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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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8)


카루는 믿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하텐그라쥬 외곽을 바라보았 다. 하텐그라쥬 수비군의 모습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희극적이 었다.

<저 친구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자꾸 빙글빙글 도 는 거지? 이봐, 스바치. 저걸 좀봐.>

스바치는 낑낑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등에는 찢어진 나 가의 육신이 붙들어매어져 있었고 그래서 스바치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창가로 다가오는 스바치를 보며 카루는 닐렀다.

<교대할까?>

<아직은 괜찮아. 조금 더 가서.>

카루는 스바치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수호자 보트린, 당신은 어떻습니까?>

스바치의 등 뒤에 묶여 있던 처참한 모습이 나가가 닐렀다.

<나는 괜찮아요. 스바치가 힘들겠군요.>

카루는 심장탑으로 들어서기 전에 떠올렸던 생각을 다시 떠올 렸다. 보트린을 내버려둔 채 그들 둘만 올라오는 편이 훨씬 쉬웠 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텐그라쥬 전역에 걸쳐 혼란이 일어 난 틈을 타 마케로우 저택에서 보트린을 빼내어 왔을 때 보트린 은 다른 어느 곳보다 여신이 감금되어 있는 냉동 장치로 가길 원 했다. 그리고 카루와 스바치는 지금부터 그곳으로 갈 작정이라는 니름을 한다는 실수를 저질렀다. 보트린은 그들에게 자신을 데려 다 달라고 애원했다. 그들은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창가에 도달한 스바치는 창밖을 보며 카루만큼 당황했다. 심장 탑의 그 높이에서 그는 하텐그라쥬 수비군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가 보았던 그 어떤 광경보다도 황당한 것이었다. 하텐그라쥬 수비군들은 필사적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때 보트린이 그들의 모습을 묘사해 달라고 요구 했다. 카루는 눈에 보이는 대로 닐렀고 그러자 보트린이 대답 했다.

<그건 아마도 어디에도 없는 신이 획책한 일일 겁니다. 지금 저 위에는 세 분의 화신이 모두 모여 계신 모양입니다. 아마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 것이겠지요.>

<북부군이 발자국 없는 여신을 구출하기 위해 그 분들을 데려 온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올라갈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요?>

보트린은 부정했다.

<아니요. 그렇다면 이상합니다. 지금 밖에서는 끔찍한 재난이 펼쳐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보이지 않는 번개가 수십 개씩 땅을 때리고 있는 것 같습 니다. 가주들은 모두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문제가 그거지요. 언제나 위기가 닥치면 자 기 집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것.>

<그 분들은 책임감이 강해서 그럴 겁니다.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남자들이 그 분들을 비웃을 권한은 없을 겁니다. 어 쨌든, 하텐그라쥬를 대상으로 그런 재난이 펼쳐질 이유가 없습니 다. 발자국 없는 여신을 감금한 것에 대해 그 분들이 여신을 대 신하여 분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스바치는 비늘 서는 기분을 맛보며 닐렀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 분들의 징벌을 받는 것입니까?>

<우리의 죄는 분명히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징벌을 왜 여신이 직접 내리도록 하지 않는 걸까요. 그 분들은 여신을 구출해 내어 그 분께 우리들을 넘겨줄 수 있습니다.>

<그 니름이 옳은 것 같군요.>

카루는 보트린을 데려온 것이 역시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 며 닐렀다.

<왜 그 분들은 아직 여신을 해방시키지 않는 걸까요?>

<저로서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 위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어서 빨리 여신 께 가고 싶군요.>

스바치는 그 니름에 동의했다. 그는 다시 기운을 끌어모아 계 단을 밟았다.


티나한은 비형의 목덜미를 붙잡아 나늬의 등에 집어던졌다. 그 리고 무턱대고 고함을 질렀다. ”나늬! 날아올라!” 마지막 순간까 지도 티나한은 나늬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것인지 걱정했다. 하지만 나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올랐다. 그 겉날개가 펴지는 것을 확인한 순간 티나한은 펄쩍 뛰어 계단이 있던 곳으로 향했 다. 티나한이 50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뛰어들자마자 등 뒤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티나한의 대처는 그렇게까지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시우쇠가 만들어낸 산더미 같은 불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시 우쇠는 그것을 냉동 장치 쪽을 어림하여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 불덩이는 허공에서 느닷없이 불어온 돌풍에 부딪쳐 튕겨올랐다. 불덩이는 길게 늘어나며 심장탑에서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을 형 성했다. 시우쇠는 불의 으르릉거림으로 자신의 실망감을 토해 내 며 자신의 몸 전체에서 불을 일으켰다. 케이건은 시우쇠가 냉동 장치에 달려들 작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케이건은 재빨리 말 했다.

”그만둬. 시우쇠.”

시우쇠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케이건을 향해 포효했다.

”셋이 너를 상대할 거다!”

”그래. 그렇게 해. 얼마든지 그러라고. 하지만 먼저 나가들이 다 죽고 나서.”

”절대로 안 돼!”

케이건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하텐그라쥬 수비군을 빙글빙글 돌게 만든 것이 내 능력이라고 했었지?”

시우쇠는 말이나 글로 표현될 수 없는 포효를 내지르며 달렸 다. 하지만 냉동 장치를 향해 달린 시우쇠는 갑자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장자리로 달리고 있었다. 시우쇠는 격분 하여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군.”

시우쇠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의 몸 전체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며 몸을 따라 위로 치솟았다. 손바 닥에 이른 불길은 허공으로 치솟아 구를 형성했다. 케이건은 허 리를 낮추며 바라기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시우쇠는 불덩이를 집 어던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계속하여 부풀렸다. 케이건은 시 우쇠가 무엇을 할 작정인지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텐그라쥬의 하늘에 두 번째 태양이 영글기 시작했다. 나늬에 탄 채 심장탑 주위를 선회하던 비형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시우쇠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열을 한 순간에 개방시켜 심장탑을 통째로 부술 작정이었다. 그때 한 바퀴를 돈 비형의 눈에 하텐그라쥬의 외곽이 눈에 들어왔다. 비형은 또다시 경악했다. 하텐그라쥬 외곽에서 거대한 대호가 용맹한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비형은 이곳에 사모의 심장병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우쇠 님! 그만둬요! 이곳에는 심장병들이 있잖습니까? 케이 건! 당신은 아라짓 전사이지 않습니까! 왕을 보호해야 하잖습니 까?”

비형의 외침은 나늬의 날갯짓 소리를 통과하지 못했다. 비형은 목숨을 걸고 다시 바닥에 착륙할 준비를 했다.


언덕을 뛰어오른 순간 마루나래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사 모는 하마터면 그 등에서 떨어질 뻔했다. 간신히 마루나래의 털 을 움켜잡은 사모는 당황하여 닐렀다.

<왜 그러는 거야, 마루나래?>

마루나래는 물론 입을 열어 대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으로 대답했다. 마루나래는 온몸의 털을 빳빳하게 세운 채 경계심가 득한 시선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사모는 마루나래를 따라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도시의 모습과 나가 군단의 모습이 한꺼번에 사모의 눈에 들어 왔다. 사모는 군단의 모습에 놀라 쉬크톨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마루나래가 병사들의 모습에 긴장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 만 잠시 후, 사모는 아무래도 자신의 추측을 포기해야겠다고 생 각했다. 병사들의 모습은, 그 상황에 포함되어 있는 절실함과 긴박감을 제외하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웃기는 모습이었다. 사모는 도무지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호 장군들 과 병사들은 계속해서 심장탑을 향해 달려가려 애썼다. 사모는 그들의 니름도 들을 수 있었다.

<심장탑으로 가야 해!>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 자신도 스스로의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고 그 래서 격분에 찬 니름들이 두서없이 들려왔다. 그들의 난처한 상 황을 이해하기 위해 사모는 먼저 웃음을 억눌러야 했다. 간신히 자신을 진정시킨 사모는 그제야 아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것이 북부군의 안전한 퇴각을 위해 여신께서 취하신 조처인 가?>

사모는 그것 외에 다른 대답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조 처에 우선 감사했다. 하지만 사모는 자신 또한 그곳에 뛰어들었 다가는 비슷한 꼴이 될 거라는 강력한 예감을 느꼈다. 사모는 어 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온 금군들도 이런 희한한 구경거리는 처음 본다는 듯이 황당해 했다. 갈바마리는 아예 두 입을 쩍 벌린 채 말했다.

”간다.”

”온다.”

사모가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갈바마리의 두 머리가 서로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간다!”

”온다!”

사모에게는 갈바마리의 싸움을 말릴 여유는 없었다. 주위를 두 리번거리던 그녀의 눈에 심장탑 상층부가 들어왔고 다음 순간 사 모는 헛바람을 삼켰다. 그 위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열기가 집중되고 있었다. 사모는 그것이 시우쇠가 일으 키는 일임을 당장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의도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심장탑을 파괴할 작정인가?>

사모는 빙글빙글 돌고 있는 수비군들을 바라보며 비늘을 세웠 다. 심장탑이 파괴된다면 그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하텐그라쥬 의 모든 시민들도 다 죽게 될 것이다. 사모는 페로그라쥬와 악타 그라쥬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렸다.

<안 돼!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들에게 알려줘야 해! 어디 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사모는 무턱대고 앞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마루나래가 거 부했다. 마루나래는 언덕 위에 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모 는 대호를 채근했지만 대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모는 간곡하 게 니르다가 육성으로 바꿔 말했다.

”저곳에 들어가면 우리도 저렇게 된다는 거지? 하지만 가야 해!”

마루나래는 그 소리에 반응을 보이긴 했다. 귀를 움직인 것이 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좌절하는 사모에게 갈바마리의 고함이 들려왔다.

”간다!”

”온다!”

왈칵 화가 치밀어오른 사모는 고개를 홱 돌려 갈바마리를 쏘아 보았다. 그러나 고함을 지르기 전, 사모의 머릿속에 아주 기이한 상상이 떠올랐다. 사모는 그것이 니름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싸울 수 있는 존재의 의미는 분명히 각 별했다. 사모는 결국 손해될 것이 없다는 심정에서 갈바마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신뢰하는 금군에게 보통 사람이라면 웃어버릴 명령을 전달했다.

갈바마리는 웃지 않았다. 대신 사모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 다. 갈바마리가 언덕 아래로 걸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사모는 조심스럽게 마루나래에게 개념을 전달했다.

‘마루나래 따라갈까?’

마루나래의 앞발이 움직였다.

사모는 환호를 내질렀다. 그녀의 거의 황당하기까지 한 계획에 마루나래가 동의했다. 그리고 사모는 마루나래의 판단을 확신했 다. 그래서 그녀와 마루나래, 그리고 금군들은 갈바마리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들은 하텐그라쥬 외곽을 ‘똑바로’ 가로질렀다.

빙글빙글 돌고 있던 나가들은 거의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충격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모 페이와 두억시니들의 모습 자체도 경악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들이 심장탑을 향해 똑바로 걸 어간다는 것은 그들을 황당한 기분에 빠져들게 하였다. 사모는 군단병들을 구출할 것인지를 잠깐 고민했지만 곧 그만두기로 했 다. 그래서 사모는 갈바마리의 등만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갈바마리는 계속 그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세상의 그 어떤 길잡이에게도 없는 독특한 능력이 그 에게는 있었다.

”오른쪽으로 간다!”

”왼쪽으로 간다!”

사모는 갈바마리의 뒤를 따라가며 쾌활하게 외쳤다.

”그래! 그렇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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