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4장 – 왕 잡아먹는 괴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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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4장 – 왕 잡아먹는 괴물 (1)


수십 판의 윷놀이에서 전패한 아라짓 전사가 마침내 격노하여 키탈저 사냥꾼에게 외쳤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왕의 은혜에 감사하라! 너희 발칙한 놈들이 지금껏 멸망하지 않은 것은 왕께서 아직 그것을 내게 명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키탈저 사냥꾼은 윷가락을 주워 모아 아라짓 전사에게 건네며 태연히 말했다.

“왕을 사랑하나 본데, 그렇다면 내게 감사하게. 자네 왕이 지금껏 살아 있는 건 내가 아직 그를 사냥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아라짓 전사는 폭소를 터뜨린 다음 다시 윷가락을 던졌다. 그리고 또다시 패했다.

페치렌 지방의 오래된 민담 中


왕 잡아먹는 괴물

비아스 마케로우와 카린돌 마케로우가 거친 언쟁을 일으켰을 때, 마케로우 가문의 여인들은 난처해하기는 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했다.

카린돌 마케로우의 처사는 마케로우 가문의 여인들뿐만 아니라 하텐그라쥬의 모든 여인들을 당황하게 했다. 남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는 저 악명 높은 사모 페이와 쌍벽을 이룰 정도였던 그러나 이유는 완전히 달랐던 카린돌이 지난 한 달 동안 보여준 애정 행각은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카린돌은 방문 중인 남자들 모두와 자려고 들었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엔 집 밖으로 나가서 남자를 끌어오기까지 했다. 이런 몰상식한 행동에 대해 다른 가문들은 분통을 터뜨렸고 마케로우의 여인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더 참지 못한 비아스가 카린돌을 꾸짖은 것이 언쟁의 시작이었다.

비아스는 사모 페이조차도 거리로 나가 무력한 남자에게 겁을 잔뜩 준 다음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 짓은 하지 않았으며, 남자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그런 처사로 카린돌이 마케로우 가문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카린돌은 차갑게 웃으며 그런 우스꽝스러운 환상은 아버지라는 말만큼이나 웃긴다고 대답했다.

<오, 제발 부탁인데 남자에게 의지가 있고 지성이 있다는 식의 웃기는 의인화는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그 ‘남자의 선택권’이라는 건 결국 주사위와 마찬가지잖아. 아무도 주사위에게 1부터 6까지의 숫자를 내놓을 선택권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걸. 그녀들이 남자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고 싶다면, 그러라고 해. 하지만 내가 꼭 그녀들과 같이 놀아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같이 놀지 않겠다면,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냐. 주사위는 왜 뺏어가는 거야?>

<내게 필요하니까.>

<그렇다면 너도 놀이에 참가해!>

<그 멍청한 놀이에 참가하는 방법 말고도 내게 필요한 것을 얻을 방법은 있어.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나는 오히려 다른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남자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비아스는 어리둥절해졌다.

<남자를 무서워하다니, 무슨 말이야?>

<여자들이 왜 집에서 남자를 기다리기만 하는 줄 알아? 여자들이 거리로 나가서 직접 남자를 놓고 경쟁하게 되면 남자들의 콧대가 높아질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야. 나가 남자들이 저 불신자들의 남자들처럼 될까 봐서지. 쓸데없는 걱정이야. 남자들은 안 돼.>

거기서 끝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카린돌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고상하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지. 불운한 여인들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 볼 수도 있어. 경쟁을 하게 되면 남자를 구경도 할 수 없는 불쌍한 여자들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카린돌은 마치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것처럼 비아스 마케로우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였다. 비아스가 미친 듯이 화를 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절단된 수족마저 재생시키는 나가들의 ‘심각한 언쟁’이라는 것은 다른 종족들의 그것과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결국 최연장자인 소메로가 두 사람을 호되게 꾸짖어야 했다. 두 사람은 소메로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소메로를 거스를 경우 가주 두세나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을 생각하여 화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늉뿐인 화해임은 비아스와 카린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표출하지 못한 분노에 몸을 불사르던 비아스는 결국 심장을 적출한 나가를 죽일 방법을 본격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걱정? 해.>

<걱정하신다고요?>

<그녀의 조악한 두뇌로 나를 죽일 계획을 짜내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그녀가 포기할까 봐 걱정해.>

카린돌의 대답은 남자를 경직되게 했다. 몸을 맞대고 있었기에 그 경직은 곧장 카린돌에게 전달되었다. 카린돌은 빙긋 웃으며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무서워하는 거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유도한 결과에 대해 무서워할 필요는 없잖아.>

<일부러 비아스를 충동질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왜 자신을 위험에 몰아넣죠?>

<그래야만 그녀가 큰 실수를 저지를 테니까. 여자의 세계에서는 위험 없이는 얻는 것도 없어. 스바치.>

여자들 특유의 뻐기는 말투에 스바치는 미소를 지었다.

<허풍떨지 마세요. 어차피 나가를 죽일 방법 같은 건 없잖아요. 그래서 걱정하시지 않는 거죠?>

<나가를 죽일 방법은 없다고? 내 동생은 죽었어.>

<화리트요? 하지만 그 애는 심장을 적출하지 않았잖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쉽게 죽은 것이고.>

<그럼 심장을 적출한 나가는 쉽게 죽지 않는 건가?>

<그렇잖아요?>

카린돌은 잠시 정신을 닫았다가 다시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바치. 뭔가를 묶은 자는 그것을 풀 수도 있어.>

<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우리의 죽음을 묶은 심장탑은 그 죽음을 우리에게 풀어줄 수도 있다는 말씀이야.>

스바치의 몸이 다시 경직했다. 스바치는 고개를 돌려 카린돌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심장····· 파괴요?>

<어? 너 수련자였나?>

스바치는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말을 둘러댈까 고민하던 스바치는 거꾸로 질문하기로 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아시죠?>

<그럼 수호자가 되길 포기했나 보군.>

카린돌은 대답을 회피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덕분에 스바치는 자신의 정체에 대한 곤혹스러운 거짓 말을 짜낼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바치는 앉아서 카린돌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어떻게…………, 혹 화리트가 말해 준 건가요?>

<너도 과거에 수련자였다면 잘 알 거 아냐. 그건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일 텐데. 너 누군가에게 그걸 말해 준 적이 있냐?>

<아니요. 없습니다. 화리트가 말해 준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아시는 거죠? 대답해 주세요!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카린돌은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기색을 뚜렷이 보였다. 하지만 스바치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을 확인하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과거, 페이 가문에서 그런 일이 있었지.>

<페이 가문에서요?>

<그래. 화리트와 륜이 절친한 친구였다는 건 알지? 그래서 그 두 녀석은 자주 서로의 가문을 방문했지. 그런데 그 시절 나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화리트에게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어. 그래서 화리트가 페이 가문을 방문하고 싶어 하면 나도 같이 가주겠다고 한 적이 많았지. 왜 그랬는지는 알겠지?>

스바치는 알 수 있었다. 조그만 소년이 집안을 방문한 남자들을 이끌고 나가버리면 가문의 성인 여성들은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다른 가문을 방문하는 것처럼 남자 뺏기를 당할 수 있는 종류의 외출이라면 더욱더. 그래서 카린돌은 자신도 동행하겠다고 말함으로써 화리트의 외출이 좀 쉬워지게 도와줬던 것이다. 어린 시절, 화리트에게 카린돌은 고마운 셋째 누나였을 것이다. 카린돌에게 화리트는 순진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했던 귀찮은 남동생에 불과했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때처럼 화리트와 함께 페이 가문을 방문했다가 그 집에서 방문 중이던 남자 하나가 죽는 꼴을 보았지. 그 장소에 화리트는 없었어. 하지만 륜이 있었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봤으니 그 꼬마의 기분이 어땠겠어? 그 순간, 그 녀석의 마음이 열려버린 거지.>

<그래서 읽었군요!>

카린돌은 갑자기 킥킥거렸다.

<그래. 아버지라는 웃기는 이름이 한참 들리더군.>

<아버지요?>

<그 남자가 녀석의 어머니의 짝이었나 봐. 그런데 나는 다른 것도 읽었지. 그때 륜은 수련자였거든.>

스바치는 상황을 깨달았다. 카린돌은 정신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해당하는 말을 보내며 계속 말했다.

<그래. 나는 한순간 다 알아버렸지. 그 남자는 처벌을 당한 거라는 것, 그 처벌이 바로 심장 파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심장 파괴라는 건 심장탑에 보관되어 있는 심장을 터뜨림으로써 심장의 소유자를 단숨에 죽이는 비밀스럽고 무시무시한 처벌이라는 것까지.>

스바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온 사이커가 그의 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린돌은 사이커를 스바치의 목 비늘 사이로 밀어 넣으며 천천히 말했다.

<자, 이제 너희들 수호자들의 비밀을 다 알고 있는 나를 어떻게 할 거지?>

스바치는 몸을 떨며 말했다.

<다 읽으셨다면, 마케로우. 그걸 왜 비밀로 하고 있는지도 아시겠군요?>

<알아. 그 비밀이 공개되면 누군가가 단숨에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진 얼간이들은 심장을 적출하지 않으려 들 테지. 그러면 우리 나가들의 가장 강력한 이점을 잃게 되고, 그 순간 우리들은 곡물을 먹는 불신자들의 말발굽 아래 쓰러질 테지.>

<그 이유를 다 이해하신다면…….>

<그래. 다른 여자들 중에도 그 비밀을 아는 자들은 있지? 하지만 그녀들은 그 이유가 합당하기 때문에 수호자들을 깡그리 불태우거나 심장탑을 박살 내는 대신 너희들이 심장 적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놔두지. 어쨌든 여신의 신랑이 될 수 있는 건 남자들뿐이니 도리가 없어. 그리고 너희 수호자들이 그 심장 파괴를 함부로 쓰지 않는 건…….>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감히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천한 남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여자들에 의해 수호자들이 모조리 화형당하고 심장탑이 파괴되어, 마침내 나가들이 여신과의 연결을 잃어버려 저 두억시니들처럼 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나를 심장탑의 수호자들에게 고자질할 건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심장 파괴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한 여자들에게만 비밀입니다.>

<잘 생각했어.>

사이커가 사라졌다. 스바치는 목을 만져 보곤 비늘이 몇 개인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스바치는 자신이 이 방에서 사이커를 보지 못했다는 것도 떠올렸다. 침대 아래에 숨겨 뒀던 것일까?

<정말 화나지 않으십니까, 마케로우?>

<화?>

<제가 그런 경우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과거 수련자였을 때 스승님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보통 여자분들은 그런 비밀을 알게 되면 격노하게 되신다고들 하더군요. 무적인 줄 알았던 자신이 실은 언제라도 간단한 손놀림만으로 죽을 수 있는 약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여자도 아닌 남자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런데 당신은 너무 평온해 보이는군요.>

<지금까지 다 말했잖아? 심장 적출은 나가에게 필요한 일이야. 꼭 필요한 일의 부수적 결과로 수호자들에게 약간의 능력이 생긴다면, 그건 필요불가결한 일이지. 게다가 그 능력의 남용에 따르는 위험을 수호자들 자신이 잘 알고 있지. 걱정할 것은 없어.>

<사람이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스바치. 내가 그 일을 처음 알게 된 건 11년 전이야. 그리고 그 후 5년 뒤 나는 심장을 적출하러 갔어.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스바치는 기가 막혔다. 적출식이 불멸의 수단일 때도 적지 않은 나가들이 적출 공포증을 느낀다. 그런데 카린돌은 심장 적출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사를 완전히 내맡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공포도 없이 적출을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여자다우시군요. 용감하세요.>

<관둬. 그 여자답다는 말, 남자들이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싶을 때 여자를 부려 먹기 위해 하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린돌은 미소 지었다. 이제 한결 한가로워진 카린돌의 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 남자는 왜 심장 파괴를 당했을까?>

<그 남자요?>

<그래. 페이 가문에서 죽은 그 남자. 너도 옛날에 수련자였다면 혹 알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사용하길 꺼리는 심장 파괴를 왜 선택했어야 했지? 그 남자가 그렇게 위험했나?>

<그 남자의 이름이 뭡니까?>

<잘 기억이 안 나는군. 요스…… 요스베인지 요스비인지,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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