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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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15)


사모 주위에는 많은 자들이 몰려섰다. 그들은 사모와 케이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기를 업은 티나한, 마루나래, 그리고 두억시니들과 빌파 삼 부자.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본 자들뿐만 아니라 뒤늦게 합류한 자들도 기묘하게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며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다만 토카리는 정신없이 사모의 상처를 싸맸다. 자신의 아버지와 형과 마찬가지로 토카리 역시 나가를 치료하는 것보다는 죽이는 쪽의 기술에 더 익숙해 있었고 그래서 상처 입은 나가를 치료 한다는 일에 대해 낯설음을 느꼈다. 다행히도 카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신님! 저를 멈춰주십시오!”

아기는 카루에게 가하던 힘을 없앴다. 빌파 삼부자처럼 카루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 모습은 처참했다. 옷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몸 전체가 상당 부분 검게 타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카루는 고통을 억누르며 토카리에게 다가섰다. 토카리는 잠깐 경 계했지만 티나한이 말했다.

”괜찮아. 아군이다.”

토카리는 알았다는 눈짓을 한 다음 카루에게 호의적으로 고개 를 끄덕여 보였다. 카루는 타버린 손가락을 힘들게 놀리려다가 포기하고는 토카리에게 말했다.

”제 허리에 있는 주머니에서 소드락을 꺼내주십시오. 주머니도 타버렸지만 안에는 괜찮은 것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걸 페이에게…….”

토카리는 잿더미가 되다시피한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다루었 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타버리지 않은 소드락을 꺼냈다. 토카리는 한 알을 사모의 입에 밀어넣은 다음 또 한 알을 들어 카루를 바 라보았다. 카루는 고개를 끄덕였고 토카리는 그것을 카루의 입에 넣어주었다.

사모가 진저리를 치며 눈을 떴다.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이 케이건이 말했다.

”사모 페이.”

사모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토카리와 그룸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앉힌 다음 부축했다. 사모는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

”그게 아니다.”

”뭐?”

케이건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실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인 간들과 레콘, 나가, 그리고 대호와 두억시니들. 그들이 앉아 있 는 사모의 주위를 둘러싼 채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너는 진실로 왕이다. 너는 인간의 왕이고 레콘의 왕이고 도깨 비의 왕이다. 그리고 대호의 왕이며 두억시니들의 왕이다. 그리 고 조금 전 너는 나가의 왕이 되려 했다.”

사모는 목을 쓰다듬으며 희미하게 말했다.

”아직도 그럴 의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그건 아니다.”

사모는 상처의 고통에 비늘을 세우며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 이건은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설명하지 않았나? 수호자의 신명은 다른 종족에게 쓸모 가 없다. 레콘의 무기는 다른 종족이 쓸 수도 없거니와 자신의 무기를 건드리게 하는 레콘도 없지. 도깨비의 불 또한 마찬가지 다. 하지만 왕은 모든 종족의 왕이다. 대호왕 사모 페이.”

”모든 종족의?”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왕이 아니다.”

사모는 처연한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며 반복했다.

”왕이…….”

”아니다. 사모.”

”그렇다면 뭐지?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이지?”

케이건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들에게서 좀 떨어진 하늘치의 등 위에서 똑같은 질문이 제기 되고 있었다. 오레놀은 라수의 진전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라 수는 이미 자신의 석벽을 사용하는 방법을 상당 부분 깨달았으며 능숙한 사용을 보여주었다. 라수가 보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레놀은 라수가 툭툭 꺼내어놓는 말들에 의해 라수가 얼마나 빠르게 추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원래부터 라수는 강력한 의심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의 논리를 의심한다는 힘든 고비를 넘긴 라수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회의와 의심을 풀어내었다. 라수는 석벽의 변화가 자신의 추리를 따라잡기 힘들어한다는 인상마저 느꼈다. 하지만 라수는 사유를 늦추지 않았다. 오레놀은 아예 자신이 다루고 있 던 다섯 개의 기둥을 내버려둔 채 경이에 찬 표정으로 라수를 바 라보았다.

갑자기 라수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오레놀은 놀랐지만 다가가도 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초조함을 억누르며 기다렸다. 라수는 멍한 표정으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 다. 오레놀은 그곳에 라수의 석벽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라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세상에…….”

”상장군님?”

라수는 오레놀을 흘깃 돌아보았다. 오레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셨습니 까?”

라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레놀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 만이 볼 수 있는 석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다시 말이 흘 러나왔다.

”세상에…….”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던 오레놀은 폭력적인 충동마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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