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4장 – 왕 잡아먹는 괴물 (2)
<요스비야. 륜 페이가 수련자를 그만둔 것은 바로 그 사건 때문이지.>
세리스마의 대답에 스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55층을 걸어 올라온 자신의 다리를 두드리며, 스바치는 의아한 듯 질문했다.
<그 요스비라는 남자가 륜의 아버지였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륜 페이가 왜 적출 공포증에 걸린 건지도 알 만하군요.>
<목전에서 그런 걸 봤으니 심장을 적출하고 싶지 않았겠지.>
<예. 그런데 그 남자는 왜 심장 파괴를 당한 겁니까? 그렇게 위험한 남자였습니까?>
<심장 파괴에 대해서 잘 아나?>
<알 만큼은 압니다.>
<아니. 자네는 몰라. 그게 뭔지를 아는 것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아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 카린돌 마케로우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추측해 냈듯이 그건 대단히 위험한 도구야. 그런 위험성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다른 자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어. 스바치. 그렇다면 그 위험한 처벌을 당한 자의 죄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지 않겠나? 미안하지만 말해 줄 수 없어.>
스바치는 불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바치의 평온한 정신을 본 세리스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화리트 살해범의 정체는 알아내었나? 카루가 의심하는 대로 비아스가 살해범이라는 증거를 찾아냈나?>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비아스에게 접근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습니다. 우회하는 편이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카린돌은 쓸 만한 말을 조금도 해주지 않는군요. 지금으로선 카린돌과 비아스의 반목 때문에 비아스에게 접근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계획은 굉장히 아슬아슬한 가능성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군.>
세리스마의 표현은 스바치까지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 계획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겠지. 자네나 카루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화리트 살해범이 누군지 알아내야 해. 그래야 우리가 대사원에 보낼 사람과 보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분명히 알아낼 수 있어. 힘들겠지만 노력해 주게. 스바치.>
스바치는 결연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 계획이 뭔지 말해 보겠어?>
피라미드의 돌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던 카루는 기겁하며 사모를 바라보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사모 페이를 바라보았지만 사모는 하늘만 바라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카루는 닫았던 정신을 열었다.
<계획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그들은 피라미드의 중턱에 기대어 있었고 그들을 바깥까지 인도했던 박쥐들은 저 먼 숲의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뜨거운 불빛이 되어 번득이고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그 불빛들을 바라보던 사모는 고개만 돌려 카루를 쳐다보았다.
<꽤나 중요한 것인가 보군. 그렇다면 네가 결심하기 좋도록 내가 몇 가지를 말해 보겠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내 동생을 데려가는 저 불신자들은 뭐지? 키보렌에 세 명이나 되는 불신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야. 그들이 누굴 만나러 온 거지. 그리고 내 동생이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어.>
그것은 카루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길잡이들은 암호를 통해 륜이 화리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왜 륜을 데려가는 것일까? 륜이 도망치기 위해 그들에게 부탁한 것일까? 사모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내 동생을 데려가려고 온 거야. 그리고 너. 너는 그들이 내 동생을 잘 데려가는지 감시하러 온 거야.>
<저는 마케로우 가문의……………>
<카루. 두억시니에 대해서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더군. 그런 네가 고작 암살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감시하기 위해 저 끔찍한 피라미드 안까지 따라오지는 않았을 거야. 그대로 하텐그라쥬로 돌아가서 그들은 두억시니에게 잡아먹혔다고 말해 줄 수도 있지. 아니면 그냥 돈을 포기하든가. 하지만 너는 저 안까지 나를 따라왔어. 왜 그랬을까? 그건 네가 마케로우 가문의 의뢰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계획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카루는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사모는 그가 도망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카루를 바라보기만 했다. 뒤로 물러나던 카루는 마침내 튀어나온 돌에 부딪혔고, 그 자리에 멈췄다. 카루에겐 그 상황 전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모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좀 더 말해 볼까? 어떤 나가들과 한계선 북부의 불신자들 사이에 공모가 있는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내 동생을 한계선 너머로 보내는 계획이야.>
칼이나 손, 그 어느 것으로도 사모는 카루를 위협하고 있지 않았다. 사모는 그저 조용한 눈빛과 차분한 말을 건네고 있을 뿐이었다. 사모는 심지어 일어서지도 않았다. 도망칠 테면 도망치라는 태도였기에 카루는 오히려 도망칠 수 없었다. 사모가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겠다면 곤란한데. 카루. 나는 꼭 알아야겠어. 도대체 그 계획이 무엇이기에 내 동생이 가장 친한 친구를 그렇게 무참하게 살해해야 하는 거지?>
<륜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사모는 놀란 표정으로 카루를 돌아보았다. 카루는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만 말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사모가 그를 다그쳤다.
<무슨 말이야. 륜이 아닐지도 모르다니……………. 륜이 화리트의 살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륜이 화리트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누가?>
카루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저는 비아스 마케로우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사모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지금 비아스 마케로우가 자기 남동생을 죽였다고 말하는 거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나보고 믿으라고?>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입니까? 당신도 지금 그러려고 하지 않습니까.>
덤벼들 듯 말한 카루는 곧 그것을 후회했다. 사모가 고통스러운 듯이 얼굴을 돌려버렸다.
<죄송합니다. 페이.>
사모는 카루를 외면한 채 말했다.
<………왜 비아스를 의심하는지 말해 봐.>
<살해 당일 비아스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아스는 특수 도서실의 열람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을 끔찍하게 증오합니다. 그것은 화리트의 생전에 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화리트는 심지어 자기 누나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습니다.>
사모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맙소사. 비아스군.>
<네?>
<비아스 마케로우가 자기 남동생을 죽인 것이군. 너무 끔찍한 일이야.>
<아니,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사모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륜이 화리트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카루는 크게 놀랐다.
<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화리트가 정면에서 칼을 맞지 않았으니까.>
<예?>
<화리트는 등 뒤에서 칼을 맞았어. 장소는 특수 도서실 입구 근처. 그런데 나오다가 칼을 맞은 건 아닐 거야. 도서실을 둘러봤다면 살해자도 발견했을 테니.>
<살해자를 발견하고 도망치다가 맞은 걸 수도 있잖습니까?>
<도망친다는 건 상대가 반드시 자신을 죽일 거라는 걸 알고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야. 화리트가 륜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겠지. 게다가 도망치는 사람의 등은 내려 베기 어려워. 화리트는 들어가다가 미리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맞은 거야. 륜이 도서실 안에 숨어 있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륜이 화리트보다 늦게 도달했다면…….>
<륜이 화리트보다 늦게 도달했다면, 그 시점에 수호자 유벡스는 살아 있었을 거야. 수호자 유벡스가 륜이 화리트의 등을 벨 때까지 아무런 경고도 해주지 않았을까? 만약 륜이 유벡스를 먼저 죽였다면, 화리트가 돌아보지 않았을까? 나는 둘 다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데.>
<그렇군요!>
<그래. 살해자는 유벡스를 먼저 죽였어. 그리고 그를 잔인하게 토막 낸 다음 숨겨 두었지. 그리고 홀로 돌아온 다음 화리트를 몰래 불러내어 도서실로 데려갔지. 그리고 뒤에서 화리트를 따라가다가 그대로 벤 거야. 그런데 이건 적출 공포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나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그것은 화리트를 죽이기 위해 빈틈없이 계획한 자의 소행이지.>
카루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카루는 스바치가 제시했던 가설을 떠올렸다.
<말씀하시는 바가 옳습니다만, 륜 자신이 화리트를 죽이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일 수도 있잖습니까? 적출 공포증에 빠진 척하면서요.>
사모는 카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희들이 보내려고 했던 것은 륜이 아니라 화리트였던 모양이군. 륜이 준비된 암살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걸 보니.>
카루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정했다. 거짓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예. 우리가 보내려고 했던 자는 화리트였습니다. 그런데 그 화리트가 죽었습니다. 저는 살해자가 륜인지 비아스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조금 전 륜이 적출 공포증에 빠져 화리트를 죽였을 가능성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륜이 적출 공포증에 빠진 척한 암살자라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륜은 어떻게 불신자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거지? 너희들이 보내려고 했던 건 화리트인데.>
<아・・・・・・ 화리트인 척하며 우리 계획에 끼어든 거죠. 바꿔치기인 겁니다.>
사모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을 많이 했나 보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륜을 알아. 하지만 그건 내 주관적인 평가니 너는 받아들이지 않겠지. 그러니 객관적으로 말해 주겠어. 먼저, 바꿔치기를 하려 했다면 그렇게 요란하게 화리트를 죽이지는 않았을 거야. 물론 여건상 그런 끔찍한 방법밖에 없을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남는데, 나에 대한 공격이 전혀 없다는 점이지.>
<네?>
<그렇잖아? 륜이 화리트와 바꿔치기된 거라면, 그 바꿔치기를 기획하고 륜을 준비시킨 자들이 있겠지. 설마 륜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해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그런 자들이 있다며. 그 자들은 너희들이 화리트를 보내고 싶어 한 것만큼이나 륜을 한계선 너머로 보내고 싶을 거야. 그 경우엔 내가 그들의 방해물이 되지. 따라서 오래전에 나에 대한 공격 시도가 있었어야 해. 하지만 그런 시도는 없었어.>
카루는 정신적 탄성을 질렀다. 사모의 지적은 정확했다.
<따라서 바꿔치기를 기획한 자들은 없는 거지. 너희들의 그 뭔지 모를 계획은 노출되지 않았어. 카루. 그런 복잡한 가설 대신 가장 단순한 것을 선택하는 편이 가능성이 높아.>
<단순한 것?>
<내가 정리해 주지. 카루. 먼저, 비아스 마케로우가 화리트를 죽였어. 그 이유는 나도 몰라. 하지만 화리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니 그 생각을 존중하겠어. 죽어 가던 화리트에게 적출 공포증 때문에 도망쳤던 륜이 도착했지. 그런 걸 봐야 했다니……. 어쨌든 화리트는 죽기 직전 륜에게 계획을 떠넘겼어. 그래서 륜은 화리트의 부탁을 받아들여 대신 행동하고 있어. 친구의 마지막 부탁인데다가, 어차피 도망칠 생각이었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것이 가장 단순해.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잘 들어맞고.>
카루는 반색하며 외쳤다.
<당신 말씀이 다 옳습니다! 륜은 살해자가 아니었군요! 당신은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고요?>
<륜이 살해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아니, 어, 그럼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으신 겁니까?>
<응?>
<페이 가문에 쇼자인테쉬크톨이 요구되었을 때 말입니다. 왜 조금 전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지 않으신 거죠? 그러면 동생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을 테고 당신도 암살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 텐데요.>
사모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루. 내 동생은 친구를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다른 죄를 지었지.>
<다른 죄?>
<심장을 적출하지 않았어. 어차피 내 동생은 살 수 없어.>
카루는 비늘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럼・・・・・・ 다른 사람 대신 당신 손으로……………?>
카루는 말을 맺지 못한 채 정신을 닫았다. 하지만 카루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다시 정신을 열었다.
<하지만 륜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륜이 화리트 대신 행동하니까? 화리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기에 륜이 대신할 수 있는 거지?>
<그건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륜이 화리트를 대신해서 해야 할 일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말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륜은 우리 요구 없이도 친구의 부탁을 받아 그 일을 하러 가고 있습니다. 제발 그것을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페이. 당신은 륜이 화리트 살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쇼자인테쉬크톨은 성립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을 바엔 당신 손으로 죽이겠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륜이 한계선을 무사히 넘으면 다른 나가의 손에도 죽지 않습니다! 륜은 완전한 생존을 보장받는 거라고요!>
카루의 희열에도 불구하고 사모는 카루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카루는 그 분노에 당황하며 계속 말했다.
<그렇잖습니까? 다른 나가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길잡이들이 훌륭하니 륜은 조만간 그들과 함께 한계선을 넘을 겁니다. 그럼 어떤 나가가 륜을 죽이겠습니까?>
<카루.>
<네?>
<알려줄게 두 가지 있어. 첫째, 내 동생은 나가야. 둘째, 한계선이라는 것은 그 북쪽에서는 나가가 살 수 없다는 의미지. 그 두 가지를 결합해 봐.>
카루는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카루는 곧 사모의 말을 이해하고는 비늘을 서로 부딪쳤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동생은 북쪽에서 살 수 없어. 너희들은 화리트를 적출시킨 다음 보낼 생각이었겠지. 화리트였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하지만 내 동생은 돌아올 수 없어.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래서 그 차가운 곳에서 괴로워하다가 죽게 돼. 조금 전 어떤 나가도 륜을 죽일 수 없다고 했나? 그 말이 맞아. 대신 무시무시한 추위가 륜을 고통스럽게 죽이겠지. 심장을 적출한 나가도 살 수 없는 그 냉혹한 곳에서, 심장을 적출하지 않은 내 동생은 몇 배로 더 지독한 고통을………… 그만둬!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어! 그건 다른 나가의 손에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야!>
멍한 표정으로 사모를 바라보던 카루는 갑자기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카루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돌을 짚었다. 낮 동안 달궈진 피라미드의 돌은 따스했다. 그리고 나가의 시야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더 끔찍한 죽음을 부탁합니다. 페이………………>
사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카루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돌에 부딪혀 작은 섬광을 이루었다가 곧 검게 식어갔다.
<페이. 이런 말씀 드리는 저를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으실 겁니다. 예. 저도 지금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륜에겐 다시없이 끔찍한 죽음이라는 것. 하지만, 하지만 그 일은 중요합니다. 화리트가 하려 했고 이제 륜이 하려 하는 그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합니다. 륜도 중요함을 알았기에 화리트에게서 사명을 넘겨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제발 동생을 보내주십시오. 당신이 동생에게 주려는 것이 편안한 죽음임은 압니다. 누님으로서 주실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기에, 무서운 슬픔 속에서 그 일을 하시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다시 없을 고통 속에 죽게 되더라도 륜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사모는 여전히 침묵했다. 그 침묵은 카루에게 더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었다. 차라리 폭언과 저주를 퍼붓는 사모가 그에겐 훨씬 편안했을 것이다.
견디다 못한 카루는 고개를 들어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가 없었다.
놀란 카루는 황급히 일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카루는 저 피라미드 아래를 걸어가는 사모 페이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녀의 곧은 허리와 정확한 발걸음 어디에도 조금 전에 그가 줄 수밖에 없었던 슬픔은 드러나지 않았다. 카루는 망연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없이 되뇌었다.
<죄송합니다. 페이. 죄송해요. 제발 동생을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