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5)
륜이 도달한 곳은 거대한 강을 낀 키보렌의 어떤 지점이었다. 강을 바라본 륜은 그것이 무룬 강임을 깨달았다. 륜은 주위를 두 리번거렸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륜은 고개를 돌렸다. 구출대의 모습이 강변을 따라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륜은 반가움에 두 팔을 펼쳤지만, 곧 자신이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륜은 그 사실을 인정하며 구출대를 바라보 았다. 티나한은 무룬 강쪽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으려 했고 케이 건은 머리를 그다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주위의 모든 것을 꼼꼼 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는 비형 과 나늬가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비형이 갑자기 말했다.
”흑사자와 용…………, 흑사자와 용……. 알았다! 나가들에 의해 멸종당한 것들이군요!”
‘흑사자와 용. 케이건 드라카.’ 륜은 생각했다. 뒤이어 티나한 이 말했다.
”키탈저 사냥꾼 식이야! 그래, 이제 생각났어! 전에 들어봤어. 키탈저 사냥꾼들 방식이야. 그 자들은 원수를 죽이고 그 간을 꺼 내어 씹어먹었다고 했어. 맞지?”
륜은 케이건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비형이 두려워하 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들이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케이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요?”
”당연한 거잖습니까? 당신 이름이 나가에 의해 멸종당한 두 생 물이고, 그리고 그걸 나가에 의해 멸망한 자들의 언어로 표현했 고, 그러면서 나가에 의해 멸망한 자들의 방식으로 나가를 대하 고 있어요. 당신은 그들을…… 사냥해서 삶아먹는다고 했죠. 도 대체 나가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거의 경건하 기까지 한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는 겁니까?”
‘모든 것을 다 앗아갔지.’ 륜은 케이건을 바라보며 동정심에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륜은 케이건이 당한 일을 알 수 있었다. 세계가 그를 향해 니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륜은 부정의 의미를 들었다. 륜은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아니라고?’
륜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세계는 인내심을 가 지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륜은 그 설명을 들으며 서서히 이해했다.
‘잠깐. 케이건과 어디에도 없는 신은 현재 하나다. 케이건은 모두 뺏겼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둘은 하나. 그렇다면……?’
륜은 깨달았다. 그 순간 아스화리탈이 고개를 치켜들어 화염을 내뿜었다. 천공을 향해 치솟는 그 불기둥은 륜에게 길잡이가 되 었다. 륜은 자신의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륜은 분 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그 불기둥을 향해, 지금 이곳을 향 해 날아갔다.
라수는 깜짝 놀라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스화리탈이 갑자기 모든 힘을 다해 불을 뿜어올렸다. 용이 뿜어올린 그 불기둥은 하늘치가 떠 있는 높이보다 더 높게 치솟아올랐다. 모든 사람들 이 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한 사람만은 그 렇게 하지 않았다. 륜을 내려다보고 있던 사모는 동생의 입이 움 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조용! 조용히 해봐!”
왕의 명령에 사람들이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스화리탈 또한 그들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사모는 륜의 입을 가리켰고 사 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륜에게 주의를 기울인 그들의 귀에 가느 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 보여줘요.”
”륜? 륜, 뭐라고 했니?”
”케이건에게…… 보여줘요. 그는 다 뺏겼지만, 모조리 뺏겼지 만・・・・・・ 인간들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 있어요. 그건 우리 나가들 에게 ….. 뺏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그걸 보여줘요. 그가 모든 것을…… 다 뺏기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인간들이 보관하고 있던 것?”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말이 이어지길 기다리던 사모는 문득 자신이 그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추락감 같은 것을 느끼며 사모는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륜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가져간 사모는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륜의 호흡을 살폈다.
사모는 안도했다. 륜의 호흡은 미약하지만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고 있었다. 사모는 조심스럽게 동생의 볼을 쓸어만졌다. 그리 고 북부의 왕은 고개를 들어 베미온을 바라보았다. 베미온은 어 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륜과 사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베미온 마립간. 걱정하지 마. 륜은 살아 있다.”
베미온은 그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륜 의 몸을 움직여보려 애썼다. 사모는 그에게 뭔가 설명을 하려다 가 포기하고는 오레놀을 바라보았다.
”대덕?”
오레놀은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글쎄요.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하텐그라 쥬공께서는 케이건 드라카 님의 상실감이 어디에도 없는 신의 선 물을 통해 치유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가에 대 한 케이건 드라카 님의 증오심은 그의 모든 것이 나가에 의해 상 실되었다는 것에 기반하니까요. 만약 케이건 드라카 님께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증오심은 약화될지도 모릅니다. 하텐그라쥬 공의 말씀은 케이건 드라카 님의 나가에 대한 증오가 인간에 대 한 관심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미로 하신 말 씀 같습니다.”
”그 선물이 뭐지?”
”모릅니다.”
대호왕은 깜짝 놀랐다.
”모른다고?”
”신들이 그들의 선민 종족들에게 무엇인가를 줬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합니다만. 예. 그런 것이 있을 거라는 가설이 있지요. 자 신을 죽이는 신은 도깨비에게, 발자국 없는 여신은 나가에게, 그 리고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레콘에게 무엇인가를 준다고 하지 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걸 아무도 모른단 말인가?”
오레놀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황하 던 그의 시선이 문득 부러진 심장탑에 이르렀다. 심장탑을 바라 보던 오레놀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어쩌면 수탐자들은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신들을 찾아다닌 그들이라면…….”
사모는 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륜의 얼굴이 땅에 닿지 않도록 사모는 그 머리를 옆으로 살짝 돌려놓았다. 그리고 사모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에게 묻고 오겠다.”
괄하이드가 경악하여 외쳤다.
”위험합니다! 폐하. 제가 묻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라수 규리하도 끼어들며 말했다.
”잠깐만. 스님, 스님께서는 아까 알던 사실들을 조합해서 모르 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방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하늘 치의 등 위에 있다고요?”
오레놀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어, 그 방법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정리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추론의 시작이 될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쓸모가 없을 거예요.”
사모는 마루나래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루나래가 성큼 달려왔 고 사모는 그 목의 갈기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시도해 보라! 그리고 짐은 수탐자들에게 물어보겠다. 그만, 말하지 마. 대장군. 하텐그라쥬를 짐보다 더 잘 아는 자는 여기에 없다. 그대는 북부군을 책임져야 한다. 대장군은 책임지 고 북부군을 안전하게 하늘치의 등 위로 옮기도록.”
괄하이드는 땅바닥에 있는 륜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 었다.
”하지만 하텐그라쥬 공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요. 공작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사모는 주춤하며 륜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아스화리탈이 가볍 게 앞발을 움직였다. 사모와 사람들은 놀랐지만 아스화리탈은 왼 쪽 앞발을 부드럽게 륜의 등 위에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사 모는 그 뜻을 이해했다.
”하텐그라쥬 공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아스화리탈 이 그를 지킬 것이다.”
괄하이드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모의 눈은 까마득한 곳에 있 는 아스화리탈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스화리탈은 조 금전 보여준 행동 이외에 더 이상의 다른 다짐을 보여주지 않았 다. 뭔가 안심될 만한 행동이나 눈짓을 기대하던 사모는 아쉬움 을 느끼며 말했다.
”그리고, 괄하이드 규리하. 그대는 인간이다.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짐에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나 다른 인간들에겐 있을 것이다. 그대는 그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짐이 그대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짐 이 아직 그대의 왕이고, 그대가 충성의 서약을 귀히 여기는 변경 백이라면, 괄하이드 규리하. 짐의 말을 따르라.”
왕을 바라보던 괄하이드는 갑자기 손을 비틀어 자신의 대도를 거꾸로 쥐어 올렸다. 칼자루를 위로 향하게 들어올린 대장군은 그 주먹을 앞으로 내밀어 왕을 향했다.
”이 대도는 폐하의 것입니다. 저는 폐하를 따릅니다.”
”고맙다. 짐의 변경백이여.”
그리고 사모는 라수 규리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이런 부탁이 정말 기묘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간곡하게 부탁하겠다. 그대는…….”
”저는 학자입니다. 폐하. 저도 폐하만큼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스님과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고맙다. 라. 나가를 살려줘서………. 고마워.”
”그건 제 호기심의 문제입니다.”
사모는 라수에게 미소를 지어준 다음 마루나래의 등에 올랐다. 마루나래는 곧장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갈바마리와 다른 두 억시니들이 으르릉거리며 왕의 뒤를 따라 바람처럼 달렸다. 라수 는 왕과 금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왕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 사람이 세 명 더 있었다. 도깨비 감투를 쓴 그들의 모습은 그들 자신에 게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