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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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8)


티나한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철창을 움켜쥐려 한 티나한은 그것이 방 밖에 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사원의 조그마한 방에는 7미터나 되는 티나한의 철창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티나한은 깃털을 곤두세우며 문 쪽을 돌아보았다.

티나한은 안도했다. 열린 문을 통해 케이건이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티나한은 그 뒤를 따랐다. 마당으로 뛰쳐나온 케이건은 먼 곳을 응시했다. 문 밖에 기대어 둔 철창을 집어 든 티나한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괴상한 소리였지?”

“대호였소.”

“대호?”

“그렇소. 잘못 들었을 리는 없소. 하지만 기묘하군. 별비의 공격 이후로 자보로는 한 번도 호환을 당한 적이 없는데. 저기 성루 쪽을 보시오. 불이 많이 밝혀져 있군. 당신 눈엔 뭐가 보이시오?”

티나한은 성문 위쪽의 성루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인간들이 움직이고 있군. 무기를 든 녀석들도 있고. 꽤 당황한 눈치야. 하지만 싸우고 있는 건 아냐. 그냥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 같은데. 얼레? 부축받는 녀석도 있네?”

케이건은 이맛살을 찡그렸다.

“부축이라고 했소?”

“부축이 아니면 저런 이상한 모습으로 걷진 않겠지. 하지만 멀어서 확신할 순 없어. 밖에 대호가 있는 걸 보고 놀라 기절한 인간 아닐까?”

케이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군. 옷을 다시 챙겨 입으시오. 다른 사람들도 깨우고. 한 시간쯤 기다렸다가 아무 일이 없으면 다시 자도록 합시다.”

한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반 시간쯤 지났을 때 일단의 병사들이 산문의 문을 거칠게 통과했다. 발소리와 호령 소리에 놀란 승려들이 달려 나왔지만 병사들을 이끌고 있던 키타타 자보로는 승려들을 무시한 채 곧장 객실 쪽으로 달렸다. 승려들은 병사들의 흉흉한 기세에 질려 물러났다. 단숨에 객실까지 달려온 키타타는 뜻밖의 장면에 주춤했다.

객실의 툇마루에는 한 남자가 걸터앉아 있었다. 남자는 두 무릎 사이에 괴상하게 생긴 쌍신검을 세워 놓고는 그 고동에 두 손을 얹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자의 옆쪽에는 덩치 큰 레콘이 솟대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철창을 세워 든 채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키타타 자신도 레콘의 모습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키타타는 병사들을 늘어서게 한 다음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 애쓰며 말했다.

“나는 자보로의 대장군 키타타 자보로요. 그대들의 정체를 말하시오.”

남자가 대답했다.

“케이건 드라카. 이쪽은 티나한. 여행자들이오. 무슨 일이시오?”

“조금 전, 대호 한 마리가 성벽 위로 올라왔소.”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호는 자보로 성벽을 넘을 수 없소. 별비 이후로 어떤 대호도 그런 일은 해낸 적이 없소. 그리고 별비 자신이라 하더라도 무라 마립간이 증축한 성벽은 오르지 못할 거요.”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소. 하지만 한 여자 나가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재주로 대호를 성벽 위까지 올라오게끔 했소. 대호는 그 나가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았소. 병사들을 물리친 대호는 위엄왕 폐하를 물고 다시 성벽을 내려갔소. 대호를 조종하던 그 여자는 우리에게 폐하를 되찾고 싶으면 자신이 쫓는 나가를 내놓으라고 말했소. 젠장. 믿기 어렵겠지만 나가도 말을 할 줄 알더군.”

“알고 있소. 나가는 원래 말을 할 줄 아오. 별로 하지는 않지만.”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정말 그대들의 일행 중에…….”

나가가 있냐고 물으려 했던 키타타는 말을 삼켰다. 케이건의 뒤쪽 문이 열리며 비늘에 뒤덮인 나가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놀란 키타타와 병사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가는 경직된 얼굴로 성문 쪽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케이건과 티나한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마당 가운데 나란히 선 케이건과 티나한은 각자의 무기를 앞으로 내밀며 병사들을 막아섰다. 그 보기 드문 흉흉한 병기인 쌍신검과 철창에 겨냥당하자 키타타와 병사들은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키타타는 손에 든 검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무슨 짓이냐!”

바라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병사들을 겨냥하던 케이건은 바라기를 키타타에게 돌렸다. 두 개의 칼끝에 겨냥당하자 키타타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바라기의 뒤편에서 그 두 개의 칼끝을 닮은 케이건의 두 눈이 키타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 나가는 내어 줄 수 없소.”

키타타는 이를 악물며 손을 들었다. 병사들은 그 손짓에 따라 자신의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수십 명 대 두 사람의 대치였지만, 키타타는 자신들의 이점을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괴상한 검을 들고 있는 케이건은 제쳐 놓고서라도 기둥 같은 철창을 든 채 웃고 있는 레콘은 악몽 같았다. 키타타는 끔찍한 결심을 했다.

“물을 가져오너라.”

티나한이 당장 세 배로 부풀어 올랐다. 곤두선 벼슬은 도낏날 같았다. 병사들은 질겁하며 다시 몇 발자국 물러났고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리석은 짓 관두시오, 대장군. 가장 끔찍하게 죽게 될 거요.”

어느새 달려온 승려들도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승려들 사이에서 달려 나온 고다인 대덕은 아예 키타타에게 달려들었다.

“키타타, 관두게! 그 아이에겐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키타타는 여전히 티나한을 바라보며 대덕에게 말했다.

“그 아이?”

“지그림 말이야!”

“지그림에게 왕의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로군. 고다인.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그 아이는 우리 씨족의 수장이야. 그리고 자보로의 마립간이지. 가치가 있어.”

고다인 대덕은 할 말을 잃었다. 케이건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두 분이 친우이신 듯한데, 친구분의 말씀을 듣도록 하시오. 대장군. 당신이 죽을 각오를 한다 해서 달라질 것은 없소. 당신은 티나한을 쫓아 버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미안하게도 그렇게 되진 않을 거요.”

“당신 혼자서 이 병사들을 대적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소. 비형!”

키타타는 나가의 뒤편에서 걸어 나오는 덩치 큰 도깨비를 보며 긴장했다. 하지만 키타타는 도깨비가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케이건은 비형에게 피를 볼 필요가 없는 훌륭한 전투 기술을 가르친 상태였다. 비형은 케이건의 신호에 따라 도깨비불을 불러내어 몇몇 병사들의 눈을 가렸다. 병사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키타타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형은 다시 도깨비불을 치워 주었다.

“불가능을 인정할 줄 아는 자는 현명하오. 대장군. 포기하시오.”

케이건의 말에 키타타는 무릎이 꺾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때였다. 륜이 입을 열어 말했다.

“가 보고 싶어요.”

티나한은 허탈한 표정으로 륜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비형은 얼굴에 동정심을 담아 보였다. 하지만 케이건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륜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가 보고 싶다는 말이냐.”

“누님을 보고 싶어요. 케이건.”

키타타는 희망에 찬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케이건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륜의 요구를 승낙한 것에는 감상적인 이유는 없었다.

“나도 궁금하군. 여기까지 올 수 있다면 더 따라올 수도 있겠지. 어떤 재주인지 알아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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