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10)
키타타 자보로는 조바심을 참을 수 없었다. 성루 위로 올라온 네 명은 조금 전부터 입을 다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키타타는 그들의 침묵에 끼어들었다.
“이보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저 나가와 눈싸움이라도
하는 거요?”
비형이 대답했다.
“아, 지금 여기 있는 륜과 저 나가는 서로 니름을 나누고 있습 니다. 우리는 그걸 들을 수 없지요. 지루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왕께서 위험하신데 내가 그걸 왜 기다려……………..”
“저 여자는 륜의 누나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륜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한계선 너머 이곳까지 따라왔죠. 이 정도면 이유가 될 까요?”
키타타는 입을 벌린 채 비형을 바라보았다.
〈그 대호는 어떻게 정신 억압하셨습니까? 누님이 그 정도로 높 은 수준의 정신 억압을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너도 알겠지만 내 정신 억압은 쥐나 꼼짝 못하게 할 정도야. 나도 이 대호를 어떻게 정신 억압했는지 모르겠어. 사실, 억압하 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군. 내가 보내는 개념들에 대해 적절 하게 반응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가끔 이 대호가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는 느낌을 받아.>
륜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사모가 쉬크톨을
뽑아들었다.
륜은 쉬크톨에 놀랐지만 동시에 그 뽑아드는 동작이 기운차지 못하다는 것에 걱정을 느꼈다. 대호에게 걷어차여 수십 미터를 날아갔던 몸이다. 괜찮을 리가 없다. 하지만 사모는 차분하게 닐렀다.
<내려와, 륜.>
<사모.〉 <전에 닐러줬지? 이건 쇼자인테쉬크톨이야.〉 <저는 화리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화리트를 죽인 건…….> <비아스 마케로우지.>
륜은 충격을 받았다. 사모는 쉬크톨을 들고 있기조차 힘들다는 듯이 그 팔을 대호의 등에 얹었다. 쉬크톨의 감촉이 대호를 긴장 시켰고 그 긴장은 턱으로 쏠렸다. 위엄왕의 팔다리가 경련하며 튀어올랐다. 하지만 대호는 곧 턱의 힘을 풀어 위엄왕을 안심시 켰다.
<알고 있어. 륜. 비아스가 화리트를 죽였겠지. 그리고 넌 화리 트의 마지막 부탁을 받은 것이겠지. 그 때문에 이 불신자들의 땅 까지 온 것이겠지.>
<어떻게? 어떻게 아시죠?>
<그건 니르기가 번거롭군. 간단히 닐러주지. 화리트의 동료 하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가 닐러준 몇 가지 사실을 고려해 본 결 과 알게 되었어.>
<그렇다면 쇼자인테쉬크톨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도 아시겠군 요!>
<륜. 이미 시작되었어. >
<네?>
사모는 모피를 목으로 끌어당기며 닐렀다.
<쇼자인테쉬크톨은 이미 시작되었어. 시작된 이상 절대로 중단 될 수 없어.>
<결백한 저를… 제가 결백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죽이시겠 다는 겁니까?>
<륜. 이 땅에 있는 한 너는 살 수 없어.>
륜은 흉벽 위에 손을 짚었다. 곤두선 그의 비늘이 돌에 부딪히 며 불쾌한 소리를 내었다. 륜은 무적왕과 수치스러웠던 허물벗기 의 기억 속에 신음했다. 사모는 계속 닐렀다.
<나가는 키보렌에서 살아야 해. 그건 절대적인 법칙이야.>
그리고 사모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성벽 위의 인간들에게 말한다.”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키타타는 거의 펄쩍 뛰어오를 뻔했 다. 키타타와 병사들은 황급히 성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케이건은 아래를 보는 대신 티나한에게 눈짓을 보내었다. 티나한 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모는 쉬크톨을 다시 들어올려 륜을 가리켰다.
“그 나가를 아래로 내려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대호가 왕의 목 을 끊을 것이다.”
케이건은 륜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갑자기 당한 일에 륜은 뒤 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고 기다리고 있던 티나한은 재빨리 륜을 붙잡았다. 케이건은 륜을 던졌던 손을 그대로 등 뒤 로 돌려 바라기를 뽑아들었다. 몸을 돌린 키타타가 본 것은 이미 안전해진 륜과 바라기를 든 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는 케이건이 었다. 키타타는 절망감 속에서도 검을 뽑아들었다. 케이건은 고 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짓하지 마시오.”
흰 수염을 부르르 떨며 케이건을 쏘아보던 키타타는 갑자기 왼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곤 옆에 서 있던 병사 하나를 낚아챘
다. 병사는 당황하며 끌려갔고 키타타는 그를 등 뒤에서 껴안은 채병사의 목에 검을 가져갔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잠시 동안 꽤 곤혹스러운 침묵이 성루 위를 가득 채웠다. 티나
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타타를 바라보았다.
“이봐. 지금 그거 인질이라고 잡은 거야? 네 병사를?”
다른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키타타에게 붙잡힌 병사조차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장군을 곁눈질했다.
“대장군님?”
하지만 키타타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대한 씨족의 지혜를 계승하고 그 자신의 경험으로 그것을 연마해 온 키타타 자보로는 결코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든 모험을 감행할 만큼. 대장군은 병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미리 용서를 구해 두겠다. 하크렌. 나를 용서해라.”
“대장군님? 도대체 뭘 하시려는………….”
“도깨비! 동료들의 눈에 불을 붙여라! 그러지 않으면 피를 뒤 집어쓸 줄 알아라! 이곳을 끊으면 피가 당장 네게까지 튈거다!” 티나한은 아뿔싸 하는 얼굴로 비형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창백 한 도깨비의 얼굴에서 공포를 느끼며 벼슬을 곤두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