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11)
케이건은 눈에서 불똥을 튕기며 키타타를 노려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고다인 대덕은 발악하듯 외쳤다.
“그만둬! 그만두라고, 키타타!”
“움직이지 마! 고다인!”
앞으로 달려나가려던 고다인 대덕은 그 말에 발을 멈췄다. 대덕은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외쳤다.
“자네 돌았나! 도깨비를 자극하면 안 돼! 아킨스로우 협곡이나 페시론 섬 같은 꼴이 된단 말이야. 잘못하면 모두 다 죽어! 자보로가 지상에서 사라질 거라고!”
“더없이 멋진 모험이지. 그렇잖은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병사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키타타에게 붙잡혀 있던 하크렌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티나한은 철창을 옆으로 조금 치우며 황급히 말했다.
“이봐! 썩을, 지그림 자보로는 왕이 아니라고. 그리고 자보로에는 자보로 씨족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에겐 너희 씨족의 한 사람에 불과한 녀석을 위해 자보로 사람들 전체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칠 권한은 없을 텐데?”
키타타 자보로는 자꾸만 쓰러지려는 하크렌을 억지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당신 말이 옳소. 내 조카를 위해 모든 자보로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는 거지. 왕도 아닌, 다시 선출하면 그만인 마립간일 뿐이니까. 다 옳은 말이오. 하지만 나는 묻고 싶소. 그 차가운 계산을 왜 내 조카에게만 강요하는 거요? 그 남쪽에서 온 비늘 덮인 괴물을 위해 내 조카이자 자보로의 마립간인 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건 옳은 계산이오? 피붙이가 피붙이를 죽이는 저 괴물을 위해? 당신이 권한에 대해 말한다면 나도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소. 우리 씨족도 아니고 자보로 사람도 아닌 당신들은 우리에게 지그림 자보로를 포기하라 요청할 권한이 없소!”
티나한은 말문이 막혔다.
“내 동료를 함부로 괴물이라고 부르지 마.”
겨우 한 마디 투덜거린 티나한은 난처한 얼굴로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케이건은 바라기의 두 끝으로 키타타를 똑바로 겨냥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키타타는 다시 외쳤다.
“도깨비! 어서 내 말대로 해!”
“그럴 필요는 없소.”
케이건은 바라기를 등 뒤로 돌리며 말했다. 바라기는 다시 고리에 걸렸고 케이건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케이건은 티나한에게도 철창을 치우도록 말했다. 티나한은 침울한 표정으로 철창을 거꾸로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려찍었다. 철창은 성루의 돌바닥을 꿰뚫으며 깊숙이 박혔다. 무기를 남에게 주지도, 바닥에 던지지도 않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지만 그 모습은 키타타와 병사들을 몹시 놀라게 했다. 철창을 꽂아놓은 티나한은 케이건처럼 팔짱을 꼈다. 비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눈을 부라리며 쏘아보는 티나한의 모습에 찔끔했다. 케이건은 조용히 말했다.
“무장은 치웠소. 륜을 아래로 내려보내길 바라는 거요?”
“그, 그렇다!”
“잠시 이야기 좀 하겠소.”
그리고 케이건은 륜에게 다가갔다. 귓속말을 하려 했던 케이건은 곧 생각을 바꿨다. 륜이 들을 수 있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이건은 륜을 흉벽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한 손을 륜의 어깨에 두른 다음 다른 손의 집게손가락으로 흉벽 위에 빠르게 글을 썼다.
케이건의 따스한 손가락이 닿은 곳에는 온기가 전달되었다. 륜은 차가운 돌 위로 떠오르는 글자를 볼 수 있었다.
‘내려가.’
륜은 당황하여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내려가서, 누나를 죽여라.’
곤두선 륜의 비늘이 케이건의 손바닥을 찔렀다. 케이건은 그것을 무시하며 글을 썼다.
‘네 누나는 지금 운신도 힘들다. 내려가서 쇼자인테쉬크톨에 응해라. 그리고 죽여.’
“그런 니름도 안 되는…… 읍!”
케이건은 손바닥으로 륜의 입을 틀어막았다. 륜은 케이건의 손을 뿌리치고는 살기 어린 눈으로 케이건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케이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륜을 바라보다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한계선을 넘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은 실수였다. 나늬가 너를 태웠다면 좋았을 텐데. 흑사자 모피를 가졌으니 이제 네 누나는 언제까지라도 쫓아올 것이다. 네 누나가 저렇게 약해진 지금이 기회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내려가서 죽여.’
“나는 그렇게 못해요!”
‘글로 써. 대호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네 누나가 죽으면 대호는 정신 억압에서 풀려나겠지만, 아마 그대로 달아날 거다. 여긴 대호에게 어울리는 땅도 아니고 위험하면 티나한이 계명성을 질러서……………’
륜은 케이건의 손을 옆으로 밀쳐내고 화난 동작으로 글을 썼다. 글을 볼 수는 없었지만 륜의 손가락을 보며 케이건은 그 글을 읽었다.
‘대호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누나를 죽일 수 없어요!’
‘그럼 네가 죽겠느냐?”
륜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케이건의 손이 냉혹하게 움직였다.
‘네 누나는 언제까지고 쫓아올 것이다. 네가 죽겠느냐?”
‘내가 죽겠어요! 빌어먹을, 내가 죽겠어!’
‘비형과 즈믄누리는 대금을 못 받겠군.’
륜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손을 움직였다.
‘티나한은 지원을 받지 못하겠군. 대사원은 실망할 테고.’
“당신, 당신 어떻게 그런…….”
‘화리트 마케로우의 죽음은 무가치한 소동이 되겠군.’
륜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케이건은 륜의 겨드랑이를 붙잡아 힘껏 끌어올렸다. 륜은 허우적거리다가 케이건의 두 팔을 붙잡았다. 케이건의 팔에 매달린 채 륜은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늘로 덮인 나가의 얼굴보다 더 차가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