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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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14)



자보로 사람들이 위엄왕을 찾아내었을 때 위엄왕은 더 이상 그들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대호의 입 속에 갇혀 있으면서 겪어야 했던 공포 때문에 위엄왕은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할 수 없는 조카를 보며 키타타는 목을 놓아 울었다.

자보로 사람들이 그런 소동을 일으키는 동안 케이건은 일행을 데리고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와 사원으로 돌아왔다. 사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티나한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서 케이건에게 질문했다.

“정말 비형을 죽일 작정이었냐?”

륜은 놀란 표정으로 티나한을 돌아보았고 티나한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해 주었다. 케이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보로 사람들이 다 죽는 것보다는 비형이 어르신이 되는 편이 낫소.”

티나한과 륜은 그 말에 비형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케이건의 말이 실로 옳다는 듯이 연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비형을 보고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원의 객실로 돌아온 비형은 호기심에 계속 아스화리탈을 집적거렸다. 아스화리탈은 성가신 듯 비형의 손을 벗어나려 했지만 용의 무기인 불은 도깨비에겐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다. 입이 있었다면 깨물기라도 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스화리탈은 거칠게 날개를 펴 비형의 손을 뿌리치곤 방 안을 정신 사납게 날아다녔다. 케이건이 비형에게 장난을 좀 중단하라고 말한 다음에야 아스화리탈은 륜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객실에는 다시 평화가 돌아왔다. 케이건은 륜의 어깨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데리고 있었냐.”

“당신들을 만나기 며칠 전에 용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용근을 파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럭저럭 눈 뜰 때가 되긴 했군. 왜 파내었지?”

“놔두면 제 동족들의 손에 죽었을 테니까요.”

“계속 네 배낭 속에 있었던 모양인데 어떻게 영양을 공급받았지?”

“소드락을 가루로 만들어서 뿌려두었습니다.”

“그래서 너를 따르는 것이군. 용은 지혜롭지. 자기를 좋아하고 보살피는 사람을 알지.”

“그렇지요. 주위에 적대적인 것이 있으면 발아하지도 않지요.”

“왜 누나를 죽이지 않았지?”

티나한은 끔찍한 소음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잠시 후에야 티나한은 평화롭던 대화가 소름 끼치는 방식으로 중단된 것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아스화리탈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 륜의 등 뒤로 슬금슬금 다가가던 비형도 당혹하여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륜은 눈을 불태우며 케이건을 쏘아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용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눈을 돌려 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럴 기회가 있었다. 륜.”

“누님을 죽일 순 없어요.”

“적출을 했더라도 죽일 수는 있어. 유벡스라는 사서가 죽었던 것을 생각해 봐.”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나는 누님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누나가 너를 죽일 텐데.”

“아직 그러진 못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테고.”

“행운이 계속 따라줄 거라 믿는 건가.”

“아니요. 제 의지를 믿는 겁니다. 누님을 죽이지도, 누님에게 죽임당하지도 않겠다는 제 의지요!”

케이건은 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인샤 대사원까지는 너를 보호해 주겠다.”

“네?”

“그러기로 약속한 거니 그곳까지는 보호하겠다. 하지만 그 후엔 네게 의지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륜은 상처 입은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다가 사납게 외쳤다.

“그러시죠! 그 다음엔 누님 손에 죽든 말든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다. 그럼 이만 잘까. 쓸데없는 소동으로 밤을 많이 소비했으니.”

륜은 비늘을 부딪쳐 불쾌한 소리를 내며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묻겠어요. 케이건 당신 혈관엔 도대체 뭐가 흐르죠?”

“내 혈관?”

“네! 다시 없을 기회이니 피붙이를 죽이라고 말하는, 그리고 왜 죽이지 않았냐고 그렇게 담담하게 따질 수 있는 당신은 뭐죠? 자보로 사람들이 다 죽게 놔두는 것보다는 자기 손으로 동료를 죽이겠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은 도대체 뭐죠?”

비형이 당황하며 말했다.

“륜. 그건 케이건의 처신이 옳았어요. 게다가 전 육이 죽어도 어르신이 될 뿐이잖아요?”

“저는 옳고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기랄, 언제나 맞는 말만 하고 옳은 행동만 하니까 그건 말할 필요도 없어요. 전 케이건의 혈관에 뭐가 흐르는지 알고 싶다는 거예요. 케이건. 당신은 철혈(鐵血)인가요?”

그리고 륜은 손을 뻗어 케이건을 가리키며 외쳤다.

“정말로 당신 같은 자를 위해 아버님께서 팔을 잘랐나요?”

케이건의 눈에서 짧게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자는 아스화리탈뿐이었다. 륜의 어깨에 앉아 있던 아스화리탈이 갑자기 날아오르자 다른 세 사람은 당황하여 용의 모습을 뒤쫓았다.

용은 방 안을 한 바퀴 빙글 돌고는 선반에 걸터앉았다.

“륜.”

아스화리탈을 바라보던 륜은 움찔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케이건은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그를 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그 비틀어진 각도가 서로 어울려 케이건의 얼굴을 무생물적인 것으로 바꿔놓았다. 륜은 침을 삼켰다.

“너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나로선, 내 혈관에 뭐가 흐르는지 말해 줄 수 없다.”

“무슨 말이죠?”

“그것을 말해 주면 추악한 공포가 네 정신을 갈가리 찢어놓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륜은 더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케이건의 말이 완전한 진실임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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