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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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7)


카루는 통로 벽에 기대어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사모가 벽에 기대어 선 채 쉬크톨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똑같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더라도 카루에게 위안이 되진 않을 것이다. 유해의 뱀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뱀은 몸을 최대한 늘이며 그들을 따라왔지만 중앙 통로에서 그 몸을 완전히 떼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방팔방의 통로에서 두억시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카루와 사모는 몇 시간 전 륜 일행이 겪어야 했던 상황에 그대로 봉착하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카루는 사모 페이가 가진 검술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사실, 하나도 볼 수 없었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카루는 사모의 움직임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두억시니들의 악독한 공격을 피하느라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모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마침내 사모의 놀라운 검술과 어둠 속에서 더 잘 볼 수 있는 나가의 능력에 힘입어 그들은 두억시니들을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카루는 기뻐할 수 없었다. 배낭 속에서 돌을 꺼낸 카루는 슬픈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카루는 식은 돌을 옆으로 던지며 말했다.

<어떡하죠, 페이?>

사모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쉬크톨을 다 닦아낸 사모는 그것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카루는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말했다.

<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이 끔찍한 곳을 나갈 방법이면 좋겠습니다만.>

<그 괴물이 했던 말씀을 생각하고 있어.>

<네?>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괴물이 했던 외침 말이야.>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때 너무 무서워서 듣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못 들었나? 이렇게 했어. ‘너희들이 또 신을 죽이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

카루는 하마터면 정신적 비명을 지를 뻔했다. 사모는 조금 전 ‘이 안에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그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카루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기억을 읽었던 것이다. 카루는 긴장하며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는 팔짱을 풀며 말했다.

<그 불신자들이 륜에게 괴상한 이야기를 해줬던 모양이군.>

<네?>

<불신자들이나 믿을 괴상한 미신을 륜에게 들려줬던 모양이야. 그리고 그 괴물은 륜의 기억을 읽었던 것이겠지. 미신치고도 어이없는 미신이군. 신을 죽이다니.>

카루는 안도했다.

<정말 그렇군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일까요?>

<그 불신자들을 붙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지. 가지, 카루.>

사모는 금방이라도 피라미드를 나갈 수 있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카루는 진저리를 치며 조금 전 자신이 던진 돌멩이를 찾아보았지만 차갑게 식은 돌멩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카루는 배낭 속에서 또 다른 돌멩이를 꺼내 보였다. 하지만 카루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사모가 먼저 말했다.

<돌멩이가 식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씀을 할 거라면, 관둬. 난 돌멩이에 관심이 없으니.>

그리고 사모는 통로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카루는 손에 든 돌멩이를 던진 다음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돌멩이에 관심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나가실 생각입니까?>

<열을 따라서.>

<네? 하지만, 페이. 돌은 다 식었어요. 더 이상 열이 없습니다.>

<돌에는 관심이 없다고 이미 말했어. 카루. 가끔은 고개를 좀 들어보면 어떨까?>

카루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깜짝 놀랐다.

천장 가까운 암흑 속에서 뜨거운 열이 나고 있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열은 마치 그들을 선도하듯 날아가고 있었다.

카루는 기 막힌 표정으로 사모를 쳐다보았다.

<저걸…… 짐작하고 있었습니까?>

<저녁 때가 되었으니까. 빨리 나가지. 카루. 륜을 쫓는 것 이외에도 할 일이 있어.>

천장을 날아가는 열에 너무 감탄했기 때문에 카루는 그 일이 뭔지 묻지 않았다. 카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자는 역시 다르구나.’

이 깊은 암흑 속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지만, 타고난 천성에 따라 밤이 오는 것을 깨달은 박쥐들이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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