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18)
키베인은 자신에게 있지도 않은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으 며 등 뒤를 바라보았다. 치명적인 회오리가 숲을 불태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그곳 에는 화염이 없었다. 하지만 나무들은 바스라지고 갈라지고 조각 나며 타들어갔다. 키베인의 눈에 하텐그라쥬를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유산들이 직경 10킬로미터짜리 맷돌에 부어넣어지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 맷돌을 빠져나온 것에서는 어떤 하텐그라쥬 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공포에 질린 대수호자는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 군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을 때에야 대수호자는 고개를 돌렸 다. 데오늬 달비가 말하고 있었다. 키베인은 청각에 주의를 기울 였다.
”대수호자님!”
”예, 달비 부위?”
”다리가 아픈 것이 낫습니다. 대수호자님!”
데오늬가 명랑하게 외쳤다. 키베인은 조금도 화내지 않으며 대 답했다.
”내 생각도 그래요. 9할 이상 동의합니다. 그리고 다리가 왜 아파야 하는 건지 알게 되면 나머지 1할의 동의도 기쁨 속에서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다리가 왜 아파야 하지요?”
”저 탑을 올라가야 하니까요!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데오늬가 말하는 저 탑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두 리번거리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키베인은 곧 장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키베인은 데오늬의 말을 이해했다. 회오리는 지독하게 거대해서 한눈에 그 규모를 파악할 수도 없 었다. 하지만 키베인은 좁혀드는 회오리의 중심에 심장탑이 있음 을 주저없이 인정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어떤 회의도 품지 않 기로 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해보는 것은 그 시점에서 도무지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이 좁혀드는 회오리의 중심점이라면, 그곳은 회오리에서 가장 먼 곳이 기도 하다. 따라서 저 죽음의 회오리가 다가오는 것을 앉아서 바 라보고 있는 것보다는 심장탑을 향해 달리는 편이 옳았다. 게다 가 그 시점에서 심장탑이 가진 가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심장 탑의 꼭대기로 거대한 하늘치가 접근하고 있었다.
키베인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니름도 되지 않는 상상에 잠 시 압도되었다. 키보렌의 대수호자는 묻기 싫다는 느낌이 분명한 어조로 데오늬에게 질문했다.
”저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심장탑은 그 윗부분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부러져 있었지만 아 직도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기에 충분한 높이로 솟아 있었다. 해 일처럼 덮쳐오는 회오리 앞에서 그 부러진 꼿꼿함은 오히려 자랑 스럽다. 그리고 심장탑을 향해 다가드는 하늘치의 높이는 남아 있는 심장탑의 꼭대기에서 몇 십 미터 위였다. 심장탑 꼭대기는 비정상적으로 낮게 날고 있는 하늘치에게 가장 가까워지는 장소 였다. 하지만 남은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여전히 레콘의 능 력이나 자기 기만이 필요했다.
그러나 데오늬는 그 사실에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합니다!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그보다 나은 대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침착을 되찾았다.
”안된 일인지 잘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최초의 등 정자는 아니게 될 겁니다. 이미 북부군이 저 위로 올라갔습니다. 허공을 밟고서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허공을 밟아서 하늘치의 등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해야 합 니다.”
키베인은 모든 정신을 집중시켜 강력하게 닐렀다.
<갈로텍 대장군!>
갈로텍이 저편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말 위에 올라타 있는 갈 로텍의 모습은 병사들을 사이에 두고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대장군! 북부군이 하늘치의 등 위로 올라갔다고 했지요? 우리 도 어쩌면 그 흉내를 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치와 심장탑, 그리고 다가오는 회오리를 빠르게 둘러본 갈 로텍은 대수호자의 니름을 이해했다. 하지만 갈로텍은 그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다.
<혹 하늘치의 등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해도 심장탑이 파괴되면 하텐그라쥬 출신의 심장을 적출한 나가는 다 죽을 겁니 다. 우리는 심장탑과 함께 살아나야 합니다.>
갈로텍의 지적은 정확했다. 대수호자는 신음을 흘렸다. 갈로텍 의 니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일단 저곳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대수호자님께 동의합 니다. 어차피 이곳에 있을 수는 없고, 아무래도 저곳이 중심점인 듯하군요. 그리고 심장탑을 지킨다는 이유에서도 저곳에 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갈로텍은 지체없이 명령했다.
<모두들 소드락을 복용하라! 심장탑으로 간다!>
병사들은 각자의 소드락을 꺼내어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가 공할 가속 속에서 심장탑을 향해 달려갔다. 가지고 있던 소드락 을 꺼내어들던 키베인은 데오늬를 떠올리고는 비늘이 서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달려가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 하 여금 그녀를 뒤쫓아다니게 만드는 그녀는 나가가 아닌 인간이다. 소드락의 효과를 얻을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주력으로 다가오는 회오리보다 더 빠르게 뛴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한 모험이었다. 키베인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소드락을 복용하고 번갯불로 바뀌어 사라지는 것을 보던 데오늬는 자신의 몸이 갑자기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 꼈다. 고개를 돌린 데오늬는 키보렌의 대수호자가 자신을 안아올 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요!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데오늬가 도대체 어떤 중간 과정을 생략했는지 묻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일단 살고 나서 자당께 여쭤봅시다!”
데오늬는 그 말에 키베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까마득한 높 이로 치솟은 바람의 장막이 형체 없는 야수처럼 그들을 향해 달 려오고 있었다. 데오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오늬를 안고 달리는 대수호자를 본 다른 나가 병사들은, 주 춤하면서도 인간 포로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르사 돌 교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았다. 나가는 성마른 어조로 말했다.
”업히시오.”
바르사는 뭔가 제대로 된 감사의 말을 할 여유도 없이 나가에 게 업혔다. 소드락의 힘에 의해 나가는 무거운 그를 업고서도 놀 랄 만큼 민첩하게 달려갔다. 하지만 회오리의 맹포한 기세는 그들의 속도마저도 느린 것으로 여겨지게 하기 충분했다.나가의 등에 업힌 채 바르사는 두 가지 생각만을 계속했다. 자신이 나가 의 조력을 받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 리고 그 나가가 제발 달리기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 다는 것. 회오리는 그들의 발을 잡아챌 듯 으르릉거리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