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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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3)


티나한과 비형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륜은 청각에 집중하지 않았다. 청각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따라서 휴식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륜은 티나한과 비형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고요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고요 속에서 륜은 말씀을 들었다.

륜은 사모가 그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다시 들어본 말씀은 나가의 것과는 달랐다.

나가의 세련된 말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엉성한 말씀이었지만, 비명이나 웃음소리처럼 그 의미는 분명했다.

“오라는 것 같습니다. 이리오라고 이르고 있군요.”

티나한은 긴장했다.

“두억시니가, 그 뭐냐, 말한다고? 그걸 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습니다. 이 두억시니들은 워낙 형태가 다양하니 말할 줄 아는 자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티나한은 륜의 말을 이해했다. 두억시니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억시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비형이 도깨비다운 낙천적인 제안을 꺼내었다.

“오라는데 가 볼까요? 륜, 그 말씀이라는 것도 목소리처럼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겁니까?”

“가능합니다. 하지만 소리와는 좀 다릅니다. ‘왼쪽’이라는 말은 오른쪽이나 앞, 혹은 뒤에서 들려오더라도 왼쪽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것과 비슷합니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라’고 이르면, 저는 그 ‘이쪽’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네요. 어쨌든 가 보죠?”

티나한은 부리를 부딪쳤다.

“가 보자고? ‘이리 와. 너희들 참 맛있겠구나.’라는 내용이면 어쩔 거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놀라겠어요?”

“놀라주지. 그 중요한 게 뭔데?”

“지금 말하고, 아니, 이르고 있는 자가 두억시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자는 여기 들어와서 처음 만나는 말이 통하는 자라는 거죠. 어때요. 중요한가요?”

륜과 티나한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것은 정말 중요한 지적이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는 농담을 건넬 수도 있고 욕설을 부어줄 수도 있고 우아하게 철학을 나눌 수도 있지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도움이 필요했다.

티나한은 철창을 움켜쥐었다.

“좋아. 가 보자. 잠시만….. 됐어. 두억시니는 없다. 불 붙여.”

세 사람과 한 마리의 몸에 다시 도깨비불이 붙었다. 그들이 광원이었기에 어디에도 그들의 그림자는 생기지 않았다. 이토록 완벽한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기묘하게 보였다.

다짐대로 륜은 정확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계단과 모퉁이, 갈림길 앞에서 륜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티나한은 그 빠른 이동에 만족했지만 동시에 불안을 느꼈다.

“거, 이상하군. 그렇게 달려들던 놈들이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두억시니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다섯 시간 동안의 기억은 아직 생생했고 그래서 그들은 이 이유를 모를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장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도.

그들이 멈춰선 곳은 거대한 우물 같은 수직 통로의 중간쯤에 튀어나온 선반 같은 곳이었다. 수직 통로의 위쪽은 빛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히 높았고 바닥 또한 만만찮게 깊었다. 수직 통로의 직경 또한 거대해서 반대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륜은 반대쪽을 가리켰다.

“저 건너편에서 말씀이 들려옵니다. 뭔가 뜨거운 것이 잔뜩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벽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소리가 들린다.”

“예?”

“너는 안 들리겠지만 나한테는 들려. 저 반대편 벽쪽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네가 말하는 그 흐르는 것인가 본데. 어이, 비형. 도깨비불 하나 던져봐. 저 앞쪽 허공에 띄울 수 있을까?”

비형은 그렇게 했다. 비형이 던진 도깨비불은 수직 통로의 중간, 허공에 떠서 사방에 빛을 뿌렸다.

수직 통로의 둥근 벽면이 모두 드러난 순간 세 사람은 얼어붙고 말았다.

거무튀튀한 석벽을 따라 팔과 다리와 몸통, 그리고 머리들이 뒤범벅이 되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척추가 대롱대롱 매달린 뇌, 토막난 내장, 부러진 뼈와 찢어진 근육,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뜩 부풀어오른 안구, 그리고 치아와 혈관과 피부와 너덜거리는 팔다리들이 수직 통로의 벽을 따라 아주 느리게 흘러내렸다.

그것이 그렇게 천천히 떨어지는 까닭은 담즙과 혈액, 정체를 모를 체액과 배설물과 고름 등이 아교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름끼치는 폭포는 녹아내리는 촛농이나 방패에 붙은 핏덩이처럼 꿈틀거리며 천천히 벽면을 미끄러지고 있었다.

비형은 허리를 확 굽힌 다음 요란하게 토하기 시작했다. 티나한 또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비형이 추락하지 않도록 도깨비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온몸의 비늘을 부딪쳐 타다닷 하는 소리를 내던 륜이 말했다.

“아래를…………… 아래를 보세요.”

아래를 본 티나한은 더욱 끔찍한, 하지만 동시에 경이적인 모습을 보았다.

벽면을 따라 흘러내린 그 추악한 흐름은 바닥에 쌓여 서서히 고형화되었다. 그 퇴적물에서 육신의 각 부분이 제멋대로 조합된 물체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충분히 고형화된 그 물체들은 손, 혹은 손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을 이용해 몸을 일으켰다. 두억시니였다. 그렇게 제멋대로 조립된 두억시니들은 퇴적물에서 분리된 다음 독립적인 두억시니가 되어 바닥의 주위에 있는 여러 개의 통로로 걸어들어갔다.

“아래에서 분리된다면………… 비형, 비형! 정신 차리고 도깨비불을 위로 좀 올려봐.”

비형은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 손만 까딱거렸다. 공중에 떠 있던 도깨비불이 위로 솟구치는 것에 따라 티나한과 륜의 얼굴도 올라갔다.

수십 미터 높은 곳 벽면에 거대한 입 같은 구멍이 있었다. 폭포는 거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은 쪽에 있던 그들은 각도가 맞지 않아 구멍 뒤편을 볼 수 없었지만 티나한과 륜은 그 구멍 뒤편에서 두억시니들이 해체되고 있으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그렇다.>

륜은 펄쩍 뛸 만큼 놀랐다. 그리고 그런 경악 속에서 나가인 륜은 당연히 말씀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티나한이나 비형은 륜의 경악을 눈치채지 못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생각이 맞다. 위에서 두억시니들이 해체되고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죠?>

<여기다.>

륜은 그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폭포! 이 유해(遺骸)의 폭포가 ‘당신’입니까?>

<그렇다.>


티나한과 비형은 유해의 폭포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말에 당황했다. 륜은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솔직히 자신도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의식의 공재는? 륜은 그런 것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륜이 말할 수 있는 것은 피와 살점과 뼈다귀의 폭포가 들려준 설명뿐이었다.

유해의 폭포가 쏟아져나오는 구멍 뒤쪽에는 거대한 공터가 있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 그곳에서 어떤 두억시니가 죽었다. 그 두억시니는 무서운 독을 가지고 있었고 죽은 후에도 지독한 독기를 뿜어내었다. 그래서 근처를 지나던 다른 두억시니들까지 독기에 감염되어 죽었다. 독기는 얼마 후 사라졌지만 그 무렵 공터에는 이미 무수한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다시피 했다.

그 시체 더미가 썩으며 흘러나온 부패액이 구멍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 폭포의 탄생이었다. 석벽을 타고 흘러내리던 작은 물줄기가 어느 날인가 자신을 자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가?

“이 피라미드 구조에는 일종의 신비한 힘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이런 기이한 건축물을 만들 이유가 없겠지요.

지상의 피라미드와 지하의 거꾸로 된 피라미드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였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눈 앞의 수직 통로는 피라미드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고 따라서 피라미드의 신비한 힘은 이 수직 통로를 타고 흐르는 모양입니다. 그 힘이 두억시니의 시체들에 작용한 것 같습니다.”

“마법이라는………… 그런 것 말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물줄기는 자신을 자각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피 그 자체가 생명이 아니라 피의 흐름이 생명이듯, 물줄기의 자아는 흐름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액체가 바닥에 쏟아지는 것은 그 ‘물줄기 존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물줄기엔 나름의 걱정이 있었다. 구멍 위쪽에 쌓여 있던 시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줄기는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았다. 물줄기는 ‘원했다’.

사망이 임박한 두억시니들이 공터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마치 그곳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처럼 몰려들어서는 그곳에서 죽었다. 다시 시체가 늘어났고, 물줄기는 소멸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물줄기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무엇’이 되었다. ‘소망할 수 있는 물줄기’가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소망은 사라지기는 할지언정 절대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불이 언제나 더 많은 땔감을 소망하지만 땔감을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충족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땔감이 공급되면 불은 더욱 커진다.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물줄기의 소망은 점점 거대해졌다. 조그마한 흐름이었던 물줄기가 육체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폭포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닥에 한없이 쌓이면 흐름 자체가 중단된다는 ―폭포에게는 그것이 죽음이다.― 이유 때문에 흐름의 속도를 늦추고 바닥에 도달한 육체의 파편들을 다시 두억시니로 환원시키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유해의 폭포는 폭발적인 성장을 잠시 중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망은 충족되지 않았고, 그래서 유해의 폭포는 사유를 시작했다.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언어 없는 사유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떤 자도 유해의 폭포에게 언어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억시니들의 유해에 남아 있는 종족적 기억과 피라미드 자체가 기억하고 있는 두억시니들의 기억이 폭포에게 사유할 능력을 부여했다. 유해의 폭포는 성급함을 알지 못했고 지루함이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유해의 폭포는 천년 동안 꾸준히 사유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났을 때, 언제나처럼 두억시니를 불러들이던 폭포의 소환에 엉뚱한 반응이 나타났다. 폭포는 천년의 사유를 잠시 중단한 다음 그 기묘한 반응에 주의를 기울였다.

비형이 가까스로 욕지기를 억누르고 말했다.

“그게 우리라는 겁니까?”

“예.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두억시니를 만나지 않은 것은 저 폭포가 그렇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에 두억시니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도 저 유해의 폭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 폭포는 자신을 계속 구성하기 위해 두억시니들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마치 군령자 같군요.”

티나한은 동료인 롭스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령자에 대해서는 내가 좀 알아. 내 발굴 동료 중에 군령자가 하나 있거든. 군령자는 여러 개의 영들이 한 몸에 모여 있는 거지. 그런데 저건 여러 개의 몸이 모여서 하나의 영이 된 것 같은데?”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 폭포는 군령자가 아니라 군육자(軍肉者)라고 불러야 하겠군요.”

“적당한 이름인 것 같군. 어쨌든 저 해괴망측한 것에게 나가는 길을 물어볼 수 있겠어?”

륜은 유해의 폭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티나한과 비형은 초조하게 륜을 바라보았지만 유해의 폭포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난 다음, 륜은 고개를 갸웃한 채 말했다.

“저 폭포의 말씀이 놀랄 정도로 세련되어졌군요.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는데. 아마 원래부터 단어는 많이 알고 있었으니 그걸 정리하기만 하면 되었던 모양입니다.”

“단어? 아, 두억시니들. 그런데 물어본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나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지만 먼저 자신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군요. 대가의 개념으로 이른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개념을 모르니까요. 다만 우리가 가버리면 자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으니 그 전에 자기 요구부터 들어달라는 식이군요.”

“그래? 그 요구가 뭔데?”

“자기가 천년 동안 사유했지만 아직 대답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해 대답해 주길 원하는군요. 그런데 그게 좀 까다로운 질문인데요.”

“무슨 질문인데요?”

륜은 미간을 찡그렸다.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는지 알고 싶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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