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16)
케이건은 다시 고개를 들어 사모를 바라보았다.
”모른다.”
”모른다고!”
”모른다. 그런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모는 실망감에 찬 표정으로 티나한의 등 뒤에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기는 부리를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사모는 다시 저편에 고립되어 있는 시우쇠를 바라보았지만 역시 신통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케이건 또한 사모의 시선을 따 라 시우쇠를 보았고 눈길이 부딪치자 시우쇠는 적의를 감추지도 않은 채 난폭하게 으르릉거렸다. 케이건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 였다.
”그런 것은 없다. 그리고 내가 알 바도 아니고.”
”케이건, 제발!”
”인간에게 준 것은 모른다. 하지만 나가에게 줄 것은 있는 것 같군.”
사모는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케이건은 방심한 듯한 얼굴로 시우쇠를 돌아보았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일까.”
시우쇠는 흠칫하며 두 주먹을 쥐어올렸다. 하지만 케이건은 시 우쇠를 보는 대신 고개를 더 들어올렸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약 간기울여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광대한 하텐그라쥬의 외곽 지대였다. 다른 사람들과 화신들의 시선도 케 이건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눈길을 붙잡을 만한 특별함이 없었다. 그러나 케이건은 그 지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도시 외곽의 상공, 비어 있는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출현했다.
티나한은 그것을 ‘무엇인가’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움직임이었고, 어떤 모습도 갖추지 않았다. 티나한은 눈을 부릅 뜬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땅과 하늘이 폭발적으로 부풀어올랐다. 티나한은 기겁하여 깃털을 부풀렸다. 하늘의 한 지점이 아래로 빠르게 녹아내림과 동시에 땅이 위로 치솟았다. 그것은 독이 잔 뜩 올라 주체할 수 없는 두 마리 뱀처럼 사납게 꿈틀거리며 서로 를 향해 돌진했다. 곧이어 두 뱀은 서로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하늘과 땅이 삽시간에 연결되며 시커멓게 소용돌이쳤다.
”회오리!”
티나한은 자신의 좋은 시력으로 그 회오리가 나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뽑아 위로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믿기 어려운 광경 이었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나무를 그대로 뽑아낼 수 있는 회오리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회오리는 잔디밭을 파헤치는 갈 퀴처럼 밀림을 파헤쳤다. 고목들이 회오리를 타고 빙글빙글 돌았 다. 땅의 잔해를 닥치는 대로 휘감아올리며 그 회오리는 기이한 모습으로 부풀었다. 마치 납작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회오리 는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엄청나게 먼 곳이었기에 그 움 직임을 볼 수 있을 뿐 가까이 있다면 너무나 빨라서 제대로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회오리는 옆으로 무한히 팽창했다. 그 성장을 따라 그들의 얼굴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회오리는 어떤 회오리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갈바마리가 그 광경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여기를”
”둘러쌌다.”
회오리는 거대한 바람의 장이 되어 광대한 하텐그라쥬를 둘러 쌌다. 이제 그것은 직경이 몇 킬로미터도 넘는 거대한 회오리가 되었다.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서는 햇빛이 내려쬐고 있었지만 하텐그라쥬 외곽쪽의 하늘은 시커멓게 몰려든 구름으로 밤이 찾 아온 듯 어두웠다. 티나한은 깃털을 부풀리며 케이건을 바라보 았다.
케이건은 회오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산사태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회오리를 다시 주의 깊게 바라본 티 나한은 결코 달갑지 않은 결론을 얻었다. 회오리가 하텐그라쥬를 향해 좁혀지고 있었다.
도시 외곽에 있는 집들이 날아오는 나무들에 부딪쳐 파괴되었 다. 건물들이 파괴되며 바람에 휘말려 올라갔고 그 때문에 회오 리는 한층 가공할 것으로 바뀌었다. 돌덩이들이 인정사정없이 서 로 부딪치며 회오리 안에서 번갯불이 쉴새 없이 으르릉거렸다. 땅이 가련하게 몸을 떨었다. 몸서리쳐지는 소음들이 모든 곳을 가득 메웠다. 반파된 벽과 지붕이 곳곳에서 날아다녔다. 회오리는 하텐그라쥬를 집어삼키며 심장탑을 중심으로 꾸준히 좁혀들고 있었다.
티나한은 외쳤다.
”케이건! 멈춰!”
케이건은 생기 없는 표정으로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 에는 긍정도 부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소음이 들리기 에 돌아보는 정도의 관심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선도 오랫동 안 계속되지 않았다. 갑자기 케이건은 몸을 돌려 냉동 장치를 바 라보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그 쪽을 향해 걸어갔다. 티 나한이 다시 외쳤다.
”하텐그라쥬를 다 부술 작정인가!”
”우선은.”
그 간단한 대답이 티나한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케이건은 누구 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셋이 하나를 상대하지? 저걸 가져가야겠군.”
”안 돼!”
빌파 삼부자와 두억시니들이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케이건 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순간 갈바마리는 그룸 빌파와 정 면으로 부딪쳤다. 비슷한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냉동 장치 주변의 물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던 티나한이 신음처럼 말했다.
”빙글빙글 돌고 있어.”
코네도 빌파가 이를 갈며 갈바마리를 바라보았다.
”갈바마리! 아까 그것! 다시 해봐!”
그룸 빌파와 엉킨 채 주저앉아 있던 갈바마리가 두 얼굴 모두 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코네도를 바라보았다. 코네도는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
”왼쪽! 오른쪽!”
갈바마리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간신히 갈바마리 가 이해했지만 코네도는 늦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케이 건은 이미 냉동 장치 앞쪽에 서 있었다. 게다가 갈바마리는 시간 을 더욱 지체시켰다. 갈바마리의 두 머리는 서로 자신이 왼쪽으 로 가겠다고 다투었다. 사모가 간신히 입을 열어 두 머리가 지향 해야 할 바를 가르쳐주었을 때 케이건은 냉동 장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심장탑 왼쪽의 금속 돌출물에 사이 커가 한 자루 박혀 있었다. 사이커가 아무리 예리하다지만 금속 을 도깨비지처럼 꿰뚫을 리는 없었다. 케이건은 좀더 자세히 관 찰했다. 그 결과 사이커가 돌출물 속에 있는 어떤 항아리를 파괴 한 채 걸려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케이건은 그 항아리가 깨 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다시 냉동 장치의 앞쪽으로 돌아와 문을 살폈다. 문은 금속의 차가움으로 그를 마주볼 뿐이 었다. 케이건은 그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물이 급격하게 쏟아져나왔다.
케이건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때 물과 함께 무엇인가가 앞 으로 쓰러졌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던 케이건은 자신의 가 슴으로 쓰러지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이 놀 랍도록 차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 또한 차갑기는 마찬가지 였다. 케이건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케이건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나가 여인을 내려다보 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것은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우쇠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고 아기는 솜털이나마 빳빳하게 부풀렸다. 갈바마리도 잠시 싸우는 것을 멈춘 채 그 모습을 바라 보았고 아무도 그를 재촉하지 못했다.
케이건은 완전히 젖어 있는 그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냉동 장 치가 고장났고 그 때문에 얼음이 녹아 여인이 풀려난 것임을 알 았지만, 잠깐 동안 케이건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여인 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냉동 장치에서 흘러나온 물은 그의 정강 이를 적신 채 바닥으로 퍼져나갔다. 더 이상 물이 쏟아지지 않게 되었을 때 케이건은 그녀를 다시 얼려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여인의 얼굴에 있었고, 그래서 케이건은 다시 그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케이건이 평범한 나가 여인의 얼굴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때 여 인이 갑자기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