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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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6장 – 춤추는 자 (8)


비아스는 몽롱한 기분 속에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두 발은 몇 킬로미터 밖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두 발에 의지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는 느낌에 난처함을 느꼈다. 물론 분노 또한.

<움직여, 이 도깨비 같은 발아! 움직이라고!>

그녀의 니름에도 불구하고 두 발은 계단을 디딘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묘하게도 그 발은 지루한 것처럼 보였다. 비아스의 정신 속 한 부분에서 누군가가 무턱대고 니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정신 속에서 뛰쳐나온 그 참견꾼은 주의 깊은 세리스마가 또 다시 심장탑 아래 쪽을 무더운 공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 그 뜨거운 공기에 노출된 비아스 마케로우가 제대로 사고할 수도 없는 상태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착각에 불과할 뿐 실제로 그녀의 신경과 근육은 정상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며, 그녀는 언제라도 자신의 두 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요란하게 닐렀다. 비아스는 경외감마저 느끼며 그 니름들을 경청했다. 그 니름들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특히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마지막 주장이었다. 비아스는 그 주장을 따르고자 마음 먹었다. 하지만 다시 내려다본 그녀의 두 발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멀게만 느껴졌다. 눈으로 보이는 사실을 직면한 비아스는 그 주장을 의심했다.

‘내가 어떻게 저 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거지? 저렇게 멀리 있는 것을!’

비아스는 그것이 니름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허리가 아파왔다. 비아스는 어렴풋하게 자신에게 허리라는 것이 있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부분이 왜 아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아스는 자신의 통증을 먼 지방의 모호한 풍문처럼 인식했다. 수다스러운 참견꾼이 다시 닐렀다. 그 참견꾼은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어서 허리가 아픈 것이며 따라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바닥에 앉아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아스는 이제 그 참견꾼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에는 걸으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앉으라고 하는군.’

비아스는 현 상황이 세리스마가 일으킨 일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틀림없이 화리트가 꾸민 일일 거야. 아니, 카린돌인가? 그렇잖으면 냉동 장치에 들어가 있는 소메로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군. 화리트는 유벡스가 산산조각냈으니까. 그리고 카린돌일 리도 없어. 카린돌은 가주가 되었잖아. 그렇다면 냉동장치에 들어가 있는 소메로야.’

비아스는 자신의 추리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정말 탁월한 추리가였다.

열이 계속해서 그녀의 몸 속으로 침투했다. 비아스는 뜨거워진 내장이 피부 아래로 비쳐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끔찍하게 더운 날씨였다. 칭찬을 받고 싶었던 비아스는 그 뜨거운 날씨에 대해 추리했다.

‘여러분. 날씨가 이렇게 더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수호자들이 여신의 이름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바람은 아래로 떨어지는 물로 대지와 대화하고 땅은 위로 치솟는 불로 바람과 대화합니다. 물은 아래로, 불은 위로.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수호자들이 여신의 이름을 훔쳤기 때문에 바람은 대화하는 법을 잊었습니다. 우주적 대화가 중단된 겁니다. 대화는 계속되어야 하고 땅은 계속해서 불을 토합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워진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수호자의 잘못이었다. 비아스는 골치 아픈 상황을 간단하게 해명한 자신에게 스스로 찬사를 보냈다. 모조리, 몽땅, 전부 다 수호자의 잘못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찢어 죽여야 해.’

그러기 위해선 움직여야 한다. 비아스는 자신의 두 발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 번 움직이라고 닐러보았다. 그러나 두 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위는 지독했다. 계단과 복도를 가득 메운 무겁고 뜨겁고 끈끈한 공기는 오래된 저주 같았다. 비아스는 자신의 발에 대해 명령하는 것을 그만뒀다.

오른발이 움직였다.

비아스는 놀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그 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오른발은 한 계단을 올라가 윗계단을 딛고 있었다. 비아스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했다.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것을 그만두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떠올린 비아스는 한 번 더 같은 일을 시도해 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오른발이 또다시 움직였다.

왼발이 움직여야 할 차례에 오른발이 움직이는 바람에 비아스는 균형을 잃었다. 오른발이 다음 계단을 디딘 순간 그녀의 몸이 서서히 오른쪽으로 기울다가 벽에 부딪쳤다.

비아스는 벽에 몸의 오른쪽 부분을 댄 채 왼발을 내려다보았다. 왼발을 움직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벽에 몸을 기댄 채 왼발을 움직이려 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질 위험까지 있었다. 비아스는 먼저 벽에 기대고 있는 상반신을 똑바로 세우려 했다.

왼발이 움직였다.

가까스로 미끄러지는 대신 비늘의 마찰력이 도움이 되었다. 비아스는 몸을 벽에 기댄 채 왼발을 다음 계단으로 옮겨 놓을 수 있었다. 이제 오른발은 두 계단, 왼발은 한 계단을 올라간 채 비아스는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비아스는 뭔가 진전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벽을 기대고 있는 몸을 똑바로 세울 방법만 찾아내면 될 것이다.

뜨거운 공기에 돌벽이 서서히 달궈지고 있었다. 비늘이 설 만큼 뜨거운 날씨에 비아스는 졸음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상반신을 움직일 수 있을까. 그 사실에 대해 고민하던 비아스는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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