지를 결박하는 주박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키타타는 변 명을 해야 한다는 강박부터 해소했다.
”당신이 대호왕을 보호할 거라 믿었소. 공작. 하지만 내 목표 는 대호왕이 아니라 처음부터 당신이었소.”
륜의 입에서 피거품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사모의 무릎에 얹힌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뒤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륜은 사모의 품에 얼굴을 묻은 모습으로 말했다.
”알아요. 자보로 장군.”
”안다고?”
”나는 용인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너무 잘 알아요. 그리 고 그것 때문에 내 몸은 당신의………, 요구대로 움직여버리게 되 지요. 더군다나 당신은………….. 누님을 보호하려면 움직이라는 식으 로・・・・・・ 생각했습니다. 그건 내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 혹적인 방식입니다. 조금 전……….. 내 몸은 당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사모가 또다시 모든 자들을 굳어버리게 만드는 비명을 올렸다. 키타타는 호흡이 멈춰진 듯한 느낌에 황급히 왼손을 가슴으로 가 져갔다. 살을 뜯어낼 듯이 가슴을 움켜쥔 키타타는 간신히 말을 할 자유를 회복했다. 그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힘겹게 말 했다.
”나가 살육신을 놔두십시오. 폐하.”
”뭐라고?”
”이곳, 침묵의 도시에서 나가의 파멸이 눈 뜨도록 내버려두십 시오. 그것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괄하이드가 뒤늦게 노호하며 대도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사모 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괄하이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으로 대호왕을 바라보았다. 사모는 그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 은 채 키타타 자보로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유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키타타 자보로는 더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용서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나가 살육신은 강림해야 합니다. 저곳에서 그가 죽음의 춤을 추 도록 내버려두십시오. 현실적으로 저는 폐하나 다른 동료들을 당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죽을 겁니다. 그것에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키타타는 작살검을 다시 곧추세웠다.
”그것이 자보로가 선택한 길입니다.”
키타타의 작살검이 허공에서 섬뜩한 빛을 뿌렸다. 사모는 괄하 이드의 대도가 휘둘러질 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