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4)
북부군은 요구 조건의 전달이나 전투 선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걸어온 모습 그대로 전투를 개시했다. 그리고 그 전투의 시작은 꽤나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것이었다. 바람이 하텐그라쥬 쪽으로 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북부군 상장군 라수 규리하는 주저하지 않고 하텐그라쥬가 일찍이 받아본 적이 없던 험악한 도전장을 제출했다.
북부군은 밀림에 불을 놓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세리스마가 그 수증기를 갈취하여 심장탑이라는 극소 지점에 집중시켰기 때문에 하텐그라쥬 근교 수십 킬로미터 지대는 대지에서 각질층이 일어날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무기물처럼 건조해진 나무의 뿌리들은 무심코 부딪힌 발길에도 껍질을 폭발시키며 부서져내렸고 기운없이 늘어진 나뭇잎들은 가지 끝에서부터 거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시우쇠는 그런 건조한 숲에 거친 화염의 야수들을 풀어놓았다. 이 맹포한 공격에 숲은 딱딱한 비명을 내질렀고 불은 밀림을 탐식하며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불티와 나뭇잎들이 열기를 타고 치솟았고 가지들은 불의 꽃을 풍성하게 피워올렸다가 잿더미로 바뀌어 무너져내렸다. 다가오는 석양 아래, 그것은 황혼이 대지를 불사르는 광경처럼 보였다.
화관(冠)을 쓴 수관(樹)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피어오르는 재는 흰 꽃잎이고 불티는 이 놀라운 나무들의 꽃가루였다. 잔인무도한 꽃가루들은 거침없는 가루받이를 통해 어미의 몸을 부수는 자손들을 무차별적으로 재생산했다.
비는 하늘이 땅에게 건네는 대화다. 그리고 불은 땅이 하늘에 향해 발하는 외침이다.
인실롭과 수호 장군들은 절규하며 비를 끌어모았다. 하텐그라쥬를 향한 화공을 저지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모든 나가들의 애정이 모여드는 장엄한 도시에 가해진 무도한 모욕에 대한 분노 또한 거기에 있었다. 세리스마가 많은 습기를 수탈했기 때문에 그들은 수십 킬로미터 저편에서 습기를 모아들였다. 분노한 수호 장군들의 소환에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하텐그라쥬를 향해 모여들던 먹구름은 너무도 일찍 비를 뿌렸다. 화재가 일어난 곳에 닿으려면 수 킬로미터를 남겨둔 위치에서 구름은 비가 되어서 무너져내렸다. 인실롭은 경악하여 수호 장군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절망하여 닐렀다.
<용인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니른다면 그건 도움이 아니었다. 정면으로 저항하는 대신 힘을 더해 버리는 재치 있는 방해였다.
북부군의 진지 가운데서 륜은 아스화리탈의 두 앞발 사이에 꽂꽂이 서 있었다. 그의 눈은 가볍게 감겨져 있었고 오른손은 축 늘어뜨려져 있었다. 허리에 얹힌 왼손만이 간혹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주위에 있는 북부군에게 륜의 모습은 산책 도중에 잠시 멈춰서 생각에라도 잠긴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편안한 자세로 서서 륜은 수호 장군들의 힘에 자신의 힘을 보태고 있었다.
물, 습기, 수증기. 나무들이 토해 낸. 길고 긴 키보렌의 하루가 땅에서 수확한 보이지 않는 자산. 허공을 부유하는 물들.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에 미쳐 낮은 곳으로 찾아드는 본성을 잠시 잊은 광기에 젖은 물들. 그리고 일몰의 하늘에서 차갑게 식어 자신의 순수한 정수를 드러낼 준비를 갖추는, 이슬이 되어야 할 물. 그러나 모아들인다. 이 바람은 좋지 않다. 내버려둔다. 다가오는 저 바람에 몸을 실어, 더한다. 보탠다. 결합시킨다. 차갑고 어두운 구름이 저 앞이다. 이슬은 모레쯤의 꿈으로 미루어두자. 자, 겁내지 말고. 저 구름의 어두움을 두려워 마라. 그것은 또 다른 너다. 그래. 그렇게. 구름이 되어라. 대지를 흠모하는 비가 되어라. 낮은 곳을 찾아내는 너의 귀하디 귀한 본성을 떠올려라. 수호 장군들이 불러들인 구름은 용인이 얹어준 과도한 화물에 힘겨워하다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머나먼 저편의 하늘에 드리워진 빗줄기의 휘장 때문에 그 너머의 세계는 완전히 가려졌지만 휘장 이편에서는 여전히 맹포한 화마가 억수 같은 비를 조롱하며 춤을 췄다.
수호 장군들은 당혹에 찬 니름을 교환했다.
<저 놈들과 수도 없이 싸웠지만, 이런 재주는 본 적도 없습니다!〉
<저 용인은 끝없이 발전하고 있군요. 아직까지 사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하텐그라쥬 근방에는 습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하지만 계속 저런 식으로 방해하 …….)
인실롭은 혼란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만! 제발 그만들 하시오! 당신들 스스로를 보시오. 지금 당신들은 공포에 질려 자신이 무슨 니름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호 장군들은 의혹에 찬 표정으로 인실롭을 바라보았다. 인실롭은 단호하게 닐렀다.
<물을 끌어들입시다! 제기랄, 비가 되어 쏟아진다고 해서 저 물이 어디로 간답니까! 강을 만드는 겁니다. 저쪽에 쏟아진 비를 하텐그라쥬로 끌어옵시다!>
수호 장군들은 정신적 탄성을 질렀다. 곧 그들의 주의력이 땅에 쏟아진 비에 집중되었다. 건조한 땅으로 스며들려던 비는 밖의 방해에 움찔했다. 나무와 풀잎들 사이에서 물이 차가운 환상처럼 일어났다. 가지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마치 누군가가 나무를 걷어찬 것처럼 억지로 떨어져내렸다. 메마른 숲을 적시던 물은 수호 장군들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다.
숲에서 소리없이 파도가 형성되었다.
륜은 눈을 뜸과 동시에 말을 쏟아내었다.
“수호 장군들이 저편의 물을 여기로 끌어오고 있습니다. 저기에는 꽤 많은 물이 쏟아졌고, 자칫하면 덮쳐오는 파도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륜의 목소리가 들리는 위치에 서 있던 라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육지에서 파도를 만나는 것쯤은 이제 그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라수는 차분하게 질문했다.
“저지할 수 있겠소?”
“이건 힘을 더하는 방법으론 안 되겠군요. 정면으로 저지하는 방법뿐인데, 그러기엔 저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시도는 해보겠습니다만 적절한 대비를 생각해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병사들에게 나무를 붙잡도록 명령하십시오.”
륜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북부군을 향해 밀려오는 노도에 주의력을 쏟아부었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나무들의 저항 때문에 파도의 위력은 그렇게 커지지 않았다. 북부군을 향해 몰려오는 물은 나가나 인간의 발목을 적실 정도의 높이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것은 수십 평방킬로미터의 범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었고 따라서 그 물의 양과 내재된 위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륜은 몇 그루의 약한 나무들이 급류에 휩쓸려 기우는 것을 느꼈다. 륜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그 흐름의 방향을 바꿔보려 애썼다. 하지만 수십 명의 수호 장군들이 만들어내는 그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무에 물이 부딪치는 그 소리는 기묘하게 음악적이었다. 음악을 모르는 나가들이 그들의 여신의 힘과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로 만들어낸 그 소리에 라수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거대한 숲 전체가 내뱉는 신음 같은 그 소리를 주의깊게 듣던 라수가 병사들에게 나무에 매달리도록 명령했을 때 물이 마침내 북부군의 발 아래에 도달했다.
병사들은 발목을 잠기게 하는 것이 고작인 그 물을 얕보았다. 그리고 그런 착각은 꽤 많은 수의 병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자빠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교위와 부위들의 쌍소리가 터져나왔고 그제야 병사들은 허겁지겁 나무에 매달렸다. 자세를 확보한 병사들은 나무를 꽉 붙잡은 채 발을 적시며 흘러가는 물을 홀린 듯이 내려다보았다. 물이 흘러가는 광경쯤이야 생애 동안 지겹도록 보았지만 키보렌의 밀림 아래를 흘러가는 그 흐름은 완전히 생경한 것이었다. 물은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높이를 무시하며 흘러갔다. 언덕을 흘러올라가고 나무를 휘감아도는 그 물은 병사들을 겁먹게 만들었다.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며 흘러간 물이 불타는 숲과 부딪친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수증기가 거세게 폭발했다.
땅이 갑자기 입을 열어 구름을 토해 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산더미 같은 수증기들이 나무를 고문하며 피어올라 숲의 머리 위로 치솟았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하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있던 하늘은 맑았고 그래서 수증기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위에서 쏟아지는 황혼의 주홍빛을 받아 수증기는 붉게 물들었다.
눈을 뜬 륜은 그 모습에 탄성을 내질렀다.
꿈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 방금 현실로 뛰쳐나온 듯한 몽환적인 안개가 숲의 모든 지점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륜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자들의 눈에 보이는 주홍빛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무수한 열류의 교환이 있었고 명멸하는 열의 번득임이 있었다. 땅을 흐르던 차가운 물이 타오르던 불에 충돌할 때마다 삽시간에 뜨거운 증기로 바뀌어 부풀어올랐다. 그런 열의 연쇄 폭발을 배경으로 나무들은 더욱 기묘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있었지만 나무의 윗부분에는 아직까지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래서 숲의 모습은 마치 호수 가운데 돋아난 불타는 나무 같았다.
저편에서 시우쇠가 걸어왔다.
시우쇠는 물을 저벅저벅 밟으며 걸어왔다. 그의 발이 내딛어질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 대신 달군 쇳덩이에 물을 뿌린 듯한 거칠고 급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발을 적신 채 나무를 붙잡고 있던 륜은 시우쇠의 발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시우쇠는 피식 웃었다.
“녀석들이 물을 솟구치게 하지 않는 이상 이 불을 당장 꺼버리기는 어렵겠군.”
“수증기가 치솟고 있으니 불도 곧 잡힐 겁니다.”
“그렇겠군. 그건 그렇고, 나무들이 기묘한 꼴을 당하고 있군. 밑둥은 흐르는 물에 젖으며 윗둥은 불타고 있으니.”
“당신 모습도 참 기묘합니다. 흐르는 물 가운데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불덩이니까.”
“그렇겠군. 라수!”
라수는 피로한 눈을 들어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시우쇠는 말했다.
“어쩔 건가. 오늘 내에 결판을 보려는 계획인가?”
“이 정도면 하텐그라쥬에 대한 인사는 충분한 것 같군요. 오늘 밤 동안 수호 장군들에게 수증기로 불을 잡는 노고를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노고 맞지요?”
마지막의 질문은 륜을 향한 것이었다. 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쇠는 높은 지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적당한 위치를 발견한 화염의 화신은 다시 치익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라수는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찾아보러 화재 지점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라수의 명령이 그렇게 황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불타는 숲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타죽을 일은 거의 없었고 불 때문에 주위 또한 환했다.그들은 물 속에서 타버린 동물들을 건져내며 그것이 익사인지 분사인지 토론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